UPDATED. 2024-04-26 22:11 (금)
[리플이즘] "조직적 증거인멸" SK 최태원의 행복경영과 사회적 가치는?
상태바
[리플이즘] "조직적 증거인멸" SK 최태원의 행복경영과 사회적 가치는?
  • 민기홍 기자
  • 승인 2020.03.30 08:5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강준만은 ‘대중문화의 겉 과 속’ Ⅲ권에서 ‘사이버 공간의 리플은 개인의 정체성이 분명하지 않고, 집단의 움직임이 나의 행동이 되는 사이버 공간의 한국인의 삶의 증거들이다. 리플의 리플에 의한 리플을 위한 한국형 인터넷 민주주의가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말한다. ‘베댓 저널리즘’이란 말도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에 의하면 베스트 댓글이 여론을 주도하는 현상을 가리키는 용어로, 댓글의 영향력이 커진 것을 반영하는 신조어다. 사실 Reply를 가리키는 ‘리플’(댓글)은 한국의 독특한 인터넷 문화를 대표적으로 상징하는 것 가운데 한가지다. ‘리플이즘’은 리플을 통한 동시대인들의 생각 또는 마음 읽기다. [편집자 主]

[스포츠Q(큐) 민기홍 기자] "SK 못 됐네. 그리 안 봤는데.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라는 게 다 구라였네."(swch***)

"하이닉스 -> SK하이닉스, 유공 -> SK이노베이션, 한국이동통신 -> SK텔레콤. 다 남의 거 인수함. 본인들 힘으로 키운 거는 뭐가 있나."(mayk****)

"지적재산권 훔치는 부도덕한 기업은 퇴출이 답이다."(hyyo***)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은 전기차 배터리 건으로 공방을 벌이고 있다. [일러스트=연합뉴스]

수위가 셉니다. SK그룹의 종합에너지 전문업체 SK이노베이션을 향한 시선이 굉장히 따갑습니다. 지난 22일(한국시간) 미국국제무역위원회(ITC)가 SK이노베이션의 영업비밀 침해소송 조기패소 판결문을 공개한 기사에 달린 댓글들입니다.

여기서 잠깐-.

위대한 기업들의 연구자 짐 콜린스(Jim Collins)와 제리 포라스(Jerry I.Porras)의 저서 ‘성공하는 기업들의 8가지 습관’에는 흥미로운 대목이 있습니다. 저자들은 영속해온 기업들을 선정, 그 회사들의 설립 시기부터 발전 시기 현재에 이르기까지를 연구하면서 다른 기업들과 비교분석한 뒤 세계에서 가장 생명력이 강하고 성공적인 회사들의 남다른 특징을 과학적이고 실증적으로 진단합니다. 그 중 하나가 '끊임없이 개선과 변화를 추구하면서도 변하지 않는 핵심이념, 위험하고 대담한 목표에 도전한다'고 입니다.

한 기업의 철학과 가치. 비전과 목표, 정신과 문화는 그만큼 중차대합니다.

<br>
최태원 SK그룹 회장. [사진=연합뉴스, SK그룹 제공]

이런 맥락에서 요즘 SK그룹 최태원 회장은 눈길을 사로잡습니다. 구성원과 이해관계자의 행복을 강조해 온 SK그룹은 ‘행복 경영’의 주체를 구성원뿐만 아니라 고객·주주·사회·비즈니스 파트너 등 이해관계자로 확장했고 이들과 함께 추구할 행복을 ‘사회적 가치’로 개념화했습니다.

SK는 지난 25일 주주총회서 이같은 내용의 정관 변경안을 통과시켰습니다. 최태원 회장의 경영철학 '사회적 가치'를 정관에 명시하며 실천 의지를 확고히 다진 것이지요. 

상황이 이렇다보니 SK이노베이션의 겉과 속이 다른 행보에 대중들은 고개를 갸우뚱할 수밖에 없습니다.

재계서열 3위 SK와 4위 LG 간 ‘전기차 배터리 혈전’은 어떻게 시작된 걸까요?

지난해 4월입니다. LG화학이 ITC와 미국 델라웨어주 지방법원에 SK이노베이션을 상대로 소송을 냈습니다. 요지는 “후발주자 SK가 수년간 공들여온 핵심 인력과 기술을 훔쳤다는 것”입니다. SK이노베이션 측은 “급여·복지 혜택이 나은 곳으로의 자발적 이동”이라고 반박했습니다. 이후 양측은 국내외에서 아홉 판이나 붙었습니다.

ITC는 통상 및 지적재산권 침해 이슈 등에 대한 감시와 조사, 그에 따른 행정조치 등을 취할 권한을 지닌 준사법기관입니다. ITC는 지난달 14일 SK이노베이션에 조기패소 판결을 내렸습니다. SK가 지난 3일 이의제기에 나서자 "LG가 수십 년 개발한 기술 도적질한 SK, 빌어도 모자랄 판에 추잡하다, 염치없다"는 비난이 거세졌습니다. 여기에 ITC가 SK의 증거인멸 행위 등 구체적 근거를 적시한 판결문을 공개하자 여론은 더욱 악화됐습니다.

ITC는 "영업비밀 침해 소송은 특히 증거인멸 행위에 민감하다"면서 SK이노베이션 재직 중인 LG화학 출신 전 직원 컴퓨터 휴지통에 저장돼 있던 엑셀 문서, 내부 이메일 등을 자료로 첨부했습니다. 또 “조기패소 결정은 (SK이노베이션 처벌뿐 아니라) 유사한 위반 행위를 예방하기 위한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김준 SK이노베이션 사장. [사진=SK이노베이션 제공]

그 속사정이야 어떻든 그룹총수 최태원 회장이 그간 사회적 가치를 그토록 강조했던 인물이라는 점이 SK이노베이션의 최근 행보를 더욱 우습게 만드는 모양새가 되어 버렸습니다. 부인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에게 이혼을 요구하면서, 김희영 티앤씨재단(T&C Foundation) 이사장과 불륜을 저지른 그의 도덕성과 엮어 SK이노베이션을 비꼬는 리플도 보입니다.

업계에선 만일 ITC의 최종결정으로 SK이노베이션이 패소한다면 SK이노베이션의 영업비밀 침해 관련 제품이 오는 10월부터 수입금지 조치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합니다. 이 때문에 LG화학과 합의를 끌어내는 게 현재로선 최선이라는데요. 향후 LG화학과 갈등을 원만히 매듭짓는다 한들 SK이노베이션의 이미지 회복은 쉽지 않아 보입니다.

사명이 ‘기술혁신’을 뜻하는 이노베이션인데 대중이 연상하는 단어가 침해, 유출, 소송, 패소라면. SK이노베이션의 씁쓸한 초상이 아닐 수 없습니다. SK가 추구하는 진정한 가치와 문화는 과연 무엇인지 다시 묻지 않을 수 없는 대목입니다.

도전과 열정, 위로와 영감 그리고 스포츠큐(Q)

주요기사
포토Q