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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찬성 단기기억상실 고백, 무의식에도 싸운 진짜 '좀비' [SQ모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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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찬성 단기기억상실 고백, 무의식에도 싸운 진짜 '좀비' [SQ모먼트]
  • 안호근 기자
  • 승인 2020.10.19 18: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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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Q(큐) 안호근 기자] “몇 번째 라운드에요?”

무심결에 흘려들었던 말이었지만 정황을 알고 보니 아찔하기까지 했다. 타이틀샷을 놓쳐 아쉬움을 남긴 정찬성(33·코리안좀비MMA·AOMG)이지만 이러한 고백은 안타까운 반응을 자아내고 있다.

정찬성은 18일(한국시간) 아랍에미리트 아부다비 야스 아일랜드에서 열린 UFC 파이트 나이트(FIGHT NIGHT) 180 메인이벤트 페더급 매치에서 브라이언 오르테가(29·미국)에 심판 전원일치 0-3 판정패했다.

기대가 컸기에 실망감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여론은 이내 바뀌고 있다.

정찬성(왼쪽)은 18일 브라이언 오르테가전 2라운드 초반 공세를 펼치기도 했지만 엘보 타격을 막지 못해 결국 고개를 숙였다. [사진=UFC 페이스북 캡처]

 

엘보 피해가 크긴 했지만 정찬성은 잘 극복해냈다. 피로 범벅이 된 얼굴도 오르테가의 머리와 충돌해 생긴 것이었다. 많이 당했기 때문이라기보다는 아무것도 해보지 못했다는 게 실망스러웠다.

1라운드 탐색전을 벌인 정찬성은 2라운드 강력한 주먹을 앞세워 분위기를 가져오는 듯 했다. 하지만 오르테가의 백스핀 엘보에 일격을 당했다. 중심을 잃고 쓰러진 정찬성은 추가 피해를 입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2라운드 초반 기세를 되찾아 오진 못했지만 큰 문제는 없어보였다. 4,5라운드에서 역전을 기대해 볼만 했다. 그러나 정찬성의 상태는 생각보다 심각했다. 3라운드를 마친 정찬성은 에디 차 코치에게 “몇 번째 라운드에요?”라고 의문을 자아내는 질문을 던졌다.

보이는 것과 달리 오르테가의 백스핀 엘보 피해가 생각보다 훨씬 컸던 탓이었다. 정찬성은 경기 후 자신의 인스타그램을 통해 “3,4,5라운드가 기억이 없네요. 나는 기억이 안 나는데 싸우고 있는 모습을 보니 신기하네. 하하”라고 말했다. 오르테가에게 허용한 엘보 충격이 뇌까지 전해져 단기 기억상실 증상이 나타난 것.

이어 “경기를 지면 왜 졌는지를 찾아봐야 하는데, 상대가 사우스포 비율이 너무 높았고 그럴 땐 상대를 끌어들이기로 했는데.. 그런 엘보를 맞은 그냥 내가 바보멍청이입니다”라고 자책했다.

엘보를 맞은 뒤 쓰러진 정찬성은 TKO 위기까지 몰렸지만 침착히 잘 견뎌내며 경기를 판정까지 끌고 갔다. [사진=UFC 페이스북 캡처]

 

이후 또다시 글을 올린 정찬성은 조금 더 상세히 당시 상황에 대해 전했다. “5라운드 1분쯤 남았을 때 정신이 돌아왔다. 그래서 5라운드 끝났을 땐 4라운드가 시작하는지 알았다”며 “3,4,5라운드는 그냥.. 싸웠다. 분명 사우스포로 나올 걸 예상하고 있었고 준비도 많이 했고 에디 코치님도 주문을 제대로 했는데”라며 아쉬워했다.

KO가 아니고선 결과를 뒤집을 수 없었던 정찬성이 마지막까지 화끈한 공격을 펼치지 않은 건 의외였다. 해외에서도 “정찬성답지 않았다”고 평가했는데, 단기기억상실로 인해 라운드를 착각했기 때문이었다.

경기 전부터 오르테가와 말도 많고 탈도 많았다. “개인적으론 좋아하지 않는다”고 밝히기도 했지만 정신을 차린 정찬성은 패배 앞에 깨끗이 승복했다. 경기를 마친 뒤 장난스럽게 오르테가의 뺨을 친 뒤 뜨거운 포옹을 했다. 둘은 서로를 향해 맞절을 하기도 했다.

정찬성은 “오르테가가 너무 잘했고 그냥 나는 지금 내가 너무 부끄럽습니다. 그래도 응원 많이 해주셔서 고맙습니다”라고 말했다.

아무렇지 않다는 듯 밝히는 게 오히려 힘겨운 격투가의 삶을 대변해준다. 특별히 놀랄 만한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정찬성은 “너무 신기하다. 원래 이런 경우에 병원에서 정신 차리는데 하하”라며 담담하게 말했다.

경기 종료 후 정찬성은 오르테가의 엘보를 맞고 정신을 잃었다고 전했다. 무의식 속 3,4,5라운드를 치렀다. [사진=정찬성 인스타그램 캡처]

 

이어 #이제진짜괜찮아요 #비난조롱도괜찮아요 #하하하 #한명한테만많이미안함이라는 해시태그와 함께 성숙하게 상황을 받아들이는 면모도 보였다.

정찬성은 최근 잦은 TV 출연으로 일부 팬들의 비판을 사기도 했다. 경기 준비에 매진하기보다 쉽게 돈 버는 맛을 봤다는 말까지 나왔다. 하지만 정찬성으로선 어쩔 수 없는 선택지였다. 미국 전지훈련의 효과를 톡톡히 본 그는 제대로 된 스폰서도 없어 사비를 털어 오르테가전을 준비해야 했다. 최근 유튜브 채널에서 밝힌 것으로는 해외 전지훈련에 “최소 5000만 원 이상”이 들었다.

정찬성은 경기 전 자신감을 보였다. 엘보 한 방을 막지 못한 건 누구의 탓으로 돌릴 수도 없는 일이지만 정찬성은 의식을 잃고도 수없이 반복 훈련한대로 움직였다. 정신을 잃었을 것이라고는 누구도 의심할 수 없었다. 적극성이 아쉬울 수는 있지만 조급함 없이 침착하게 전진했다는 점에서 오히려 그 어느 때보다 냉정해보였다.

결과는 돌릴 수 없다. 정찬성은 패했고 타이틀샷을 얻기 위해선 최소 두 세 걸음을 더 걸어야 한다. 스스로 감수하겠다는 것처럼 부진한 경기력이나 이전에 받았던 고평가에 대해선 이견도, 비판도 따를 수 있다.

다만 노력 부족을 지적했던 이들마저 무의식 속에서도 준비한대로 침착히 대처했던 그를 보곤 생각을 바꿀 수밖에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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