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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생각] 신격호 회장과 신동주 신동빈, 롯데 '왕자의 난'이 지켜야할 진정한 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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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생각] 신격호 회장과 신동주 신동빈, 롯데 '왕자의 난'이 지켜야할 진정한 가치
  • 류수근 편집국장
  • 승인 2015.08.03 1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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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餘滴)]

[스포츠Q 류수근 편집국장] 요즘 각종 언론과 포털사이트에는 ‘왕자의 난'이라는 용어가 끊임없이 등장하고 있다. 우리나라 재계 순위 5위의 재벌그룹인 롯데그룹과 일본 롯데홀딩스의 경영권을 두고 신동주, 신동빈 형제가 한치 양보도 없는 일전을 펼치고 있어서다. 2일 오후 뉴스부터는 맏아들 신동주 전 롯데홀딩스 전 부회장이, 차남인 신동빈을 한국 롯데 회장과 일본 롯데홀딩스 회장에 임명한 적이 없다고 발언하는 신격호 한국롯데 총괄회장의 육성 동영상을 공개함으로써, 형제간 다툼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 듯 보인다. 오늘은 일본에서 귀국하는 신동빈 회장의 행보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왕자의 난'. 신격호와 두 아들 신동주와 신동빈. 이번에 불거진 가족간의 다툼이 아니더라도 우리나라 재벌가의 경영권 승계 과정에서 심심찮게 등장하는 용어다.

'왕자의 난'이라는 용어는 어디에서 나왔을까. 학창시절 국사를 공부한 우리 국민이라면 아마도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을 것이다. 이 용어는 하도 유명해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에서도 잠깐이면 확인할 수 있다.

‘조선 초기에, 태조의 왕자들 사이에서 왕위 계승권을 둘러싸고 일어난 두 차례의 난. 1차 왕자의 난으로 정도전과 세자 방석(芳碩)과 방번(芳蕃)이 죽었고, 2차 왕자의 난으로 방간(芳幹)과 박포(朴苞)가 죽임을 당하였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네티즌들이 만들고 애용하는 위키백과도 찾아 봤다. 머릿글에서 ‘조선 태조 이성계의 창업 도상에서 일어난 왕자들의 왕위 계승권을 에워싼 골육상쟁이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국어대사전과 다른 고사성어가 눈에 띈다. '골육상쟁'이다. 골육상쟁(骨肉相爭)은 ‘뼈와 살이 서로 다툼’의 뜻으로, 형제나 같은 민족끼리 서로 다투는 것을 의미한다.

'왕자의 난'은 가족으로 말하면 아버지가 지지하는 이복 어린 아들과, 아버지의 생각에 반기를 든 성인 아들간에 1차 싸움이 일어나고, 이어 집안의 권리를 틀어쥔 동복 아들간에 최종 승자를 가리는 2차 다툼으로 번졌던 사건이다. 태종 이방원은 이를 계기로 왕권을 확고히 거머쥐면서 최종 승자가 됐다.

태종 이방원이 칼을 듦으로써 조선 건국 초기에 흔들리던 정권은 안정되고 왕권은 강화됐다. 비로소 조선왕조 500년의 탄탄한 기틀이 마련됐다. ‘왕자의 난’이 없었다면 고려말처럼 취약한 왕권이 지속돼 조선이 그처럼 오랫동안 탄탄한 정권을 유지할 수 없었을 것이라는 역사적 해석이 지배적이다.

하지만 역사는 항상 승자의 입장에서 쓰여지기 마련이라는 점을 간과하면 안된다. 세자 방석이 왕권을 이어받았다면 더 나은 조선이 될 수 있었을지, 없었을지는 그 아무도 모른다.

‘왕자의 난’은 역사적인 해석을 떠나 ‘가족’이라는 측면에서 생각하면 더없이 비극적이고 반인륜적인 사건이었다. 이방원은 아버지 이성계의 뜻을 저버린 것은 물론 의붓 어머니와 동생들을 살해했다. 2차 난 때는 본의는 아니었더라도 동복 형을 죽여야 했다.

‘가족’은 사전적인 의미로는 '주로 부부를 중심으로 한, 친족 관계에 있는 사람들의 집단. 또는 그 구성원. 혼인, 혈연, 입양 등으로 이루어진다'고 설명된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라는 말이 있지만 ‘왕자의 난’은 애증이 쌓이면 부모형제간에도 피가 물보다도 옅을 수 있음을 방증하고 있다.

삼성가, 현대가, 롯데가... 우리나라 재벌그룹의 역사에는 ‘왕자의 난’이 끊이지 않았다. 이런 측면에서 본다면, 아버지 신격호, 두 아들 신동주 신동빈의 갈등 속에 전개되고 있는 롯데그룹의 ‘왕자의 난’도 어쩌면 그저 하나의 통과의례로 볼 수도 있다.

재벌그룹 경영권 다툼에 ‘왕자의 난’이라는 용어를 자주 쓰는 이유는 조선이라는 국가를 기업으로 바꾸면 흐름이 유사하기 때문일 것이다. 단지 실제 ‘왕자의 난’에서는 패배자들에게 가혹한 죽음이 기다리고 있었지만 재벌의 ‘왕자의 난’은 경영권과 재산권의 박탈에만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 결정적인 차이일 것이다.

역사 속 ‘왕자의 난’을 언급할 때 간과하는 것이 있다. 왕족들의 싸움에 많은 무고한 백성들이 목숨을 잃었다는 점이다. 자신이 지지하는 왕자를 왕으로 추대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나섰다가 목숨을 잃은 사람도 있었지만, 어느 한쪽의 식솔이었거나 부하나 하인이었다는 이유로 수많은 사람들이 아까운 생명을 잃어야 했다. 이들의 비극은 역사의 기록 그 어느곳에서도 흔적을 찾아보기 힘든 경우가 대부분이다.

현재 롯데그룹의 ‘왕자의 난’은 신동주와 신동빈 두 아들의 다툼에 아버지 신격호 회장이 나선 형국이다. 롯데그룹의 ‘왕자의 난’을 보며 평범한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가슴이 착잡해 진다. 한편으로는 남의 나라 이야기처럼 들린다. 국내 유수의 재벌그룹의 경영권이 가족의 분쟁에 의해 좌우된다는 전 근대적인 시스템 때문만은 아니다.

롯데그룹 안에는 묵묵히 일하는 많은 사원들이 있다. 또 롯데그룹을 바라보며 그동안 한국기업이라며 자랑스럽게 여겨온 많은 국민들도 있다. 하지만 지금 벌어지고 있는 가족 내 경영권 분쟁은 이들의 의사와는 무관하다. 자칫 잘못하면 ‘왕자의 난’의 틈바구니에서 무고한 피해자들이 나올 수도 있다. 롯데그룹의 파행적 경영권 분쟁은 국내 기업들, 나아가 대한민국의 대외적인 이미지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제1차 왕자의 난(1398년 8월)이 일어난지 617년이 흘렀다. 당시 백성들에게 고려와 조선, 왕씨 왕조와 이씨 왕조가 꼭 중요했을까? 당시 백성들은 그저 배불리 먹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나라, 백성을 주인처럼 떠받드는 임금이 있는 나라를 원했을 터다.

필자는 한때 스포츠서울 특파원으로 일본에 체류하면서 일본내 롯데의 위상을 실감한 적이 있다. 우리의 피가 섞인 재일동포의 기업이 일본 내에서 주축 기업으로 자리하고 있는 모습을 이곳저곳에서 직접 눈으로 확인하면서 ‘동질감’과 ‘자부심’을 느끼기도 했지만, 롯데의 이름을 쓰는 프로야구팀의 구단주와 구단주 대행의 이름에 한국인의 이름이 아닌 일본인 이름이 적혀 있고, 구단주 대행에게 질문을 던지고 답을 들을 때 일본어를 써야 한다는 점에 ‘이질감’과 ‘허전함’을 느낀 적도 있다.

롯데그룹의 ‘왕자의 난’은 우리 재벌그룹의 전근대적 경영시스템을 재확인시켜주는 계기가 되고 있다. 하지만 이 문제를 보는 시각을 재벌 오너 가족의 문제로만 봐서는 안된다. ‘롯데’라는 이름아래 묵묵히 일하는 많은 사원들, 그리고 ‘롯데’를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기업의 하나로 생각해 온 많은 국민들에게 미칠 영향을 더 심각하게 고려해야 한다.

신동주 전 부회장과 신동빈 회장, 둘 중 누가 롯데그룹과 롯데홀딩스의 총수가 되든, 구성원들은 모두가 안정된 조건에서 잘 먹고 잘 살고, 미래의 꿈과 행복을 설계하는 ‘비전있는 위대한 기업’으로 이끌어 주기를 바랄 것이다. 신격호 회장도 이런 원대한 관점에서 ‘왕자의 난’을 수습하는 지혜를 발휘해야 할 것이다.

3일 출근길. 오늘 아침에도 청담대교 위를 달리는 7호선 차창 저멀리에 한창 건설중인 잠실 롯데월드타워가 우뚝 솟아 있었다. 맨꼭대기에 설치된 두 타워 크레인은 마치 거인이 자랑스럽게 만세를 부르고 있는 듯 보이기도 하고, 누군가 둘이서 팽팽이 맞서고 있는 듯 보이기도 했다. 어떤 경우든 마천루는 오늘도 땅바닥에서 바쁘게 힘겨운 발걸음을 내딛는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지상과 괴리되어 있는 또 다른 세상처럼 보일 뿐이다. 이런 괴리감을 없애는 방법은 시민들이 너나할 것 없이 마천루를 같이 즐기고 호흡할 수 있도록 열린 장으로 만드는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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