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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신 발레리노의 반전매력, ‘봄의 제전’ 전호진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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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신 발레리노의 반전매력, ‘봄의 제전’ 전호진 [인터뷰]
  • 용원중 기자
  • 승인 2015.05.29 11: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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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Q 글 용원중기자·사진 최대성기자] 국립발레단 발레리노 전호진(24)이 ‘교향곡 7번 & 봄의 제전’(5월29~31일·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높고 깨끗하게 도약한다.

지난해 10월 초연 이후 다시 무대에 오르는 이 작품은 네오 클래식인 우베 숄츠의 '교향곡 7번'과 글렌 테틀리의 모던발레 '봄의 제전'으로 이뤄져 있다. 19세기 악성 베토벤과 20세기 현대음악의 대표 주자 스트라빈스키의 음악을 시각화했다. 기존 클래식 발레 안무와 현격히 다른 움직임을 비롯해 빠른 호흡과 격렬한 안무로 무용수에게는 도전이자 난코스로 여겨진다.

 

‘봄의 제전’ 초연에서 제물 역을 맡아 파란을 일으킨 전호진이 올해에도 어김없이 제물로 무대를 채운다. 지난 27일 오후 예술의전당 내 국립발레단 연습동에서 리허설을 마친 그를 만났다.

“진짜 힘든 도전이었어요. 시종일관 무대에서 움직여야했던 게 가장 힘들었죠. 발레는 꼿꼿이 몸을 유지하는 가운데 조금씩 쉴 수가 있는데 모던발레인 ‘봄의 제전’은 계속 움직이며 관객에게 느낌을 전달해야 하거든요. 그러다보니 어디서 숨을 쉬고, 멈춰야할 지를 몰라서 호흡곤란에 걸릴 지경이었어요.(웃음)”

전문 무용수에게도 낯선 작품이었는데 지난해 관객들은 “남자 무용수들의 거친 숨소리에 긴장을 느꼈다” “역동적이다”고 호평했다. 그가 생각하기에도 ‘봄의 제전’은 남성의 야성적이고 강인한 면이 십분 드러난 작품이다. 특히 군무에서 원시성이 꿈틀댄다.

전호진이 맡은 제물은 처음엔 아이처럼 활발하게 등장했다가 제물로 바쳐지는 상황에 처하자 도망을 치고, 결국 제물로 바쳐지면서 분노와 고통을 드라마틱하게 표현해야 하는 캐릭터다. 특히 첫 번째 아다지오풍의 솔로 춤에선 감정표현이 잘 이뤄져야 한다.

▲ '봄의 제전'에서 제물 역을 맡아 높은 도약을 시도하는 전호진[사진=국립발레단 제공]

“거울을 보고 항상 포즈와 표정연습을 하고 있어요. 어떻게 하면 더 절절하고 강하게 표현할 수 있을까를요. 외국인 트레이너 샤샤께서 ‘끝까지 포기하지 말아라. 발 끝을 세우고 힘을 줘라’고 말씀해주시죠. 배에 힘이 풀리면 점프 동작을 할 때 공중해서 움직임이 분해돼 버리거든요.”

지난해 캐스팅 당시 화제가 됐던 이유는 무용단의 5대 등급 중 가장 아래인 코르 드 발레(군무)임에도 일약 주연으로 발탁됐기 때문이다. 제물 역 춤 스타일이 무겁고 진중해야 하는데 그의 평소 춤 스타일이 딱 들어맞아서 이뤄진 행운이다.

해맑은 소년의 얼굴을 한 전호진은 남성 무용수로서는 작은 키인 170cm이다. 180cm대 심지어 190cm대 무용수가 즐비한 요즘, 핸디캡일 수 있다. 하지만 이런 단점이 그를 무용수로 성장시키는 자양분 역할을 톡톡히 했다.

“중3 때부터 발레를 시작했는데 키가 더 이상 크지 않을지는 몰랐죠. 진로를 바꿀 생각을 하는 대신 남들보다 더 뛰고, 회전해야겠다고 결심했어요. 장신이 3cm 뛴다면 전 5~7cm를 뛰어야 비슷해지잖아요. 제가 좋아하는 발레리노 미하일 바리시니코프는 남들이 3바퀴 회전할 때 똑같은 박자에 5바퀴를 돌거든요. 잘 하면서도 안정적이죠.”

 

똑같은 실력임에도 키로 인해 캐스팅에서 탈락되는 경우도 있었다. 군무를 할 때 선이 맞춰져야 하는데 장신의 무용수들로 인해 대열에 끼지 못하기도 했다. 스트레스가 몰려왔으나 부단한 노력으로 극복하려 했다. 이런 노력의 결과 전호진은 도약과 회전이 탁월한 발레리노로 평가받는다. 최고 서전트 점프 높이는 자신의 키를 넘길 정도다.

경남 김해 출신인 전호진은 중학교 시절 발레를 좋아하던 어머니의 권유로 춤을 시작했다. 남자가 발레를 한다는 게 창피해 친구들에게조차 말도 꺼내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창원에서 ‘백조의 호수’를 보고는 발레의 매력에 푹 빠져들게 됐다. 부산예고에 진학했고, 2009년 세종대 무용 콩쿠르 금상 수상을 계기로 세종대 무용과에 진학했다. 지난 2013년 7월 국립발레단에 입단해 ‘호두까기 인형’ ‘돈키호테’ ‘백조의 호수’ ‘말괄량이 길들이기’ 군무와 솔리스트로 무대에 서오고 있다.

“클래식 발레의 남자 주인공인 왕자와 귀족청년보다 솔리스트, 캐릭터 발레에서 인정받고 싶어요. 더 많이 뛰고, 보여줄 게 많은 재밌는 작품과 캐릭터를 원하죠. ‘백조의 호수’ 광대 역할도 재밌고 ‘호두까기 인형’의 디베르티스망(줄거리와 상관없는 다양한 군무)도 해보고 싶어요. 다른 현대발레 작품들에도 관심이 많고요.”

 

휴일인 주말 저녁에도 국립발레단 연습실에 나와 춤 연습을 하거나 헬스장에서 운동에 매진하는 그는 그야말로 연습벌레다. 왜 이리 워커홀릭처럼 사느냐고 묻자 “안 되던 동작이 매일 연습을 하다보면 결국 내 것이 될 때가 있다. 그 때의 성취감이 너무 좋다”며 “누가 봐도 박수칠 수 있는 캐릭터와 잘 어울리는 무용수가 되고 싶다”고 속내를 펼쳐 보였다.

30일 무대에 오르는 젊은 발레리노의 야무진 꿈이 뙤약볕 아래 영글어가고 있다.

goolis@sportsq.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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