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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챌린지 2015] (27) 천재 김행직, '최연소 1위' 넘어 '당구 대명사'가 되고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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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챌린지 2015] (27) 천재 김행직, '최연소 1위' 넘어 '당구 대명사'가 되고프다
  • 민기홍 기자
  • 승인 2015.06.12 10: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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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최연소 국내 당구랭킹 1위, 세살에 큐 잡고 10대엔 유럽서 고행

[200자 Tip!] 종목마다 천재가 있다. 당구 3쿠션에는 김행직(23·전남당구연맹)이 그렇게 불린다. 그는 지난달 국토정중앙배 전국당구선수권대회에서 우승하며 역대 최연소 국내랭킹 1위로 올라섰다. 앳된 얼굴의 왼손잡이 김행직은 최성원, 허정한, 조재호, 강동궁 등 30~40대 선수들이 주름잡던 당구계에 신선한 바람을 몰고 오며 최연소 기록을 모조리 갈아치우고 있다. 김행직이 톱랭커로 올라선 비결을 공개했다.

[인천=스포츠Q 글 민기홍·사진 이상민 기자] “14등인가? 조금 올랐으려나. 잘 몰라요. 하하.”

국내 무대를 평정했는데 자신의 세계랭킹도 모른다. 김행직은 숫자에 관심이 없다. 지난 4월 기준으로 세계캐롬당구연맹(UMB) 랭킹 14위가 맞다. 대한당구연맹이 지난 1일 발표한 국내 랭킹에서는 407점으로 허정한(경남), 조재호(서울시청), 강동궁(수원시청)을 제치고 선두에 올랐다.

▲ 김행직은 23세의 나이에 국내 무대 정상에 올랐다.

김행직은 “주위에서 항상 랭킹 이야기를 하시는데 어차피 이기거나 지거나 둘 중 하나다. 어떻게 매번 이기겠나”면서 “랭킹포인트라는 건 쌓였다가도 한 순간에 날아가는 것이다. 앞으로 질 날이 훨씬 많을테니 신경쓰지 않는다”고 말문을 열었다.

공익근무요원으로 근무하느라 훈련 시간이 1~2시간에 불구함에도 올들어 1월 아시아선수권 우승, 4월 이집트 룩소르 월드컵 준우승, 코리아오픈 우승 등 기세가 하늘을 찌르고 있는 김행직이다.

인천 계양구에 자리한 김행직 당구클럽에서 ‘천재’를 만났다. 엘리베이터를 내리는 순간 그의 화려한 수상경력이 적힌 입간판이 기자를 반갑게 맞았다. 가벼운 티셔츠 차림으로 손님에게 음료수를 내주고 있는 김행직은 당구고수가 아니라 대학생 알바생같았다.

◆ 독일에서의 2년, 당구만 바라본 고행

“대학 안간 거요? 전혀 후회하지 않아요. 저는 훌륭한 당구선수가 되고 싶었으니까요.”

김행직은 2010년 한국체육대학교의 입학 제의를 뿌리치고 매탄고를 졸업한 뒤 무작정 독일로 향했다. 통역도 없었다. 외국어에 능통한 것도 아니었다. 오로지 정상에 오르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먼 미래를 위해서는 대학 졸업장이 있어야 한다는 주위의 이야기는 들리지 않았다.

2년간 독일과 네덜란드를 오가는 강행군을 펼쳤다. 하루 10시간 이상씩 훈련에 몰두했다. 2010~2011 시즌 분데스리가와 네덜란드리그를 평정해버렸다. 3쿠션의 본고장 유럽에서 외국인들과 숱한 실전을 치렀으니 레벨이 남다를 수밖에 없다.

기술적으로 특별히 배운 것이 무엇이었을까. 20대가 맞나 싶을 정도로 내공이 배어난 답이 이어졌다.

▲ 훌륭한 당구선수가 되고 싶었던 김행직은 매탄고를 졸업하고 유럽으로 향했다. 고독한 2년의 시간은 그를 최고의 만드는 자양분이 됐다.

“유럽이라 해서 다를 건 크게 없어요. 혼자 2년 내내 파고들며 시행착오를 겪었죠. 다른 선수들과 제 플레이 동영상을 보고 끊임없이 연구했어요. 맞는 기술을 찾는 과정이었던 것 같아요. 바로 앞의 공 두께도 조절이 안 되는 슬럼프가 와도 또 큐를 잡았어요. 당구는 어떤 배치가 어떻게 나올지 도무지 예상할 수가 없잖아요. 모든 상황을 연구했다고나 할까.”

◆ 천재에 대한 단상, "타고나지 않았다"

“천재라고 불러주시는데요. 절대 그렇지 않아요. 타고난 건 없습니다. 저는 큐를 하루이틀만 안 잡으면 ‘선수 맞아요?’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당구를 못 쳐요. 사흘째 쉬었다간 초보자가 된 느낌까지 받는다니까요. 하하”

김행직은 전북 익산에서 당구장을 운영하는 아버지를 따라 3세 때 처음 큐를 잡았다. 당구선수가 되기로 결심한 것은 초등학교 5학년 때. 부모님의 적극적인 권유 속에 평생 당구인의 길을 걷기로 결심했다. 운명이었다.

2004년 익산남중 재학 당시 전북당구연맹 소속 정식 선수가 됐다. 등록 1년 만인 2005년 전국체전 시범종목 학생부 3쿠션에서 우승했다. 2007년 9월 스페인 주니어3쿠션선수권대회를 거머쥐면서 국제무대에 이름을 알렸고 2012년까지 대회 3연패의 금자탑을 쌓았다.

▲ 차분한 성격의 김행직은 "랭킹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고 말한다. [사진=대한당구연맹 제공]

김행직은 아무리 긴박한 상황이 와도 흔들리지 않는다. 멘탈이 중요한 종목의 선수들은 특별한 비결 한두 가지는 갖고 있기 마련. 한발 한발이 메달 색을 좌우하는 양궁, 사격 선수들은 주로 명상, 독서를 즐기며 마음을 다스린다. 당구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당구 대회가 열리는 체육관이나 클럽은 웅성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 시야가 분산되기 쉬운 환경이에요. 매 순간 집중력을 잃지 않으려 노력할 뿐입니다. 아, 굳이 꼽자면 중학생 때부터 하도 많이 졌던 거겠네요. 패배서 교훈을 얻었다고 할까요.”

◆ 김행직이 큐를 잡지 않았다면? 다시 태어난다면?

김행직이 큐를 잡지 않았다면?

“어디 가서 박스나 줍고 있지 않았을까요. 하하하. 공부에는 전혀 취미가 없었어요. 요샌 야구를 재밌게 보고 있는데... 아, 축구선수 해봤을 것 같은데요. 공 차는 걸 정말 좋아했어요. 운동신경이 없지는 않거든요, 제가.”

다시 태어나도 당구선수를 할까?

“안 해요. 10대를 바쳤어요. 20대 초반도 바치고 있어요. 얼마나 힘들고 외로운 과정인지 프로 선수가 아니라면 알 수 없어요. 대신 다른 운동을 해볼래요. 야구였다면 좌완투수로 메이저리그에, 축구였다면 유럽리그에서 뛰고 있을 저를 그려봅니다. 크게 크게 생각해야죠.”

▲ 김행직은 "당구선수를 하지 않았다면 축구를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세계적인 선수다운 큼지막한 포부다. 그래도 김행직은 천상 당구선수다.

“돈벌이를 생각했다면 당구를 했을까요. 그냥 좋았어요. 저는 내성적입니다. 뭐든지 조용히 혼자 하는 걸 좋아해요. 당구가 딱 그렇잖아요. 개인적인 연습이 중요한 종목이 딱 저와 들어맞는 거 같아요. 여가 시간에도 당구만 치는 것 같은데요? 하하”

◆ 김경률, 이상천, 브롬달 그리고 김행직의 꿈

“당구가 개인 트레이너, 코치, 감독이 있는 종목이 아니잖아요. 매탄고 재학 시절 당구를 가르쳐주신 황득희 선생님부터 저와 붙는 모든 분들이 선생님이라고 생각해요. 선수별로 특징이 있어서 딱히 누구의 어떤 점을 배우고 싶다고 말하기가 조심스럽네요.”

김행직에게 가장 영향을 미친 인물은 누구일까. 그는 콕 집어 한 선수를 꼽지는 않았다. 이내 조심스럽게 올해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뜬 김경률을 언급했다. 국내 최강, 세계랭킹 2위까지 오르며 한국 당구의 위상을 한 단계 끌어올렸던 그는 지난 2월 실족사했다.

김행직은 “1등해도 거만하지 말라고 늘 강조해주셨던 분이다. 동호인이든 프로당구인이든 어떤 곳으로부터 나쁜 소리 한 번 들은 적이 없는 선수셨다”고 고인을 떠올리며 “실력도 실력이지만 인성도 일품이신 경률이 형이야말로 내가 지향해야할 분”이라고 말했다.

당구선수로서 김행직의 최종 포부는 무엇일까.

▲ 김행직의 꿈은 잘 치는 당구선수를 넘어 당구하면 떠오르는 아이콘이 되는 것이다.

“당구치는 선수는 수백, 수천명일거예요. 이상천 선생님은 범접할 수도 없는 업적을 남기신 분이죠. 토브욘 브롬달은 당구 하면 자동적으로 떠오르는 선수잖아요. 기록을 세우고 싶어요. 우승이든, 하이런이든. 그냥 잘 쳤다가 아니라 당구의 대명사로 남고 싶어요.”

P.S 당구천재가 전한다. 250에서 정체된 채 좀처럼 오르지 않는 당구수지를 올리는 방법을.

“늘고 싶으면 연습이 답입니다. 전에 쳤던 공들의 두께와 회전력를 생각하면서 치셔야 해요. 포지션, 수비 등은 그 다음 문제입니다.”

[취재 후기] 김행직을 보면서 세계적인 발레리나 강수진이 말이 떠올랐다. 그는 “한순간도 더할 수 없이 열심히 살았기 때문에 지금이 최선의 상태”라며 “과거로 돌아가고 싶단 생각은 들지 않는다”고 했다. 김행직도 매일 후회만 하고 사는 기자에게 큰 울림을 줬다. '행직'이란 이름은 바르고 곧게란 의미다. 어쩜 이리도 성숙한지. 20대 초반의 청년이 세계적으로 윗자리에 오른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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