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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웅의 인디저장소] 대한민국 인디신, '인디팝'이 대세가 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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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웅의 인디저장소] 대한민국 인디신, '인디팝'이 대세가 된 이유
  • 박영웅 기자
  • 승인 2022.01.21 09: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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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신을 본격 취재한 지 햇수로 8년여 세월이 흘렀다. 소속사도 자본도 없는, 말 그대로 ‘리얼 인디뮤지션’들의 고단한 여정을 고스란히 지켜봤다. 수백여 팀에 달하는 인디뮤지션들을 인터뷰했고 국내 인디신 음악 장르의 변화 과정도 목도했다. ‘박영웅 기자의 인디저장소’는 기자 눈으로 지켜본 국내 인디신의 어제 오늘 그리고 미래에 대한 기록이다. 흥미로웠던 뒷이야기와 여러 생각들을 글로 녹여내고자 한다. <편집자 주>

[스포츠Q(큐) 박영웅 기자] 인디저장소 1회에서 다룰 주제는 현재 국내 인디신 대세 장르로 자리한 ‘인디팝’에 관한 것이다. 인디팝이라는 장르는 십 수 년 간 인디신을 대표하던 주력 음악들이 급격하게 변화하는 과정에서 탄생한 신 장르다. 특히 인디팝은 현재 인디신을 그대로 설명해주는, 거울 같은 장르로 여러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에 따라 인디저장소 1회에서는 인디팝의 개념을 정의하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 등을 쉽고 간결하게 짚어볼까 한다.

서울예대 출신 위아영(왼쪽)과 터치드(오른쪽)
서울예대 출신 위아영(왼쪽)과 터치드(오른쪽)

 

◆ 국내 인디신을 점령한 장르 ‘인디팝’은 무엇인가?

본격적인 이야기를 하기 전에 먼저 ‘인디팝’이라는 용어를 간단히 설명해야 할 것 같다. 사실 인디팝은 1980년대 중반 영국에서 발생한 얼터너티브 록의 한 장르를 부르는 용어다.

하지만 2021년 현재 국내 인디신에서는 인디팝이라는 의미가 약간 다르게 사용된다. 2010년대 중반을 넘어서며 국내 인디신 음악 대부분이 강력한 파워를 기반으로 하는 록 음악 대신 대중적인 팝 장르의 음악들로 가득 차게 되면서 사실상 가요계 음악들과의 경계가 허물어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필자도 이를 구분 짓기 위해 기사에 국내 인디신과 팝 장르라는 두 키워드를 묶어 인디팝이라는 용어를 기사에 쓰기 시작했다. 여기에다 일부 뮤지션과 인디음악 관계자들도 이 용어를 함께 쓰기 시작하면서 현재는 인디팝이라는 용어가 국내 인디신을 대표하는 음악 장르 중 하나를 설명해주는 말이 돼가고 있는 상황이다.

실제 필자가 국내 인디신 취재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2014년 당시도 국내 인디신은 강력한 사운드로 무장된 록밴드들이 힘을 잃어가는 모습이었다. 대신 어쿠스틱 장르가 대세를 이루면서 전자음악을 기반으로 한 팝 뮤지션들이 계속 그 숫자를 늘려가고 있었다. 결국 이런 추세가 계속되다 보니 자연스럽게 팝 뮤지션들이 국내 인디신의 대권을 거머쥐게 됐고 현재는 여러 장르가 뒤섞인 팝 음악들이 주력 장르가 됐다.

◆ ‘팝’이 인디신을 장악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렇다면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인디신, 인디뮤직하면 상징처럼 떠오를 정도로 강력한 사운드를 기반으로 하는 록밴드들이 서서히 힘을 잃고 가요신 음악과도 거의 구분이 쉽지 않은 팝 장르 음악들이 왜 인디신 대세로 떠오른 것일까?

국내 인디신만의 관점으로 몇 가지 이유를 찾아본다면 다음과 같다.

첫 번째는 대학 실용음악과 출신 인재들의 인디신 대거 유입이다. 최근 십여 년 정도를 기점으로 국내 여러 대학에는 실용음악과가 신설되거나 인원을 늘리는 추세가 이어졌다. k팝의 글로벌화 등으로 음악 산업이 성장하고 이를 직접 하겠다는 학생들이 늘어나면서 생긴 현상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실용음악과 출신 인재들은 대한민국 음악시장에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특히 처음부터 인디신 활동을 목표로 했던 이들과 가요계로 진출하지 못한 실용음악과 음악 인재들이 대거 인디신에 흡수되기 시작했고 지금도 이 현상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실제 수년간 발품을 팔며 취재하면서 이들이 인디신에 대거 유입되는 과정을 지켜봤다.

2015년을 기점으로 인디신 내에서 활동하는 이들 숫자가 급속도로 늘어나더니 2021년 현재는 인디신 내에서 활발하게 활동 중인 신인 뮤지션들 대부분이 실용음악과 출신들이다.

좋은 예로 인디신 내에서 최고 인기 밴드 중 하나로 급부상한 위아영과 최고 신인 유망주로 평가받고 있는 터치드는 모두 서울예술대 실용음악과 출신들이다. 이외에도 최근 등장한 신인 뮤지션들은 팀과 솔로를 막론하고 대부분 호원대, 동아방송대, 한양대, 백석예대 등 다양한 학교의 실용음악과 출신들이다.

이처럼 실용음악과 출신 인재들이 유입되면서 인디신 음악의 장르적 변화는 더욱더 가속화됐다. 이들 중 다수는 학창 시절부터 국내가요와 글로벌 음악 시장을 겨냥한 교육을 배운 인재들로 전 장르를 아우르면서도 트렌디하고 대중적인 음악을 만들 수 있는 능력을 기본적으로 장착하고 있다. 어느 한 장르의 음악만을 시도하면서 ‘장인(匠人)’의 길로 향하던 일부 기존 밴드 뮤지션들과는 다른 스타일을 지닌 이들이라고 할 수 있다.

결국 다수가 된 이들이 인디신에서 가요와 팝 색깔이 짙은 다양한 장르를 활용한 음악을 들려 주기 시작하면서 신의 주력 음악은 자연스럽게 인디팝이 된 것이 아닌지 진단해 볼 수 있다. 대중적으로 크게 성공하는 뮤지션들까지 나타나면서 팝 장르 쏠림현상은 더욱 가속화된 것으로 분석된다.

두 번째 이유는 세계적인 음악 흐름이 록에서 팝으로 완전히 넘어와 버렸다는 것이다. 현재 세계 유명 차트를 장악하고 있는 음악들은 거의 대부분 팝 장르다. 상위 차트에 정통 록 장르 음악들을 찾아보기는 쉽지 않다. 가요시장보다 더욱더 빠르게 덜 정제된 현지 음악 장르를 받아들이는 성향이 강한 국내 인디뮤지션들 사이에서 팝 장르는 자연스럽게 주력 음악이 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기존 인디신을 지키고 있던 록 장르 뮤지션들도 신스팝 장르 등을 활용하는 등 변화의 양상마저 보여주고 있을 정도다.

마지막으로 국내 인디신의 경우 음악 쏠림현상이 지나치게 심각하다는 것을 들 수 있다. 예전 펑크록 전성시대에는 대부분 뮤지션이 펑크록을 하겠다고 우후죽순처럼 생겨났고 이후에는 하드코어, 브릿팝, 어쿠스틱 등 어떤 장르가 성공을 거두면 국내 인디신 장르 흐름은 격한 쏠림현상을 보여줘 왔다. 현재 인디팝 대세 흐름도 실용음악과 출신 뮤지션들의 대거 유입과 함께 이런 쏠림 현상까지 겹쳐지면서 굳어져 버린 것이 아닌지 조심스럽게 짚어본다.

서울예대 출신 인디뮤지션 위아영(위)과 터치드(아래)
서울예대 출신 인디뮤지션 위아영(위)과 터치드(아래)

 

◆ 인디팝 전성시대의 장단점

팝 전성시대를 맞은 국내 인디신. 분명 장단점이 존재한다. 장점이라면 이전보다 일반 대중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고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음악들이 많아졌다는 점이다. 가요시장에서 발매되고 있는 음악들과 최근 인디신에서 새로 쏟아져 나오는 음악들은 사실상 이를 구분 짓기 힘들 정도로 비슷한 스타일과 색깔을 드러내고 있는 양상이다.

한 예로 예전 피콕이나 요즘에도 활동 중인 레터플로우 같은 뮤지션들의 음악 장르는 정통 발라드로 가요시장에서 발매되고 있는 기존 발라드 음악들과 구분하기 힘들 정도의 완성도와 스타일을 보여주고 있다. 이런 점은 국내 인디신 음악들과 뮤지션들도 충분히 가요차트를 점령하고 큰 성공을 거둘 수 있다는 희망적 메시지를 주는 것이나 다름없다. 인디신 뮤지션들에게도 대중적 성공이라는 동기부여를 제공해 줄 수 있는 현실이다.

하지만 단점도 만만치 않다. 인디신을 대표하던 록 장르가 소멸하는 분위기 속에서 가요계와 차별성이 전혀 없는 팝 장르 음악들의 숫자가 늘어나게 된다면 몇 단계 위의 자본력과 시스템을 갖춘 가요계에 인디신은 뛰어난 뮤지션들만 공급해주는, 마치 미국 프로야구 시스템인 메이저리그와 마이너리그의 종속 관계가 될 수 있다는 우려도 없지 않다.

◆ 인디팝 고유의 색깔과 차별성을 장착한 한 단계 높은 음악으로 도약해야

이런 이유로 인디팝 장르는 고유 색깔과 차별성을 장착한 한 단계 높은 음악으로 발전해 나가야 하는 숙제를 떠안고 있다. 인디뮤직의 차별성이라 한다면 가요시장 음악들과는 다른 실험성과 공연 무대를 위해 만들어진 음악들이라고 할 수 있다.

단순히 음원 성공을 위해 가요계에서도 쉽게 들을 수 있는 차별성 없는 음악들로는 성공은커녕 인디신 고유의 색 조차 파괴하는 결과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막강한 자본력과 홍보력 우산 아래 태어난 가요계 음악들과 비슷한 음악으론 애당초 경쟁이 힘들다는 소리다.

인디음악 뮤지션들은 이점을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또 예전부터 인디신 하면 대중들에게 가장 강하게 인식된 인디팝 외의 장르 부활도 시급하다.

메탈, 펑크, 하드코어, 얼터너티브록 등 강함을 무기로 무대에서 빛을 발휘하는 록 장르 등도 그 인기를 부활시켜 인디신 내에서 계속 공존해야만 한다. 이들 음악이야말로 국내 인디신의 정체성을 대표하는 장르일 뿐만 아니라 현재 인디신의 가장 큰 문제인 팝 장르 쏠림현상과 다양한 음악 팬 층을 확보할 수 있는 해법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숙제를 하나하나 풀어가야만 인디팝이 한 단계 더 발전 성장할 수 있고 인디신을 넘어 대한민국 음악계를 대표하는 장르이자 다양성을 제공해주는 장르로 비약할 수 있지 않을까?

* 이 글은 한국음악실연자협회 2021년 소식지 겨울호에 개재된 칼럼으로 스포츠Q 독자들을 위해 다시 수정 보강해 올리는 것이니 참고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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