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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가' 슈틸리케 변화와 실험 1년, 무엇을 바꿔놓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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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가' 슈틸리케 변화와 실험 1년, 무엇을 바꿔놓았는가
  • 박상현 기자
  • 승인 2015.09.09 14: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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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Q포커스] 주전 무한경쟁 체제 자리…틀에 얽매이지 않고 다양한 변화와 실험으로 '압축 성장'

[스포츠Q 박상현 기자] 한국 축구대표팀이 레바논 3-0 완파로 22년 원정 악연을 끊은 9월 8일은 울리 슈틸리케 감독이 한국 팬들에게 처음 인사한지 정확하게 1년이 되는 날이었다. 대한축구협회가 슈틸리케 감독의 선임을 발표한 뒤 슈틸리케 감독은 지난해 9월 8일 취임 기자회견을 갖고 고양종합운동장에서 열린 우루과이와 A매치 평가전을 지켜보며 첫 선을 보였다.

한국 축구대표팀은 그 사이 많은 것이 변했다. 2012 런던 올림픽 동메달을 차지했던 홍명보 감독의 대표팀은 지난해 브라질 월드컵에서 몰락했지만 불과 1년 사이에 모든 것이 바뀌었다. '상전벽해', '괄목성장'이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긍정 변화다.

슈틸리케 감독은 대표팀뿐 아니라 유소년축구부터 대학축구까지 관심을 보이며 한국 축구체계에 대한 개조 작업에 동참하고 있다. 그러나 대표팀에 가져온 변화만 놓고도 할 말이 너무나 많다.

▲ 울리 슈틸리케 감독이 8일 레바논 시돈의 사이다 무니시팔 스타디움에서 열린 레바논과 월드컵 2차 예선 원정 3차전을 앞두고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사진=대한축구협회 제공]

◆ 유럽리그 선수 편애는 없다, 능력 위주의 선발

선수들의 유럽 진출 러시 이후 그동안 한국 축구는 '유럽리그 선수 만능주의'에 빠져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유럽 클럽에 몸담고 있는 선수는 비록 주전도 아니고 벤치에도 앉지 못하는 전력 외 선수라도 뭔가 해줄 것이라는 믿음 때문에 대표팀에 선발하곤 했다.

슈틸리케 감독은 철저하게 능력 우선주의다. 이미 슈틸리케 감독은 취임 일성을 통해 K리그 선수들의 모든 것을 파악한 뒤 유럽에서 뛰는 선수들과 비교해 공정한 경쟁을 시키겠다는 의도를 드러내기도 했다. 이는 그대로 실천됐다. 슈틸리케 감독은 아무리 유럽리그에서 뛰고 있는 선수라도 전력 외이거나 주전이 아니면 오히려 K리그에서 뛰고 있는 주전들보다 후순위에 두고 있다.

그 결과 편애는 사라졌고 유럽리그 선수들도 자칫 잘못하면 주전 자리를 잃을 수 있겠다는 위기의식이 발동되면서 경기력 향상 효과로 이어졌다. K리그 선수들 역시 소속팀에서 열심히 뛰면 대표팀 선수가 될 수 있다는 목표의식이 생기면서 경쟁력을 끌어올렸다.

슈틸리케 감독이 점찍은 선수가 '신데렐라'가 된다는 것도 얼마나 국내 축구현장을 돌아다니며 선수들을 면밀하 검토하고 연구하며 선발했는지를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가 처음으로 깜짝 발탁한 이정협(상주 상무)도 상주의 경기를 네 차례나 찾아가 지켜본 결과다.

▲ 권창훈(왼쪽)이 8일 레바논 시돈의 사이다 무니시팔 스타디움에서 열린 레바논과 월드컵 2차 예선 원정 3차전에서 슛을 하고 있다. [사진=대한축구협회 제공]

이재성(전북 현대) 역시 슈틸리케 감독이 유심히 지켜본 끝에 대표팀에 선발돼 '슈틸리케호의 황태자'가 된 경우다. 동아시안컵을 통해 A매치 데뷔전 데뷔골을 넣은 김승대(포항), 이종호(전남) 역시 마찬가지다.

여기에 권창훈(수원 삼성)은 슈틸리케 감독이 오래 전부터 지켜봤던 선수다.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12월 제주도 전지훈련을 통해 첫 발탁된 권창훈은 동아시안컵에 이어 9월 월드컵 예선 2연전에서 3골을 넣으며 날개를 폈다.

능력이 뛰어나고 잠재력이 풍부한 K리그 선수들이 대표팀 내에서 점차 영향력을 키우면서 유럽리그 선수들도 주전 자리를 자신할 수 없게 됐다. 공격형 미드필더의 경우 그동안 구자철(아우크스부르크)이 꿰차고 있던 자리였지만 지금은 권창훈, 김승대, 이재성 등 다양한 선수들이 도전장을 던지고 있다.

이청용(크리스탈 팰리스)도 오른쪽 측면에서 이재성 등의 도전을 받고 있다. 아직까지 슈틸리케 감독은 이청용이 주전 경쟁을 벌이고 있다며 대표팀에서도 우선 선발하고 있지만 소속팀 주전 경쟁에서 밀리는 순간 대표팀에서도 힘을 잃는 것은 순식간이다.

▲ 장현수(오른쪽)가 8일 레바논 시돈의 사이다 무니시팔 스타디움에서 열린 레바논과 월드컵 2차 예선 원정 3차전에서 상대 수비를 제치고 드리블을 하고 있다. [사진=대한축구협회 제공]

◆ 멀티 포지션에 트리플 포지션까지, 변화와 실험으로 경쟁력 강화

슈틸리케 감독은 '멀티 플레이어' 선호론자다. 슈틸리케 감독은 "멀티 플레이어는 대회를 치르면서, 장기 일정을 보내면서 부상 등 다양한 변수에 대비하기 위해 꼭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이 때문에 멀티 포지션 소화능력을 갖고 있으면 더욱 선호한다.

현재 대표팀에서 멀티 플레이어의 모범 사례는 박주호(보루시아 도르트문트)와 장현수(광저우 푸리)다. 박주호는 아시안컵에서 기성용(스완지 시티)과 함께 수비형 미드필더로 능력을 발휘하면서도 왼쪽 풀백까지 담당할 수 있다. 장현수는 한술 더 떠 중앙 수비수에 수비형 미드필더도 모자라 오른쪽 풀백까지 가능성을 보였다.

아시안컵까지만 하더라도 대표팀의 주전 오른쪽 풀백은 차두리(FC 서울)였다. 그러나 차두리는 뉴질랜드와 A매치를 끝으로 대표팀에서 은퇴했고 대체자원을 찾고 있다. 김창수(가시와 레이솔)와 임창우(울산 현대) 등을 고르게 테스트했지만 슈틸리케 감독의 성에 차지 않았고 결국 장현수에 눈을 돌렸다. 월드컵 예선 2연전에 모두 오른쪽 풀백으로 선발 출전한 장현수의 변신은 일단 성공적이다.

권창훈 역시 멀티 플레이어로 가능성이 충분하다. 공격형 미드필더이기도 하지만 때에 따라서는 수비형 미드필더로도 쓸 수 있다.

▲ 기성용(왼쪽)이 8일 레바논 시돈의 사이다 무니시팔 스타디움에서 열린 레바논과 월드컵 2차 예선 원정 3차전에서 상대의 거친 수비를 받으며 드리블하고 있다. [사진=대한축구협회 제공]

멀티 포지션은 기성용(스완지 시티)이라고 예외가 아니다. 수비형 미드필더 붙박이지만 포메이션이 바뀌면 전진 배치돼 공격형 미드필더도 소화한다. 아시안컵에서는 공격까지 파고들기도 했다. 중앙 수비수 곽태휘(알 힐랄)조차도 때에 따라서는 원톱 스트라이커로 변신하기도 한다.

슈틸리케 감독이 이정협의 부상으로 대표팀에서 빠졌을 때 김신욱(울산 현대) 같은 공격수 자원이 아닌 김민우(사간 도스)를 선발한 것도 멀티 플레이어를 얼마나 선호하는지를 알 수 있다. 슈틸리케 감독은 이정협이 빠졌지만 원톱과 왼쪽 측면 공격수를 모두 맡을 수 있는 황의조(성남FC)가 있기 때문에 김민우를 뽑았다.

김민우도 왼쪽에서 측면 공격과 수비를 모두 볼 수 있다. 라오스전에 출전한 홍철(수원) 역시 왼쪽에서 측면 공격과 수비가 가능하다.

▲ 울리 슈틸리케 감독이 지난해 9월 8일 고양종합운동장에서 열린 우루과이전에서 관중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슈틸리케 감독은 취임 1년 만에 대표팀을 탈바꿈시켰다. [사진=스포츠Q DB]

◆ 슈틸리케 감독의 근거있는 자신감, 현실이 된다

슈틸리케 감독은 기자회견이나 인터뷰를 통해 나온 말에 대해서는 어떻게 해서든 책임을 진다. 모두 결과로 이어진다. 이는 신뢰감 상승으로 돌아온다.

슈틸리케 감독은 이정협을 아시안컵 멤버로 뽑았을 때 "박주영(FC 서울) 등 스타급 선수를 뽑으면 모든 결과는 선수가 지기 때문에 감독은 편해진다. 그러나 이정협을 뽑게 되면 그 책임은 감독이 지게 된다"는 말로 은근한 자신감을 표시했다. 슈틸리케 감독은 그만큼 자신의 눈을 믿었고 이는 결과로 이어졌다.

라오스전이 끝난 뒤 레바논 원정에 대한 어려움에 대해 얘기가 나왔을 때도 슈틸리케 감독은 "그것은 어디까지나 과거의 일이다. 내가 1년 동안 대표팀을 이끌면서 한 번이라도 실망을 안겨준 적이 있었느냐"고 항변했다. 이 역시 레바논 3-0 완파가 허언이 아님을 증명했다.

결코 허언을 모르는 슈틸리케 감독에 대한 신뢰감 상승은 당연하다. 이는 대표팀에 대한 믿음으로 이어지고 선수들에 대한 자신감 상승 효과가 된다. 슈틸리케가 가져온 1년의 변화는 13년 전 거스 히딩크 전 감독처럼 '압축 성장'의 면모로 요약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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