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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간막후](2) 뮤지컬 '시카고' 성기윤, '인간'에 대해 생각하는 극을 꿈꾸다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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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간막후](2) 뮤지컬 '시카고' 성기윤, '인간'에 대해 생각하는 극을 꿈꾸다 (인터뷰)
  • 이은혜 기자
  • 승인 2015.12.02 11: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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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자 Tip!] 오랜 시간 같은 뮤지컬에 여러 번 출연한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뮤지컬 ‘시카고’에는 2000년에는 앙상블로, 2007년부터는 메인으로 꾸준히 출연하고 있는 배우 성기윤이 있다. 성기윤은 자신이 하는 극의 연기를 통해 진짜 하고 싶은 이야기가 뭔지, 해야 할 이야기가 뭔지 계속해서 찾아가고 싶어 한다.

[스포츠Q(큐) 글 이은혜 · 사진 이상민 기자] 뮤지컬 ‘시카고’는 오랜 시간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 받아온 뮤지컬계의 스테디셀러다. 한국 공연도 마찬가지다. 앙상블의 호흡과 메인들의 화려한 무대 매너는 매 시즌을 맞이할 때마다 화려해지고 완벽해지는 모습을 보였다. 올해 12번째 무대를 맞이한 ‘쇼 뮤지컬의 정석’ 뮤지컬 ‘시카고’에는 혼란스러운 당시 배경과는 어울리지 않는 듯 하는 인물이 존재한다.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만 거짓이 아닌 ‘각색된 진실’을 내뱉는 변호사 ‘빌리 플린’이다.

27일 오후 ‘시카고’의 화려한 무대가 펼쳐지는 신도림 디큐브아트센터에서 실질적인 관심은 돈 뿐이지만 ‘내게 소중한 것은 사랑 뿐(ALL I CARE ABOUT IS LOVE)’이라고 노래하는 시카고 최고의 변호사, ‘빌리 플린’을 연기하는 뮤지컬 배우 성기윤을 만났다.

 

◆ 뮤지컬 ‘시카고’의 15년을 함께하고 있는 성기윤, “본질에 가까운 우리 ‘시카고’”

성기윤은 뮤지컬 ‘시카고’ 한국 공연의 2000년 초연 당시 앙상블로 참여 한 것을 시작으로 빌리 플린까지 15년을 함께하고 있다. ‘시카고’의 앙상블부터 메인까지 모두 경험한 성기윤은 자신이 연기하는 ‘빌리 플린’에 대해 보기에는 사기꾼처럼 보일 수 있지만 자기가 할 수 있는 사실만을 이야기하며 절대 거짓말을 하지 않는 변호사로 소개한다. 그는 이번 시즌에는 웃음기가 싹 빠진 빌리 플린을 만날 수 있을 거라고 자신감 넘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뮤지컬 ‘시카고’는 시간이 더해질수록 깊이가 깊어지는 극 중 하나다. 메인을 비롯해 앙상블들까지 큰 변동이 없는 ‘시카고’의 캐스트는 깊어지는 팀 케미의 완벽한 1등 공신 중 하나로 꼽을 수 있을 정도다.

성기윤은 ‘시카고’의 앙상블들이 만들어주는 이야기가 재미있다고 설명했다. 오히려 메인인 자신이 앙상블들에게 기대서 갈 때가 있다고 솔직한 답변을 내 놓은 그는 “템포를 잡아주고 이야기의 중심을 잡아주는 앙상블들의 힘 때문에 아마 다른 메인들도 더 마음 편하게 연기 할 수 있는 부분이 있는 것 같아요”라고 ‘시카고’ 앙상블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날 인터뷰를 통해 성기윤은 아쉽게도 ‘시카고’ 내한 팀의 공연을 보지 못했다고 말을 꺼냈다. 그러나 곧 연습 시작 당시 외국에서 온 크리에이터들이 남긴 칭찬의 말을 언급하며 뿌듯한 표정을 감추지 않았다.

“극의 이야기와 중심을 잡아가고 있는 건 오히려 너희들이 훨씬 낫다는 거예요. 시카고 크리에이터들이 우리 공연에 대한 자부심이 굉장하거든요. 왜냐하면 이 앙상블들과 메인들이 ‘시카고’라는 공연을 너무 좋아해서 여기에 오면 자기들의 창의적이고 발전적인 시도들을 마음껏 할 수 있는 거죠. 그런 면에서 봤을 때 제가 보지는 못했지만 감히 우리가 하고 있는 ‘시카고’가 훨씬 더 본질에 가깝다고 생각해요”

 

◆ 앙상블에서 메인 그리고 무대 크루... 아쉬움 남는 작품은 ‘남한산성’

앞서 뮤지컬 ‘시카고’의 앙상블에 대해 칭찬을 아끼지 않던 성기윤 역시 앙상블을 도맡아하던 시절이 있었다. 성기윤이 첫 메인으로 무대 위에 선 작품은 2003년 초연작 ‘라스트 파이브 이어스(last five years)’였다. 성기윤은 자신의 첫 주연 작품을 이야기하며 감회에 젖은 듯한 표정을 쉽게 감추지 못하며 그 작품에 대해 ‘행복한 공연’이었다고 표현했고 공연이 남긴 향수를 떠올렸다.

‘라스트 파이브 이어스’로 첫 메인을 화려하게 꾸며낸 성기윤의 다음 작품은 무엇이었을까. 그는 또 한 번의 메인이 아닌 아동극 ‘인어공주’에서 무대를 움직이는 크루를 선택했다. 성기윤은 메인이 아닌 무대 뒤 크루를 선택한 이유에 대해 첫 메인 이후 들떠 있던 자신의 태도를 솔직하게 털어 놓았다.

“약간 붕 떴었어요. 첫 주연을 맡은 뒤 ‘그럼 이제 내가 뭘 하게 될까. 이제 앙상블 하면 안 되나?’ 이런 이상한 생각들이 들기 시작 하더라고요. 그래서 일부러 무대 크루로 들어갔어요. 좀 가라앉히려고. 그래서 무대 밑에서 국립극장만한 배를 밀었죠. 그렇게 해서 좀 가라앉히고서야 원래 저로 돌아 왔죠.”

성기윤은 첫 메인 작품에 이어 제일 아쉬운 작품도 언급했다. 성기윤은 아쉬움과 애정이 남는 작품으로 창작극 ‘남한산성’을 꼽았다. ‘남한산성’에서 성기윤은 인조를 연기하며 관객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지만 정작 본인은 만족을 모르는 듯 했다. 그는 ‘남한산성’에서 연기한 인조라는 캐릭터에 대한 아쉬움을 털어 놓았다. 성기윤의 아쉬움은 캐릭터의 ‘처음’을 함께하며 느낀 미묘한 감정들에서 나오는 듯 했다.

“아쉬움과 애정이 남는 건 ‘남한산성’의 ‘인조’ 예요. ‘남한산성’은 창작 초연 작품이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캐릭터의 색깔과 인물 자체를 아무것도 없던 상태에서 함께 만들어 냈어요. 굉장히 애정이 남다르게 남아요. 아쉬운 작품이고, 아쉬운 캐릭터예요. 그 캐릭터를 생각하면 어딘가 뭉클한 부분이 있어요.”

 

◆ 불가항력 ‘스타 마케팅’... “순수한 열정 가진 작품에도 애정 주셨으면”

뮤지컬계의 최근 동향은 누가 뭐라고 해도 ‘스타 마케팅’이다. 명작들, 창작극, 라이선스 극 등 장르 구분 없이 아이돌 내지는 유명 가수, 배우들의 이름이 빠지는 경우가 드물고 그들의 지명도를 이용해 극을 적극적으로 홍보한다.

배우 성기윤은 뮤지컬 업계의 ‘스타마케팅’에 대해 ‘경제적 활동을 위한 어쩔 수 없는 불가항력’이라고 지적하면서도 “나쁘다고 할 수 없다”고 자신의 생각을 분명히 밝혔다.

성기윤은 “분명히 가치가 있어요. 마케팅을 통해 ‘뮤지컬’이라는 걸 처음 접하는 관객 100중에 1명이라도 뮤지컬을 따로 찾아서 보게 되는 관객이 있을 거예요. 그것을 믿고 있기 때문에 좋은 현상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온전히 탓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라고 말하며 ‘스타 마케팅’을 통해 뮤지컬을 접하는 관객들에게 전하는 진심 어린 부탁의 말도 잊지 않았다.

“정말 순수한 열정으로 올라가는 작품들에 대해서도 애정을 가져주셨으면 좋겠어요. 결국 ‘상업 예술’이라는 건 관객 없이 만들어 질 수 없어요. ‘스타 마케팅’한 공연이 잘 되는 만큼 순수한 열정을 가진 좋은 작품이 흥행에 성공할 수 있는 문화가 형성이 되길 바라고 있어요.”

뮤지컬 업계는 시간이 지나며 늘 발전했다. ‘스타 마케팅’을 비롯해 다양한 마케팅들이 성공을 거두고 수준 높은 극들이 많아지며 배우들과 연출가들, 극단들의 여건이 좋아지고 있다고들 말 한다. 그러나 여전이 이 업계의 바닥은 이름을 알리기도, 진출하기도 쉽지가 않다. 여전히 많은 뮤지컬 배우 지망생들이 경제적 여건 때문에 무대를 떠나고, 무대에 오르지도 못하고 발길을 돌리는 경우도 수두룩하다.

현재 부산의 한 대학교에 출강을 하며 뮤지컬 배우를 꿈꾸는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성기윤은 이러한 현실을 누구보다 확실하게 느끼고 있는 듯 했다. 성기윤은 스스로를 ‘뮤지컬 낀 세대’라고 지칭했고, 자신이 강의하는 학생들, 뮤지컬 배우라는 꿈을 갖고 노력하고 있는 지망생들이 갖는 미래에 대한 두려움에 대해 ‘인생의 목적’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성기윤은 대기업에 들어가는 게 인생의 목적일 수 없다는 이야기를 꺼냈다. 성기윤은 “지금 그들에게 해 주고 싶은 이야기는 이 일을 자기 인생의 목적으로 삼지 말라는 거예요”라고 말하며 미래에 얻게 될 ‘행복감’에 대해 생각하라고 전했다.

“자기 인생의 가치는 분명히 다르게 있을 거예요. 뮤지컬을 앙상블로 시작해서 이름을 얻기가 힘든데, 그 이름을 얻는 게 진짜 목표인거예요? 이름 얻은 다음엔? 그러니까 이걸 통해서 과연 자기는 어떤 행복감을 얻을까에 대해서 생각을 했으면 좋겠어요. 내가 지금 어디 아무도 모르는 곳에 쳐 박혀 있다는 생각이 들어도 갈 수 있어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보면 자신의 삶의 목표는 분명히 다른 곳에 있을 거예요.”

 

◆ 앙상블에서 메인까지, ‘단계’를 거친 배우의 자부심

최근 몇 년 사이 뮤지컬에 대한 대중적 관심도가 높아지고 많은 창작극들과 라이선스 극들이 생겨났다. 극의 성공과 실패의 여부를 떠나 많아지는 작품들로 인한 활발한 오디션들은 뮤지컬 배우를 꿈꾸는 지망생들에게는 한줄기 희망이 되고 있다. 그러나 오디션이 활발해지며 ‘단계를 밟아 가는’ 신인들이 부족해지고 있다는 지적을 피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성기윤은 고등학교 2학년 시절 시작한 극단 생활을 시작하며 연기를 배웠다. 이후 대학에 진학하며 본격적으로 ‘연극’에 대해 공부하기 시작했고 앞서 밝혔듯 앙상블부터 메인까지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 올랐다. 이런 그에게 ‘앙상블’은 남다른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성기윤은 앙상블의 의미를 메인의 뒤에서 호흡을 맞춰주고 극을 받쳐주는 역할로 한정하지 않았다. 그는 제작진을 포함해 극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들을 앙상블로 지칭하며 메인인 자신을 ‘그 중 말 많은 역할’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이어 ‘부족한 단계’를 밟아나가고 있는 친구들에게 “자긍심이 생겼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꺼냈다.

“지금 앙상블 하고 있는 친구들이 자신을 앙상블 취급하는 걸 싫어해요. 자기가 지금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 자긍심이 좀 생겼으면 좋겠어요. 저는 지난 시절을 돌아 봤을 때, 제 스스로가 자부 할 수 있는 건 앙상블을 하고 있을 때나 메인으로 하고 있을 때나 제 노력의 차이는 없다는 거예요. 그건 없어요. 그냥 여건이 달라졌을 뿐이죠.”

성기윤은 자신의 공연을 보고 나서 관객들의 어떤 반응을 기대하고 있을까. 그의 바람은 소박하지만 깊이가 있다. 성기윤은 본인이 하는 연극이 인간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수 있는 시작이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여름에는 덥고 겨울에는 추운 것이 당연하지만 여름에는 시원해야 하고 겨울에는 따뜻해야 하는 세상. 성기윤은 자신의 취향이 무엇인지 제대로 모르고 소위 ‘대세’를 따라가는 대중문화 관람 등을 이야기하며 사람이 살아가며 필요한 생각과, 살아가면서 지켜야 할 가치들에 대해 생각할 시간을 주고 싶다고 전했다.

[취재후기] 성기윤은 생각이 깊은 배우다. 본인은 자신을 ‘책도 많이 안 읽고 생각만 많다’고 표현했지만 그가 뮤지컬을 비롯한 대중문화를 생각하는 자세는 한결같이 진지했다. 인터뷰가 끝나기 직전 그는 ‘꿈’이야기에 ‘아동 극장’을 만들고 싶다는 이야기를 전했다. 인터뷰가 모두 끝난 뒤에도 이어진 아동 극장 이야기에서 그는 조금 더 구체적인 이야기를 꺼냈다. 성기윤이 로비에서부터 극장이 시작되는, 건강하게 맛있는 아동극 공연을 관객들에게 제공할 수 있는 날이 꼭 오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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