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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도훈 '야' 이대헌 '예', 절박한 전자랜드가 써낼 드라마 [SQ초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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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도훈 '야' 이대헌 '예', 절박한 전자랜드가 써낼 드라마 [SQ초점]
  • 안호근 기자
  • 승인 2020.10.19 1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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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Q(큐) 안호근 기자] ‘내가 야! 하면 넌 예!’

GOD 출신 가수 김태우의 노래 제목이다. 많은 얘기가 필요 없이도 호흡이 잘 맞는 연인을 기다린다는 가사를 담고 있다. ‘개떡 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듣는다’는 옛말도 있다.

올 시즌 프로농구에선 인천 전자랜드가 딱 그렇다. 시한부 선고를 받은 전자랜드는 유도훈(53) 감독의 지휘 속에 어느 때보다 똘똘 뭉쳐 최고의 시너지를 내고 있다.

18일 인천삼산체육관에서 열린 2020~2021 현대모비스 프로농구 전주 KCC전은 전자랜드의 달라진 올 시즌을 한눈에 보여주는 축소판이었다.

인천 전자랜드 선수단이 18일 전주 KCC전 짜릿한 승리를 거둔 뒤 얼싸안고 기뻐하고 있다. [사진=KBL 제공]

 

개막 4연승. 전자랜드는 단독 1위를 달리고 있다. 최하위로 마쳤던 2015~2016, 5위에 그쳤던 지난 시즌도 개막 4연승은 있었지만 분위기는 그때와 또 다르다.

팀의 주축 강상재는 입대했고 김지완(전주 KCC)은 자유계약선수(FA)로 팀을 떠났지만 이렇다 할 보강은 없었다. 샐러리캡(연봉총액상한) 25억 원 중 전자랜드는 10개 구단 최소인 15억 원만을 채웠다.

설상가상 모기업은 올 시즌을 끝으로 농구단 운영을 접기로 결정했다. 어떠한 미래도 예상할 수 없는 상황에서 맞이한 시즌. 유도훈 감독은 “인생을 걸고”를 캐치프라이즈로 내걸었다.

우승후보로 예상된 안양 KGC인삼공사와 서울 SK를 연달아 물리친 전자랜드는 창원 LG까지 잡고 3연승을 달렸다.

KCC전 결과는 예상하기 힘들었다. 수차례 흐름이 뒤집혔다. 막판까지 손에 땀을 쥐게 했다. 9점 차로 앞서가던 흐름을 지키지 못한 게 뼈아팠다. 66-66 동점을 허용한 뒤 경기 종료 30초전 공격권은 KCC. 송교창이 이대헌을 뚫고 슛을 던졌지만 그 위엔 에릭 탐슨이 지키고 있었다. 호쾌한 블록슛으로 홈팬들을 열광시켰다.

유도훈 감독은 이대헌을 믿는 작전으로 4연승을 이끌어냈다. [사진=KBL 제공]

 

남은 시간은 단 4초9. 벤치로 들어온 선수들 앞에 선 유도훈 감독은 미소 지으며 “대헌아 잘 봐. 오늘 네가 한번 하는 거야”라고 작전 지시를 시작했다. 이날 17점 3리바운드 5어시스트로 활약한 이대헌에게 마지막을 맡기겠다는 것. 

김낙현의 패스로 시작해 이대헌이 공을 잡고 탐슨이 스크린을 걸어 공격을 마무리하는 작전이었다. 

프로농구에서 외국인 선수가 차지하는 비중은 상상 이상이다. 승부처에선 말할 것도 없다. 선수는 물론 감독들까지도 가장 중요한 순간엔 외국인 선수에게 운명을 맡기는 게 보통이다.

그러나 유도훈 감독은 국내 선수들의 활약을 누구보다 강조하고 응원한다. 지난해 12월 서울 삼성전 연장에서 외국인 선수 머피 할로웨이에게만 득점 기회를 밀어주는 것에 “국내 선수 너희는 선수 아니야? 얘(할로웨이)만 찾을거야? 게임져도 되니까 승부봐. 괜찮아”라고 목소리를 높였고 결국 전자랜드는 강상재와 박찬희의 과감한 공격 시도로 짜릿한 승리를 따냈다.

위닝샷을 합작한 이대헌(왼쪽)과 탐슨이 포옹을 하고 있다. [사진=KBL 제공]

 

국내 선수에게 힘을 실어주는 유도훈 감독에 선수들은 더욱 고무됐고 서로를 격려하며 들떠 있었다. 작전대로 탐슨의 스크린을 받아 공을 받은 이대헌은 골밑으로 향했다. 당황한 KCC 수비 2명이 이대헌에게 쏠렸다. 계획은 직접 마무리를 하는 것이었지만 이대헌은 수비로부터 자유로워진 탐슨에게 공을 건넸다. 결국 탐슨은 위닝샷을 얹었고 벤치와 관중석에선 우레와 같은 함성이 쏟아졌다. 반전은 없었고 전자랜드는 4연승을 확정했다. 

전자랜드가 우승을 차지한다고 한들 모기업이 마음을 돌려 구단 운영을 지속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 전자랜드는 2003년 창단 이후 줄곧 어려운 여건 속에 구단을 운영해왔다. 몇 차례나 운영권을 내려놓으려 했지만 KBL의 회유 등으로 힘겹게 지속해온 구단이다.

선수들과 유도훈 감독 또한 이를 모를 리 없지만 절박함은 어느 때보다 크다. 타 기업에 인수가 되든, 새로운 팀을 찾든 올 시즌 결과가 중요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최악의 경우 일자리를 잃는 선수가 생겨날 수도 있고 모두 뿔뿔이 흩어지게 될 수도 있다.

어쩌면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점은 선수들을 똘똘 뭉치게 만든다. 유도훈 감독도 선수들에게 더욱 힘을 실어주고 있다. 특정 응원팀이 있는 게 아니라면 약자의 분전을 바라는 심리가 있다. 자신의 응원팀과 상대하지 않는다면 올 시즌만큼은 전자랜드가 농구 팬들의 ‘세컨드 팀’으로 많은 지지를 받게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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