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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 이대성 뒤엔 '수호신' 이승현, 오리온 '성리 공식' [SQ포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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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 이대성 뒤엔 '수호신' 이승현, 오리온 '성리 공식' [SQ포커스]
  • 안호근 기자
  • 승인 2020.10.21 1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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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Q(큐) 안호근 기자] 강을준 감독은 ‘승리했을 때 영웅이 나타난다’고 했지만 영웅 탄생을 위해선 ‘수호신’이라는 필요조건이 있어야 했다. 지난 시즌 최하위에 머물렀던 고양 오리온이 ‘수호신’과 ‘영웅’, 그리고 이들을 지휘하는 사령관의 호흡 속 비상을 준비하고 있다.

개막 후 연패를 당했던 고양 오리온은 안양 KGC인삼공사, 울산 현대모비스에 이어 지난 19일 창원 LG마저 꺾고 3연승을 달렸다. 단숨에 3승 2패, 공동 3위까지 뛰어올랐다.

시즌 전 열린 컵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받았던 기대감이 다시 살아나고 있다. 새 얼굴 이대성(30)은 물론이고 이를 뒷받침하는 이승현(28)이 일으키는 시너지 효과 덕이다.

고양 오리온의 3연승 뒤엔 이승현(오른쪽)이 있다. 강을준 감독은 이승현을 '수호신'이라 칭하며 공로를 높게 사고 있다. [사진=KBL 제공]

 

봄 농구 단골손님이던 오리온은 지난 시즌 최하위로 추락했다. 추일승 감독이 성적 부진으로 물러났고 오리온은 야인으로 지내던 강을준 감독을 선임했다. 추일승 감독 만큼이나 ‘팀 농구’를 중시했기에 적임자라는 평이 뒤따랐다.

토종 빅맨 장재석과 베테랑 가드 이현민(이상 현대모비스), 함준후(안양 KGC인삼공사) 등을 떠나 보냈지만 자유계약선수(FA)로 영입한 국가대표 가드 이대성 합류로 단숨에 다크호스로 부상했다.

공 소유 시간이 길고 홀로 해결하려는 본능이 강해 강을준 감독의 성향과 충돌할 것이라는 우려도 나왔지만 기우였다. 이대성은 탄탄한 포워드진과 달리 앞선이 약점으로 꼽혔던 오리온에서 그토록 원하던 ‘자유이용권’을 얻었고 컵대회에서 팀을 우승시키며 MVP로 우뚝섰다.

그러나 정작리그에선 출발이 좋지 않았다. 이대성은 2경기 평균 14점 5.5리바운드 7.5어시스트로 뛰어난 기록을 썼지만 야전사령관으로서 팀에 승리를 안겨주지 못했다. “성(승)리할 때 영웅이 나타난다”는 명언을 남겨 ‘성리학자’로 불리는 강을준 감독의 말과 달리 최장신 외국인 선수 제프 위디(213㎝)와 최진수, 김강선 등이 빠진 상황에서 홀로 빛났지만 ‘영웅’이 되기엔 부족했다. 

강을준 감독은 KGC인삼공사전을 앞두고 ‘명량대첩’을 상기시켰다.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이 12척의 배로 133척의 일본 수군을 물리친 전투로 강인한 정신력을 바탕으로 거둔 대승이었다. 힘겨운 상황이지만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준 말이었다.

이승현(오른쪽)은 득점력은 물론이고 외국인 선수 전문 수비로도 팀에 큰 공헌을 하고 있다. [사진=KBL 제공]

 

공격은 생각처럼 잘 풀리지 않았지만 백업 선수들을 중심으로 궂은일에 나서는 선수들이 발판을 놨고 허일영과 이승현의 경기 막판 결정적인 득점으로 연패를 끊을 수 있었다.

이대성은 막판 4점을 넣기 전까진 만족스럽지 않은 경기를 펼쳤다. 강을준 감독은 경기 후 “이대성은 비늘 한 장을 더 벗겨야 한다. 확률 높은 농구, 수학적으로 풀어가야 하는데 무조건 잘 했다고 박수 칠 게 아니다”라며 보다 이타적이고 쉬운 플레이를 펼쳐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대성은 곧바로 다음 경기 친정팀 현대모비스를 상대로 34점을 쏟아 부었다. 개인 정규리그 최다기록. 강 감독은 “고비에 믿고 기다렸더니 공격도 과감하게 하고 패스도 잘 주더라. 이럴 때 보면 갑옷을 다 벗은 것 같다”고 흐뭇해했다.

그 뒤엔 언제나처럼 묵묵히 제 역할을 해낸 이승현이 있었다. 외국인 선수 전담 수비를 도맡는 그는 숀 롱을 효과적으로 묶었고 몸을 사리지 않으며 스크린과 리바운드, 허슬플레이를 펼쳤다. 

강 감독은 “리바운드를 잘 잡기 시작하면서 역전을 한 계기가 됐다. 그 수비의 중심에 있는 이승현을 뺄 수가 없다. 감독으로서 박수를 쳐주고 싶다”고 고마움을 표했다.

LG를 만난 오리온은 고전했다. 위디가 돌아왔지만 몸 상태가 온전치 않기 때문인지 지난 시즌 득점왕 캐디 라렌 수비에 진땀을 흘렸다. 또다시 이승현이 나섰다. 1쿼터에만 15점을 넣은 라렌은 이승현이 막아서자 쉽사리 골밑을 공략하지 못했다. 늘 그렇듯 스크린과 리바운드 등 궂은일을 도맡았다.

화려한 플레이와 승부처 활약으로 오리온의 '영웅'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이대성이지만 여전히 보다 더 이타적인 플레이를 요구받고 있다. [사진=KBL 제공]

 

무리한 플레이로 흐름을 끊어 놓기도 하는 등 부진했던 이대성은 이승현을 중심으로 한 ‘팀 농구’ 대열에 합류했다. 역시나 기록에서 가장 돋보인 건 25점을 넣은 이대성이었다.

그러나 이승현의 희생이 없었다면 상상할 수 없는 승리였다. 강 감독은 “고양의 수호신 이승현이 잘 버텨준 덕분에 승리했다”며 “이승현이 라렌을 잘 막았다. 이승현에게 ‘너는 고양의 수호신’이라고 말했다. 수호신 덕분에 허일영, 이대성 등도 잘했다”고 전했다.

이승현이 오리온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그 누구보다 크다. 올 시즌 평균 38분30초를 뛰고 있는데, 이는 리그 내 압도적 1위다. 통산 기록도 33분13초인데, 이는 서장훈(33분11초)의 기록마저 뛰어넘는 수치다. 프로농구 역사상 국내 선수 1위. 기록에서 가장 빛나진 않아도 이승현이 얼마나 팀에 필요한 선수인지 보여준다.

이대성은 분명 오리온에 필요한 선수다. 컵대회 때도 그렇고 폭발적 득점력을 앞세운 승부사적 기질은 오리온에선 최근 몇 년간 찾아볼 수 없었다. 다만 아직 ‘오리온스러워’ 지려면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강 감독도 “승리 욕심이 매우 강한 친구다. 내려놓으면 더 잘할 수 있다고 말해줬다. 승부처에서 해줄 수 있는 강심장이다. 다만 확률을 높여야 한다”며 “패스를 맛있게 받으면 맛있게 주는 법도 알아야 한다고 했다. 그런 장면들이 나와야 ‘원팀’이 된다고 했다”고 전했다.

오리온은 추일승 감독 시절부터 함께 움직이는 ‘팀 농구’를 펼쳐왔다. 강 감독은 그런 오리온의 팀 컬러를 잘 유지해가고 있다. 오리온에 부족했던 득점과 리딩 능력을 갖춘 이대성의 합류는 팀에 큰 힘을 실어주고 있다. 아직은 100% 만족할 수 없지만 ‘영웅’을 돕는 ‘수호신’이 있어 오리온의 시즌 전망은 맑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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