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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방지축 어리둥절, 송강호는 못말려 '거미집' [SQ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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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방지축 어리둥절, 송강호는 못말려 '거미집' [SQ현장]
  • 나혜인 기자
  • 승인 2023.09.15 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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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스포츠Q(큐) 나혜인 기자] 주어진 시간은 단 이틀. 세트장은 다음 영화를 위해 철거해야 하고, 카메라는 다른 영화를 위해 넘겨줘야 한다. 배우들도 의리를 내세워 겨우겨우 빼왔다. 설상가상 안기부는 변경된 시나리오가 체제에 반항하고 미풍양속을 해친다고 지적한다. '거미집' 걸작 만들기 대작전은 무사히 끝날 수 있을까.

영화 '거미집'(감독 김지운)이 14일 오후 서울시 강남구 역삼동 메가박스 코엑스에서 기자간담회 및 쇼케이스를 진행했다. 이날 현장에는 연출을 맡은 김지운 감독을 비롯해 배우 송강호, 임수정, 오정세, 전여빈, 정수정, 박정수, 장영남이 참석해 이야기를 나눴다.

거미집은 1970년대 다 찍은 영화 '거미집'의 결말만 다시 찍으면 걸작이 될 거라 믿는 김감독(송강호 분)이 검열, 바뀐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는 배우와 제작자 등 미치기 일보 직전의 악조건 속에서 촬영을 밀어붙이며 벌어지는 일들을 그린다. 다 찍은 영화를 다시 찍는 것도 고역인데 영화 밖 상황도 만만치 않다. 그럼에도 김감독은 스승인 신감독(정우성 분)의 그늘에서 벗어나기 위해 이 일을 치뤄야만 한다. 결말만 바꾸면 걸작이 되리라는 굳은 믿음에 제작사, 스태프, 배우도 일단 '믿어는' 본다.

영화 '거미집' 스틸컷. [사진=바른손이앤에이 제공]
영화 '거미집' 스틸컷. [사진=바른손이앤에이 제공]

송강호는 김감독이 '결말 바꾸기'에 대해 "김감독의 개인적인 욕망, 욕심으로 배우들을 다시 불러 결말을 바꾸기 위해 촬영한다. 이를 통해 좌충우돌을 겪게 되고 수많은 과정을 거치면서 결말을 완성하는데, 영화 속 영화에 나오는 배우들도 각자의 욕망이 보인다. 서로의 욕망이 얽히고 점철된다. 결국 욕망의 카르텔에 빠진 사람들의 이야기"아려 "정답도 없다. 그래서 거미집을 다 찍은 뒤 김감독의 표정은 보는 사람에 따라 흡족한 모습일 수도 있지만, 아쉬움과 앞으로의 도전을 향한 표정일 수 있다. 두 번 봐달라는 말씀은 못 드리지만, 저는 볼 때마다 달라보였다. 여러가지 지독한 메타포가 가득한 영화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영화 속 거미집은 결말 변경과 함께 치정멜로에서 여성 캐릭터의 욕망이 폭발하는 스릴러로 변모한다. 김지운 감독은 "김감독이 이미 만들어 놓은 거미집은 가부장적인 집안에서 헌신적인 현모양처를 다룬다. 김감독은 강렬한 이야기를 못 만든다는 비판을 듣고 다 찍은 영화를 적극적이고 투쟁적인 여성의 욕망이 강렬하게 그려지는 영화로 바꾼다"며 "뻔한 것을 뒤집고 새로운 인물상, 영화적 비전을 제시하며 동시에 자신의 세계도 뒤집어 보고 끌어내려는 김감독의 욕망이 돋보인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번 영화가 잘 되면 영화 속 영화 거미집도 장편으로 만들어 볼까 생각 중이다. 흥미로운 지점이 많다"고 욕심을 드러냈다. 김감독의 욕망이 김지운 감독에게 새로운 욕망을 던져준 셈이다.

이번 영화는 카메라 뒤 감독이 카메라 앞으로 나오는 영화인 만큼 김지운 감독이 투영된 여러 장면을 엿볼 수 있었다. 김감독과 신감독의 입을 빌려 김지운 감독이 생각하는 영화의 의미를 듣는 것도 영화적 재미다. 김지운 감독은 "현장에서 느꼈던 감정을 김감독의 입을 통해서 말했다.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2008)' 때까지만 해도 저는 배우들 입장에서 혹독한 고생을 시키는 감독으로 유명했다. 질량 보존의 법칙을 믿었던 것 같다. 어렵게 찍었을 때의 에너지들이 온전히 화면에 담긴다고 생각했던 사람"이라며 "최근 '반칙왕(2000)', '장화, 홍련(2003)', '달콤한 인생(2005)'을 리마스터링 하면서 10~20년 전의 저를 다시 봤는데, 정말 혹독하게 찍어댔구나 느꼈다. 오랜만에 본 영화를 통해서 그때 느꼈던 감정들과 쏟아낸 에너지가 떠올랐다. 이를 김감독을 통해 이야기했다"고 말했다.

영화 '거미집' 스틸컷. [사진=바른손이앤에이 제공]
영화 '거미집' 스틸컷. [사진=바른손이앤에이 제공]

이것이 가장 잘 드러나는 장면이 김감독과 호세(오정세 분)의 대화다. 김감독은 혼란스러운 상황으로부터 도망쳐 숨어 있는 호세와 대화하며 "나만 좋으려고 찍는 거냐. 배우도 진짜 연기를 해야 큰 스크린 앞에서 부끄럽지 않은 것 아니냐"고 호소한다. 이는 실제로 김지운 감독이 배우들에게 연기 디렉션을 주며 떠올렸던 생각이다.

김지운 감독은 "'놈놈놈' 때 폭발신이 있는데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과한 폭발이 일어났다. 모두가 폭발의 불씨를 끄러 달려갔는데 저만 촬영감독이 잘 찍었는지 보러 달려갔다. 순간적으로 이게 광기인가 싶더라. 그때는 정말 치열하고 집요하고 열정적이었다. 누가 보면 광기라고 느껴질 정도로 치열하게 찍은 것 같다. 어렵게 찍을 수록 영화에 에너지가 서려있다는 생각을 했다. 남들은 모를 수 있지만 저는 아니까. 그것이 저의 힘이 됐고 영화적 믿음이 됐다"고 회상했다.

김감독의 욕망은 '쁠랑 세깡스'라는 단어로 표현된다. 쁠랑 세깡스는 한 신을 카메라 컷 없이 찍는 영화 기법으로, 신 안의 장면을 길게 찍는 '롱 테이크'와 달리 신 전체를 한 번에 찍어야 한다. 김감독은 영화의 클라이막스 부분을 쁠랑 세깡스로 찍으려 부단히 노력한다.

김지운 감독은 "김감독은 평생 이류 감독에서 탈피하고 싶어 했다. 이번 영화에서 감독으로서의 비전을 담지 못하면 평생 이류로 남을 것 같은 강박에 시달린다. 쁠랑 세깡스는 영화적 맥거핀이라고 생각한다. 히치콕 감독도 잘 쓰는 기법이다. 이 기법을 쫓아다가 보면 다른 의미를 찾게 된다"며 "김감독은 쁠랑 세깡스를 해야 예술적 감독으로서 야심을 찍을 수 있다고 강조한다. 동시에 영화 전반에 걸쳐 각자 이해와 욕망이 충돌한 인물들이 그 신을 실현하기 위해 일사분란하게 움직인다. 영화 속에서 충돌했던 인물들이 합심해 성취하는 과정이 소중하고 감동스러웠다. 이것이 영화를 만들 때 느끼는 과정이 아닌가 싶어서 영화에 넣었다"고 전했다.

영화 '거미집' 스틸컷. [사진=바른손이앤에이 제공]
영화 '거미집' 스틸컷. [사진=바른손이앤에이 제공]

거미집이 1970년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점도 다양한 이야기 거리를 만들어낸다. 김지운 감독은 "김감독을 통해 예술가의 초상을 만들려고 했다. 팬데믹 이후 영화가 멈추고 한국영화의 위축과 위기가 왔을 때 많은 영화인들이 영화에 대해 재정립하는 시간을 갖지 않았나 싶다. 영화는 무엇이고 어떤 의미인지 되물어 보는 순간이 거미집에 담겼다"며 "어떻게 하면 한국영화의 돌파구, 제2의, 제3의 르네상스, 새로운 영화를 탄생시킬 수 있을까 고민했다. 1970년대 또한 한국영화의 침체기였다. 검열 문제로 문화 전반이 침체기였다. 그 당시 감독들이 열약한 시대를 어떻게 돌파하고 꿈과 비전을 잃지 않았는지. 2000년대에 또 한 번의 르네상스를 어떻게 가져왔는지 고민했다"고 밝혔다.

극중 중견 배우로 등장하는 박정수는 실제로 1970년대 촬영 현장을 경험했던 배우다. 박정수는 "당시 영화 작업은 안했지만 드라마만 해도 안기부가 촬영 현장에 나와서 검열했다. 한창 북한과의 싸움이 있었딘 시대였다"고 알렸다. 이에 김지운 감독은 "이 작품이 현 시대의 정권을 이야기하는 작품은 아니다. 당시 시대에 대한 풍자를 전달하려고 했기 때문에 현재와는 관련이 없다고 본다. 그 당시 대중예술인의 검열은 힘든 부분, 억압 장치였고 이를 소재로 역경과 난관을 극복하고 자기 꿈을 실현시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김지운 감독은 영화를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에 비유했다. 그는 "영화를 만들다 보면 스토리를 짜고 중심 주제를 강조하는 과정에서 몇 번이나 이런 영화인가, 저런 영화인가 하고 바꿀 때가 있다. 이번 영화를 다 만들고 나서 또렷하게 남는 것은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을 이야기하는 영화구나 였다"며 "김감독의 인생을 확장해서 본다면 모순과 불합리의 세계에 살아가면서 끊임없이 난관과 역경에 부딪힌다. 꺾이지 않는 마음으로 끝까지 꿈을 이루는 사람이 시사하는 바가 있다"고 설명했다. 

영화 '거미집' 스틸컷. [사진=바른손이앤에이 제공]
영화 '거미집' 스틸컷. [사진=바른손이앤에이 제공]

거미집은 코미디 요소가 강한 영화다. 배우들의 티키타카에서 오는 유머에 극장 전체가 웃음으로 가득 차기도. 또한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거미집만 보여주는 것이 아닌 영화 속 거미집도 완성된 형태로 선사한다는 점이 매력이다. 김지운 감독과 오정세는 "하나의 티켓으로 두 개의 영화를 볼 수 있다"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다양한 세계관도 엇갈린다. 놈놈놈의 송강호와 정우성은 스승과 제자로 재회하고 오정세와 염혜란은 인기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와 같이 부부로 다시 만난다. 영화와 드라마를 좋아하는 관객들에겐 유쾌한 장면이 될 것. 송강호는 "정우성 씨는 이번에 최고의 연기를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당시 정우성 씨가 다른 영화를 촬영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먼 지역을 한달음에 달려와 열정적으로 촬영했다. 개인적으로 너무 고맙기도 했고 감동적이었다. '밀정' 때는 이병헌 씨가 그런 역할을 해줬다. 신세를 갚아야 할 것 같아서 기회가 있다면 두 분의 영화에 출연하고 싶다"고 감사를 표현했다.

오정세는 "염혜란 씨가 출연해 주셔서 너무나 감사하고 든든했다. 마지막 장면에서 나름대로 아주 작은 성장, 참회, 뉘우침을 안고 앉아 있는데 염혜란 씨가 옆에 있음으로서 그런 부분이 더욱 풍성해진 것 같다"고 말했다.

거미집은 오는 27일 개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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