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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국 은퇴, '축구천재' 굴곡진 커리어 돌아보니 [SQ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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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국 은퇴, '축구천재' 굴곡진 커리어 돌아보니 [SQ인물]
  • 김의겸 기자
  • 승인 2020.10.26 18: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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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Q(큐) 김의겸 기자] ‘라이언킹’ 이동국(41·전북 현대)이 은퇴한다. 1998년 등장하자마 ‘축구천재’ 소리를 들었고, 지난 23년간 톱 레벨에서 군림했다. 국가대표팀에서 아쉬움이 짙었던 반면 국내 프로축구 K리그에선 살아있는 전설로 통했다. 그의 축구인생을 돌아보니 그야말로 영욕의 세월이 아닐 수 없다.

이동국은 26일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아쉬움과 고마움이 함께 했던 올 시즌을 끝으로 저는 제 인생의 모든 것을 쏟았던 그라운드를 떠나기로 했습니다. 은퇴가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이라는 마음으로 오랜 생각 끝에 내린 결정”이라면서 “다가오는 홈경기가 등번호 20을 달고 팬 분들과 함께하는 마지막 경기라 생각하니 벌써 가슴이 먹먹해 온다. 마지막까지 축구선수 이동국이란 이름으로 최선을 다해 뛰겠다”고 썼다.

곧이어 구단에서 이동국 은퇴 사실을 발표하며 28일 전북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은퇴 기자회견을 개최한다고 알렸다. 11월 1일 홈에서 열리는 대구FC와 2020 하나원큐 K리그1(1부) 27라운드 최종전이 그의 선수로서 마지막 경기가 된다. 

2위 울산 현대에 승점 3 앞선 전북은 비기기만 해도 최초로 K리그 4연패 대업을 달성함과 동시에 최다우승 단독 1위(8회)가 된다. 구단 역사를 바꾼 이동국 은퇴 경기로서 제격이라고 볼 수도 있다.

이동국이 정든 피치를 떠난다. [사진=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2000년 레바논에서 열린 아시안컵 이란과 8강전 연장전에 골든골을 넣은 이동국(오른쪽)과 함께 기뻐하는 홍명보 현 대한축구협회 전무이사. [사진=연합뉴스]

◆ 전반전 : 화려한 등장... 이어진 불운과 치욕

이동국은 1998년 한국 축구사에 혜성처럼 등장했다. 그해 고교 졸업 후 바로 포항 스틸러스에서 데뷔하며 ‘1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골잡이’라는 평가 속에 1998 국제축구연맹(FIFA) 프랑스 월드컵 최종명단에 들었다. 

19세 나이로 네덜란드와 조별리그 2차전 후반 교체 출전, 한국축구 월드컵 최연소 출전 기록을 썼다. 이 기록은 아직까지 깨지지 않았다. 0-5로 지고 있던 때 날린 호쾌한 중거리 슛은 한국축구 미래를 밝힌 장면으로 회자된다. 이후 안정환, 고종수 등과 트로이카로 불리며 프로축구 호황기를 이끌었다. 

하지만 이동국은 2002 한일 월드컵 4강신화 주역이 되진 못했다. 거스 히딩크 감독은 수비 가담이 부족하다며 그를 선발하지 않았고, ‘게으른 천재’라는 불명예스런 수식어가 붙었다.

포항 스틸러스 시절 안정환, 고종수와 '트로이카'를 이뤄 최고 인기를 구가했던 이동국. [사진=연합뉴스]
2002 한일 월드컵 최종명단에 낙마한 뒤 심기일전했던 이동국은 2006 독일 월드컵을 불과 2개월여 앞두고 무릎 인대를 다쳐 또 다시 월드컵 출전이 좌절됐다. [사진=연합뉴스]
2010 남아공 월드컵 우루과이와 16강전 놓친 일대일 찬스는 오래도록 통한으로 남았다. [사진=EPA/연합뉴스]

이동국은 2002 부산 아시안게임에 출전했지만 4강에서 이란과 접전 끝에 승부차기에서 지면서 또래 선수들과 달리 군 면제 기회도 놓쳤다. 광주 상무에서 병역 의무를 다하며 심기일전했고, 포항에서 맹활약하며 대표팀 부동의 넘버원 스트라이커로 전성기를 보냈다. 

허나 불운이 또 닥쳤다. 월드컵을 불과 두 달여 앞두고 무릎 인대가 파열되는 부상을 입어 본선행이 좌절됐다. 2010년 남아공 월드컵을 앞두고는 허벅지를 다쳤다. 또 월드컵에 나서지 못하는 게 아닌가 했지만 극적으로 회복해 우루과이와 16강전 후반 조커로 나섰지만 결정적인 일대일 기회를 놓치는 등 운이 따라주지 않았다.

이런 가운데 이동국은 2007년 아시안컵 ‘음주 파동’을 일으켜 1년간 대표선수 자격정지 중징계를 받기도 했다. 그해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진출해 미들스브러에 입단했지만 별다른 성과 없이 1년 반 만에 쓸쓸히 귀국했다.

2007년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미들즈브러에 입단했지만 별다른 성과 없이 귀국했다. [사진=EPA/연합뉴스]
전북에서 12시즌 활약하며 제2 전성기를 보냈다. K리그 레전드로 발돋움했다. [사진=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 후반전 : 전북과 함께 K리그를 넘어 아시아 레전드로

성남FC를 통해 국내로 복귀한 이듬해인 2009년부터 전북에서 뛰면서 K리그 레전드로 발돋움했다. 

현재 K리그 통산 547경기에서 228골 77도움을 기록 중이다. 통산 최다득점자이며 지난 2017년 가장 먼저 70(골)-70(도움) 클럽에 가입했다. 지난해에는 역시 처음으로 통산 공격포인트 300개(223골 77도움)를 달성했다. 그가 걸어온 길이 곧 K리그 역사다.

A매치 105경기(역대 10위)에서 33골(공동 4위)을 넣는 등 나이 서른을 넘긴 뒤에도 꾸준히 국가의 부름을 받고 태극마크를 달았다. 2018 러시아 월드컵 최종예선 당시 위기에 몰린 신태용 감독은 이동국을 전격 발탁하며 반전을 꾀하기도 했다.  

전북에서만 12시즌 뛰며 K리그 우승 7회,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ACL) 우승 1회, 준우승 1회, 대한축구협회(FA)컵 우승 1회 등을 함께 하며 제2 전성기를 보냈다. 2009년부터 2018년까지 10시즌 연속 리그 두 자릿수 득점을 생산했다. 이동국은 ACL에서도 통산 75경기 37골로 대회 최다득점자로 이름을 올리고 있다. 

지난 5월 수원 삼성과 공식 개막전에서 덕분에 세리머니를 펼치더니, 6월 FC서울전에선 인종차별 반대 세리머니로 의미를 더했다.
2018 러시아 월드컵 최종예선 탈락 위기에 몰린 대표팀에서 이동국을 다시 소환하기도 했다. [사진=대한축구협회 제공]

전북 입단 첫 해 22골을 몰아치며 창단 첫 리그 제패에 앞장섰다. 전북 유니폼을 입고 360경기에 나서 164골 48도움을 올렸다. 그는 은퇴 발표 영상에서 “특히 전북에서 20번을 달고 뛰었던 기억은 정말 많이 그립고 절대 잊지 못할 것 같습니다”라고 밝히기도 했다.

올 시즌 K리그 현역 최고령인 그는 10경기에서 4골을 더했다. 경기 출전 빈도가 눈에 띄게 줄었지만 꾸준히 백업 공격수로서 대기했다. 특히 전 세계 전역에 생중계되면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시대 축구의 귀환을 알렸던 수원 삼성과 올 시즌 공식 개막전에서 결승골을 넣은 뒤 보여준 ‘덕분에’ 세리머니는 큰 화제가 되기도 했다. 

2018년 전북으로 이적한 국가대표 출신 센터백 홍정호는 25일 울산전 승리 뒤 전북의 위닝 멘탈리티를 언급하며 “(이)동국이 형 존재가 크다. 가운데서 중심을 지켜줬다. 동국이 형 기운이 큰 것 같다”며 그가 동료들에게 정신적으로 미치는 효과를 설명했다. 이동국이 온 뒤 전북은 K리그를 리딩하는 클럽으로 거듭났다. 

이동국은 11월 1일 대구FC와 홈경기를 마지막으로 축구화를 벗는다. [사진=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거듭된 불운 속에서도 이동국은 질주를 멈추지 않았다. 한 시대를 풍미한 ‘풍운아’로 저무는 듯 했지만 지독한 자기관리와 성실함으로 매 순간 주어진 자리에서 최선을 다했다. 결국 ‘라이언킹’을 넘어 온 국민의 사랑을 받는 ‘대박이 아빠’로도 활약하며 K리그를 알리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젊은 날 숱한 시련은 그를 더욱 단단하게 만들었고, 한국나이 42세까지 톱 공격수로 피치를 누빌 수 있었던 양분이 됐다.

11월 1일 그의 은퇴경기는 안방에서 열린다. 코로나19에 따른 정부의 사회적 거리두기 지침이 1단계로 하향된 상황이라 관중 수용규모 25%에 한해 팬들이 그의 마지막을 함께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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