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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대통령배 결승 추억 소환, 김해고-강릉고 명승부 연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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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대통령배 결승 추억 소환, 김해고-강릉고 명승부 연출
  • 이성제 명예기자
  • 승인 2020.06.23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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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Q(큐) 이성제 명예기자] 고교 야구사에서 2007년 대통령배 대회 결승전은 손꼽히는 명경기로 회자된다. 서울고와 광주일고가 맞붙었던 당시 결승은 고교 최강 에이스이자 현 LG트윈스 팀메이트인 이형종(서울고), 정찬헌(광주일고)의 승부로 이목을 집중시켰다. 두 선수 외에도 서울고엔 안치홍, 박건우, 유민상 등이 있었고 광주일고에는 서건창, 허경민, 장민재, 윤수강 등 현재 프로야구를 이끌어가고 있는 스타들이 가득했던 경기였다.

엎치락뒤치락 역전에 재역전을 거듭하며 불꽃 튀는 접전이 계속되던 경기는 8회와 9회 각각 2점을 내며 10-9로 역전 끝내기 승리에 성공한 광주일고 우승으로 끝이 났다. 9회 말 마운드에서 투구를 하면서도 흐르는 눈물을 감추지 못해 ‘눈물의 에이스’라는 별명을 얻었던 이형종의 모습은 야구팬들의 기억 속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제74회 황금사자기 고교야구대회 우승팀 김해고 [사진=연합뉴스]
제74회 황금사자기 고교야구대회 우승팀 김해고 [사진=연합뉴스]

올해 제74회 황금사자기 고교야구 대회에서도 야구팬들의 뇌리에 오래도록 남을 명승부가 펼쳐졌다. 22일 목동야구장에서 열린 김해고와 강릉고의 결승전에서 김해고가 9회초 기적의 3득점으로 4-3 극적인 승리를 가져오며 창단 이후 첫 전국대회 우승컵을 차지했다.

이번 황금사자기 대회는 이변이 속출했다. 광주일고, 경북고, 경남고, 충암고 등 전통의 명가들이 줄줄이 조기 탈락하며 그동안 좋은 성적을 내지 못했던 학교들이 대거 상위 라운드에 진출했다. 결승에 오른 김해고와 강릉고 역시 단 한 번도 전국대회 우승 경험이 없는 고교들이어서 우승팀은 야구부 역사에 새로운 획을 긋는 중요한 일전이었다. 

경기 전 김해고는 2003년 창단 이래 2019년 협회장기 대회 8강 진출이 가장 큰 성과였지만 처음으로 결승에 오른 만큼 단번에 우승하겠다는 의지를 불태웠다. 반면 강릉고는 지난해 두 번의 전국대회 결승전에서 대구고와 유신고에 패배하며 준우승에 그쳤던 아쉬움을 씻고자 하는 뜻이 강했다.

경기는 시작과 함께 강릉고 쪽으로 기우는 듯했다. 강릉고는 1회말 1번 타자 정준재가 좌익선상 2루타를 뽑아냈고 희생번트와 땅볼을 엮어 선취득점에 성공했다. 김해고의 반격도 곧바로 이뤄졌다. 2회 초 내야안타로 주자를 출루시킨 김해고는 5번 타자 서준교의 타구를 쫓던 강릉고 좌익수 정준재가 미끄러지며 득점에 성공했다. 타자 주자가 3루까지 들어가며 역전 분위기가 감돌자 강릉고 최재호 감독은 ‘에이스’ 김진욱 카드를 꺼내들었다.

김진욱은 얕은 뜬공과 삼진으로 단숨에 2아웃을 잡아냈고 김해고의 홈스틸 작전마저 차단하며 추가실점을 막았다. 역전 위기를 넘긴 강릉고는 2회말, 2사 이후 노성민이 사구로 출루했고 8번타자 최지욱이 좌중간 적시 2루타로 한 점을 뽑아 다시 앞서갔다.

역투하는 강릉고 에이스 김진욱 [사진=연합뉴스]
역투하는 강릉고 에이스 김진욱 [사진=연합뉴스]

이후 양 팀은 명품 투수전 속에 팽팽한 흐름을 이어갔다. 강릉고 김진욱은 140km를 넘나드는 직구와 주무기인 슬라이더로 김해고 타선을 요리했다. 팀의 세 번째 투수로 등판한 김해고 김유성 역시 직구 구위를 앞세워 강릉고 타자들을 틀어막았다.

김진욱이 삼진쇼를 펼치며 삼자범퇴 이닝을 양산하자 강릉고에 달아날 기회가 찾아왔다. 7회말 9번 타자 허인재의 볼넷과 1번 정준재의 번트로 만든 득점권 기회에서 2번 이동준이 1타점 적시타를 때려내며 스코어는 3-1이 됐다. 더구나 이어지는 찬스가 중심타선으로 연결되고 있었기에 추가점 획득이 기대됐지만 1점 만회에 그치며 찝찝함은 남았다.

하지만 마운드를 지키던 김진욱의 구위가 워낙 대단했기 때문에 김해고의 추격이 쉽지 않아 강릉고가 우승에 한 발짝 다가서는 듯했다. 8회까지 무실점으로 마무리한 김진욱은 9회초 팀의 첫 우승을 위해 다시 마운드에 올랐다. 투구 수 역시 83개로 한 경기 한계 투구 수인 105개까지 여유가 있어 보였고 첫 타자 최재영을 낫아웃 삼진으로 처리하며 더욱 우승 가능성을 높였다.

그러나 김해고 1번타자 황민서가 초구를 통타해 좌익선상 2루타를 때려내면서 김진욱은 흔들리기 시작했다. 다음타자 최지원 역시 좌익수 앞 안타를 쳐내며 황민서가 홈으로 파고든 김해고는, 최지원이 강릉고의 홈 송구를 틈타 2루까지 진루했다. 2점 차 경기가 단숨에 1점 차, 그것도 동점 주자가 득점권에 있는 상황으로 바뀐 것이다. 집중력이 오른 김해고는 3번타자 박진영이 8구까지 가는 끈질긴 승부 끝에 사구로 출루하며 역전 주자까지 누상에 나갔다. 김진욱의 투구 수는 순식간에 98개까지 불어났다.

4번타자 정종혁 역시 파울플라이아웃으로 물러나긴 했지만 김진욱에게 6개의 공을 뺏어왔고 다음 타자 서준교 타석에서 극적으로 김진욱의 한계 투구 수가 채워졌다. 결국 볼카운트 1-1에서 김진욱이 내려가고 조경민이 등판했다.

에이스를 끌어내린 김해고는 벼랑 끝에서 살아 돌아왔다. 서준교 타구가 유격수 왼쪽 깊은 내야안타로 연결됐고 2사 만루에서 조경민 초구가 김민준 엉덩이에 맞으며 동점이 만들어졌다. 강릉고 최재호 감독은 조경민을 빼고 좌완투수 최지민을 투입했지만 김해고 쪽으로 넘어간 흐름 속에 역전 밀어내기 볼넷까지 나오며 4-3 역전 드라마가 탄생했다.

강릉고에도 9회 말 공격이 남아있었다. 작은 실수 하나가 큰 상황으로 번지는 고교야구 특성상 1점차 리드는 김해고도 불안한 점수였다. 불안해하지 않은 사람은 마운드에 오른 김해고 투수 김준수뿐이었다. 김준수는 90km~110km대의 ‘흑마구’를 뿌려대며 절묘한 제구력으로 강릉고 타자들을 상대했다. 상대 상위타선을 모두 범타로 처리한 김준수의 활약 속에 김해고가 기적의 우승을 완성하며 창단 후 첫 감동을 맛봤다.

우승 세레머니중인 김해고 [사진=연합뉴스]
우승 세레머니중인 김해고 [사진=연합뉴스]

그동안 전국대회 성적이 지지부진했고 프로에서 크게 이름을 알린 선수도 없었던 김해고는 첫 우승으로 야구부에 큰 전환점을 맞게 됐다. 김해고 박무승 감독은 팀을 맡은 지 1주년이 되는 날 우승하며 기쁨이 더했다.

양 팀의 결승전은 에이스 간의 자존심 싸움도 볼만했다. NC다이노스의 1차 지명 유력 후보인 김해고 김유성은 6이닝 동안 7개 삼진을 잡아내며 단 1실점만을 허용했다. 스피드를 동반한 묵직한 직구는 일품이었다. 현재 고교투수 중 최대어로 꼽히며 신인드래프트 최상위 지명자로 예상되는 강릉고 김진욱 역시 7.1이닝 동안 11탈삼진의 괴력투를 선보였다. 특히 11개 삼진 중 삼구 삼진만 5번일 정도로 공격적인 피칭이 돋보였다.

아무도 예상하지 않았던 김해고의 깜짝 우승 속에 대회 MVP는 김해고 투수 김준수에게 돌아갔다. ‘한여름 밤의 꿈’같았던 제74회 황금사자기 전국고교야구대회는 이렇게 막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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