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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범-안주현 징역형, 심석희-故 최숙현 분통함 달랠 수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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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범-안주현 징역형, 심석희-故 최숙현 분통함 달랠 수 있으랴
  • 안호근 기자
  • 승인 2021.01.22 1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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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Q(큐) 안호근 기자] 시대가 많이 바뀌었다고 하지만 체육계엔 여전히 어두운 단면이 존재했다. 국가대표 선수들의 피해 사실은 전 국민에 충격을 안겨줬다. 자성의 목소리를 높이는 한편 부족한 제도적 보완까지 이뤄지는 계기가 됐다.

무엇보다 직접적인 가해자들에게 죗값을 치르게 하는 게 우선이었다. 수년간 쇼트트랙 간판 심석희(서울시청)와 전 트라이애슬론 국가대표 故(고) 최숙현을 괴롭혀 온 조재범(40) 전 쇼트트랙 대표팀 코치와 트라이애슬론 대표팀 운동처방사 안주현(46) 씨가 각각 징역 10년, 8년형을 선고받았다.

조재범 전 쇼트트랙 국가대표팀 코치가 21일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 등의 혐의로 징역 10년 6개월 선고를 받았다. [사진=연합뉴스]

 

수원지법 형사15부는 21일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 등의 혐의를 받는 조씨에게 “죄책이 무겁고 비난 가능성이 매우 크다”며 징역 10년 6개월 형을 선고했다.

조 전 코치는 심석희가 고등학교 시절이던 때부터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3년 여간 폭행과 성범죄를 저질렀다.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을 앞두고 문재인 대통령이 진천 선수촌을 방문했을 때에도 선수촌을 이탈해 홀로 자리를 비웠을 만큼 심신이 지쳐 있었다.

이후 심석희는 폭행 피해 사실을 밝혔으나 형량이 생각보다 무겁지 않았고 조 전 코치가 진심으로 반성하는 태도를 보이지 않자 성폭행 사실까지 추가 폭로했다. 쉽지 않은 결심이었지만 결단을 내렸고 결국 상황은 완전히 다른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이후 길고 긴 법정 공방 속 이날 징역형 선고까지 받게 됐다. 법원은 사건 장소의 가구 배치와 이불 색깔 등까지 상세한 피해 사실 진술에 대해 “구체적이고 자연스러워 허위가 개입됐다고 보기 어렵다”며 심석희의 손을 들어줬다. 더불어 조 전 코치에겐 성폭력 치료 프로그램 200시간 이수, 7년간 아동·청소년 관련 기관 및 장애인 복지시설 취업제한을 명령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피해자를 지도한 쇼트트랙 국가대표팀 코치로서 수년간 여러 차례에 걸쳐 피해자의 항거불능 상태를 이용해 위력으로 성범죄를 저질렀다”며 “그런데도 혐의를 부인하고 피해자에게 용서를 받기 위한 조처도 하지 않았다”고 판시했다.

심석희의 법정 대리인이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미성년 성범죄라는 점은 조 전 코치의 형량을 키운 이유 중 하나다. “피해자는 성적 정체성 및 가치관을 형성해야 할 아동·청소년 시기부터 지속해서 성폭력을 당해 심각한 정신적 피해를 입었다”며 “피해자는 용기를 내 피고인의 범행을 외부에 폭로했으나 사건을 진술하는 과정에서 수치스러운 기억을 다시 떠올리는 등 범행 기간 외에도 2년 넘는 기간 동안 매우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야 했다”고 전했다.

심석희는 지인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으로 인해 22일까지 자가격리 중이어서 이날 법정에는 나오지 못했고 변호인인 임상혁 변호사가 그의 입장을 대변했다. 

메시지는 명확했다. 임 변호사는 “심 선수가 6개월간 수사를 받고 1년 6개월간 재판을 받으며 매우 고통스러워했는데 이런 과정이 판결로 인정돼 다행”이라면서도 “검찰 구형량이 징역 20년이었는데 10년 6개월이 선고된 것은 사회적 파장과 피해자가 받은 피해에 비해 매우 낮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항소를 통해 이를 바로 잡겠다는 뜻도 전했다.

심석희는 입장문을 통해 “다시는 나 같은 피해자가 발생하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용기를 냈다”며 “이 판결이 우리 사회 어딘가에 있을 피해자들이 자기 목소리를 내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해 울림을 줬다.

22일엔 트라이애슬론 국가대표 출신 최숙현을 죽음으로 내몬 장본인 중 하나인 경북 경주시청 트라이애슬론 운동처방사 안주현 씨의 선고공판도 열렸다. 대구지법 형사11부는 이날 의료법 위반과 사기, 폭행, 유사강간 등 혐의로 기소된 안주현 씨에 대한 선고공판에서 징역 8년에 벌금 1000만 원을 선고했다. 성폭력치료프로그램 80시간 수강과 신상정보공개 7년, 아동·청소년 관련기관 및 장애인 복지시설 취업 제한 7년도 함께 명했다.

22일 의료법 위반과 사기, 폭행, 유사강간 등 혐의로 기소된 안주현 씨가 선고공판에서 징역 8년에 벌금 1000만 원을 선고받았다. [사진=연합뉴스]

 

‘팀닥터’로 불린 안 씨는 의사 면허나 물리치료사 자격증 없이 선수들에게 의료행위를 하고 치료비 등 명목으로 2억 원이 넘는 돈을 받아 챙긴 혐의 등으로 지난해 7월 13일 경북지방경찰청에 구속됐다. 심지어 소속 선수 여러 명을 때리고 폭언과 가혹 행위 등을 일삼았고 일부 여성 선수들을 성추행한 혐의도 받았다.

재판부는 “우월한 지위를 이용해 치료를 명목으로 선수들을 구타·추행하고 이를 못 견딘 최숙현 선수가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며 “피해자들이 성적 수치심 느끼는 등 고통이 엄청났는데도 어떤 피해 복구도 이뤄지지 않아 죄책에 상응하는 엄한 처벌이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다만 “죄질이 불량하고 죄책이 무겁지만 잘못을 인정하고 반성하는 점, 범죄 전력이 없는 초범인 점 등을 종합했다”고 밝혔는데, 숙현 선수의 아버지와 동료선수들은 “피해자들이 겪은 고통에 비해 초범이라는 이유로 검찰 구형보다 약한 형량이 선고된 것은 아쉽다”는 뜻을 나타냈다. 지난해 12월 결심공판 때 안 씨가 받은 검찰 구형은 징역 10년이었다.

김규봉 경주시청 감독과 선배 장윤정 등에 대한 선고도 이날 예정돼 있었지만 변론이 재개됐다. 검찰은 김 감독에겐 징역 9년, 장윤정에겐 5년, 불구속기소된 김도환에겐 징역 8월을 구형한 상황이다.

심석희와 고 최숙현이 받은 피해를 생각하면 결코 무겁다고 할 수 없는 선고 결과다. 심석희는 이후에도 자신을 향한 경기 외적 관심에 온전히 선수생활에 집중할 수 없는 상황이고 심각한 정신적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최숙현은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에 이르렀다.

심석희의 말처럼 다시는 이런 일이 없어야만 한다. 재발 방지를 위해서 보다 강력한 처벌이 필요한 때다. 이미 피해를 받은 이들의 깊은 상처는 무엇으로도 치유할 수 없다. 체육계에 뿌리 깊게 박힌 악습과 잘못된 문화 개선을 위해 본보기로 보다 강력한 철퇴를 가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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