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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답하라 1988’ 라미란, 이보다 '재밌을' 수 없다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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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답하라 1988’ 라미란, 이보다 '재밌을' 수 없다 (인터뷰)
  • 연나경 기자
  • 승인 2016.02.03 07: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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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자 Tip!] 배우 라미란은 지난 달 종영한 tvN 금토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서 쌍문동 치타여사 ‘라미란’ 역을 맡았다. 그는 남편 김성균(김성균 분), 아들 김정봉(안재홍 분)·김정환(류준열 분)과 단칸방에서 살다가 수집벽이 있던 아들 김정봉의 올림픽 복권 당첨으로 졸부가 돼 이사를 가는 인물이다. 라미란은 남 몰래 돈 때문에 힘들어하는 이일화(이일화 분)에게 봉투를 건네는 등 이웃을 돕는 모습으로 따뜻한 이웃의 정을 그려냈고, 썰렁 개그를 좋아하는 남편, 공부에는 영 관심 없는 첫째아들, 시크한 막내아들을 누구보다 사랑하는 엄마의 마음을 대변해냈다.

[스포츠Q(큐) 글 연나경 기자·사진 이상민 기자] ‘응답하라 1988’의 여운이 채 가시지 않은 지난 달 말, ‘쌍문동 치타여사’ 라미란을 만났다. 부모세대 역할의 배우들 틈에서 류동룡(이동휘 분)의 엄마 조수향(유지수 분)과 함께 ‘서울말’을 썼던 라미란의 평소 말투에는 ‘치타여사’의 잔향이 남아 있었다.

◆ ‘아줌마’ 역할 14개의 주인공, “대본에 충실하지만 매번 다른 캐릭터 만들려고 해”

▲ '응답하라 1988' 종영 뒤 기자간담회에 참석한 배우 라미란 [사진=스포츠Q(큐) 이상민 기자]

데뷔 이후 라미란은 ‘응답하라 1988’을 포함해 ‘막돼먹은 영애씨 시즌 14’, ‘수상한 가정부’ 등 14개의 작품에서 ‘아줌마’ 역할을 맡았다. 하지만 라미란이 만들어내는 아줌마 캐릭터는 보통 드라마에 나오는 수다스럽거나 우악스러운 모습이 아닌 조금씩 다른 느낌의 ‘아줌마’였다.

“‘응답하라 1988’ 촬영이 애드리브가 많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은데, 대부분 대본 안에 있는 것이라 써주시는 대로 연기해요. 이미 ‘아줌마’로 시작을 했기 때문에 특별히 아줌마 역할을 맡았을 때 준비하는 것은 없고, 배역의 상황에 충실하려고 노력해요. 드라마 속 아줌마 캐릭터는 대부분 비슷한데, 그걸 비껴가려고요. 연기하는 저도 힘들고, 보시는 분들도 지겨우실 것 같아서요.”

그런 라미란은 ‘응답하라 1988’에서 ‘아줌마’로 제대로 망가졌다. 배우마저 내일이 없는 것처럼 '하얗게 불태워야 했다'고 말할 정도였다. 라미란이 하얗게 불태울 수 있었던 이유는 ‘응답하라 1988’ 작가진의 디테일한 대본 때문이었다.

“응답하라 1988은 지문이 가지는 힘이 대단히 큰 작품이었어요. 치타여사 의상은 애초부터 ‘치타 무늬가 들어간 카디건을 입는다’ 등으로 대본 지문에 명기가 됐었어요. 설정이었죠. 의상 팀이 호피무늬 의상을 구하느라 재래시장을 전전했다고 들었고, 여름에 촬영을 시작해서 겨울이 됐는데도 여름 아이스 천으로 된 호피무늬 옷을 입고 촬영을 했던 기억이 나네요. 대본을 받으면 지문을 보고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을 많이 했어요. 연기 하면서 저 자신도 몰랐던 나를 발견했고요. 다른 드라마나 영화 할 때 보다 대본에 신선함이 있어서 좋았어요.”

신선한 '응팔' 작가진의 대본 속 지문 디테일이 빛난 장면 중 하나는 미란의 '전국 노래자랑' 에피소드였다. 극 중 미란은 5년 전 이일화, 김선영(김선영 분)과 함께 ‘들개들’로 전국노래자랑에 출전했으나, 긴장 완화를 위해 예심 전 술을 마시다가 예심에 참여하지 못했다.

그 뒤, 미란은 윤수일의 ‘황홀한 고백’으로 전국노래자랑에 다시 도전하지만, 계란 장수 아저씨와 녹음테이프가 바뀌면서 꿈을 이루지 못했다. 작가진은 라미란에게 '입반주를 하며 황홀한 고백을 부를 것'을 주문했고, 그는 극 중 미란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본 사람처럼 연기했다.

“전혀 웃긴 장면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사실 ‘입반주를 하며 노래를 부른다’라는 지문을 보고 어떻게 표현해야 하나 하고 마음이 덜컹 했는데, 극 중 미란이 얼마나 절실하고 떨렸을지 알았으니까. 5년 전에 선우 엄마 덕선 엄마랑 들개들로 나갔을 때 긴장된다고 술 먹고 예심도 못 거쳤잖아요. 혼자 이를 갈고 나와서 입반주를 하면서 까지 무대에 오르고 싶어했던 마음을 이해하고 연기에 임했어요."

◆ 치타여사, 운명의 정봉-정환 형제를 만나다? 결핍 없었던 ‘성균네 가족’

▲ '응답하라 1988' 종영 뒤 기자간담회에 참석한 배우 라미란 [사진=스포츠Q(큐) 이상민 기자]

라미란은 가족 미팅 전, ‘응답하라 1988’의 신원호 PD에게 아들의 외모에 대해 ‘기대하지 말라’는 말을 들었다. 아들인 정봉-정환 형제가 잘생긴 얼굴이 아니어서였다. 신원호 PD에게 농담을 건네며 아들들을 만난 라미란은 남편 김성균과 함께 결핍 없는 ‘성균네 가족’을 만들어갔다.

“잘생기고 젊은 배우가 아들 아니면 연기 안 하겠다고 농담했었어요. 그런데 안재홍과 류준열을 보는 순간 ‘외탁했나’ 싶으면서 진짜 닮은 거 있죠. 정말 재밌었어요. 못 생긴 건 못 생긴 건데, 보면 볼수록 괜찮은 친구들인 것 같더라고요. 못 생긴데 빠지면 답도 없다던데, 이미 많은 분들이 정환이와 정봉이에게 빠지신 것 같아요. (웃음)”

라미란은 김성균, 안재홍, 류준열과 결핍 없는 ‘성균네 가족’을 그려내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으로 ‘여권 신’을 꼽았다. 그는 이어 ‘쌍문동 태티서’ 이일화-김선영과 함께 한 장면에서는 5년 전 전국노래자랑에 함께 나갔던 ‘들개들’ 신을 언급했다. 주로 ‘남편 찾기’와 함께 전개됐던 따뜻한 가족 에피소드에 관한 것이었다.
(* 미란의 아들 정환은 미란-성균 부부의 일본여행 준비를 위해 여행사로 심부름을 간 뒤 엄마에게 여권의 영문 이름을 읽어달라고 했다. 하지만 미란은 영어를 읽을 줄 몰랐고 진실을 알게 된 정환은 엄마의 여권에 한글로 영어를 읽을 수 있도록 적어놓는 세심함을 발휘했다. 정봉은 아버지 성균으로부터 미란이 초등학교를 졸업한 뒤 15세 나이부터 일수꾼으로 활동했었다는 과거를 듣게 됐다.)

“‘여권 신’을 촬영하면서 생각지 못한 감정을 느껴서 새로웠어요. 미란의 상황이나 아들 정환의 세심함을 느끼고 ‘이런 감정인가’ 싶더라고요. 5년 전 ‘들개들’ 신은 재밌었어요. 신원호 PD가 세 사람을 상대로 수다 떠는 모습이 많이 나올 거라면서 평상에서 대화하는 신을 많이 강조해서 우리끼리 많은 시간을 보냈거든요. 우리끼리의 ‘케미’를 많이 살리려고 노력했고, 가장 단편적으로 우리의 케미를 보여줄 수 있던 신이었어요.”

가족들의 에피소드를 기억에 남는 장면으로 꼽은 라미란은 ‘응답하라 1988’이 가지고 있는 특별함도 칭찬했다. 신원호 PD, 이우정 작가의 전작 ‘응답하라 1994’와 ‘응답하라 1997’가 ‘남편 찾기’를 주제로 이야기가 전개됐다면, ‘응답하라 1988’은 전작에서도 많은 이슈를 만들어냈던 ‘남편 찾기’에 ‘쌍문동 골목길’의 다섯 가족 이야기를 추가해 잔잔한 반응을 얻었다.

“요 근래 보기 드문 드라마였어요. 보통 가족 이야기라고 해도 가족들이 뒤로 빠지고, 러브라인이 그려지면서 가족들은 배경이 되는 경우가 많거든요. 그런데 가족들의 에피소드가 전면에 나왔고, 가족마다 에피소드가 다뤄졌잖아요. 사실은 배우로서 이런 작품을 만나기가 쉽지 않아요. 주변인으로 소모되지 않고 중심인물도 되면서 부모 세대 이야기도 많이 나오니까 주변에서는 보시면서 많이 우신다고 하더라고요. 편히 볼 수 없는 드라마가 많이 없는데, ‘전원일기’ 같다는 이야기도 들었어요. 어머님은 이거 끝나면 뭐 보냐고 하셨고요. ‘전원일기’ 같이 가족 이야기가 그려지는 드라마도 많이 만들어주시면 좋지 않을까 생각해요.”

◆ “응답하라 1988!” 소녀 라미란은 ‘소년이고 싶었다’

▲ '응답하라 1988' 종영 뒤 기자간담회에 참석한 배우 라미란 [사진=스포츠Q(큐) 이상민 기자]

한참동안 ‘응팔’ 캐릭터 라미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니, 1988년을 살았던 실제 라미란이 궁금해졌다. 라미란은 1988년 당시 강원도에서 중학교생활을 하다 중3때 서울로 이사를 왔고, 지금은 완전 ‘여자 됐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어린 시절을 강원도에서 보냈어요. 등교를 하려면 산을 올라야 했고, 눈이 쌓이면 학교에 가지 못했죠. 중학교 1학년 때 숏컷을 했는데, 입학식날 동상에 걸렸었어요. 머리를 그렇게 자른 것 보면 터프하고 싶었나보더라고요. 반장갑 끼고, 반달가방 메고. 남학생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였어요. (웃음)”

강원도에서 서울로 이사 온 소녀 라미란은 서울의 모습을 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는 서울 상경 뒤, 강원도에서는 느끼지 못했던 ‘문화적 진보’를 느끼고 있었다.

“강원도에서는 1988년도를 온전히 느꼈다기보다는, 1970년대 감성을 느끼면서 살았던 것 같아요. 중, 고등학교 때 서울에 올라와서 지냈는데, 강원도 살 때 보다 진보된 시간에 살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응팔’ 세트장 보고도 그랬고요. 특히, 극 중 정환의 집이 졸부로 그려지다 보니 더 깜짝 놀랐어요. 그 당시에 이정도로 잘 살았나 싶을 정도였어요.”

◆ “주변에서 우박 쏟아지듯 들려오는 이야기, 즐겨야죠. 목표는 가늘고 길게”

▲ '응답하라 1988' 종영 뒤 기자간담회에 참석한 배우 라미란 [사진=스포츠Q(큐) 이상민 기자]

라미란은 지난해에만 ‘응답하라 1988’을 포함해 2개의 드라마, 2개의 영화에 출연해 존재감을 뽐냈다. 특히 ‘히말라야’와 ‘대호’는 지난 12월에 개봉해 한창 인기를 끌던 ‘응답하라 1988’의 덕을 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요즘 ‘떴다’고 많이 느끼고 있어요. 작년 ‘영애씨’ 하면서 ‘라과장’이라는 호칭으로 많이 불러 주셨는데, 요즘엔 ‘정봉이 엄마’ ‘치타여사’라고 불러주시면 돌아보게 되더라고요. 특히 나이 드신 분이 많이 알아봐주시는데, 감사하게 생각해요. 몸 둘 바를 모를 정도예요. 우연히 작품들이 한 시기에 개봉하고 방영을 해서 시너지가 발생한 것 같아요. 우박 쏟아지듯이 한꺼번에 이야기가 나오고 반응들을 느끼고 있는데 얼떨떨하죠. 언제 또 이렇게 될지 모르니 즐기려고요.”

네 개의 작품, 네 개의 역할. 배우로서 이미지 소비가 많다는 것에 대한 걱정이 있을 법 했다. 하지만 라미란은 ‘바닥이 드러날 때까지’ 일하고 싶어 했다. 배우 라미란의 목표는 ‘가늘고 길게’ 활동하는 것이란다.

“계속 쉬면서 다른 작품 언제 시작할까 하는 것 보단 지금이 훨씬 좋아요. 사실 지금 일을 하면서도 더 많은 갈증이 있어요. 그런데 보시는 분들이 저를 많이 알게 되면서 ‘질리는 게 아닐까’ 하고 부담스러운 게 있죠. 사실 올해 한 작품은 ‘영애씨’랑 ‘응팔’ 뿐인데 말이에요. 하지만 일은 해야 하는 것 같아요. 그래야 배우로서 살아갈 수 있으니까, 그렇지만 대중들이 질리지 않게 노력 해야겠다 싶어요. ‘쉬겠다’는건 건방진 생각이에요.”

“도드라지지 않게 어느 작품이든 있는 듯, 없는 듯 잘 스며드는 연기를 하는 게 꿈이에요. 정상에 올라가고 싶다는 생각은 많이 안 해봤고, 작품이 재밌고 이 일이 좋으니까 계속 하고 싶어요. 아줌마도 열 몇 번 해보고 히말라야에도 가보고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삶을 잠깐씩 살아보는 게 재밌어요. 이보다 재밌는 게 또 어디 있을까요?”

[취재 후기] 라미란은 인터뷰에서 유난히 누리꾼들의 반응을 자주 언급했다. “댓글을 많이 보시는 것 같다”고 이야기했더니, 악성 댓글과 선플이 섞여있는 수천 개의 댓글을 다 읽어본단다. 그가 댓글을 읽어보는 이유는 단순했지만 확실했다.

“댓글 읽는 거 재밌어요. 단순히 드라마를 보시는 분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볼 수 있고, 번뜩이고 아이디어가 반짝거리는 댓글들이 수천 개의 댓글 속에 숨어있었더라고요. 물론 정말 일부의 반응을 보는 거지만, 그걸 찾고 싶어서 다 보고 있어요. 욕이나 악플 이런 건 그냥 뭐, 넘겨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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