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산=스포츠Q(큐) 글·사진 김의겸 기자] "모든 선수들을 존중해주시고 고루 기회를 주신다. 그게 싫어 떠난 선수도 있다. 공 없이 뛰는 훈련이 많은 다른 선생님들과 비교했을 때 공을 가진 상황에서 하는 훈련이 많다. 똑같이 힘들어도 공을 가지고 힘든 훈련을 한다는 점이 다르다."
"입단 전 아산에 P급 라이센스를 가진 감독님이 계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 지역에서 축구하는 내 나이대 선수들 사이에선 나름 유명하시다."
K리그2(프로축구 2부) 충남 아산 유스 18세 이하(U-18) 팀에서 뛰고 있는 선수들의 말이다. 오동훈(38) 감독 부임 2년차, 아산 U-18팀은 짧은 시간 동안 적지않은 변화를 겪었다. 아직은 옳고 그름을 따지기도, 지난 2년간 행보에 성적표를 매기기도 이르다.
비(非)선수 출신이지만 한국인 최초로 유럽축구연맹(UEFA)에서 공인하는 최고 지도자 자격증 Pro 라이센스를 따낸 오동훈 감독이 이끄는 아산의 변화는 앞으로가 더 흥미로워질 전망이다. 성과, 성적으로 모든 것을 말하는 한국 축구 생태계다. 스페인에서 이론과 현장 양면으로 경험을 쌓은 오 감독이 한국 축구판에서 그리는 그림은 뭘까. 지금의 아산 U-18 팀은 그 힌트가 될 듯하다.
*이 글은 오동훈 충남 아산 U-18팀 감독 인터뷰 ①편에서 이어집니다.
◆ 저학년도 실전 기회? 이 팀, 뭐가 다를까
오동훈 감독이 아산 U-18 팀에 부임한 지 2년. 지휘봉을 잡으며 "불필요한 부분은 최소화하고, 실용적이고 효율적인 방법을 통해 선수들을 육성할 계획"이라는 포부를 밝혔던 그. 하지만 팀을 맡자마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과 고참 선수 대거 이탈이라는 이중고와 마주했다.
브라질, 포르투갈, 스페인을 거치면서 도합 10년. 갈고 닦은 내공을 한국 축구판에서 펼쳐보이겠다는 꿈을 안고 시작했지만 상황은 처음부터 녹록지 않았다. 그는 오히려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았다. 1, 2학년 저학년들을 중심으로 새 판을 짰다. 선수들이 새 시스템에 녹아들 때쯤이면 아산의 경쟁력도 올라갈 거라 생각했다.
"이제 2년째 함께하고 있어 선수들이 제법 잘 따라온다. △관찰력 △통찰력 △합리성이라는 세 중점을 바탕으로 선수들을 키워내겠다는 생각으로 아산에서 일을 시작했다. 지난해 코로나로 경기가 줄었지만 우리 팀 입장에선 오히려 실력을 갈고닦을, 담금질을 통해 우리 색깔을 내기에는 더 좋은 시기였다고도 생각한다."
오동훈 감독은 고학년 위주로 라인업을 짜는 관행에서 벗어나 저학년에게도 많은 실전 기회를 부여하고 있다. 훈련장에서 만난 선수들은 "모두에게 기회를 주신다. 그게 싫어 떠난 선수들도 있지만, 동기 부여가 된다"고 입을 모았다. 매 경기 주전을 장담할 수 없다. 축구에서 소위 에이스로 치부되는 등번호를 받았다 하더라도 안주할 수 없는 체제를 구축했다.
"실력이 안 되는데도 좋은 번호를 받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좋은 번호를 달았다고 해서 무조건 선발이 보장되는 것도 아니다. 심리적으로 좋은 번호를 받는 순간 오히려 안일해질 수 있다. 항상 나는 별 거 아니고, 언제든 이 팀에서 빠질 수 있는 선수라는 생각으로 뛰어야 한다. 이 레벨에선 안주하는 순간 언제든 떨어질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매주 코칭스태프가 관찰을 통해 훈련 때 잘하고 열심히 하는 선수들에게 기회를 주고 있다. 다른 팀의 경우 연습경기를 해도 누구는 뛰지 않고 러닝만 하고 있다든가. 연습경기임에도 굉장히 짧은 시간만 주어지는 경우도 있다. 우리는 연습경기도 훈련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특별한 일이 없다면 선수 전원에게 기회를 주려고 한다. 아직 프로가 아니지 않나. 열심히 노력하는 선수라면 웬만하면 같이 갈 수 있는 방향으로 팀을 운영하고 있다."
훈련량도 훈련방법도 타 구단 혹은 이전에 경험한 팀과는 다르다는 게 선수들의 증언이다.
오동훈 감독은 "어떤 팀은 새벽, 방과 후, 저녁까지 3차례로 나눠 매일 훈련하는 팀도 있다. 물론 우리도 하루에 2회 훈련할 때가 있다. 운동장에 두 번 나가면 한 번은 팀으로 움직이는 전술 상황 판단 훈련을 실시하고, 두 번째는 순수한 개인기량 발전을 위한 시간으로 구성한다. 가볍게 몸만 푼 뒤 각자 부족하다 여기는 점을 채울 수 있는 시간을 갖는다. 선수들끼리 짜서 슛, 롱패스 훈련을 하기도 하고, 어떤 날은 크로스나 마무리 등 기술적으로 부족한 부분을 다듬는다"고 설명했다.
"훈련에서도 스스로 생각하게 만들고 싶다. 정말 이 시간만큼은 육체적 부담은 배제하고 선수 개개인의 발전을 위한 시간이 됐으면 한다."
◆ 성적보다 성장, 오동훈 감독이 꾸는 꿈
자의 반 타의 반 고학년이 정리되고 저학년 중심으로 팀을 꾸려 함께한 지 2년째. 지난 2년은 어린 선수들에게나 오 감독에게나 동기 부여로 작용했을 시간이었다. 2021시즌 말미 타 구단 주축인 3학년 졸업반 선수들이 전력에서 차차 이탈하면서 유스 중에서도 어린 팀 아산도 U-18 K리그 주니어 후기리그에서 힘을 내고 있다.
올 시즌 후반기 상승세를 이어 내년 시즌 일을 내겠다는 각오다. 하지만 한편으론 승리에만 매몰되고 싶진 않다. 스페인에서 축구를 배우고 아이들을 가르친 오 감독은 축구를 즐길 때 덩달아 실력도 늘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승리야 항상 하고 싶다. 승리가 중요하지 않다는 게 아니다. 당연히 매일 이기고, 매 경기 잘하고 싶다. 그럼에도 선수들에게 늘 강조하는 게 승리에 집착하지 말라는 것이다. 집착하지 않되 매 경기 최선을 다하는 것. 승리는 열심히 했을 때 따라오는 보상이다. 승리만이 목적이 되면 제대로 된 축구를 할 수 없다. 아이들의 축구는 여기서 끝나는 게 아니지 않나. 대학, 프로에 가서도 좋은 축구를 하기 위한 소양을 쌓는 시기가 됐으면 한다."
프로 산하라고 하더라도 취업과 입시라는 아이들의 진로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오 감독의 선수단 운용 방향성과 한국 축구판 특유의 성적지상주의는 상충할 수밖에 없기도 하다.
"스페인에는 축구 팀이 훨씬 더 많고, 대부분 학교 팀이 아니라 클럽 개념이다. 워낙 축구 인구가 많다보니 유스 팀을 두 살 터울로 끊어간다. 한국에서는 힘들다는 걸 안다. 스페인에 선수로 등록된 축구인구만 90만 명이지만 한국은 4만 명 정도다. 스페인에서 축구가 생활체육이라면 한국은 아직까지 엘리트체육 범주 안에 있지 않나."
"일선의 현장에서 변화를 시도하는 분들도 많지만 가장 아쉬운 점은 고등학교 선수들이 대회 실적을 가지고 대학에 간다는 점이다. 모든 학부모, 지도자, 선수들 간에 생기는 마찰은 대회 성적에 따라 어느 대학에 가느냐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프로가 되고 싶다는 순수한 목적으로 축구를 하는 선수는 줄고, 어떤 이들은 축구를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한 수단으로 삼기도 한다."
선수 경력이 없는 데다 이역만리 축구강국으로 통하는 스페인에서 축구 지도자로서 유학한 오동훈 감독이기 때문에 느끼는 괴리감이 상당했을 터. 그의 제자들이 아산 U-18 팀의 코칭은 다른 팀들과는 뭔가 다르다고 입을 모으는 배경일 것이다.
"만약 대학 입시 없이 축구적으로 발전하는 데만 쓴다면 고등학교 3년은 성장하기 충분한 시간이다. 지도자들의 성적 압박감이 상당하다. 지도자가 하고 싶은 축구를 하고, 선수들의 실질적인 발전을 이끌어내기보다는 매 경기 이기는 데 혈안이 될 수밖에 없는 구조. 당연히 주전 의존도도 높아질 수밖에 없다. 이게 한국의 축구문화라면 문화겠지만 순수하게 선수 개인의 발전만 놓고 보면 저해요소인 것 같아 안타깝다."
◆ 비선출 지도자? 약점을 무기 삼아
그래서 더 성적보다 성장에 초점을 맞추는 오동훈 감독이다. 축구를 통해 인생을 가르치고 있는 셈이기도 하다. 본인이 살아온 삶이 그랬다. 선수 출신도 아니고, 한국에서 대학교를 다니다 덜컥 브라질로 넘어가 축구 유학을 시작했다. 출발이 늦고, 방법도 달랐지만 이렇게 버젓이 축구를 가르치는 일을 하고 있으니 더 해줄 말이 많다.
비선출이다. 하지만 누구보다 코칭 이론 면에서는 가장 깊이 있게 공부했다고 자부한다. 특히 스스로 강점으로 언어를 꼽는다. 현대축구 헤게모니를 이끄는 스페인, 포르투갈 등 유럽축구 트렌드를 누구보다 빠르게 흡수할 수 있다고 자신한다.
"루이스 엔리케, 펩 과르디올라, 사비 에르난데스 등 스페인 출신 엘리트 감독들의 인터뷰를 보면 지도자로서 식견이, 그 수준이 다르다는 걸 느낀다. 나만 알고 있기 아까울 정도다. 비선출인 내가 지도자로서 갖는 큰 강점은 언어다. 축구 선진국에서 나오는 양질의 자료를 남들보다 쉽게 접하고 취득할 수 있다."
"한국에서 축구 지도자를 돈을 벌기 위한 수단으로, 생계로 삼는 분도 많다. 그게 잘못됐다는 건 아니다. 다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나는 정말 이 일을 사랑하기 때문에 해외에서 홀로 그것도 단칸방에서 10년을 공부할 수 있었다. 정말 좋아해서 하기 때문에 지치지 않을 자신이 있다. 지금 생활이 너무 재밌다. 매일 공부하고 연구해서 훈련을 진행하는데 그 과정에서 선수들이 발전하는 게 보이면 정말 큰 보람을 느낀다."
역으로 당연히 선수 출신이 아니라 부족한 점도 있다. 기술적인 부분을 직접 설명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스타플레이어 출신 감독들은 선수 때 쌓은 업적만으로도 지도자로서 설득력이 생기기도 한다. 오 감독은 갖추지 못한 장점이기 때문에 다른 방면으로 설득력을 키우려고 한다.
"선수 출신보다 상대적으로 인맥이 적고, 기술적인 지도에서 디테일이 떨어질 수도 있다. 허나 이 또한 큰 문제가 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함께하는 코칭스태프가 해결해줄 수 있는 문제다. 또 가령 지네딘 지단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아우라나 리더십 같은 것도 나는 갖지 못한 부분이다. 하지만 그건 애초에 내게 없는 것이니 고민할 필요도 없다. 대신 통역관 출신 조세 무리뉴, 구두수선공 출신 아리고 사키 감독처럼 전술적 역량으로 선수들을 설득하면 된다."
오동훈 감독은 아산 U-18 팀을 통해 한국에서 지도자로서 감독으로서 첫 발을 내딛고 있다. 이쯤 되니 그의 단기적 또 중장기적 목표가 궁금하다.
"단기적으로는 지금 팀에 있는 선수들이 좋은 선수가 될 수 있도록 잘 지도하는 것이고, 그 다음은 이 선수들의 발전에 힘입어 팀적으로 가시적인 성과를 내는 것이다. 장기적으로는 구체적인 목표를 정하진 않았다. 단지 오늘보다 내일 더 나은 지도자가 되고 싶다. 매일 더 나은 지도자가 되면 결론적으로 최고의 지도자가 되지 않겠나. 해외에서 공부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365일씩 10년이 쌓여 지금의 내가 있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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