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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7 보스톤', 개 한 마리까지 살려낸 실화 고증 [SQ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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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7 보스톤', 개 한 마리까지 살려낸 실화 고증 [SQ현장]
  • 나혜인 기자
  • 승인 2023.09.12 0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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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양동=스포츠Q(큐) 글 나혜인·사진 손힘찬] '1947 보스톤'이 손기정과 남승룡, 서윤복을 되살려 냈다.

영화 '1947 보스톤'(감독 강제규)이 11일 오후 서울 광진구 자양동 롯데시네마 건대입구에서 언론배급 시사회 및 기자간담회를 진행했다. 기자간담회는 강제규 감독과 배우 하정우, 임시완, 김상호가 참석해 이야기를 나눴다.

1947 보스톤은 대한민국 체육계를 빛낸 마라톤 선수 손기정(하정우 분), 남승룡(배성우 분), 서윤복(임시완 분)의 이야기를 그린다. 

김상호(왼쪽부터), 강제규 감독, 임시완, 하정우.

◆ 손기정·서윤복·남승룡의 역사

1936년 베를린 올림픽 출전 기회를 얻었지만, 일장기를 가슴에 달고 뛰어야 했던 손기정과 남승룡. 당시 손기정이 금메달, 남승룡이 동메달이라는 값진 결과를 얻었음에도 슬픔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일제강점기로 인해 상의 명예가 일본에게 돌아갔기 때문. 2시간 29분 19초, 올림픽 신기록과 동양인 최초 우승을 따낸 손기정은 그저 부끄러움에 고개를 떨굴 뿐이었다. 이후 손기정은 월계수 묘목으로 일장기를 가렸다는 이유로 다시는 마라톤 선수로 활동하지 않겠다는 각서를 썼다.

이로부터 10년 뒤인 1945년, 일본이 항복을 선언하며 손기정에게 새로운 기회가 생겼다. 이에 손기정은 자신의 뒤를 이을 마라토너를 찾기 시작했다. 베를린의 영광과 아픔을 함께했던 남승룡의 든든한 지지도 더해졌다. 손기정이 선택한 유망주는 서윤복. 3남 3녀 집안의 막내로 태어난 서윤복은 어려운 가정 형편 속에서도 '조국의 희망' 손기정을 꿈꾼 청년이었다.

故 손기정(왼쪽), 故 서윤복.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故 손기정(왼쪽), 故 서윤복.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이들은 1947년 보스턴 마라톤 대회를 목표로 끊임없이 달렸다. 그러나 곧바로 벽에 부딪혔다. 아직 정부가 수립되지 않아 미군에 의탁해 여행증명서를 발급받아야 했던 것. 우여곡절 끝에 돈을 마련한 손기정, 남승룡, 서윤복은 보스턴으로 향했다. 보스턴 마라톤 대회의 한국 대표는 24살의 청년 서윤복이었다. 손기정은 코치로 나섰고 남승룡은 36살의 노장임에도 불구하고 서윤복의 페이스 메이커로 함께했다.

이들의 가슴에는 일장기 대신 태극기가 달렸다. 'KOREA'라는 글씨도 새겨졌다. 생소한 이름의 참가국에 기대를 거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출발을 알리는 총소리와 함께 서윤복, 남승룡이 세계 각국의 마라토너들과 42.195km를 달리기 시작했다. 남승룡의 뒤를 따라 페이스를 조절하던 서윤복이 28km 지점을 지났을 무렵, 제자를 힘껏 응원하는 손기정의 목소리가 들렸다.

선두 그룹에 속한 서윤복은 남은 거리를 달리던 중 갑작스럽게 뛰어든 개에게 습격 당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고 다시 일어나 달렸고, 2km 오르막길 코스에서 경쟁자를 제치고 1등을 차지했다. 최종 기록은 2시간 25분 39초, 세계 신기록이었다. 뒤 따라 달려오던 남승룡은 12위로 들어왔다. 조국 해방 이후 맛본 첫 승리였다.

영화 ‘1947 보스톤’ 스틸컷.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영화 ‘1947 보스톤’ 스틸컷.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 실존 인물을 향한 존경, 고증으로 풀다

1947 보스톤은 실화 고증에 많은 공을 들인 작품이다. 손기정, 남승룡, 서윤복이 마라톤 대회에 출전하기 전까지의 과정부터 마라톤 대회에서 벌어진 사건들까지 고스란히 담아낸다. 서윤복이 힘차게 달리던 순간 등장한 개는 쫄깃한 긴장감을 더한다.

극적인 이야기를 위해 달라진 부분도 존재한다. 영화 속 서윤복이 홀어머니를 모시는 외동 아들로 그려진다는 점, 마라톤 은퇴 이후 은행원으로 일했던 손기정이 영화에서는 일자리 없이 후회 속에 살아간다는 점, 마라톤 경기 도중 서윤복을 응원한 손기정의 시점이 다르게 그려진다는 점 등이다.

강제규 감독이 가장 집중한 부분은 실존 인물과의 싱크로율이었다. 서윤복의 체격과 가장 비슷한 배우를 찾아 나섰고, 배역은 임시완에게 돌아갔다.

강제규 감독은 "관객들이 인물에 동화되기 위해서는 높은 일치율이 중요하다. 내적으로도 중요하지만 외적인 신체도 많은 부분이 닮아야 했다"며 "보통 동양인 선수들은 허리가 긴데, 서윤복 선수는 하체가 길다. 체격은 아담해도 마라토너로서 유리한 신체 조건을 갖고 있다. 근육 느낌도 말 근육 같다. 선천적으로 타고난 근육형 마라토너다. 임시완 배우가 몸을 만들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지만, 기본적으로 그런 성향을 갖고 있는 몸이었다"고 캐스팅 이유를 밝혔다.

임시완.
임시완.

임시완은 "실존 인물에게 누를 끼치지 않게 책임의식을 갖고 임했다"고 알렸다. 연기를 하든 동안 그는 태극 마크를 단 국가 대표였다. 전문적인 달리기를 선보이기 위해 2~3달 전부터 마라톤 훈련을 이어갔으며, 외형을 완성하기 위해 운동과 닭가슴살샐러드 식단을 병행해 체지방률 6%를 달성했다. 촬영 도중 근육이 꺼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컷마다 운동을 하면서 근육의 팽창감을 유지하기도 했다.

이를 모두 지켜본 하정우는 "시완이가 정말 많이 노력했다. 서윤복 선생님 역할을 소화하기 위해 시완이가 준비했던 시간을 지켜보면서 자연스럽게 감정이 올라왔다. 진심으로 응원해 주고 싶었다"며 "오늘 완성본을 처음 봤는데, 시완이가 너무나 훌륭하게 임해줘서 서윤복 선생님이 좋아해 주시지 않을까 생각했다"고 칭찬했다.

영화 ‘1947 보스톤’ 스틸컷.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영화 ‘1947 보스톤’ 스틸컷.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하정우는 손기정의 마음을 헤아리며 촬영했다. 그는 "연기, 행동의 모든 시작점은 손기정 선생님이었다"며 "매 테이크 선생님은 어떤 마음이셨을까 생각하며 임했다. 그런 마음이 하나하나 쌓이다 보니까 프롤로그에 등장한 베를린 시상대 장면에서 쉽게 발이 떨어지지 않더라. 영화 세트가 아니라 실제 체험하는 느낌이 들었다. 그동안 촬영하면서 느끼지 못한 엄숙함도 느꼈다"고 전했다.

3인의 보스턴 행을 도운 실제 교민 백남용은 극중 백남현으로 등장한다. 백남현 역을 맡은 김상호는 "자료가 많이 없었다"며 "대본을 보고 느낀 매력은 맹목적으로 이들을 돕지 않았다는 부분이었다. 그 시대에 살았던 개인은 어땠을까 상상했다. 선생님에 대한 명예가 잘못되지는 않았으면 한다. 희화적으로 표현한 것은 전적으로 저의 입장"이라고 설명했다. 

강제규 감독.

◆ 실화 기반 장르, 왜 계속돼야 하나

1947 보스톤은 '태극기 휘날리며(2004)', '마이웨이(2011)' 등 역사 기반 영화로 한국영화사를 이끈 강제규 감독의 또 다른 도전이다. 최근 '교섭', '비공식작전' 등 실화 기반 영화들이 줄줄이 흥행 참패를 맛본 상황. 이에 1947 보스톤을 바라보는 시선에도 우려가 섞였다.

강제규 감독은 역사, 실화 기반의 이야기를 하는 이유에 대해 "'태극기 휘날리며'를 하고 나서 SF 장르가 너무 하고 싶어서 준비하다 무산됐다. 미래를 표현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고민했다. 결국은 우리가 살아왔 과거의 모습을 잘 들여다 보는 일이 아닐까"라며 "그러다 보니 과거에 있던 소중한 발자취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답했다.

이어 "대학 시절 '불의 전차(1981)'를 보고 달리기, 마라톤의 매력에 흠뻑 빠져 달리기 영화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어 자연스럽게 손기정, 서윤복 선생님에게 관심을 갖게 됐다. 그 긴 시간이 쌓여 이번 작품을 선보이게 된 것"이라며 "장비와 도구 없이 42.195km라는 긴 터널을 갈려가는 모든 동작, 느낌 등. 인간의 극한에 도전하고 끊임없이 살아가는 도전이라는 측면이 열정에 가장 걸맞지 않을까"라고 소재 선택 이유를 덧붙였다.

끝으로 강제규 감독은 "최근 들어 과거는 고리타분하고 재미없는 것 같다는 흐름이 커진 것 같다. 현재를 살아가는 것도 힘들고, 지금 할 이야기도 많은데 굳이 과거를 들춰 볼 필요가 있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역사 속에는 소중한 이야기, 훌륭한 분들이 많다"며 "그 삶을 통해 우리가 잘 살아가고 있나, 바른 길을 가고 있나 점검할 수 있다. 이 영화가 젊은 관객들에게 '과거를 돌아보는 것이 살아갈 힘과 용기를 주는 구나'라는 생각을 갖게 해줬으면 좋겠다"고 바람을 드러냈다.

1947 보스톤은 오는 27일 개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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