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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산 플렉센, 흔들리는 마운드에서 니퍼트 향기를 뿜다 [2020 프로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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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산 플렉센, 흔들리는 마운드에서 니퍼트 향기를 뿜다 [2020 프로야구]
  • 안호근 기자
  • 승인 2020.05.20 23: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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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실=스포츠Q(큐) 글 안호근·사진 손힘찬 기자] 큰 키에 선한 외모, 강력한 속구를 바탕으로 하는 외국인 투수, 우완 정통파라는 말에 가장 부합하는 투구폼.

두산 베어스 팬들이라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투수가 있다. 바로 ‘니느님’ 더스틴 니퍼트(39)다. KBO리그 최장수 외국인 선수로 두산 역사에서 결코 지울 수 없는 이름이다.

그의 향기를 불러일으키는 외국인 선수가 등장했다. 크리스 플렉센(26). 니퍼트와 놀랍도록 유사한 면모로 두산의 에이스 역할을 자청하고 있다.

 

두산 베어스 크리스 플렉센이 20일 2020 신한은행 SOL KBO리그(프로야구) NC 다이노스전에서 선발 등판해 역투하고 있다.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 텍사스 레인저스를 거쳐 두산 유니폼을 입은 니퍼트는 2011년 첫 시즌부터 날아올라 무려 7년 연속 두산에서 활약했다. 통산 102승을 올린 니퍼트는 두산에서만 94승을 거뒀고 우승 반지 2개를 꼈다. 

두산 역사상 최강 전력을 자랑했던 2016년엔 22승 평균자책점 2.95를 기록, 시즌 MVP에도 올랐다.

지난해 조쉬 린드블럼(밀워키 브루어스)이 니퍼트 못지않은 활약을 펼쳤지만 두산 팬들에게 여전히 니퍼트는 최고의 외인으로 남아 있다. 꾸준한 활약은 물론이고 매 이닝 투구를 마치고 야수들이 모두 더그아웃으로 들어올 때까지 기다리는 등 뛰어난 인성은 그가 ‘니느님’으로 기억되는 이유다.

시즌 초반이긴 하지만 1선발로 손색없는 활약. 플렉센에게서 니퍼트가 겹쳐보이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다. 개막 전 감독과 전문가들로부터 가장 위협적인 외국인 투수로 손꼽힌 플렉센은 2경기에서 2승 평균자책점 3.75로 활약했다.

20일 서울 잠실구장에서 열린 2020 신한은행 SOL KBO리그(프로야구) NC 다이노스전에선 8이닝 동안 108구 4피안타(1피홈런) 2볼넷 10탈삼진 1실점 호투했다. 팀 타선이 상대 선발 구창모에 꽁꽁 묶이며 연장 끝 2-1로 승리해 노디시전을 기록했지만 진정한 에이스로 눈도장을 확실히 찍었다.

니퍼트의 최장점은 속구였다. 2m 높이에서도 팔을 직각으로 올려 던지는 150㎞대 속구는 ‘2층에서 던지는 것 같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공포의 대상이었다. 

 

플렉센은 위력적인 속구, 위기관리 능력을 바탕으로 이닝이터 면모를 보이며 '니느님' 니퍼트를 떠올리게 한다.

 

플렉센도 마찬가지. 이날 잡아낸 삼진 10개 중 절반인 5개가 속구였다. 최고 시속은 152㎞까지 나왔고 종으로 떨어지는 슬라이더성 공과 함께 위력을 더했다. 1회 양의지와 4회 박석민의 방망이 2개를 부러뜨린 장면도 플렉센 속구의 위력을 보여준 장면이었다. 4회 양의지에게 솔로포를 맞았지만 그 외엔 흠잡을 데가 없었다.

뛰어난 인성과 이닝이터 본색도 니퍼트를 떠올리게 한다. 니퍼트가 경기 후 항상 주전포수 양의지와 야수들에게 공을 돌리던 것도 비슷하다.

포심패스트볼과 슬라이더, 커브, 체인지업 활용하는 구종까지 니퍼트와 닮아 있는 그는 “상하좌우 로케이션에 신경을 썼다. 4가지 구종 모두 원하는 곳에 들어갔다”며 “정상호, 박세혁과 게임 플랜을 짜면서 미팅을 했는데 한 개의 실투를 제외하면 계획대로 잘 이행한 것 같다”며 “8회 멋진 수비가 나와서 끝까지 이닝을 책임질 수 있었다. 1회부터 좋은 수비를 해준 야수들에게 고맙다”고 전했다.

수비들의 실책에도 넓은 아량을 보이며 흔들리지 않는 것도 위기관리에 뛰어났던 니퍼트를 떠올린다. 평균 6⅔이닝을 소화해내며 불펜의 짐을 덜어주는 것도 마찬가지.

가장 넓은 잠실을 안방으로 쓰면서도 각종 타격 지표에서 대부분 최상단에 올라 있는 공동 2위 두산이지만 마운드와 불균형은 심각했다. 이날 전까지 두산의 팀 평균자책점(6.14)로 최하위였다. 김태형 감독은 경기 전 “(투타 밸런스가) 잡히고 뭐고 없다. 그냥 계속 해 나가는 것”이라며 “그런 게 완벽히 잡혀 있는 팀이 어딨겠나”라고 한숨을 쉬었다.

그러나 이런 고민마저도 덜어주는 특급 에이스의 등장에 미소가 만연하다. 이날 플렉센의 호투 속에 가까스로 9위(5.64)로 점프했고 경기 후 김 감독은 “플렉센은 첫 경기부터 계속해서 좋은 투구를 해주고 있다”며 만족감을 표했다.

낯선 플렉센에게서 니퍼트의 향기가 뿜어져 나온다. 김태형 감독과 두산 팬들 입장에선 이보다 더 좋은 향수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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