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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뷰포인트] 진화하는 '병맛 코드' 그 현주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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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뷰포인트] 진화하는 '병맛 코드' 그 현주소는?
  • 용원중 기자
  • 승인 2014.07.29 00: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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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Q 용원중기자] 복고풍 드라마 ‘응답하라 1997’ ‘응답하라 1994’ 시리즈로 정점을 찍었던 병맛 코드가 진화하고 있다.

병맛이란 ‘병신 같은 맛’의 줄임말로 이야기가 개연성 없이 황당하게 전개되거나 결말에 이르는 것을 뜻하는 신조어다. 병맛 코드의 작품들은 허를 찌르는 웃음으로 젊은 세대를 유인하며 이미 하나의 장르로 자리매김했다.

◆ 도발과 똘기의 병맛 드마라…만화적 설정, 과장된 캐릭터 필수

드라마 홍보사 틱톡의 권영주 대표는 “2011년 드라마 ‘최고의 사랑’에서 배우 차승원이 독고진 캐릭터를 병맛 느낌으로 표현하면서부터 히트했고 이후 진화와 다변화 과정을 겪고 있다”며 “병맛 코드의 매력은 기성 작품들에서 맛보기 힘든 도발과 똘기”라고 정의했다.

▲ '황금거탑'의 한 장면[사진=tvN 방송화면 캡처]

병맛 드라마는 만화적 설정이 필수다. 4차원 캐릭터와 과장된 표정연기가 뒤따른다. tvN '황금거탑'은 정통 병맛 드라마다. 군대보다 더 혹독한 거탑마을을 배경으로 이용주의 생고생 농촌 체험기를 엮은 이 수요드라마는 1화 ‘별에서 온 그놈’부터 ‘거탑’ 시리즈 특유의 재미와 농촌에서의 색다른 볼거리, 개성 넘치는 캐릭터들로 눈도장을 찍었다.

시골 땅을 담보로 영농대출을 받을 속셈으로 막연히 농촌으로 내려온 이용주, 자신의 밭에서 발견한 운석으로 인생역전을 꿈꾸는 최종훈을 중심으로 촌스러운 용모의 동네 슈퍼주인 백봉기, 매사 촌철살인의 사자성어를 구사하는 봉기의 외국인 아내 구잘, ‘평창 어우동’으로 불리는 다방 종업원 이수정 등 다양한 캐릭터들의 좌충우돌 에피소드가 쏟아진다.

◆ 로코 ‘운널사’ ‘연말결’ ‘고교처세왕’ 긍정 사례, ‘트로트의 연인’ 용두사미

병맛 코드는 뻔하디 뻔한 로맨틱 코미디물을 숙주로 해서 창궐한다. MBC 수목드라마 ‘운명처럼 널 사랑해’는 까칠하면서도 지고지순한 재벌후계자 이건(장혁)과 착하고 순진한 김미영(장나라) 커플의 좌충우돌 사랑 이야기다. tvN 금토드라마 ‘연애 말고 결혼’은 결혼 거부남 기태(연우진)와 결혼 집착녀 장미(한그루)의 계약연애 스토리다. 두 드라마는 코믹한 만화적 장치와 배우들의 능란한 연기, 탄탄한 대본으로 병맛 드라마의 매력을 한껏 끌어올리는 중이다.

▲ '운명처럼 널 사랑해'의 극중 장면[사진=MBC 방송화면 캡처]

tvN 월화드라마 ‘고교처세왕’은 형을 대신해 비밀리에 대기업 간부 노릇을 하는 고교생 이민석(서인국)과 계약직 사원 정수영(이하나)의 알콩달콩 연애담이다. 18세 고교생 본부장과 27세 여직원의 사랑은 그야말로 황당한 설정이다. 이를 4차원 커플의 코믹하고 유쾌한 분위기로 스리슬쩍 상쇄한다.

‘운널사’ ‘연애 말고 결혼’ ‘고교처세왕’이 병맛의 긍정적 사례라면 KBS2 월화드라마 ‘트로트의 연인’은 용두사미 케이스다. 트로트에 재능 있는 20대 가장 최춘희(정은지)가 망나니 천재 뮤지션 장현준(지현우)을 만나 트로트 스타로 거듭나기 위한 과정을 그린다. ‘님과 함께’ ‘고추’ 등의 노래 장면은 코믹 광고를 연상케 하고, 70년대 분위기 의상은 복고모드를 솔솔 풍긴다. 콩트인지, 만화인지, 일본 드라마인지 헷갈리는 이야기와 연출, 음악은 병맛 자체이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별다른 맛을 우려내지 못한다.

▲ '연애 말고 결혼'(사진 위)과 '트로트의 연인'

◆ 독립영화 ‘숫호구’ ‘족구왕’ 발칙한 상상력으로 병맛 대결

감성코믹 SF 연애판타지를 표방한 '숫호구'(8월7일 개봉)는 서른 살이 되도록 제대로 된 연애 한 번 못해본 숫호구 청년 원준(백승기)의 치명적인 연애 성장담이다. 한국 영화계의 반란을 일으키고 있는 C급 무비 ‘숫호구’의 ‘까똑 예고편’과 ‘아무도 추천하지 않는 충격의 관객 반응 영상’은 공개 직후 ‘세상에서 가장 웃긴 동영상’(좋아요 171만7255명), ‘왓챠’(좋아요 25만9348명), ‘패션감각’(좋아요 5만9336명)을 비롯한 인기 페이스북 페이지에서 자발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올여름 대한민국 5대 블록버스터’를 캐치 프레이즈로 내건 '족구왕'(8월21일 개봉)은 족구 외엔 딱히 잘하는 게 없는 평범한 복학생 만섭(안재홍)이 교내에서 사라질 위기에 처한 족구장을 사수하기 위해 교내 족구대회를 개최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다. 이 영화는 익살스러운 복합생 캐릭터의 매력을 담아낸 캐릭터 포스터와 티저 예고편으로 포털사이트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다.

▲ 영화 '숫호구'와 '족구왕'

발칙한 상상력의 두 독립영화는 '병맛 대결'이라 할 만큼 독특한 유머코드로 무장했다. 특히 2030 젊은 세대의 눈높이에서 그들의 삶을 리얼하게 그려내 깊은 공감을 이끌어낸다. ‘숫호구’는 연애와 인생 모두 무기력한 20대 청춘의 단면을, ‘족구왕’은 토익·학점만이 중시되는 스펙주의의 삭막한 현실을 유쾌발랄하게 직시한다.

◆ 병맛 드라마 ‘외모’ 강조, 영화는 ‘세련된 포장’ 치중

병맛 코드의 드라마·영화가 양산되며, 내용과 형식 역시 업그레이드되고 있으나 과거와 다른 미묘한 편차가 감지된다. 상업영화 못잖은 ‘족구왕’ 사례처럼 영화는 세련된 포장에 공을 들인다. 드라마는 미남 미녀스타를 전면에 내세우는데 혈안이다.

KT&G 상상마당 영화사업팀 진명현 팀장은 “병맛이나 오덕(오타쿠)은 찌질하고 저렴한 느낌이라 영화의 주 소비층인 여성 관객들이 싫어한다. 원래부터 거부감을 가진 사람들도 많다”며 “반면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인사이드 르윈’ ‘그녀’ 등 해외 저예산 다양성영화들은 고급스러운 아트버스터(예술+블록버스터)를 표방하면서 관객을 맹렬히 소구한다”고 전했다. 그에 따르면 병맛 영화라도 흥행 성공을 위해서는 대중적 스펙트럼을 넓게 정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비싸 보이고 세련돼 보이는 게 필수다.

▲ '고교처세왕' 서인국 이하나의 병맛 댄스

틱톡의 권영주 대표는 “남녀 주인공은 무조건 잘 생기고 예뻐야 한다. 채널 고정 상태에서 매주 봐야하는 게 드라마인데 주인공의 외모가 뛰어나야 병맛 코드와도 밸런스를 맞춘다”고 강조했다. 진 팀장 역시 “시청자들은 평강공주 심리다. 바보온달이 못 생기면 용납하질 않는다. 병맛 드라마에서도 커머셜한 지점이 중요시되고 있다”고 부연 설명했다.

역발상의 웃음으로 각광받았던 B급 정서의 ‘병맛’이 점차 대표적 기성 코드인 ‘화려한 외모’와 ‘부티 나는 포장술’을 동원하며 진화하고 있으니, 그야말로 아이러니다.

goolis@sportsq.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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