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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산 '복덩이' 홍건희, 트레이드 독기가 키운 잠실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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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산 '복덩이' 홍건희, 트레이드 독기가 키운 잠실곰
  • 안호근 기자
  • 승인 2020.06.19 22: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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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실=스포츠Q(큐) 안호근 기자] 불과 열흘 전만 해도 홍건희(28)를 바라보는 두산 베어스 팬들의 시선은 곱지만은 않았다. 특별한 악감정이 있는 건 아니었지만 팬들이 아끼던 ‘슈퍼백업’ 류지혁(26)을 내주고 데려온 게 그였기 때문.

열흘 후 그 시선은 이전과는 사뭇 달라졌다. 류지혁이 KIA 유니폼을 입고 맹타를 휘둘렀지만 홍건희도 만만치 않다.

두산 이적 후 5경기 8⅔이닝 2자책, 8탈삼진을 기록했다. 이 기세대로라면 박빙의 상황 추격조를 넘어 필승조, 선발로도 쓰일 수 있을 만한 활약이다.

 

두산 베어스 홍건희가 19일 LG 트윈스전에 구원 등판, 2⅔ 1실점 비자책 호투를 펼치며 팀 승리를 지켜냈다. [사진=연합뉴스]

 

내야가 불안한 KIA에 류지혁을 내주고 불안한 불펜의 힘을 더한다는 게 목적이었지만 ‘윈윈’ 트레이드라고 보기는 쉽지 않았다. 류지혁은 내야가 약한 팀에선 충분히 주전으로 활약할 수 있는 자원인데 반해 홍건희는 올 시즌은 물론이고 2011년 데뷔 이래 뚜렷이 보여준 게 없었기 때문.

그러나 두산 홍건희는 이전과는 확연히 달라졌다. 기대하는 시선도 있었는데, 150㎞ 가까운 빠른공을 던지는 투수고 소극적인 승부를 벌이며 볼넷을 많이 내주는 유형이 아니기에 가장 넓은 잠실구장과 두산의 탄탄한 수비진의 도움을 받으면 충분히 나아질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따랐다.

NC 다이노스, 한화 이글스전 1이닝씩을 무실점으로 막은 홍건희는 지난 13일 한화전 3이닝 1실점, 롱릴리프로서 가능성도 보였다.

그리고 이날 홍건희는 19일 서울 잠실구장에서 열린 2020 신한은행 SOL(쏠) KBO리그(프로야구) LG 트윈스전에서 2⅔이닝 40구 2피안타 4탈삼진 1실점(비자책) 호투를 펼치고 이적 후 첫 승리를 따냈다.

두산은 초반 타선의 폭발로 크게 앞서갔지만 선발 이영하가 흔들리며 방심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영하에 이어 마운드에 오른 최원준은 5회말 아웃카운트를 하나도 잡아내지 못한 채 밀어내기로 실점했다.

 

아직은 낯선 두산 유니폼이지만 서서히 팀 불펜에 없어서는 안 될 존재로 변모하고 있는 홍건희다. [사진=연합뉴스]

 

두산 벤치는 15-8로 앞선 상황 무사 만루 위기에 홍건희를 내보냈다. 점수 차가 크기는 했지만 LG가 1,2회 각각 무사 만루에서 5점, 8점씩을 내줬던 걸 생각하면 홍건희 카드는 과감한 결단임이 분명했다.

감독의 믿음에 완벽히 보답했다. 첫 타자 김현수는 4구 만에 헛스윙 삼진을 잡아냈고 채은성과 로베르트 라모스에겐 힘으로 상대하며 외야 뜬공으로 손쉽게 불을 껐다. 이영하와 최원준이 그토록 불안했던 것과는 전혀 달랐다.

6회 박용택에게 안타를 내주긴 했지만 140㎞ 중반대 빠른공으로 유강남과 오지환을 헛스윙 삼진으로 돌려세웠고 정근우에게 안타를 맞은 뒤에도 흔들리지 않고 손호영을 루킹삼진으로 잡고 이닝을 매조졌다.

그 사이 타선은 점수 차를 더욱 벌렸고 7회에도 마운드에 오른 홍건희는 우익수 실책으로 3루에 주자를 내보냈지만 평정심을 잃지 않고 채은성에게 유격수 땅볼을 유도, 1점과 소중한 아웃카운트 하나를 맞바꾼 뒤 채지선에게 임무를 전달했다.

승리 투수가 된 홍건희는 기쁨을 감추지 못하면서도 트레이드 당시를 회상했다. “남 일이라고만 생각했었는데 막상 트레이드가 되고 나니 섭섭한 마음도 들었다”며 “한 팀에만 10년을 있었기에 적응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했다”고.

 

[잠실=스포츠Q 안호근 기자] 홍건희가 19일 경기 후 수훈 선수로 선정돼 인터뷰를 하고 있다.

 

그러나 팀 동료들의 도움 속 하루 아침에 적응할 수 있었다. 최근 살아난 비결에 대해선 “전력분석팀에서 속구의 힘과 수직 무브먼트가 좋다는 얘길 해줬고 포수 형들과도 높은 쪽 속구를 많이 던지기로 이야기했다”며 “공의 힘은 거의 100%라고 생각한다. 특별히 수정한 건 없고 트레이드 이후 독기가 생겨서 터닝포인트가 된 것 같다”고 전했다.

류지혁을 데려간 KIA가 이익을 봤다는 평가가 주를 이뤘다. 홍건희는 “처음엔 정신이 없었는데 차차 보이기 시작했다. 내가 하기 나름이다. 잘하면 그런 여론도 바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담담히 말하면서도 “KIA 타자들을 만나면 아무래도 더 열심히 던질 것”이라고 각오도 내비쳤다.

활용도가 더욱 높아지고 있다. 이용찬이 부상으로 빠져 있기에 선발 욕심도 나는 게 인지상정. 그러나 홍건희는 “누구나 필승조나 선발 등 중요한 자리에 대한 욕심은 있다”면서도 “다만 아직 보여준 게 없으니 목표를 갖고 하다보면 좋은 결과로 이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두산 이적 직전 6.00에 달했던 평균자책점은 어느덧 4.35까지 떨어졌다. 막강한 타선과 달리 팀 평균자책점 5.16으로 전체 8위로 투타 불균형이 고민인 두산이지만 쑥과 마늘 대신 독기로 무장해 잠실곰으로 거듭난 홍건희의 존재는 김태형 감독의 어깨를 가볍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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