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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부작 드라마·5시간 연극·3시간 영화, 시대 거스른 흥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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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부작 드라마·5시간 연극·3시간 영화, 시대 거스른 흥행
  • 나혜인 기자
  • 승인 2023.09.22 17: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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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Q(큐) 나혜인 기자] 영상 플랫폼 틱톡의 등장으로 급부상한 숏폼(1분 이하 영상)은 시대를 대표하는 수단이 됐다. 틱톡에 이어 유튜브, 인스타그램도 쇼츠, 릴스 등 다양한 이름의 숏폼 개발에 나섰고 셀러비, 닷슬래시대시 등 리워드형 플랫폼도 출현했다. 지역자치단체와 기업이 숏폼 마케팅을 선택하자 숏폼 제작을 전문적으로 교육하는 기관과 마케팅 회사도 대거 설립됐다.

숏폼 인기에 발맞춰 K팝 음악들도 2분 30초 내외로 대폭 줄었다. 틱톡, 쇼츠, 릴스를 통해 국내외 차트 순위가 결정되는 사례가 늘면서 음악 길이는 점점 짧아지는 추세다. 드라마는 온라인 동영상 스트리밍 플랫폼(OTT) 등장과 함께 8부작 이하의 짧은 호흡이 늘었다. 짧으면 짧을수록 대중에게 선택받기 쉬운 오늘이다.

이 가운데 시대 흐름을 거부하는 이들이 나타났다. 디즈니+ 오리지널 시리즈 '무빙'과 MBC 금토드라마 '연인'은 20부작의 긴 이야기를 선보였고,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오펜하이머'는 3시간, 국립극단 신작 '이 불안한 집'은 5시간에 달했다.

[사진=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제공]
[사진=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제공]

이들은 시대 역행이라는 시장 우려를 딛고 흥행에 성공하며 '점차 짧아지는 대중의 집중력' 분석을 뒤집는다. 디즈니+의 플랫폼 경쟁력을 높인 '무빙'이 대표적이다. 강풀 작가의 웹툰을 원작으로 한 무빙은 디즈니+ 역대 국내 서비스작 중 공개 첫 주 시청 시간 1위, 공개 이후 5주 연속 국내 OTT 통합 랭킹 1위(키노라이츠 제공)를 지킨 것은 물론, 디즈니+ TV쇼 월드와이드 부문(플릭스패트롤 제공)에서는 한국을 비롯해 홍콩, 싱가포르, 대만 등에서 1위를 달성하며 세계적인 인기를 자랑했다. 

특히 1~7회차 동시 공개 후 매주 수요일 2회씩 공개라는 다소 위험한 일정을 택했음에도 마지막 회차가 공개된 지난 20일까지 꾸준한 화제성을 이어왔다.

오펜하이머는 극장가 어려움 속에서도 314만 관객을 모으며 2023년 국내 박스오피스 흥행 톱10에 들었다. 월드와이드 흥행 수익은 1조원을 넘어섰으며 '바비'와 '슈퍼마리오 브러더스 무비'에 이어 올해 개봉한 할리우드 영화 중 3번째로 큰 흥행 수익을 얻었다.

연극도 국립극단을 필두로 '롱 콘텐츠' 흥행이 이어지고 있다. 배우 정경호의 첫 연극 작품으로 화제를 모은 '엔젤스 인 아메리카'는 2021년 공연된 '파트 원'(250분), 2022년 공연된 '파트 투'(290분) 도합 540분(9시간)을 선보였다. 당시 호평과 함께 전 좌석 매진을 자랑한 바 있다. 올해는 숏폼 급부상 이후 단일 연극 최장 시간인 300분(5시간) 공연이 관객과 만나고 있다. '5시간 연극'으로 주목받은 '이 불안한 집'은 첫 공연 이후 전 회차 예매율 80% 이상을 기록했다. 

연극 ‘이 불안한 집’ 공연 사진. [사진=국립극단 제공]
연극 ‘이 불안한 집’ 공연 사진. [사진=국립극단 제공]

◆ 시대 역행? '이야기꾼'의 고집

"책꽂이에 꽂히는 작품을 만들고 싶어요. 언젠가 시대에 뒤처지더라도 줄거리를 쓰는 사람이 아니라 이야기를 쓰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강풀)

긴 호흡을 선택하는 이유는 결국 '이야기'다. '무빙' 강풀 작가는 최근 진행한 스포츠Q와의 인터뷰에서 "깊게 파려면 넓게 팔 수밖에 없더라. 앞부분이 지루하고 길게 가더라도 각 인물 서사를 완성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강풀 작가는 제작사가 제안한 16부작 드라마를 20부작으로 늘렸다.

이어 "대중은 어느 순간부터 더이상 서사에 관심이 없어진 것 같다. 이야기가 조금만 늘어져도 스킵하고 유튜브 요약본을 본다. 서사보다 줄거리에 더 관심이 많아졌다"며 "그럼에도 저는 (서사를) 지키고 싶다. 이야기 작가로서, 만화가로서, 극본가로서 지킬 수 있는 것은 서사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디즈니+ ‘무빙’ 스틸컷. [사진=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제공]
디즈니+ ‘무빙’ 스틸컷. [사진=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제공]

'이 불안한 집'을 연출한 김정은 앞선 간담회를 통해 "대본을 처음 받았을 때 전율이 왔다. 수원에서 서울로 넘어오는 2시간 동안 대본을 다 읽었다"고 이야기의 힘을 강조한 바 있다. 배우들 역시 긴 러닝타임의 고충을 뛰어넘는 이야기에 극찬을 보냈다.

플랫폼 운영자들도 시대 유행이 아닌 '질적 향상'을 좇고 있다. 테드 서랜도스 넷플릭스 공동대표는 지난 6월 열린 한국 간담회에서 "젊은 이용자가 숏폼만 보는 것은 아니"라며 '오징어게임', '웬즈데이', '기묘한 이야기' 성공 사례를 예시로 들었다. 총 9부작인 오징어게임의 4주간 시청 지속 시간은 무려 16억5045만 시간이다.

넷플릭스의 특징은 전 회차 동시 공개로, 드라마 공개와 함께 모든 회차를 연속해서 관람하는 시청자 성향이 우세하다. 콘텐츠 회차당 러닝타임은 30분~1시간, 9부작 작품을 한 번에 몰아볼 경우 9시간 가까이 소요된다.

테드 서랜도스는 "결국 이용자가 원하는 것은 좋은 스토리"라며 "숏폼을 통해 순간적인 즐거움을 느낄 수 있지만 넷플릭스는 조금 더 프로페셔널한 스토리텔링을 원한다. 좋은 이야기가 있다면 시청자는 아무리 콘텐츠 시간이 길어도 자리에 앉아 본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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