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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진정한 춤꾼 최인영② 서른넷 인생을 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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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진정한 춤꾼 최인영② 서른넷 인생을 말하다
  • 박영웅 기자
  • 승인 2014.07.15 10: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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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자 Tip] 내가 아닌 남을 위해, 그리고 개인이 아닌 전체 퍼포먼스를 위해 춤을 춰 세상을 즐겁게 하는 이들이 있다. 바로 ‘백업 댄서’들이다. 철저하게 스타들의 뒤편에 서 있는 이들은 무대의 주인공이 아니다. 너무 뒤에만 서있다 보니 ‘스포트라이트’ 또는 ‘스타’라는 단어와도 멀게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음지의 세계에서 성공을 거둔 진짜 춤꾼이 있다. 바로 최인영(34. 호서예술전문학교) 교수다. 그는 무려 15년을 전문 댄서로 활약하면서 이 바닥 '산전수전'을 다 겪으며 진정한 춤꾼으로 거듭났다. 그러면서 전문 댄서의 애환은 물론 진정한 묘미 그리고 성공하는 법도 어느 순간 깨달았다. 이런 그가 말하는 '진정한 춤꾼'이란 확실히 세인의 이목을 잡아끌만한 무엇인가가 들어 있었다.

 

[스포츠Q 글 박영웅기자· 사진 최대성기자]  이쯤이 되면 '춤꾼' 최인영 교수의 개인스토리가 궁금해진다. 진정한 춤꾼으로 평생을 살아온 최인영. 그 삶은 만만치 않은 시간의 연속이었다. 마냥 좋아서 춤을 추기 시작한 그의 진짜 재미있는 인생 스토리를 살펴보자.

◆춤이 마냥 좋았다

최인영 교수의 '춤꾼'이야기의 시작은 초등학교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는 초등학교 2학년 시절부터 몸을 움직이며 춤 동작을 좋아하는 아이를 넘어 남다른 춤의 재능을 보였다. 이에 부모님들도 그를 적극적으로 지원해 줬고 그는 한국무용을 배우기 시작하면서 춤의 맛을 알아가기 시작했다. 이후 예고를 거쳐 '한국예술종합학교'(이하 '한예종') 한국무용 학과 1기로 대학생이 된 후에는 백업 댄서의 길로 나서며 현실 속에서 춤을 추기 시작했다. 평생이 춤과 연결된 삶이었다. 이런 삶의 원동력은 역시 '춤이 좋아서'였다.

▲ 최인영 교수는 연예인들과의 수많은 작업으로 폭넓은 대인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어릴 때부터 춤이 마냥 좋았어요. 초등학교 당시 서태지와 아이들, 룰라, 듀스 등 방송에서 나오는 가수들의 춤을 마냥 따라 췄죠. 자연히 주변 사람들이 춤으로 나가야 하는 아이로 인식하더라고요. 그래서 부모님들도 적극적으로 지원해 주셨고 이런 것이 바탕이 돼 대학입학과 동시에 20살이라는 어린 나이부터 전문 백업 댄서가 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전문 백업 댄서의 길로 들어서 최인영 교수는 이때부터 소위 말해 '치고 나가기' 시작했다. '더 크로우'라는 당시 최고의 백업 댄서팀을 시작으로, 박진영, 지뉴션 등의 댄서팀에서 활약을 했고 각종 광고 섭외가 연이어 들어왔다. 그뿐만 아니라 자신의 주 전공인 한국무용 공연까지 소화하며 전문 춤꾼으로서 모양새를 갖춰나갔다.

"운이 좋았던 것 같아요. 백업 댄서의 길로 들어서자 많은 기회가 연이어 들어왔죠. 비록 일이 들어오는 것에 비해 많은 돈을 벌지 못했지만 춤을 추는 춤꾼이라는 관점에서는 가장 배부른 시기였던 것 같아요."

 

◆춤꾼으로서 '힘든 시기'

춤꾼으로 승승장구하던 최인영 교수. 그에게도 시련이 다가왔다. 순수한 춤꾼으로 행복을 느끼며 살아온 그에게 우리네 현실에서 흔히 벌어지는 치열한 경쟁과 주변의 질시와 시기가 밀려온 것이다. 어쩌면 너무 순수하게 춤만 춘 그가 넘어야 할 현실의 과정이었다. 하지만 그에게는 너무 무겁고 힘든 시기로 다가왔다.

"춤은 힘들지 않았어요. 돈을 못 벌어도 아껴 쓰면 됐죠, 하지만 제일 힘든 건 역시 사람들 때문이었죠. 너무 어린 연차에 많은 일을 하다 보니 주변의 시기와 질투가 있었던 것 같아요. 소위 말하는 왕따를 경험하기도 했어요. 마음이 너무 아팠죠. 솔직히 포기할까도 생각했고 무려 6개월간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춤을 멈췄어요. 당시는 정말 너무 힘든 시기였어요. 그래도 지금 생각하면 포기하지 않았던 것이 다행이었습니다."

 

이 시기 최인영 교수에게는 또 하나의 애환이 있었다. 바로 백업 댄서로서의 길이냐 아티스트인 무용가로서의 길이냐를 선택하는 갈림길에 서 있었기 때문이다.

"백업 댄서가 좋았고 이 일을 사랑했죠. 하지만 예술 무용가로서의 욕심도 있었죠. 특히 무용 쪽은 내 감정을 표현해 낼 수 있다는 부분이 있어서 좋았어요. 창작한다는 느낌, 예술을 한다는 느낌. 백업 댄서로서는 도저히 느낄 수 없는 것들이죠. 그러니 고민은 당연한 것이었다고 생각해요. 그러나 어느 순간 춤은 하나라고 느껴지더라고요. 이런 마음을 먹자. 백업 댄서와 무용이라는 두 가지 길을 동시에 가는 용기와 체력이 생기더라고요. 춤꾼의 힘으로 극복해 낸 셈이죠(웃음)"

 

◆포기하지 않으면 반드시 성공한다

모든 것을 포기하지 않고 힘든 고비를 넘기니 최인영 교수에게도 다시 빛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백업 댄스계에서 인정을 받는 춤꾼으로 올라서기 시작하면서 많은 유명 연예인들의 협업 제안이 잇따랐다.

최인영 교수의 춤꾼 이력은 화려하기 그지없다. 예술 댄스와 방송 댄스 영역에서의 이력은 그가 대한민국에서 몇 안 되는 유능한 춤꾼이라는 사실을 인증한다.

그는 예술댄스 분야에서 홍대 거리 미술전 오프닝 퍼포먼스, 서울 대 천주교 성당 '새 천년을 향한 비상' 창작 안무, 2010년 Amos 헤어쇼 출연, 2013년 세계조정 선수권 대회 오프닝 출연 등 셀 수 없이 많은 창작 무용 및 공연을 소화해 냈다.

방송댄스 분야에서는 더욱 다채로운 이력을 자랑한다. 최인영 교수는 안재욱, HOT, 박진영, GOD , 원투, 채연, 지누션, 임창정, 긱스 등 잘나가는 가수들의 뮤직비디오와 콘서트 댄스 교습 및 안무를 도맡았으며 김범수 일본 사이타마 도쿄 콘서트 및 방송, 김현중 일본 도쿄 스타디움 콘서트, 안재욱 일본 투어, 이문세 세계 투어 등 국외에서의 활약상 또한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화려한 족적을 남겨왔다.

"포기하지 않고 인내심을 갖고 달려오니 성공이라는 결실을 보는 것 같아요. 춤꾼으로 살면서 많이 힘들고 고통스러운 시간도 많았죠. 하지만 다 이겨내니 춤꾼의 삶을 선택한 제 자신이 자랑스러운 것 같아요. 이젠 춤꾼으로서 새로운 도전을 하고 싶어요. 후배들을 위한 춤꾼, 늙어서도 제자들에게 존경받는 춤꾼이 되는 것 말이죠."

[취재 후기] '춤꾼' 최인영 교수. 그는 백업 댄서라는 직업을 한 단계 끌어올린 이 시대 최고의 춤꾼 중 한 사람으로 손색이 없었다. 백업 댄서라는 자부심과 이를 후배들에게 이식하려는 그의 모습에서 대한민국 백업 댄스 분야의 미래가 얼마나 밝은지 절감할 수 있었다.

dxhero@sportsq.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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