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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Q스페셜] 생태계 바꾸는 '우리리그'의 MLB 영웅4, 류현진-강정호-박병호-김현수의 '행복한 야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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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Q스페셜] 생태계 바꾸는 '우리리그'의 MLB 영웅4, 류현진-강정호-박병호-김현수의 '행복한 야구'는?
  • 민기홍 기자
  • 승인 2016.01.04 16: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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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워+친화력 '한국형 모델' 제시, KBO리그 가치 높여 유망주 시각변화 유도... KBO리그 생태계도 재편

[스포츠Q(큐) 민기홍 기자] 야구팬들에겐 행복한 한 해가 될 것이 확실하다. ‘한 야구’한다는 이들이 전부 모인 메이저리그(MLB)에 한국인만 다섯이다. 이미 톱클래스 반열에 오른 추신수(34·텍사스 레인저스) 외에 류현진(LA 다저스), 강정호(이상 29·피츠버그 파이리츠)가 성공적으로 안착했고 이번 겨울엔 박병호(30·미네소타 트윈스), 김현수(28·볼티모어 오리올스)까지 미국땅을 밟았다.

약속이나 한 걸까. 소속팀도 절묘하게 배치됐다. 아메리칸리그(AL) 동부에 김현수, 중부에 박병호, 서부에 추신수가 있고 내셔널리그(NL) 중부에 강정호, 서부에 류현진이 버틴다. 팬들로선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시나리오다. 2016년엔 오전 내내 한국 선수들의 활약상이 전파를 탈 것이다. 야구에 중독될 시간이 왔다.

부산고 졸업 후 미국으로 직행한 추신수를 제외한 4인방은 ‘KBO리그는 수준이 낮아서 안 된다’는 편견을 보기 좋게 뒤집었다. 이들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결코 깨뜨릴 수 없는 장벽을 뜻하는 '유리천장'을 부순 위대한 선구자들이다. 이들은 얼마나 그리고 어떻게 한국야구 지형도를 바꿔놨을까.

◆ 파워와 친화력, 한국형 모델 제시

타율 0.287, 15홈런 58타점. 이렇게 잘해낼 줄 몰랐다.

강정호는 아시아 내야수의 패러다임을 바꿨다. 지저분한 볼끝 즉, 테일링이 심한 패스트볼에 고전할 것이라는 예상을 엎고 승승장구했다. 그는 피츠버그의 중심타선이었다. 아롤디스 채프먼(뉴욕 양키스)의 시속 100마일(161㎞) 광속구도 잡아당겨 안타로 만들었다. 크리스 코글란(시카고 컵스)의 '무릎 태클'로 시즌을 마치지 않았다면 더 큰 사고를 칠 수도 있었다.

마쓰이 가즈오는 미국 진출 이전 해인 2004년 세이부 라이온즈에서 140경기 타율 0.305 33홈런 84타점을 기록했다. ‘천재’ 소리를 듣던 이 스위치히터 내야수는 MLB 9년간 통산 630경기 0.267 32홈런 211타점을 올리는데 그쳤다. 니시오카 쓰요시는 미네소타 트윈스에겐 기억하고 싶지 않은 이름이다. 2011년 지바 롯데 마린스에서 0.346 11홈런 59타점을 기록했던 일본 국가대표는 2년간 71경기 0.215 홈런 없이 20타점만 기록하고 짐을 쌌다.

강정호는 왜소하고 장타력이 떨어진다는 아시아 내야수에 대한 선입견을 떨쳤다. 앞선 두 선수들은 몸무게 80㎏ 언저리의 선수들로 장타는 엄두도 내지 못했다. 탄탄한 하체를 자랑하는 강정호는 리그 적응을 마치자 특유의 레그킥(타구에 힘을 싣기 위해 왼 다리를 높이 올렸다가 내딛는 동작)까지 가동하는 여유를 보였다. 유격수, 3루수를 오가며 생존력도 높였다.

▲ 김현수는 높은 출루율을 갖춘데다 일발 장타를 갖춘 선수로 자신을 포지셔닝하면 된다. [사진=볼티모어 오리올스 트위터 캡처]

이젠 박병호가 한국형 슬러거, 김현수가 한국형 교타자 모델을 제시할 때다. 첫인상을 잘 심어놓으면 후배들의 길도 열린다. 박병호는 타점에 특화된 마쓰이 히데키(은퇴)와는 다른 '전형적 거포' 면모를 보여줄 능력이 된다. 김현수는 내구성 좋고 기복이 없는 출루형으로 일발 장타까지 갖춘 선수. 아오키 노리치카(시애틀 매리너스)의 업그레이드 버전으로 자리매김하면 더할 나위 없이 좋다. KBO리그산은 기교, 정확성에 초점을 맞춘 일본과 달리 '파워'를 보유한 이미지를 갖는다.

무던한 성격으로 팀에 빠르게 녹아드는 점도 한국선수들의 특징이라 할 수 있다. 류현진과 강정호는 강남스타일에 맞춰 말춤을 추고 금세 후안 유리베, 스탈링 마르테 등 ‘국민 친구’를 만들어 현지 취재진들로부터 호평을 받았다. 유별나다 싶을 만큼 진지한 일본 선수들과는 사뭇 다른 광경이다. 박병호와 김현수도 친화력 하면 뒤지지 않는다.

◆ 스텝 바이 스텝, 유망주의 시각 변화 

KBO리그에 젊은 스타가 없다고 아우성이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 2009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준우승을 보고 야구를 접한 우수한 자원들이 넘쳐날 시기일 텐데 이들은 대체 어디로 사라진 걸까.

정영일, 이학주, 김재윤, 남태혁, 이시몬, 하재훈, 정수민, 안태경, 김동엽, 최지만, 김성민 등 수많은 특급 유망주들이 고교 졸업 후 국내 구단이 아닌 미국을 택했다. 모두가 박찬호, 추신수를 바라보며 청운의 꿈을 품었지만 누군가는 국내 유턴을 택했고 일부는 여전히 ‘눈물 젖은 빵’을 먹고 있다.

10대 후반의 고등학생은, 특히나 부모와 코칭스태프의 입김이 센 한국의 학생야구선수들은 프로가 무언지도 모르고 미국으로 향한다. 마이너리그는 미국 유망주 외에 쿠바, 멕시코, 푸에르토리코, 도미니카공화국, 베네수엘라 등 중남미 괴물들이 즐비한 곳이다. 운동에만 전념해도 잘될까 말까인 상황인데 이들은 언어, 음식, 문화 적응에도 어려움을 겪는다. 야구가 잘될 리 없다.

우수한 선수가 있다면 세계 어디든 스카우트를 파견하는 빅리그 구단들이다. 넷은 KBO리그서 차곡차곡 기량을 갈고 닦아 스카우트들이 한국을 찾게끔 만들었다. 성적으로 성실함으로 결과를 보여주자 LA 다저스는 한화 이글스에 2573만 7737 달러를, 피츠버그와 미네소타는 넥센 히어로즈에 1785만 2015 달러를 우선협상권을 따내기 위한 비용으로만 지불했다.

KBO리그에 들어오는 외국인 선수들의 기량이 수준급이다. 에스밀 로저스(한화), 헥터 노에시(KIA) 등은 한국행을 택하기 전 MLB 40인 로스터에 포함됐던 선수들이다. KBO 1군에서 프로페셔널이 무엇인지를 느끼고 영어를 공부하고 명예를 얻고 가도 결코 늦지 않다. 7년(구단 동의 얻는 FA) 또는 9년(완전 FA)을 버티더라도 여전히 20대 후반이다.

◆ 가까워진 MLB, 야구 생태계가 통째로 변했다

KBO리그 수출한 4인방은 박찬호, 추신수와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성인이 된 뒤 줄곧 ‘미국물’을 먹기 시작한, 다시 말해 미국식 야구를 하는 선배들과 달리 류현진, 강정호, 박병호, 김현수는 ‘우리리그’에서 뛰다 건너간 선수들이다. 마음만 먹으면 집 가까운 야구장을 찾아 직접 볼 수 있던 선수들이 최고무대에 나간다니 팬들도 더 애정이 생기게 마련이다.

3년새 넷씩이나 메이저리거를 배출한 수준 높은 한국야구는 이제 경기력에 걸맞은 행정력을 갖추기 위해 변화하고 있다. KBO는 지난해 12월 사상 최초로 팬과 함께하는 윈터미팅을 갖고 귀를 열기 시작했으며 10개 구단은 모기업에만 의존하는 구태의연한 경영법을 버리기 시작했다.

세이버매트릭스(야구를 통계학적, 수학적으로 분석하는 방법)를 도입해 세분화된 작전을 구사하고 주먹구구식 연봉산정방식을 지양한다. 자체육성사관학교인 BB아크(삼성)를 개장해 어린 선수들을 양성하고 뉴욕 양키스 출신의 지도자(쉐인 스펜서)를 영입해 필드 코디네이터라는 새로운 직함을 부여하는(넥센) 등 선진 팜 시스템을 구축하기 시작했다.

아름다운 구장을 자주 접하더니 대구 삼성라이온즈파크같은 팔각 모양의 참신한 경기장도 생겼다. 야구장을 운동장이 아닌 파크로 다듬어 수익구조를 개선한다. 디자인과 스토리텔링의 중요성을 알더니 구매하고픈 머천다이징 상품도 여럿 생겼다. '우리 선수들'의 수출로 MLB가 가까이 다가오자 생긴 변화의 흐름이다.

KBO와 구단뿐이 아니다. 야구 생태계를 구축하는 또 다른 주체인 각종 매체는 높아진 팬들의 눈높이를 충족시키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고 있다. 방송사의 중계기술은 날이 갈수록 고급스러워지고 있으며 미디어들은 독자들의 니즈를 충족시키기 위한 흥미롭고 세련된 콘텐츠들을 제작하는데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류현진, 강정호, 박병호, 김현수의 미국행은 단순히 야구 발전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한 해 매출(2014년 기준)만 90억 달러(10조6800억 원)에 달하는 세계 최고의 스포츠리그를 곁에 둔다는 건 한국 스포츠산업의 진화를 뜻하기도 한다. 130년 역사에 빛나는 MLB에선 경기력 외에도 배울 것이 넘쳐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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