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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바다 '노량', 진정 무모한 전쟁이었을까? [인터뷰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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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바다 '노량', 진정 무모한 전쟁이었을까? [인터뷰Q]
  • 나혜인 기자
  • 승인 2024.01.13 17: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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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Q(큐) 나혜인 기자] 역사학자 마거릿 맥밀런은 저서 '전쟁은 인간에게 무엇인가'에서 "예술은 우리가 전쟁을 벌이고, 기억하고, 기념하는 것을 돕는다"고 말한다. 그의 말대로 제1차·제2차세계대전을 비롯해 베트남 전쟁, 프랑스 혁명 등 다양한 전쟁 역사가 예술로 기록돼 왔다. 한국영화도 마찬가지다. '태극기 휘날리며', '인천상륙작전', '남한산성' 등 다양한 방식으로 전쟁 역사를 재해석하고 기억했다.

좁디좁은 한반도 땅덩어리마저 절반으로 나눠 살아가는 대한민국은 과거도, 지금도 전쟁과 떼어놓을 수 없는 요충지다. 삼국시대 이전은 물론 고려, 조선, 근현대사까지 피로 물든 자리가 선명하다. 전쟁기념관과 포로수용소는 어린아이들이 역사를 배우는 장소가 됐고, 수도 서울의 중심에는 한반도 전쟁 역사의 주요 인물인 '충무공 이순신'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역사는 깃발을 잡은 이에 의해 새로 쓰이지만 이순신은 예외적인 인물이다. 모든 시대를 통틀어 영웅으로 칭송받았고 국민의 존경을 한 몸에 받았다. 거북선과 학익진, 마지막 전투에서 남긴 유언 "나의 죽음을 알리지 말라"는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다. 

영화 '노량: 죽음의 바다' 스틸컷.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영화 '노량: 죽음의 바다' 스틸컷.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1592년 임진왜란 발발 후 칠년전쟁을 이어오며 막강한 해전 무기 거북선을 만들고 한산도 대첩, 명량해전 등을 승리로 이끈 인물이라는 성과도 훌륭하지만 그의 진가는 '정신'에 있다. 갖은 수모에도 조선을 지키겠다는 의지를 버리지 않았고, 장군의 위치에서 누구보다 백성을 먼저 생각했다. 전쟁에 나설 때도 군사들의 목숨을 중요히 여겨 무모한 희생은 치르지 않았다. 후퇴하는 왜군을 처치하는 데 회의적인 입장이었던 명나라 진린을 말로 설득할 만큼 처세술에 능하기도 했다. 왜에겐 공포의 대상, 명나라에겐 존경의 대상이었던 진정한 장군이 바로 이순신이다.

그런 그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김한민 감독의 '이순신 3부작'은 시작부터 1761만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국내 역대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 10년간 깨지지 않은 유일무이한 기록을 세웠다. '명량'(2014)에 이어 개봉한 '한산: 용의 출현'(2022)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으로 극장 관객 수가 급감한 시기에도 726만명을 모으며 2022년 개봉 한국영화 흥행 2위를 기록했다.

"'명량'은 두려움을 용기로 전환했던 이순신을 재조명함으로써 세월호 사건으로 두려움과 좌절에 빠져있던 이들에게 용기를 준다는 의미가 있었어요. '한산'은 팬데믹 시기상 치밀한 전술로 전쟁 흐름을 바꿔놓는 이순신의 모습을 리마인딩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고요. 마지막 '노량'은 모두가 끝났다고 생각하는 전쟁의 중심에서 고독한 판단을 내리고 치열하고 집요한 전쟁을 수행해 내는 이순신의 정신을 복기해보자는 마음을 담았죠."

김한민 감독. [사진=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김한민 감독. [사진=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이순신 3부작' 마지막을 선보인 김한민 감독은 이순신의 다양한 기록을 연구하고 또 연구하며 '노량: 죽음의 바다'를 완성했다.

'노량: 죽음의 바다'는 제목에서 드러나듯 이순신의 마지막 전투 노량해전을 그린 영화다. 노량해전은 이순신이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사망과 함께 철수하는 왜군의 퇴로를 차단하고 후환을 없애려 벌인 전투다.

당시 순천왜성을 장악하고 있던 고니시 유키나가는 퇴각로를 막고 있는 이순신을 회유하기 위해 명나라 장수 유정, 진린 등과 협상하며 조선을 빠져나가려고 했다. 이에 진린은 "다 끝난 전쟁"이라며 이순신을 설득했지만 그는 왜군이 재정비 후 다시 돌아올 가능성을 모두 없애겠다는 마음을 굳혔다. 결국 고니시는 시마즈 요시히로가 이끄는 수군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고니시에게 넘어갔던 진린 또한 심각성을 깨닫고 이순신과 뜻을 함께하기로 결정, 조명 연합함대를 결성하고 출항했다.

"영화는 '이순신은 왜 그렇게 치열하고 집요하게 전쟁을 끝까지 수행하려 했을까' 이 화두에서 출발했어요. 이순신이 왜군의 항복을 받아들이지 않으려 했던 뜻에 누가 되지 않으려고 했죠. 노량해전의 치열함을 담아낸다면 흥행 확장이 아니라 작품 자체가 지닌 의미가 충분해지겠구나 싶었죠."

영화 '노량: 죽음의 바다' 스틸컷.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영화 '노량: 죽음의 바다' 스틸컷.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노량'은 노량해전에 대한 역사 기록을 기반으로 인간 이순신의 마지막을 기린다. 역사적으로 가장 중요한 전투를 담아낸 만큼 영화 장치로서의 인물 해석을 넣되 세세한 부분은 기록 위주로 담아냈다. 이순신이 총을 맞은 부위, 전사 직후 대장선을 지휘한 인물 등 의견이 분분한 기록은 '선조실록'과 '선조수정실록', '이충무공행록' 등을 조합했다.

김한민 감독은 "처음에는 이순신의 '내 죽음을 알리지 말라'를 빼려고 했다. 그것이 욕을 잘 피해 가는 방법이 아닐까, 참신하지 않을까 고민했다. 하지만 그 유언을 빼면 이순신의 진정성이 어디에서 드러나겠는가"라고 이야기했다.

"해전 장면을 설계할 땐 중간에 포기하고 싶었던 지점도 있었죠. 각본 단계에서 포기하고 싶기도 했고요. 아무리 '명량'과 '한산'의 해전 장면을 통해 관객의 공감을 이끌었다고 한들 힘든 건 그대로니까요. 그럴 때마다 노량해전을 끝까지 수행하려고 했던 이순신을 떠올렸어요. 전장 중심에 있는 이순신이라는 존재, 이 인물을 제대로 보여준다면 관객들에게도 잘 전달될 거라고 생각했죠."

영화에서 가장 눈여겨봐야 할 부분은 김한민 감독의 해석이다. 김한민 감독은 이순신이 막내아들 이면을 잃고 겪었던 정신적 고통을 섬세하게 그려냈다. 정유년 10월 14일 이면의 죽음을 알게 된 이순신은 한 달 가까이 아들의 죽음에 대한 꿈을 꾸며 피폐한 밤을 보냈다. 해당 내용은 이순신이 칠년전쟁 동안 쓴 '난중일기'에 상세히 적혔다. 이순신은 "내가 죽고 네가 사는 이치에 맞거늘 네가 죽고 내가 사니 이런 어긋난 이치가 어디 있는가. 나를 버리고 어디로 갔느냐. 내가 지은 죄로 인한 화가 너의 몸에 미쳤는가. 마음은 죽고 형상만 남아서 소리쳐 울 따름"이라며 허망한 심경을 토로했다. 

이에 김한민 감독은 '노량' 초반부 이면(여진구 분)이 죽는 악몽을 꾸는 이순신(김윤석 분)을 보여주고, 극 말미에는 이면의 환상을 보는 이순신을 보여주면서 그가 느꼈을 정신적 고통을 통감했다. 이는 영웅이 아닌, 떠나간 아들과 동료를 그리워하는 한낱 인간에 불과했던 이순신을 그려내는 가장 중요한 작업이었다.

영화 '노량: 죽음의 바다' 스틸컷.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영화 '노량: 죽음의 바다' 스틸컷.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노량해전은 전란 이후 가장 큰 대규모 전투로 기록돼 있다. 왜군은 500여 척의 배가 50여 척만 남을 정도로 전멸에 가까운 상태였고, 조명 연합군도 명나라 수군 노장 등자룡을 비롯해 이영남, 방덕룡, 고득장 등 조선 장군을 잃었다. 그중에서도 '대장별' 이순신의 전사가 가장 큰 슬픔으로 남았다. 전라도 완도의 고금도에서 충청도 아산까지 이어진 운구 행렬은 길이 닿는 곳곳마다 백성들의 통곡이 이어진 것으로 전해졌다.

역사학자들은 왜군을 격파하겠다는 이순신의 의지 덕에 일본 식민 지배를 300년 미룰 수 있었다고 분석한다. 이순신의 업적이 없었다면 조선은 일본 식민 지배의 아픔으로만 기록됐을 것이다.

김한민 감독은 "이순신의 존재감은 매우 중요하다"며 "지금 우리는 정체성의 노선을 어디로 둘지 몰라 갈등하는 시대에 살고 있지 않나. 이럴 때 가장 중요한 위치에 있으신 분이 아닌가 생각한다. 해방을 맞이하고 독립할 수 있는 중요 지점에서도 우리의 정체성을 놓치곤 했다. 이 부분이 안타깝다. 이순신의 정신을 리마인딩하고 새롭게 의미를 찾아가야 한다"고 '노량'과 '이순신 3부작'이 현세대에게 주는 메시지를 강조했다.

'노량'은 전국 영화관에서 절찬 상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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