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5-03 17:48 (금)
'응답하라 1988' 마지막회 마지막 장면 쌍문동 골목길 친구들의 모습, 드라마는 끝났지만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다 (뷰포인트)
상태바
'응답하라 1988' 마지막회 마지막 장면 쌍문동 골목길 친구들의 모습, 드라마는 끝났지만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다 (뷰포인트)
  • 원호성 기자
  • 승인 2016.01.17 08:1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스포츠Q(큐) 원호성 기자] '응답하라 1988' 마지막회의 배경이던 1994년, TV에서 크게 인기를 끌었던 프로그램이 하나 있었다. 이휘재를 일약 정상급 개그맨으로 만들어준 MBC의 'TV 인생극장'이다.

'TV 인생극장'은 '응답하라 1988' 마지막회에서도 잠시 등장한다. 은행에서 명예퇴직 당하고 퇴직금 명목으로 목돈을 만지게 된 성동일이 김성균·라미란과 함께 같이 이사가서 살 집을 선택하는 순간이다. TV에서는 이휘재가 "그래 결심했어"라고 외치는 모습이 등장하고, 성동일 역시 이휘재처럼 김성균을 따라 당시 허허벌판에 가까운 경기도 판교로 이사를 하기로 결정한다.

그런데 'TV 인생극장'이 과연 성동일과 김성균의 이사를 보여주기 위한 시대적 장치에 불과했을까? 성선우(고경표 분)와 성보라(류혜영 분)의 결혼식, 그리고 2016년 현재 성덕선(이미연 분)과 최택(김주혁 분), 성보라(전미선 분)의 인터뷰로 나름 해피엔딩으로 끝날 줄 알았던 '응답하라 1988'은 마지막 순간 한 번 더 이야기를 비틀어낸다.

▲ '응답하라 1988' [사진 = tvN '응답하라 1988' 방송화면 캡처]

김주혁과 이미연은 이들의 추억이 아로새겨진 1988년과 쌍문동 골목길의 이야기를 하고, 드라마는 다시 고경표와 류혜영의 결혼 이후 쌍문동 골목길의 풍경을 그려낸다. 언제까지나 같이 살 것 같았던 쌍문동 골목길 식구들은 한 집씩 새로운 삶을 찾아 쌍문동을 떠나고, 이들이 모두 떠난 쌍문동 골목길은 폐허가 되고 나중에 재개발이 되어 이제는 과거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는 거대한 주상복합단지로 변해 버렸다.

그리고 '응답하라 1988' 마지막회의 진짜 마지막 장면. 20년 넘게 좁은 골목길에서 서로 어깨를 맞대고 마주보며 살던 가족들이 모두 떠나고 폐허가 된 집을 둘러보던 카메라는 마지막으로 최택(박보검 분)의 집을 둘러보다 박보검의 방문을 연다. 놀랍게도 그 방에는 1988년 아직 고등학생이던 최택(박보검 분), 성선우(고경표 분), 김정환(류준열 분), 류동룡(이동휘 분)이 이불을 덮고 앉아 있었고, 방문을 연 사람은 18세의 성덕선(혜리 분)이었다.

류준열은 혜리를 보자 "특공대 빨리빨리 안 다니지?"라고 인상을 쓰고, 박보검은 언제나처럼 환하게 웃으며 "왔어?"라고 인사를 건넸다. 이동휘는 새우깡을 먹으며 "덕선이 왜 이제 오니?"라고 말하고, 고경표는 "덕선아 빨리 와"라고 미소를 짓는다. 그 모습에 혜리는 "니들이 왜 여기 있어"라고 눈물을 흘리고, 류준열은 그 말에 "왜 여기있긴? 우리가 어딜 갔는데? 빨리 와 '영웅본색' 빌려놨어"라고 소리를 지른다. 그리고 이들은 다 같이 이불을 덮고 '영웅본색' 비디오를 본다.

이 모습은 바로 '응답하라 1988' 1회의 첫 장면에 나왔던 바로 그 모습이다. 다만 1회의 첫 장면과 마지막회의 마지막 장면은 같으면서도 서로 그 모습이 미묘하게 다르다.

1회에서는 방에 이불 대신 바둑판이 있었지만 마지막회에서는 바둑판은 방 한 구석에 치워져 있고 대신 친구들이 이불을 덮고 있었다. 또한 1회에서 이동휘는 영화를 보며 새우깡을 뜯다가 새우깡을 사방에 쏟았지만 마지막회에서는 '영웅본색'을 틀기 이전에 이미 이동휘가 새우깡을 먹고 있었다.

또한 1회에서는 혜리와 류준열이 영화를 보다 싸우고 박보검은 이동휘가 쏟은 새우깡을 치울 걸레를 가지러 자리를 비웠고, 박보검이 자리를 비운 상태에서 어머니들이 밥을 먹으라고 부르는 소리를 들었다. 그러나 마지막회에서는 이동휘가 이불 속에서 방귀를 뀌고 그로 인해 소란이 벌어졌을 때 어머니들이 저녁을 먹으라고 부르는 소리를 듣는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달라진 장면은 박보검의 집을 나서서 친구들이 각자의 집으로 돌아갈 때다. 1회에서는 고등학생의 모습으로 마지막회에서는 어린시절 꼬마의 모습으로 각자 집으로 돌아간다.

▲ '응답하라 1988' 1회에 등장한 쌍문동 골목길 친구들의 모습(좌측)과 '응답하라 1988' 마지막회의 마지막 장면에 등장한 쌍문동 골목길 친구들의 모습(우측) [사진 = tvN '응답하라 1988' 방송화면 캡처]

'응답하라 1988'의 마지막회 마지막 장면에 대해 어느새 40대 중반의 나이가 된 성덕선(이미연 분)이 따스한 웃음과 정이 넘치던 그 시절의 쌍문동 골목길을 추억하는 것이라고 해석하는 것이 가장 타당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여기에 이휘재의 'TV 인생극장'처럼 두 가지의 선택이 있었다면 어떨까?

'응답하라 1988'은 마지막까지도 '어남류'의 류준열과 '어남택'의 박보검 두 사람을 두고 치열한 '남편찾기'를 벌였고, 그 결과 박보검이 혜리의 최종 남편으로 선택됐다. 그리고 모든 이야기를 끝낸 시점에서 '응답하라 1988'은 다시 이야기가 처음 시작하던 시점으로 이야기를 되돌렸고, 다시 돌아간 1988년의 풍경은 실제 있었던 일과는 서로 미묘하게 달라져 있었다.

물론 이런 변화는 30년에 가까운 세월의 흐름이 만들어낸 '기억의 왜곡'이 불러온 차이겠지만, '응답하라 1988'이 하나의 이야기를 끝내고 'TV 인생극장'에서 이휘재가 또 다른 선택을 했을 때의 삶을 보여주듯 다시 조금씩 달라지는 1988년으로 돌아가 쌍문동 골목길 친구들의 조금씩 달라질 또 다른 선택과 그로 인해 달라질 삶을 암시한다고 볼 수도 있지 않을까?

미국 시인 로버트 프로스트는 이휘재의 'TV 인생극장'에도 모티브가 되었을지 모르는 그의 시(詩) '가지 않은 길(The road not taken)'에서 숲 속으로 나 있는 두 갈래 길 중 사람들이 덜 밟은 길을 택했고 그것이 내 운명을 바꾸었다고 말했다.

'응답하라 1988'은 20회라는 긴 시간을 거쳐 성덕선이 최택하고 맺어지는 하나의 이야기를 모두 펼쳐냈다. 그렇다면 마지막회의 마지막 장면을 통해 암시한 되돌아간 1988년에는 또 다른 선택들이 친구들의 운명을 바꾸고 새로운 삶으로 인도했을지도 모른다. 드라마는 여기서 끝나지만 이야기는 다시 새롭게 시작되는 것이고 그 이야기를 만들어나가고 완성하는 것은 이제 드라마 제작진이 아닌 시청자들 각자의 몫이 될 것이고 말이다.

도전과 열정, 위로와 영감 그리고 스포츠큐(Q)


주요기사
포토Q