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Q(큐) 김진수 기자] “천위페이(중국) 선수한테 제가 7패까지 해봤어요. 한 번도 못 이길 선수라고 생각했죠.”
지난 3월 안세영이 tvN 예능프로그램 ‘유퀴즈 온더 블록’에 출연해 한 말이다. 이제 안세영(21·삼성생명)을 아는 웬만한 배드민턴 팬은 천위페이도 안다. 둘의 대결이 부각됐기 때문이다.
안세영은 천위페이의 천적이었다. 물론 그건 지난해까지의 얘기다. 지난해 7월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열린 2022 말레이시아 마스터즈 배드민턴선수권대회 여자 단식 결승에서 천위페이를 ‘7전 8기’ 끝에 눌렀다. 1승은 늦었지만 그 뒤로는 전세가 역전됐다. 그 뒤로는 안세영이 천위페이를 더 많이 이겼다.
실력도 쑥쑥 올랐다. 올해 3월 전영오픈과 지난달 세계선수권에서 모두 정상을 거머쥐었다. 전영오픈은 1996년 '셔틀콕의 여왕' 방수현(51) 이후 27년 만. 세계선수권대회 정상은 안세영이 한국 배드민턴 최초다.
안세영은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 전까지 단식 경기에서 올해 출전한 13번의 대회에서 9번이나 우승을 쓸었다. 2위가 2번, 3위가 1번이다. 1번을 제외하곤 모두 시상대에 오른 것.
세계랭킹 4위로 2023년을 시작했지만 1월말 세계랭킹 2위로 올라섰다. 지난달 첫째 주 마침내 1위로 등극했다. 이후 10주 연속 정상을 지키고 있다.
그리고 모두의 기대대로 안세영은 아시안게임에서도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천적도, 갑작스럽게 찾아온 부상도 이겨낸 그야말로 기적 같은 경기였다.
안세영은 7일 중국 저장성 항저우 빈장체육관에서 열린 배드민턴 단식 여자 결승전에서 천위페이를 2-1(21-18 17-21 21-8)로 이겼다.
이로써 천위페이와의 상대 전적은 8승 10패. 하지만 올해는 9번 만나 7승 2패로 안세영이 압도적이다.
안세영은 광주체중 3학년이던 2017년 12월 국가대표 선발전을 최연소로 통과해 국가대표에 선정됐다. 2018년 세계여자단체선수권대회에서 4경기 전승으로 대표팀 동메달 획득에 힘을 보태는 등 한국 배드민턴의 미래로 성장했다.
하지만 생애 첫 아시안게임 출전이었던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대회 단식 32강에선 발목이 잡혔다. 천위페이에 져 탈락했던 것. 이번에 그 아픔을 제대로 갚았다. 안세영은 이번 대회에서 단체전 금메달까지 더해 2관왕에 올랐다.
1994년 히로시마 대회 여자 단식에서 금메달을 목에 건 방수현 이후 29년 만에 이 종목에서 정상에 올랐다.
안세영의 나이는 이제 스물한 살. 아직 올림픽 정상이라는 목표가 남아있다. 그는 2020 도쿄올림픽에선 8강에서 탈락했다. 하지만 그는 이미 전설의 길을 걷고 있다.
특히 이날 결승전에선 예상치 못한 부상으로 위기에 빠졌다. 1세트 18-17로 앞선 상황에서 갑작스럽게 무릎 부상이 찾아왔다. 테이핑하고 순간순간 고통을 참아내며 경기에 임했다. 1세트를 따내 안도했지만 2세트에는 경기력이 뚝 떨어지며 초반부터 밀렸다. 뒤늦게 쫒아갔지만 2세트를 내주고 말았다.
휴식 시간에 얼음찜질 등을 하고 다시 나선 3세트. 경기력을 회복한 안세영은 초반 5-0까지 앞섰다. 초반 흐름을 잡은 안세영은 상대 실책까지 나오면서 흐름을 잡았다. 10점 차까지 벌리면서 무난하게 이겼다. 부상이 있는 선수라곤 믿을 수 없는 실력이었다.
안세영은 금메달이 확정되는 순간 만세를 한 뒤 그대로 코트에 누웠다. 그만큼 부상이 고통이 심한 듯 했다. 하지만 이내 기쁨을 만끽하고 세리머니를 펼쳤다. 그의 얼굴에는 그제야 미소가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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