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뛰는 '기황후' 위에 나는 '정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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뛰는 '기황후' 위에 나는 '정도전'
  • 김나라 기자
  • 승인 2014.04.08 0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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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방극장 사극대전...KBS '정도전 MBC '기황후' 다른 색깔 경쟁

[스포츠Q 김나라기자] 안방극장에 사극대전이 벌어지고 있다. KBS 1TV 대하사극 '정도전'이 정통사극으로 역사의 사실적 고증에 치중한다면 MBC 월화드라마 '기황후'는 흥미로운 팩션사극으로 차별화를 꾀하며 시청자를 공략하는 중이다.

◆ '정도전' 왕 중심 아닌 개인에 초점 맞춰 '정치의 본질'을 묻다

지난 1월 첫 방송된 ‘정도전’은 고려 말기 개혁적인 신진 사대부 정도전이 새로운 세상을 꿈꾸며 조선 건국에 참여하지만 끝내 이상을 이루지 못하고 좌절하는 과정을 다룬다. 왕, 귀족 중심의 드라마가 아닌, 나라와 문화를 만든 정치가이자 지식인 정도전의 삶에 초점을 맞춰 격동기 시기에 진짜 정치가들의 살아있는 일화를 담아내고 있다.

▲ 정도전(조현재) [사진=KBS]

철저하게 고증을 바탕으로 제작된 ‘정도전’은 인기리에 방영중인 MBC 수목드라마 ‘기황후’를 비롯해 종영작 ‘공주의 남자’ ‘성균관 스캔들’ ‘해를 품은 달’ ‘장옥정, 사랑에 살다’ 등 최근 유행하는 상상력과 화려한 감각으로 무장한 퓨전 판타지 사극에 반기들 들어 이상주의적 정치가의 좌절을 통해 정치의 본질을 묻는 드라마다.

◆ '정도전' 역사의식 고취에 앞장 "역사를 잊은 민족, 미래는 없다"

극의 사실감을 높이기 위해 ‘정도전’의 제작진은 역사 전공 석박사로 구성된 자문단을 꾸려 출연진과 함께 4개월간 토지제도 및 성리학에 대한 강의를 들을 정도로 고증에 애썼다. 특히 현 정치를 체험한 이력이 있는 국회의원 보좌관 출신 정현민 작가가 집필을 맡아 눈길을 끈다. 그는 과거 10년간 새누리당과 민주당 의원을 보좌했다.

KBS 장성환 TV본부장은 ‘정도전’의 제작발표회에서 "최근 국사가 교과과정에서 선택과목으로 전락하고, 방송에서는 허구가 사실을 왜곡한 팩션사극이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며 '기황후'를 언급한 뒤 "공영방송인 KBS 대하사극은 시청자에게 우리 역사에 대한 올바른 인식과 민족의 자긍심을 고취시키도록 힘써야 한다고 생각해 정통사극을 제작하게 됐다"고 밝혔다.

당시 제작발표회에서는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라는 문구가 새겨진 하이라이트 영상이 등장했다. '정도전을 아느냐'라는 질문을 받은 시민이 '모른다'고 답하는 장면과 함께 고등학교 필수과목에 국사가 제외된 뉴스보도를 보여주며 드라마를 통한 역사 교육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 '정도전' 압도적 스케일 전투신, 쇼양 프로그램 등 사극장르에 새바람 불어넣어

장년층 남성에게 열렬한 지지를 받고 있는 ‘정도전’은 6일 시청률 18.2%를 기록하며 주말극 1위 자리를 놓치지 않고 있다. 기존 국내 사극과는 차원이 다른 군사신 연출과 조재현(정도전), 박영규(이인임), 유동근(이성계), 임호(정몽주) 등 명품 배우들의 열연이 드라마를 더욱 빛내고 있다.

▲ [사진=KBS 1TV 방송 캡처]

지난달 29~30일 방송된 '정도전'에서는 이성계(유동근)와 조민수(김주영)가 이끄는 요동정벌군이 우왕(박진우) 앞에서 출정식을 가지는 장면을 역사에 ‘5만명에 육박하는 군사’라고 기록된 것처럼 생생하게 담아냈다.

앞서 역사 속 이성계가 능력을 인정받게 되는 왜구 토벌전투인 황산대첩도 역동적인 카메라워크로 실감나게 연출해 호평을 받은 바 있다. 20~30명 규모의 전투나 공성전으로 실소를 터트렸던 '기황후'나 '주몽' '계백' 등과는 다른 스케일이었다.

▲ '정도전' [사진=KBS 1TV 방송 캡처]

'정도전'의 오영민 시각효과 슈퍼바이저는 “요동정벌 출정식 한 신을 표현하기 위해 1시간 30분 동안 작업했다. 한 화면을 10개 부분으로 나눠서 인력을 옮겨 다니며 찍은 뒤, 합성하는 '나눠찍기' 방식으로 촬영해 150여명의 인력을 가지고 출정식과 위화도 신을 모두 해결할 수 있었다”며 “출정식은 말 8필, 위화도 장면은 말 4필만으로도 대군처럼 보이게 만들었다"고 덧붙였다.

이영섭 촬영감독은 "대하사극 최초로 고속촬영 전용인 레드에픽 카메라를 사용해 영상의 질을 확실하게 높였다. 황산대첩의 경우에는 연출자의 고증 의욕이 워낙 강했다"고 전했다.

▲ '역사저널 그날' [사진=KBS]

‘정도전’은 6회 방송까지 쇼양(예능+교양의 합성어) 프로그램 ‘역사저널 그날’과 협업체제를 이뤄 국민의 역사의식을 높이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했다. 드라마가 끝난 직후 방송되는 ‘역사저널 그날’에서 시인·영화감독·역사학자 등이 정도전의 역사에 대해 흥미롭게 풀어나갔다.

◆ 가장 선호하는 프로 1위 '기황후' "역사 왜곡? 드라마는 드라마일뿐"

역사왜곡 논란에도 불구하고 로맨스, 삼각관계 등 시청자가 좋아하는 각종 요소를 사극에 담아낸 ‘기황후’는 지난달 여론조사 전문회사 한국갤럽에서 조사한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TV프로그램’ 설문조사에서 10.8%의 선호도로 1위에 등극했다. 배우 하지원, 지창욱, 주진모 등 화려한 톱스타의 출연으로 여성 시청층의 비율이 높은 '기황후'는 평균 시청률 20%대를 기록하며 30%를 목전에 두고 지상파·케이블채널 월화극 중 독보적인 1위를 차지하고 있다.

‘기황후’는 고려시대 공녀인 기승냥(하지원)이 원나라에 끌려가 원 황제(지창욱)의 사랑을 받고, 결국 황후가 되는 파란만장한 삶을 산 인물을 그린 드라마다. 그러나 주인공을 두고 제작진이 역사와는 다른 해석을 내놓아 방송 전부터 논란에 휩싸였다.

기승냥이 황후가 된 뒤 오빠 기철을 이용해 고려를 통치하려 들고, 그것이 뜻대로 되지 않자 고려를 침략하게 한 역사적 사실과 고려시대 정사에 해당하는 ‘고려사절요’에서 아버지의 후처와 내관의 아내 등을 강간한 기록이 있는 충혜왕을 가상의 인물인 왕유(주진모)로 왜곡해 다뤄 비판을 받았다.

▲ 왕유(위)와 기황후 [사진=MBC 방송 캡처]

논란이 확산되자 ‘기황후’의 제작진 측은 "고려 28대 충혜왕이 저지른 악행과 패륜이 남아 있는 만큼 문제를 피할 수 없어 배역과 관련해 새롭게 극을 설정했다. 또 기황후라는 역사적 인물을 다루지만, 허구의 인물을 추가해 팩션으로 만들었다"며 '드라마는 드라마로 봐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기황후’는 고증에 있어서도 많은 아쉬움을 남기고 있다. 기황후의 황후 책봉식에서 원 황제 타환과 기황후가 입은 복식은 원나라의 통치세력인 만주족의 것이라기보다는 한족의 것에 가깝다. 또 그 당시 쓰이지 않은 용어의 남발, 해당 시대에 존재한 인물과는 다른 고려 관료들의 이름, 기승냥이 황후가 된 뒤 대부인 작위를 받고 오랫동안 호사를 누리고 살다 고려 국왕의 문안인사까지 받은 기황후의 어머니가 극중 철퇴에 맞아 비극적 죽음을 맞이하는 등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 '실존 인물에 상상력 더하기' 역사의식 발전에 위험… 올바른 사극 감상법은?

역사소설 ‘정도전- 천황을 맨발로 걸어간 자’의 저자 김용상 작가는 “팩션이 팩트를 포함하고 있긴 하지만 팩션일 경우 가상인물을 따로 설정해 극을 전개해나가야지 실존인물을 두고 사실과 다르게 선보이는 것은 위험하다. 과거 MBC에서 방송된 ‘해를 품은 달’은 시대적 배경만 조선일 뿐 이외의 모든 내용은 허구로 해 큰 사랑을 받았다”고 말했다.

이어 “‘해를 품은 달’처럼 ‘기황후’를 시청하면 아주 재밌지만 ‘기황후’는 실존인물에 상상력을 더했기 때문에 역사의식이 낮은 청소년들이 이런 사실을 걸러내기에는 역부족으로 혼란을 줄 수 있다. ‘정도전’도 최영장군과 이성계의 칼싸움이라는 사실과 다른 내용을 선보이긴 하지만 근간을 흔들지 않는 선에서 극에 재미를 줄 수 있는 요소를 더해 혼란을 발생시키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김 작가는 “일각에서는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 묻지도 따지지도 말자’라는 안일한 입장을 고수하는데 시청자는 이러한 태도보다는 인터넷 검색을 통해 사실과 허구를 비교하는 재미를 알아가면서 사극을 즐겨야 한다”고 전했다.

nara927@sportsq.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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