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6 22:11 (금)
[인터뷰] '스톤'을 던진 배우 조동인
상태바
[인터뷰] '스톤'을 던진 배우 조동인
  • 용원중 기자
  • 승인 2014.06.05 13:3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아버지인 고 조세래 감독 유작 '스톤'에서 주인공 맡아 열연

[스포츠Q 글 용원중기자·사진 이상민기자] 바둑을 소재로 한 영화 ‘스톤’(12일 개봉)을 본 뒤 주인공 민수를 연기한 젊은 배우가 지난달 개봉한 김기덕 감독의 신작 ‘일대일’에 나오는 그림자2의 그 청년이 맞나 의아했다. 바둑 고수다운 침착함을 지닌 우울한 청춘과 카센터에서 일하는 껄렁껄렁한 청춘 캐릭터의 간극이 꽤 컸던 탓이다. 5일 낮 광화문의 한옥을 개조한 마당 있는 카페에 들어서자 184cm의 훤칠한 키에 주먹만한 얼굴의 조동인(25)이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그림자2가 아닌 민수의 나지막한 톤으로 조곤조곤 말문을 열기 시작했다.

 

 

바둑을 통한 두 남자의 만남과 ‘인생 아마추어’들의 승부를 그린 ‘스톤’은 프로기사의 꿈을 접고 내기 바둑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천재 아마추어 바둑기사 민수의 시점으로 진행된다. 민수는 우연한 기회에 조직의 보스 남해(김뢰하)에게 바둑을 가르치면서 잃어버린 꿈을 되찾아간다. 그리고 남해의 권유로 프로 입단대회에 참가해 운명을 바꿀 도전을 시작한다. 남해 역시 인생을 리셋하기로 결심하고 진행 중인 건설 용역에서 발을 뺀 뒤 낙향할 생각을 품는다.

◆ 바둑 소재 영화 ‘스톤’에서 꿈을 상실한 청춘 민수 연기

▲ 영화 '스톤' 티저 포스터

“이 시대에 필요한 영화라고 생각해요. 불공정한 일들이 많이 벌어지는 현실에서 ‘바둑은 서로가 한 수씩 두는 세상에서 가장 공정한 게임이잖아요’란 제 대사는 감정이입이 확 되게 하거든요. 주변 친구들을 보면 취업과 진로를 두고 고충을 많이 겪어요. 그들에게 ‘지치지 말고 열심히 해라’는 말을 자주 건네곤 해요. 이 영화가 주는 메시지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죠.”

극중 민수의 홀어머니는 화투판을 전전한다. 답답한 현실과 불우한 가정환경을 어깨에 짊어진 민수 역 조동인은 별반 대사가 많지 않은 가운데 삶의 무게를 담담하게 표현한다. 반면 바둑을 두는 순간 번득이는 두뇌싸움으로 긴장감을 조성하고, 내기 바둑판에 얽힌 폭력배들과의 격돌 장면에서야 제어하기 힘든 격정을 토해낸다. 신인답지 않은 여유로운 완급 조절이다. 소위 '오버'하는 법 없이 내밀한 감정을 적절하게 실어나른다.

“민수가 너무 어두운 캐릭터다보니 그의 깊이를 쫓아가기 힘들었어요. 캐릭터에 집중하느라 일부러 친구들과 만나지 않은 채 대본만 파면서 고립감, 고독감을 키웠죠. 민수는 감독님의 어린 시절을, 남해는 감독님의 현재와 미래의 모습을 투영했다고 들었어요. 남해는 민수를 보면서 잘못된 과거를 깨닫고는 잘 이끌어주고 싶었던 것 같아요.”

 

 

현장에서 김뢰하를 비롯해 조직의 넘버2 인걸(박원상), 오광록, 조지환과 같은 명품 연기자들과 호흡을 주고받아야 했다, 새파란 신인에게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기회이자 넘기 힘든 벽에 맞닥뜨린 순간이기도 했다. 남해와 민수가 가까워지는 계기가 되는 바다낚시 장면에서 잘 내지 않던 NG를 냈고, 조세래 감독으로부터 “야 민수, 너 아마추어야?”란 핀잔을 들었다.

◆ 연기고수 선배 김뢰하 박원상 등으로부터 배우의 태도, 호흡 배워

“선배님의 리액션으로 인해 잡아먹힐 것 같은 두려움에 빠졌던 거죠. 그러자 뢰하 선배가 방으로 절 부르더니만 ‘앞으로 이런 순간들이 찾아올 거다. 위축되는 순간 끝난다. 너가 생각한대로 연기해라’라는 말씀에 힘과 용기를 얻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어요. ‘안 되면 안 되는 거다’라고 마음을 다잡은 채 용감하게 연기해 나갔죠. 연기 초보 상황에서 선배님들을 통해 연기자로서의 태도와 연기자들끼리의 호흡을 어마어마하게 배웠어요.”

실제 여리고 섬세한 김뢰하가 삼촌의 푸근함을 느끼게 해줬다면 박원상은 선생님이자 친구 같았다. 같은 동네에 사는 박원상과 영화에서는 바둑을, 현실에서는 당구를 치며 연기에 대한 조언을 빈번하게 들었다.

 

◆ 실제 8세부터 바둑 배우기 시작, 강2급 딸만큼 실력 출중

바둑을 소재로 한 영화이고, 천재적인 아마추어 기사 캐릭터다보니 바둑실력은 필수였다. 조동인은 8세에 바둑을 배우기 시작해 초등학교 3학년 때 바둑학원에서 강2급을 땄다. 주변의 바둑 깨나 두는 사람들과 대국을 했을 때 승률이 무척이나 높은 수준이었다. 하지만 더 발전할 만큼의 ‘기재’가 보이지 않아 프로 입단을 꿈꾸지 않았다.

영화에서 조동인이 돌을 잡고 바둑판에 놓는 디테일한 손동작이 자주 클로즈업되곤 한다. 번개같은 손놀림은 감탄을 자아낼 정도다. 바둑판을 울리는 ‘딱’ 소리는 홈런포 소리를 연상케 할 정도로 호쾌하다.

“손모양이나 바둑돌이 놓여지는 소리만 보고 듣고도 고수들은 상대의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판단해요. 영화의 리얼리티를 위해 이 부분에 중점을 많이 뒀어요. 영화에는 실재 내기 바둑꾼들과 연구생 출신 프로들이 출연을 했고요. 손모양 탓에 NG가 많이 나기도 했어요. 감독님이 워낙 바둑을 잘 아시고, 꼼꼼하셔서요(웃음)”

 

 

◆ 아버지 고 조세래 감독 유작 ‘스톤’에서 주인공 맡아 화제

바둑에 능한 그가 소개하는 바둑의 실체는 겉으론 정적으로 보이나 두뇌회전이 어마어마한 종목이다. 몇 수 앞을 내다보고 대국에 임해야 하므로 전쟁터를 방불케 할 정도다. 영화에도 특별출연한 이세돌 프로의 대국을 보면 그러한 바둑의 묘미를 만끽할 수 있다고 귀띔한다.

18세에 극단 ‘꼭두’에 입단하며 본격적인 연기자의 길로 발을 내디뎠다. 대학(연극영화과)에 가기 위한 연기를 배우고 싶지 않아서였다.

“대학로는 연기의 본고장이라 이곳에서 연기를 시작하면 앞으로 도움이 많이 될 거라 여겼어요. 2년 동안 극단생활을 하며 책을 많이 읽고 인물에 대해 탐구하는 소중한 시간을 가졌어요. 연극이 만들어지는 전 과정을 지켜보며 희곡에 대한 이해, 캐릭터 구축에 있어 필요한 것들을 깨달아간 시간이었죠.”

2011년 정지영 감독의 '부러진 화살'에서 안성기 아역으로 스크린 데뷔했다. 2012년과 13년에 걸쳐 '스톤'을, 올해 2월 김기덕 감독의 '일대일'을 촬영했다. 3편에 불과한 필모그래피이지만 범상치 않은 작품들에만 출연했으니 행운의 루키다.

▲ '스톤' 촬영 현장에서 조동인과 아버지 고 조세래 감독(오른쪽)

특히 ‘스톤’은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 ‘한국영화의 오늘-비전’ 부문에서 상영된 데 이어 로카르노영화제 신인감독 경쟁부문, 하와이 국제영화제, 마리케시 국제영화제, 프랑스 본 스릴러 영화제 등에 연이어 초청받고 있다. ‘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여’ ‘하얀전쟁’ 각색을 비롯해 소설 ‘역수’를 집필하기도 했던 조세래 감독의 데뷔작이자 유작이 된 영화는 그의 분신인 아들을 통해 세상에 빛을 보게 됐다. 조 감독은 지난해 11월 56세의 나이에 암으로 타계했다.

“다른 집 부자관계는 대화가 별로 없다고 하는데 저랑 아버지는 많이 친했어요. 그땐 그게 어떤 의미인줄 몰랐죠. 아버지가 집에서 집필을 많이 하셔서 얼굴 보는 시간이 많았고 자연스레 대화도 많았을 뿐이라 여겼는데 뒤늦게 제가 참 복이 많았구나, 깨닫고 있어요. 아버지와 함께 영화를 개봉시키지 못해 안타깝지만 살아 계시다면 오늘 한 제 인터뷰 기사를 찾아보고는 기뻐하실 거예요.”

 

[취재후기] 배우 박해일의 젊은 시절과 탤런트 지현우가 연상되는 마스크다. 가리는 법 없이 청춘의 다양한 얼굴을 그려내고 싶은 조동인은 ‘믿고 보는 배우’를 꿈꾼다. 그가 판단하기에 배우가 들을 수 있는 가장 멋진 수식어라고 했다. 기성 우칭위엔은 바둑을 조화라 하고, 명인 도사쿠는 바둑을 도라 했다. 오랜 시간 바둑을 둬서일까. 젊은 나이에도 이치를 아는 바른생활 청춘이라는 생각이 인터뷰 내내 떠나질 않았다.

goolis@sportsq.co.kr

도전과 열정, 위로와 영감 그리고 스포츠큐(Q)

주요기사
포토Q