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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권도 정찬호, 반짝 천재? 원래 걸음이 느린 아이랍니다 [SQ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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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권도 정찬호, 반짝 천재? 원래 걸음이 느린 아이랍니다 [SQ인터뷰]
  • 김의겸 기자
  • 승인 2022.05.02 19: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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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초=스포츠Q(큐) 글 김의겸·사진 손힘찬 기자] 정찬호(23·부산 수영구청)는 원래 스타트가 늦었다. '태권도를 그만둬야 하는 걸까'라는 생각이 머릿속에 맴돌던, 스스로도 의심이 가득했던 그때 먼저 자신의 가치를 알아본 은사의 열성적인 지도 속에 급성장, 한때 국내를 넘어 세계 최고를 찍었다.

화려한 주니어 시절을 뒤로하고 실업에 입문한 정찬호는 이후 슬럼프를 겪었다. 또 다시 기로에 섰는데, 이번에는 한 매니지먼트사가 그를 알아봤다. 이후 소속팀을 옮긴 그는 태권도 본연의 즐거움을 되찾았다. 다시 태권도를 즐기게 되자 성적도 따라왔다. 최근 계속해서 좋은 결과를 내면서 자신감이 붙었다. 이제는 남의 일로 여겼던 태극마크도 다시 가시권에 들어오고 있다.

그는 지난달 철원에서 열린 2022 한국실업태권도연맹회장기 전국태권도대회 남자 58㎏급에서 우승하며 3년 만에 부활의 기지개를 켰다. 2019년 유니버시아드 파견 선발전 이후 오랜만에 정상에 섰다.

과거 주니어 세계선수권 최우수선수(MVP)를 차지했을 때 수려한 외모로 주목받았던 그는 현재도 태권도 외적으로 여러 방면에서 관심을 받고 있다. 하지만 그의 우선순위는 명확하다. 선수로서 아직 날개를 못다 폈기 때문이다.

2016 세계주니어태권도선수권대회 MVP 정찬호가 다시 기지개를 켜고 있다.

◆ 화려했던 주니어, 잊지 못할 은사님

정찬호는 고등학교 진학 후 좀처럼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다. 대회에 나갔다 하면 1회전에서 탈락하기 일쑤였고, 가족들도 당연히 태권도를 그만두고 일반 학생들처럼 살아갔으면 하는 바람을 내비치기도 했다. 그가 실업계로 진학한 배경에는 태권도로 잘 풀리지 않으면, 기술을 배우겠다는 심산이 깔려있었다.

태권도를 관두려던 때 부모님과 정찬호를 설득한 건 당시 신보현 청주공고 감독이었다. 정찬호는 "신보현 감독님을 만난 게 태권도 인생의 터닝포인트다. 선생님을 만나고 확실히 달라졌다. 고2 때 갑자기 성적이 오른 건 감독님 덕이다. 이렇게 계속 선수생활하면서 국가대표를 꿈꿀 수 있는 것 역시 감독님 덕"이라고 설명했다.

신 감독은 정찬호의 부모님을 만나 "고3 주니어대표 선발전에서 우승시키겠다"고 약속했는데, 두 사제는 이를 이뤄냈다. 정찬호는 2016년 주니어세계선수권 55㎏급에서 1위를 차지하고 MVP까지 거머쥐었다. 정찬호는 "감독님께서 부모님이랑 그렇게 약속했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고 소름이 돋았다. 그때는 부담을 느끼기보다는 태권도 자체를 즐겼다. 늘 자신감 넘쳤고, 성적도 잘 나왔다"고 돌아봤다.

국제무대에서 가장 빛나는 별로 등극한 그는 대학교 진학 대신 실업팀 입단을 택했다. 2017년 국방부 대회, 협회장기 대회에서 우승했다. 2018년 한국실업태권도 최강전과 전국체전을 제패했고, 2019년 유니버시아드 대표로 선발되는 등 일반부 레벨에서도 꾸준히 호성적을 냈다.

하지만 계속해서 정식 국가대표 선발전에선 미끄러졌다. 주니어에서 가장 높은 곳을 찍고 시니어 국가대표 발탁도 금방일 것만 같았건만, 오히려 긴 슬럼프가 찾아왔다.

정찬호는 최근 소속팀을 옮긴 뒤 상승세를 타고 있다. 예전보다 힘이 좋아졌다는 평가를 받는다.

◆ 슬럼프 극복 위한 최면 "즐기자"

"고등학교 때는 순수하게 즐겼다면, 슬럼프가 길어지면서 '내가 이걸 계속 하는 게 맞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선수들은 대표팀에 가는데, 나는 최종 선발전도 못 나갔다. 다른 대회보다도 유독 선발전이 잘 안 풀렸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전까진 무조건 국가대표가 돼야겠다는 생각으로 정말 열심히 선발전을 준비했는데, 코로나가 터진 뒤로는 대회가 줄줄이 취소돼 무기력해졌다."

그때 만난 게 임연정 엘나인인터내셔널 대표다. 엘나인은 태권도 선수를 주로 취급하는 스포츠 매니지먼트사로 지난해 2020 도쿄 올림픽 남자 80㎏ 이상급에서 동메달을 목에 건 인교돈(한국가스공사)과 오래 함께한 소속사로도 알려져 있다. 가시적인 성적을 내지 못했음에도 정찬호의 시원시원한 플레이스타일과 잠재력을 눈여겨봤다. 

정찬호는 "대회에 출전하면 나는 소속사 관리를 받으니까 아무래도 다른 선수들보단 환경이 좀 낫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평소에도 전문 스트레칭 업체의 지원을 받는 등 케어받고 있다"면서 "대표님께서 확실히 잔소리도 많이 하신다. 듣기 싫긴 한데, 돌아보면 다 맞는 말이다. 처음에는 '왜 나를?'이라는 생각에 못 믿었는데, 한두 번 몸소 느끼고 나니 이제는 그 모든 조언이 필요해서 하는 말이라는 걸 안다. 스스로 마인드가 달라지는 걸 느끼는 게 가장 크다"고 밝혔다.

이어 "확실히 대표님과 연락을 주고받고, 조언을 들으면 자신감과 여유가 생긴다. 현장에 같이 있지 않을 때도 조력자가 있다는 생각에 힘이 된다. 이전과 비교하면 확실히 부담이기도 한데, 최근 생각을 고쳐먹었다. 재밌게 운동해서 잘 되면 다 같이 좋은 거라고 생각하니 오히려 동기부여가 된다"고 덧붙였다.

슬럼프에 빠져있던 그의 잠재력을 알아본 매니지먼트사가 있었다. [사진=엘나인인터내셔널 제공]
슬럼프에 빠져있던 정찬호의 잠재력을 알아본 매니지먼트사가 있었다. [사진=엘나인인터내셔널 제공]

올해 소속팀을 강화군청에서 부산 수영구청으로 옮긴 것 역시 분위기 전환 효과로 이어졌다. 자율 속에 책임감을 강조하는 현 소속팀에 빠르게 녹아들면서 성적이 올라왔다. 본래 체력과 고득점을 내는 기술이 강점으로 통했는데, 웨이트 트레이닝을 통해 힘까지 붙였다는 평가다. 이번 대회 첫 경기에서 아시안게임 2연속 금메달리스트 김태훈(수원시청)을 만났는데, 2회전 초반까지 0-8로 지고 있던 걸 뒤집는 뒷심을 발휘했다.

"마인드가 달라졌다. 전에는 '이길 수 있을까?' 하고 스스로 의심했다. 이제는 경기를 즐기려고 한다. 최근 두 대회 '즐겁지 않더라도 그냥 웃어보자'는 마음으로 나섰다. 경기 중에도 그냥 웃고, 일부러 웃기도 했다. 전에는 늘 전투적으로만 임했다면, 현재의 감독님은 좀 더 자율적으로 뛸 수 있게끔 만들어주는 스타일인데 잘 맞는 것 같다. 그렇게 즐겼던 최근 두 대회 좋은 성적이 나왔다"고 부연했다.

그 흔한 롤 모델 하나 없다고 말하는 것도 흥미롭다. "나는 태권도가 재밌어서 한다. 누구를 롤 모델 삼고 이 사람처럼 돼야지 하는 마음보다는 태권도가 재밌어서 해왔다. 미션보다는 놀이랄까"라면서 웃어보였다. 노력하는 자는 즐기는 자를 따라올 수 없다고 했다. 바닥을 찍고 다시 상승가도에 몸을 실은 그의 자기 최면이 인상적이다.

수려한 외모로 모델 일을 제안받기도 했다는 정찬호. 그래도 우선순위는 명확하다. 본업인 태권도 선수로서 성과를 내는 게 먼저라고 했다.

◆ "모델 제안이요? 본업이 먼저입니다"

주니어대표로 반짝 빛났던 시절 그는 배우 이민호를 연상시키는 외모로도 이목을 끌었다. 당시 기사들을 살펴보면 '스타성'이라는 단어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2018년 전국체전, 2019년 유니버시아드 선발전 우승 이후 코로나 팬데믹까지 겹치는 통에 최근 이렇다 할 입상이 없었지만 게티이미지코리아, 유니버셜뮤직 등에서 프로젝트를 함께 하자고 제안할 만큼 상업적으로도 잠재력을 인정받았다. 

하지만 우선 태권도라는 '줄기'를 곧고 높게 뻗치게 하는 게 먼저다. 그 모든 '가지'는 그 이후 고려해보겠다는 입장이다. 

정찬호는 "아직 선수로서 만족할 수 없다. 태권도를 질릴 때까지 하고 싶다. 선수로 질릴 때까지 하고난 뒤에 다른 일을 하고 싶다. 미래가 어떻게 될 지는 모르지만 다른 분야에서 일 해보고 싶은 마음은 있다"면서 "선수로서 내리막길을 지나 다시 정점으로 올라가는 기대감, 자신감이 붙은 상황이다. 다음 대회를 뛰어봐야 알겠지만, 지금의 흐름을 살린다면 태극마크도 달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라며 결의를 감추지 않았다.

엘나인이 정찬호와 계약한 이유 역시 다른 요소보다는 경기력이 뛰어나다는 판단에서였다. 임연정 대표는 "(정)찬호가 스타성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경기를 잘 한다. 태권도 관계자들 사이에서 경기를 재밌게 하는 선수로 유명하다. 소위 말하는 '닭싸움'이 아니고 시원시원한 플레이로 이목을 집중시키는 스타일이다. 우선 태권도에서 괄목할만한 성과를 내는 게 우선"이라고 강조했다.

정찬호 역시 "(다른 방면의 활동도) 하고는 싶다. 단 전제조건이 있다. 본업에서 스스로 만족할 만한 성과를 낸 이후"라면서 "단기적으로도 장기적으로 목표는 국가대표다. 꾸준히 컨디션 잘 관리해 좋은 성적을 내고, 내년 국가대표가 돼 세계선수권에 나가고 싶다. 태권도 재밌게 잘하고 있으니 만족할만한 성적을 낸 뒤에는 다른 활동 제안이 들어와도 긍정적으로 검토해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고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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