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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천의 얼굴 꿈꾸는 '발레돌' 이승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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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천의 얼굴 꿈꾸는 '발레돌' 이승현
  • 용원중 기자
  • 승인 2014.06.11 11: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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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발레 '지젤'서 귀족청년 알브레히트로 도약

[스포츠Q 글 용원중기자·사진 이동윤(플로어1 스튜디오)] 유니버설발레단 수석무용수 이승현(28)은 클래식 한류를 이끄는 ‘발레돌’로 몇 년째 주목받고 있는 인물이다. 발레리노에게 요구되는 깨끗한 턴과 높은 도약 등 기본기가 탄탄한데다 유연성, 섬세한 표현 능력이 강점으로 꼽힌다. 국내외에서 숱한 팬들을 몰고 다닐 정도의 잘 생긴 외모와 좋은 신체조건은 두 말할 필요가 없다.

 

◆ 낭만발레 '지젤' 귀족청년 알브레히트 맡아 드라마틱한 감정 표현  

올해 1월 일본에서 열린 UBC 갈라쇼에서 ‘해적’을 연기하고, 5월 모던발레 ‘나초 두아토의 멀리플리시티’에 출연하는 등 쉴 틈 없이 무대행진을 이어온 그가 이번에는 낭만발레의 대명사 ‘지젤’(13~17일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귀족청년 알브레히트를 연기한다.

신분을 숨긴 채 나들이를 한 시골마을에서 순박한 처녀 지젤을 만나 사랑에 빠지지만 이미 약혼녀가 있는 자신으로 인해 지젤이 심장병 발작을 일으켜 죽게 되는 등 비극에 마주서야 하는 인물이다. 이 작품은 UBC가 6년 만에 정기공연으로 국내 무대에 올리는 야심작이다.

▲ '지젤'의 알브레히트 연기[사진=유니버설발레단]

“3년 전 UBC 일본 공연에서 알브레히트를 처음 연기했어요. 발레를 시작하면서 제일 좋아했던 작품이라 심장이 떨릴 정도였는데 당시엔 어렸고 경험이 없어서 좌충우돌했죠. 처음 한 전막(2막)발레이기도 했거든요. 지금은 여유가 생겼으니까 극적인 요소를 추가해서 관객에게 다가갈 계획입니다.”

이승현이 처음으로 접한 발레 영상이 러시아 키로프발레단의 간판스타 이고르 젤렌스키의 ‘지젤’이었다. 공중에 정지해 있는 듯한 놀라운 점프기량과 표현력에 압도당한 순간이었다. 이후 스승에게 집중적으로 사사받은 프로그램, 무용콩쿠르에 출전할 때 준비한 프로그램도 ‘지젤’의 알브레히트였다. 슬프고 감명받은 게 많은 작품이자 캐릭터라 제대로 소화해보고 싶었던 참에 기회가 왔다.

 

◆ "일탈과 바람기, 죄책감, 후회 등 복잡한 감정선 잘 그려내고파" 

“일탈과 바람기와 같은 남자의 원초적 성향을 잘 표현해야할 것 같아요. 약혼녀가 있는데도 평민계급이 사는 곳에 엔조이를 하기 위해 방문했다가 지젤을 만나 첫눈에 반하고, 거짓말을 반복하다가 되돌릴 수 없는 상황에 처해 죄책감과 후회에 고통을 겪는 드라마틱한 감정선을 잘 그려내고 싶어요.”

이승현에 따르면 지젤이 순수하고 착한 이미지라면 알브레히트는 복합적인 심리가 두드러진다. 3년 전 이런 감정보다 발동작 등 춤추기에 바빴던 아쉬움을 기필코 씻어내겠단 각오가 다부지다. 이런 그를 받쳐줄 지젤은 해맑으면서도 당찬 발레리나 이용정(26)이다.

 

“용정이는 파트너십이 잘 되게끔 몸이 만들어져 있는 후배예요. 사전에 많이 맞춰보지 않아도 수월하게 연기할 수 있죠. 저희 둘 다 국내에선 ‘지젤’을 처음 하는 거니까 1막과 2막의 서로 다른 분위기를 확연하게 드러내고 싶어요. 2막 마지막 부분에서 윌리(정령)가 된 지젤이 영원히 떠나고 확 끓어오르는 음악이 나올 때 저도 모르게 눈물이 솟구치거든요. 정서적으로 힘들지만 가장 좋아하는 장면이라 벌서부터 기대가 되고요.”

◆ 클래식 한류 선봉장이나 곱상한 외모 탓에 배역 한계 고민 

필수 코스로 거쳐야 하는 군무진(코르 드 발레)을 거치지 않은 채 정단원으로 입단한 뒤 왕자와 귀족청년을 줄곧 맡아온 지라 부족할 게 있을까 여겼다. 더욱이 국내뿐 아니라 일본 등 해외에서조차 인기 많은 ‘발레돌’ 아닌가. 그런데 답답함이 잔뜩 묻어나는 말을 건넸다.

“전 제가 잘 생겼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곱상하고 귀여운 이미지가 아닌 장군같은 이미지를 원하고요. 외모 탓에 맡지 못한, 예를 들어 역동적이거나 카리스마 넘치는 캐릭터 캐스팅에서 제외되곤 하니까 아쉬운 거죠. 왕자나 귀족으로 국한되는 게 너무 답답해서 한때는 성형수술을 해볼까, 메이크업을 더 진하게 해볼까 고민도 많이 했어요.”

 

배역의 한계라는 아킬레스건을 치료해준 게 바로 모던발레다. 한스 반 마넨의 '블랙 케이크', 나초 두아토의 '두엔데' ‘멀티 플리시티’, 이어리 킬리안의 '프티 모르' 등에 꾸준히 출연하며 자유로운 춤사위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 모던발레의 자유로움에 푹 빠져...기복 심한 단점 극복이 과제 

“클래식 발레는 고정된 틀과 포지션이 있잖아요. 드라마의 전개를 연기로 표현해야 하는 스트레스도 심하고요. 그러다가 모던발레를 추게 되면 표현의 자유와 음악에 더욱 동화되는 느낌을 얻어요. 해방감을 느끼는 거죠. 춤으로만 모든 걸 표현하는 게 편하고 신선하달까.”

지난달 작품 안무차 내한한 세계적인 안무가 나초 두아토를 곁에서 지켜본 인상은 강렬했다. 그는 실내에서든, 길거리에서든, 술에 취한 순간에조차 음악이 들릴 때마다 몸으로 표현하곤 했다. 인생을 표현하기 위해 사는 사람이라는 생각에 깊은 감동을 얻었다. 두아토가가 자신에게 건넨 “좀 더 몸을 가꿔라”란 조언을 금과옥조로 가슴에 새겼다.

▲ 이승현의 모던발레 공연 장면[사진=유니버설 발레단]

“기복이 심한 게 제 단점이에요. 몸 상태나 멘탈이 한결 같았으면 좋겠어요. 이를 바탕으로 빠르게 성장하고 싶죠. 제 분야에 욕심이 많은 편이에요. 앞으로는 발레 외에 이것저것 많이 배워보고 싶어요. 그러면서 현역 무용수 너머의 진로를 정하게 되겠죠.”

[취재후기] 쌍꺼풀진 눈으로 상대방을 조용하게 응시하는 그에게 존경하는 무용수를 꼽아달란 질문을 하자마자 갑작스레 눈이 동그래졌다. 영화 ‘백야’로도 유명한 미하일 바리시니코프를 거론했다. 아우라, 테크닉, 캐릭터 해석력에 있어서 너무나 굉장한 무용수라 따라 해보려 무던히도 시도해봤는데 안되더란 말을 했다. 모든 게 범접할 수 없는 경지에 이른 발레리노지만 노력하다보면 발끝이라도 따라가지 않을까 싶단다. 가장 기쁜 순간은 자기만의 연기를 보여준 뒤 관객으로부터 박수를 받을 때다. 인터뷰, 사진촬영 내내 든 생각은 '어느 순간에도 육체를 참 잘 사용하는 사람이구나~!'

 

■ 프로필

28세/182cm, 67kg/O형/서울 출생/15세에 발레 시작, 미국 워싱턴 키로프 발레 아카데미, 세종대 무용과 졸업, 세종대 공연예술대학원 재학 중/2009년 유니버설발레단 입단/한국발레협회 당쇠르 노브르상(2011년), 동아 무용콩쿠르 1등(2009년) 수상

goolis@sportsq.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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