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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뷰포인트] '여행'은 '스크린'을 타고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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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뷰포인트] '여행'은 '스크린'을 타고 흐른다
  • 용원중 기자
  • 승인 2014.06.20 00: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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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Q 용원중기자] 본격적인 여름 휴가철이 다가오는 시기, 사람들은 여행을 꿈꾼다. CF 속 카피처럼 열심히 일했기에 떠나고, 일상 탈출의 쾌감을 누리기 위해 짐을 싼다. 느긋한 재충전, 고독과 긴장 속에 자신을 몰아넣는 것 모두 여행이 주는 기쁨이다. 이런 여행의 감성을 자극하는 영화들이 극장가를 가득 채우고 있다. 영화 속 배경과 공간은 작품의 풍미를 배가하는 장치가 되고, 영화의 메시지로 역할한다.

◆ 리스본, 프라하, 로마, 모나코오래된 시간을 머금은 유럽 도시들

파스칼 메르시어의 동명 베스트셀러를 원작으로 한 ‘리스본행 야간열차’(감독 빌 어거스트)는 계획되지 않은 여행 그리고 책이라는 환상적인 조합이 눈길을 끈다.

▲ '리스본행 야간열차'

뻔한 일상을 보내던 고전문헌학 교사 그레고리우스(제레미 아이언스)는 어느 날 위험에 처한 여인을 구해준다. 그녀는 ‘언어의 연금술사’라는 포르투갈 책 한 권과 15분 후 떠나는 리스본행 열차 티켓 한 장만을 남긴 채 홀연히 사라진다. 작가 아마데우 프라두의 행적을 좇는 그레고리우스의 마법 같은 여정이 시작되는 가운데 관객들 역시 그와 함께 리스본으로의 여행을 떠나는 듯한 설렘을 경험하게 된다.

영화는 스페인에 둘러싸인 쇠락한 나라 포르투갈의 수도 리스본을 배경으로 한다. 그레고리우스는 1930~60년대 살라자르 독재정권에 맞서 싸우는 젊은 포르투갈 지성들의 시간을 돌아보면서 자신이 잊고 있던 삶에 대한 열정과 의지를 되찾는다. 가스등 조명이 명멸하는 리스본의 푸른 밤, 반듯하게 지어진 현대 도시가 갖지 못한 오랜 시간의 이야기들을 리스본의 낡고 좁은 골목 여기저기에서 만날 수 있는 것도 이 영화의 또 다른 매력이다.

▲ '베스트 오퍼'

‘시네마 천국’의 쥬세페 토르나토레 감독과 영화음악의 거장 엔니오 모리코네가 참여한 ‘베스트 오퍼’는 최고가로 미술품을 낙찰시키는 세기의 경매사이자 예술품의 가치를 알아보는 감정인 버질 올드먼(제프리 러쉬)이 고저택에 은둔한 채 살아가는 의문의 여인 클레어(실비아 휙스)로부터 감정 의뢰를 받으면서 인생의 변화를 맞이하는 내용을 담았다.

‘베스트 오퍼’는 이탈리아 북부 산악지대에 자리한 불차노를 비롯해 로마, 밀라노, 파르마와 오스트리아 빈, 체코 프라하 등 유서 깊은 도시들에서 촬영이 이뤄졌다. 특히 클레어가 좋아했던 카페 ‘나이트 & 데이’로 가는 길에 펼쳐지는 ‘유럽의 보석’ 프라하 구시가지 광장의 풍광은 다시금 배낭을 꾸려보고 싶은 욕망을 자극한다. 68년 프라하의 봄이 일어났던 그 장소에는 천문시계, 틴 성당, 구시청사, 얀후스 동상이 모여 있다.

▲ '그레이트 뷰티'

파올로 소렌티노 감독의 ‘그레이트 뷰티’에서 40년 전 소설 한 권을 끝으로 더 이상 책을 쓰지 못하는 로마 사교계 유명인사 젭(토니 세르빌로)은 이제 파티와 예술에 흥미를 느끼지 못한다. 65세 생일파티가 지난 어느 날, 첫사랑 엘리자의 부고 소식을 들은 뒤 아름다웠던 기억을 반추하기 시작한다. 영화는 오래된 로마의 건축물과 미술품 사이를 유영한다. 소렌티노 감독은 2000년이 넘도록 ‘현재’로 지내온 늙고 무력한 로마 그리고 로마를 닮은 한 남자의 시간을 그레이트 뷰티(위대한 아름다움)라고 본다.

할리우드 여배우에서 모나코 왕비로 극적인 삶을 살았던 그레이스 켈리 이야기인 ‘그레이스 오브 모나코’를 통해선 모나코의 매력에 빠질 수 있다. 쪽빛 지중해에 면한 언덕에 세워져 절경을 자랑하는 모나코는 매년 개최되는 포뮬러원과 카지노로 전세계 관광객을 끌어들이는 관광대국이다. 모나코의 구불구불하게 난 언덕길을 거닐다보면 그레이스 켈리의 사진과 삶을 소개하는 표지판이 거리 곳곳을 장식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영화는 켈리가 머물던 모나코 궁전을 비롯해 잘 알려진 명소보다 60년대 모나코의 한적하고 이국적인 비경을 오롯이 건져 올렸다.

▲ '그레이스 오브 모나코'에서 드러난 모나코의 비경
▲ '그레이스 오브 모나코'

'마네의 제비꽃 여인: 베르트 모리조'는 19세기 프랑스 인상파 화가 마네(멜릭 지다)와 인상파 최초의 여류화가 베르트 모리조(마린느 델테르메)의 뜨거운 예술적 교감과 작품 세계를 다뤘다. 당시 프랑스의 자연환경과 옛스러움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는 프랑스 중부 리무쟁의 도시 리모쥬와 서북부 브르타뉴 지역에서 대부분 촬영이 이뤄졌다. 휴양지로도 잘 알려진 이 곳은 세기의 예술가들이 거쳐간 공간으로 시간이 멈춘 듯한 느낌을 선사한다.

▲ '마네의 제비꽃 여인'

◆ 한국영화, ‘경주’와 ‘산타바바라’를 찾다

재중동포 감독 장률의 ‘경주’ 한 남자의 1박2일 시간여행이다. 베이징대 교수 최현(박해일)이 7년 전 들렀던 경주의 찻집에서 본 춘화가 떠올라 경주로 향한 여행에서 묘한 분위기의 찻집 여주인 윤희(신민아)를 만나는 이야기를 담았다. 영화는 느릿한 천년 고도 경주의 낮과 밤을 배경으로 만남과 헤어짐, 삶과 죽음에 대해 깊이 있는 통찰을 시도한다. 자전거를 빌려 여행하는 최현의 눈을 통해 펼쳐지는 한적한 보문호수, 밤하늘 아래 고고한 자태를 드러내는 고분릉, 작고 오래된 가게의 모습은 선연하다.

오는 7월 17일 개봉하는 로맨스영화 ‘산타바바라’는 미국 캘리포니아의 유명한 와인 도시 산타바바라를 끌어들였다. 광고사 AE 수경(윤진서)과 낭만주의 음악감독 정우(이상윤)는 광고 프로젝트를 위해 산타바바라로 출장을 떠나고, 평소 로망이었던 영화 '사이드웨이' 속 와이너리(와인 제조공장)를 찾아간다.

산타바바라는 화창한 기후와 비옥한 토양 덕분에 나파밸리와 더불어 미국 캘리포니아주를 대표하는 와이너리이자 세계적인 와인 생산지로 거듭났다. 이 작품은 한국영화 최초로 산타바바라 와이너리 내부 촬영을 지난해 5월 감행했다. 특히 '사이드웨이'에 등장한 와이너리 히칭포스트와 파이어스톤의 아름다운 풍광을 고스란히 담아냈다.

▲ '경주'(왼쪽)와 '산타바바라'

‘경주’와 ‘산타바바라’의 홍보를 담당하는 언니네홍보사 이근표 대표는 “전자가 죽음과 삶이 건강하게 공존하는 경주라는 도시의 신비로운 기운, 고유 분위기가 지배적인 영화라면 후자의 마법 같은 사랑이 샘솟을 것 같은 도시 산타바바라는 썸타던 두 남녀가 사랑에 확신을 하게 되는 계기 역할을 톡톡히 한다”라며 영화 주제와 배경의 연관성을 설명했다.

◆ “풍경 소개보다 영화 스토리, 분위기에 녹아드는 게 가장 중요”

과거 영화팬들은 ‘로마의 휴일’에서 오드리 헵번과 그레고리 펙이 스쿠터를 빌려 돌아본 로마 곳곳의 명소들에 매료돼 로마행을 열망했다. 금문교 등 샌프란시스코 정경을 십분 드러낸 히치콕 감독의 ‘현기증’이나 맨해튼 5번가 티파니 매장, 옐로캡, 스튜디오와 같은 뉴욕의 풍경을 아메리칸 드림과 매끄럽게 연결시킨 ‘티파니에서 아침을’은 예술성 짙은 (도시)홍보영상 역할을 톡톡히 했다.

이동미 여행작가는 “세계 곳곳을 여행한 국민이 많아진 요즘, 해외 명소와 이국적 풍광을 영화에 담아내는 것만으로 관객을 소구하긴 힘들다”며 “스토리나 분위기에 녹아드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 '티파니에서 아침을'(사진 위)과 '베를린'

이작가는 좋은 예와 나쁜 예를 들었다. 독일 음악가가 이스탄불 여행 도중 현지 뮤지션들을 만나 얻은 영감을 음악으로 만드는 과정을 엮은 음악 다큐멘터리 ‘크로싱 더 브릿지’의 경우 스토리, 음악과 절묘하게 어우러지는 배경이 이스탄불을 더욱 신비롭게 만들었다. 블루 모스크와 같은 구시가 내 유명 장소뿐만 아니라 젊은 세대가 즐겨 찾는 신시가지 중심 탁심과 도심의 뒷골목, 보스퍼러즈 해협 크루즈 선상 위 연주장면을 보며 자신이 여행했던 순간을 반추했다.

반면 독일 베를린에서 로케이션을 한 한국영화 ‘베를린’은 분단 이데올로기에 갇힌 나머지 매력적인 도시 베를린을 칙칙하고 스산한 공간으로 훼손했다. 그는 “베를린은 전세계 도시 중 가장 핫하며 창의적이고, 열기 넘치는 도시다. 그런데 올드한 프레임에 베를린을 가두다보니 현재의 얼굴을 놓쳐버려 정작 영화나 배경에 대한 흥미를 떨어뜨렸다”고 비판했다.

여행 속에서 누군가는 자유를 찾고, 또 누군가는 성찰의 시간을 통해 자아와 마주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여행을 꿈꾸며, 여행같은 삶을 소망한다. 오늘도 그들은 2시간만이라도 현실을 잊은 채 여행을 떠나기 위해 극장으로 향한다.

goolis@sortsq.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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