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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규 감독이 권한 '현대인 필람작' [인터뷰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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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규 감독이 권한 '현대인 필람작' [인터뷰Q]
  • 나혜인 기자
  • 승인 2023.11.12 18: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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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Q(큐) 나혜인 기자] "삶이란 건 성공과 실패로 가를 수 있는 게 아니란다. 굳이 우리의 짧은 인생에서 성공과 실패를 가르라고 한다면 우리가 사랑하는 데 얼마나 성공했느냐. 결국 그거였어. 감기 걸리지 마라."

프랑스 극작가 이방 칼베락이 2012년 발표한 희곡 '앙리 할아버지와 나'는 깐깐한 할아버지 앙리와 천진난만한 청년 콘스탄스의 세대 간 교류를 그린다. 극 말미 앙리 할아버지가 자신의 삶을 두드린 콘스탄스에게 전하는 사랑과 조언은 10여 년이 지난 지금도 많은 관객의 가슴을 울리고 있다.

최근 서울 종로구 삼청동 한 카페에서 만난 이재규 감독은 자신이 좋아하는 구절로 앙리 할아버지의 편지를 읊었다. 이 편지에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로 현대인들에게 따스한 위로를 전한 그의 진심이 담겼다.

이재규 감독. [사진=넷플릭스 제공]
이재규 감독. [사진=넷플릭스 제공]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는 정신건강의학과 근무를 처음 하게 된 간호사 다은(박보영 분)이 정신병동 안에서 만나는 세상과 마음 시린 사람들의 다양한 이야기를 그린 넷플릭스 시리즈로, 지난 3일 공개 이후 2주째 국내 넷플릭스 톱10 정상을 지키고 있다.

전문의 자문을 통해 섬세하게 그려낸 이야기, 우울·공황·강박·망상과 같은 정신질환 고통을 직관적으로 느낄 수 있는 연출, 주조연 배우들의 열연 등이 시청자에게 큰 울림을 전하며 호평받았다.

연출을 맡은 이재규 감독은 "정신질환은 누구에게나 올 수 있다는 사회적인 공감대를 주려고 했다. 정신건강의학과에 간다고 했을 때 수군거리는 건 옳지 않은 행동이라는 것"이라고 작품 기획 의도를 전했다.

2021년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정신건강실태조사에 따르면 성인 4명 중 1명은 정신 건강 문제를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1년간 정신건강 문제를 경험한 사람은 355만명 추산, 전문가의 도움을 받은 경우는 12.1%만 해당한다. 10명 중 1명만 정신건강의학과를 찾는다는 의미다.

오리지널 드라마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 스틸컷. [사진=넷플릭스 제공]
오리지널 드라마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 스틸컷. [사진=넷플릭스 제공]

이재규 감독은 "잘살게 되면 행복 지수가 올라가는 게 당연하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경제 지수가 올라갈수록 행복 지수가 떨어지는 몇 안 되는 나라 중 하나다. 많은 분이 극단적인 상황에 노출되고 있다. 하루빨리 건강해져야 하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그가 현대인의 정신건강 문제에 이토록 큰 관심을 갖게 된 이유는 한때 자신도 우울증과 공황장애를 앓았기 때문. '다모', '베토벤 바이러스' 등으로 2000년대 K드라마 황금기를 책임지고 '지금 우리 학교는'을 통해 넷플릭스 호황기를 연 '존경받는 감독'이지만 가장 잘나가던 시기 정신적 아픔을 겪었다.

이재규 감독은 "불교 철학에 이런 말이 있다 '산이 있으면 골이 있다.' 신나고 기쁜 일이 있을 때 반대로 마음이 가라앉고 침전되는 순간이 있다. 미니 시리즈로 데뷔해 일찍 작품이 잘 됐다. 당시 정신을 못 차릴 정도로 잘 됐다. 이게 뭐지? 싶을 정도"라고 과거를 회상했다.

오리지널 드라마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 스틸컷. [사진=넷플릭스 제공]
오리지널 드라마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 스틸컷. [사진=넷플릭스 제공]

"오히려 정신적인 허탈감이 오더군요. '베토벤 바이러스'가 좋은 드라마라는 평을 받고 가족들까지 '당신이 만든 작품이 좋다'고 이야기하던 시기 우울증이 찾아왔어요. 쌓여있던 것들이 터진 게 아닐까…. 노래방에서 춤추던 다은이 갑작스럽게 감정을 터트리는 것처럼 누적되는 게 있는 것 같아요. 강둑 무너지듯 감정이 쏟아지죠."

2년간 우울증과 공황장애를 앓은 그는 "운전하다 공황이 와 앰뷸런스를 타고 간 적도 있다"고 고백했다.

정신건강의학과 내 간호사와 환자들을 중점으로 다룬 국내 드라마는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가 최초다. 정신질환의 낮은 사회 인식으로 인해 드라마 소재로 다루기 조심스러운 것이 사실이다. 이재규 감독은 "저도 예전 같았으면 '의미는 좋지만 다음에 하자'라고 했을 거다. (흥행 면에서) 불안 요소가 있는 아이템"이라고 밝혔다.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는 4년 가까이 덮어둔 기획이었다. 그 사이 '지금 우리 학교는'을 촬영한 이재규 감독은 자극적인 소재에 피로감을 느꼈고 미뤄둔 기획을 꺼내 들었다. 그는 "피가 난무하는 장면만 보다가 따뜻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니까 더 하고 싶어지더라"라고 이야기했다.

오리지널 드라마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 스틸컷. [사진=넷플릭스 제공]
오리지널 드라마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 스틸컷. [사진=넷플릭스 제공]

작품 제작을 확정한 뒤 보다 많은 시청자에게 좋은 의미를 전달하기 위해 선택한 방법은 '힙(Hip)하게'였다. 손이 잘 가지 않는 이야기를 시청자 입맛에 맞게 각색하는 노고가 들어갔다. 이재규 감독은 "소비하는 과정에서 지루하지 않고 재미있게 보면서도 감동이 있어야 했다"며 "시각화 계획을 회차마다 18개 이상 세우고 장비와 세트를 준비했다. 촬영하고도 버린 장면, 세트 등이 3~4개 정도 된다. 이야기 전달 목적에 부합하지 못할 것 같거나 관객에게 혼선을 줄 수 있는 시각화는 과감하게 버렸다"고 설명했다.

"공황 장면을 예로 들면 얼굴이 거대하게 나오거나 눈만 크게 나오는 등을 통해 사람을 위축시키는 방식들이 있었어요. 다은의 경우도 화면이 쪼개지면서 온 사방이 기억으로 변하는 장면이 있었고요. 하지만 최종 편집에서는 반영하지 않았어요."

이재규 감독은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를 "쑥개떡 같은 이야기"라고 표현했다. 화려한 음식에 비해 손은 잘 가지 않지만 막상 먹으면 질리지 않고 맛있는 이야기를 뜻한다. 

또한 '지금 우리 학교는'에 이어 두 번째 넷플릭스 시즌제 드라마 의지를 드러내며 "좋은 이야기, 필요한 이야기라는 확신이 있다. 시즌2도 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는 넷플릭스를 통해 만나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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