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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준식의 아트&아티스트] 메세나, 예술의 메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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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준식의 아트&아티스트] 메세나, 예술의 메시아
  • 스포츠Q
  • 승인 2020.08.06 0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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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Q(큐) 최준식 칼럼니스트] 예술경영 분야의 유명한 법칙 하나가 있습니다. 바로 '보몰의 법칙'입니다. 미국 프린스턴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윌리엄 보몰이 1960년대 주창한 내용입니다. 저서 ‘공연예술의 경제적 딜레마’에서 그는 "공연예술은 시간이 갈수록 재정적 위기로 나아간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이는 공연예술의 생산성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타 장르인 영화와 비교하자면, 영화는 초기비용은 많이 들지만 한번 제작한 것은 필름이라는 매개체로 계속 복제돼 관객에게 구현됩니다. 이후 비용은 크지 않으며 무한히 복제되고 다양한 영상매체를 통해 수익 창출이 가능합니다.

하지만 공연예술은 어떻습니까. 매개체가 극장 밖에 없습니다. 제작비용은 첫 공연이나 계속되는 공연이나 별반 차이가 없습니다. 비용 절감이 쉽지 않으며 오히려 제작비용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인건비는 높아만 갑니다. 생산성 제고가 되지 않는 것이 공연예술입니다. 공연예술은 기계가 아닌 사람이 하는 노동집약적 상품이기에 인건비 압박이 큽니다. 극장이나 예술단체는 장기적인 수익창출은커녕 재정적 위기에 봉착하게 됩니다. 공연예술은 하면 할수록 적자가 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이것이 공연예술의 '경제적 딜레마'입니다.

 

2018년 서울메세나 지원사업 선정작 [사진=서울문화재단 제공]
2018년 서울메세나 지원사업 선정작 [사진=서울문화재단 제공]

 

이렇게 보면 공연예술은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 사업입니다. 무작정 티켓 값을 올리기도 어려워 제작비용 대비 수익을 내기 어렵고 일부 상업적인 뮤지컬 외에 순수예술 자체는 수익성을 고민하는 것 조차 어렵습니다. 고액의 티켓가격이 공연 관람 기회를 제한시킨다고 비판하는 이들도 있으나 제작 속사정을 들여다보면 ‘보몰의 법칙’에 수긍하게 됩니다. 이러한 현실에서 꿈을 펼치고 싶은 공연예술가들이 무대에도 설 기회마저 적어지니 서글퍼지기까지 합니다.

그래서 공연예술에 대한 외부 지원이 절실합니다. 총 제작비용이 티켓가격으로 감당이 안되기에 일부 제작비용을 외부의 지원으로 충당해 티켓가가 내려가고 많은 이들이 저렴하게 공연을 관람하고 향유할 수 있다는 것은 감사한 일입니다. 공연 제작비용이 내려가면 티켓 가격이 내려갑니다. 이에 관람객이 늘고 공연 제작환경이 좋아져서 공연이 늘어나면 참여할 수 있는 아티스트의 수도 늘어나기에 선순환 구조가 되는 것입니다. 공연예술에 대한 외부 지원을 공공성 측면에서 생각해야 하는 까닭입니다. 

‘보몰의 법칙’은 미국 공연예술에 대한 공적지원의 정당성을 일깨우는 계기가 됐습니다. 그래서 미국 연방정부 차원의 논의가 이뤄졌고 미국 국립예술기금(NEA, National Endowment for the Arts)라는 공공예술지원 주체가 등장하게 됐습니다. 우리나라도 한국문화예술위원회와 서울문화재단 등 각 지방자치단체 문화재단에서 예술 창작에 대한 공적지원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예술 기금과 공적지원금은 규모는 물론 각종 심사를 통한 사용처 또한 정해져 있어 예술 창작을 부흥시키는데 한계가 있습니다. 저 역시 예술지원사업의 심사와 평가위원으로 참여하면서 우수한 예술적 역량과 참신한 아이디어가 있음에도 아쉽게 공적예술지원에서 탈락하는 예술작품과 예술인을 보며 안타까움을 느낄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공적지원과 함께 민간지원의 역할도 중요합니다. 예술은 사회를 풍요롭게 하는 사회적 가치가 있기에 사회의 다양한 주체들의 지원과 협력이 필요합니다 예술에 대한 민간지원의 역사는 공적지원보다 더 오래됐습니다.

요즘 민간과 기업의 예술지원은 ‘메세나(Mecenat)’라는 이름으로 통용되고 있습니다. 로마시대 시인을 후원했던 로마제국 재상 가이우스 클리니우스 마에케나스라는 실존 인물의 이름에서 유래한 단어입니다. 마에케나스의 이름이 프랑스로 건너가 ‘메세나’라고 바뀌고 문화예술에 대한 민간지원이라는 개념으로 정착됐습니다. 역사적으로 유명한 메세나 사례로는 르네상스 시대 미켈란젤로와 다빈치, 그리고 발레를 후원한 피렌체 메디치 가(家)와 미국의 카네기홀, 록펠러 재단을 들 수 있습니다.

메세나 활동은 현재 세계적으로, 조직적으로 이뤄지고 있습니다. 한국은 1994년 예술지원 활성화를 목적으로 기업들이 주축이 돼 한국메세나협회를 창립, 현재 200여개가 넘는 기업이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이와 유사한 조직으로 영국 메세나협의회(A&B, Arts & Business) 프랑스 기업상공인 메세나추진협의회(ADMICAL, Association pour le Développement du Mécénat Industriel et commercial) 미국 기업예술협의회(BCA, Business Committee for Arts) 등이 있습니다. 각국의 메세나 활동을 주도하고 차별화된 예술지원사업을 펼칩니다. 

 

지난 2018년 크라운해태제과가 개최한 '국악 꿈나무 경연대회' [사진=크라운해태제과 제공]
지난 2018년 크라운해태제과가 개최한 '국악 꿈나무 경연대회' [사진=크라운해태제과 제공]

 

우리나라 기업 예술지원 사례 중 하나를 소개하자면, 크라운해태그룹의 국악지원을 들 수 있습니다. 크라운해태그룹 윤영달 회장의 국악에 대한 애정으로 제가 재직 중인 세종문화회관과 서울시국악관현악단 지원이 시작됐습니다.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창신제’라는 대규모 국악공연이 거행되면서 서울시 국악관현악단의 예술적 가치를 향상시키는데 크라운해태가 큰 역할을 했습니다. 크라운해태 임직원들이 직접 국악기를 접하고 배우기도 했습니다. 또한 국악축제 ‘서울아리랑페스티벌’을 개최하는 등 크라운해태가 국악 대중화에 앞장섰습니다.  

국악의 저변을 넓히고 국악인에게 지속적인 관심과 후원으로 국악 부흥을 이끈 크라운해태그룹의 의지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것이 사회적 반향을 일으키고 정책으로 이어졌습니다. 서울시의 국악에 대한 정책지원 의지가 높아졌습니다. 창덕궁 근처 국악로가 조성됐고 돈화문국악당이 설립됐습니다. 서울국악센터 개관과 더불어 남산-국악로-북촌을 있는 국악벨트 추진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기업이 메세나 활동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제 단순한 사회공헌, 기업의사회적책임(CSR)을 넘어 기업과 예술인이 상생하고 협력하는 공유가치창출(CSV)까지 그 역할과 수준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메세나를 통해 공연예술인은 일자리를 얻게 되고 경력을 개발할 수 있게 됐습니다. 기업의 지원으로 안정적인 예술활동과 수입을 얻게 돼 감사하는 예술인들이 늘고 있습니다. 기업은 메세나 활동을 통해 브랜드 이미지를 제고하고 예술을 통해 사내 조직문화까지 개선하는 계기를 마련하게 됐습니다. 예술의 창조적 가치를 기업에 투영한 예술활동을 통해 기업 구성원의 직무 만족도가 높아졌다는 연구결과가 나오고 있습니다.

이제 예술가와 기업은 메세나 활동을 통해 서로 상생하는 주체로 발전, 예술의 사회적 가치를 다양한 방식으로 실현하고 있습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된 요즘, 적극적인 기업의 메세나 활동은 공연예술 생태계를 지탱해주는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습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와 함께 ‘문화예술후원 매개단체, 문화예술후원 우수기관’을 모집하고 심사를 거쳐 10월 중 인증기관을 선정한다. [사진=문화체육관광부 제공]
문화체육관광부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와 함께 ‘문화예술후원 매개단체, 문화예술후원 우수기관’을 모집하고 심사를 거쳐 10월 중 인증기관을 선정한다. [사진=문화체육관광부 제공]

 

메세나 활동의 사회적 가치는 갈수록 높아지고 있습니다. 이제 메세나 활성화를 위해 우리 사회의 제도‧인식 개선이 지속적으로 필요한 시점입니다.

제도 개선으로 기업의 메세나 활동에 대한 정책적 지원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2014년 문화예술후원법이 제정돼 조세 감면과 후원자 포상, 문화예술후원기관 인증 등 법적 기반이 마련됐습니다. 또한 기업의 접대성 문화지출을 손비로 인정해 문화진흥을 유인하는 ‘문화접대비’ 제도도 활성화되고 있습니다.

인식도 한결 개선됐습니다. 그간 대기업에 편중됐던 메세나 활동이 중소기업으로 확장돼 기업 예술지원액 규모가 늘고 있습니다. 메세나 활동이 이제 대기업, 부유층 등 특정계층의 활동이 아니라 사회를 이루는 많은 구성원들이 예술의 가치를 이해할 수 있도록 일상으로 뻗친다는 건 고무적인 일입니다. 소액 기부가 그 예입니다. 

메세나는 이제 예술가와 관객 모두에게 꼭 필요한 활동이 되고 있습니다. 메세나를 통해 관객은 저렴한 가격으로 공연을 관람할 수 있고 예술가는 활동 영역이 넓어지고 있습니다. 메세나는 이제 예술의 '메시아' 즉, 새로운 구세주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메세나 활동이 우리 사회에 뿌리내려 예술의 사회적 가치가 곳곳에 널리 퍼지기를 고대합니다. 예술이 코로나19로 팍팍한 일상에 생기를 더하길 기원합니다.

 

최준식
- 스포츠Q(큐) 문화 칼럼니스트
- 서울시 세종문화회관 문화예술기획자
-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시각예술∙축제 심의위원
- 한국콘텐츠진흥원 문화콘텐츠 평가위원
- 조달청 축제 기술평가위원
- KOICA 문화시설 기술평가위원
- K팝전문공연장 <서울아레나> 복합문화시설 민간투자 평가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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