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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비Q토크] 컴퓨터 알파고, 이세돌과의 바둑대결에서 불계승…'미생'과 '응답하라 1988'부터 '스톤'과 '신의 한 수'까지 바둑을 그린 작품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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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비Q토크] 컴퓨터 알파고, 이세돌과의 바둑대결에서 불계승…'미생'과 '응답하라 1988'부터 '스톤'과 '신의 한 수'까지 바둑을 그린 작품들은?
  • 원호성 기자
  • 승인 2016.03.09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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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Q(큐) 원호성 기자] 체스(Chess)에서는 이미 오래 전 컴퓨터가 인간 최고수를 상대로 승리를 거뒀지만, 바둑만큼은 컴퓨터조차 계산하기 힘들 정도로 수많은 변수로 인해 컴퓨터가 인간을 능가할 수 없을 것이라는 말이 많았다. 하지만 9일 열린 이세돌 9단과 바둑 인공지능 프로그램 알파고의 대결에서 알파고가 186수만에 백 불계승을 거두며 드디어 컴퓨터가 바둑으로 인간 최강자를 이기는 이변을 연출했다.

알파고는 알파벳의 구글 딥마인드에서 개발한 컴퓨터 바둑 인공지능 프로그램으로, 수많은 기존 기보들을 통해 바둑에 대한 기초적인 학습을 한 후 자신과의 미러매치를 통해 스스로 기력을 향상시키는 인공지능을 지니고 있다. 

알파고는 중국 프로기사이자 유럽 바둑 챔피언인 판 후이 2단을 상대로 5전 전승을 거둔 후, 이번에는 인간계 최고수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이세돌 9단과 3월 9일부터 15일까지 연이어 다섯 차례의 대국을 가지게 됐다. 인간으로 치면 프로 2,3단 정도의 기력을 보유했다는 평가를 받는 알파고에 대해 이세돌 9단은 5전 전승으로 끝낼 것이라고 자신만만한 모습을 보였지만, 이세돌 9단의 흔들기 묘수에도 꿈쩍하지 않고 버텨낸 알파고에게 결국 186수만에 바둑돌을 던지며 1차전을 패배하게 됐다.

이세돌과 알파고, 인간과 컴퓨터의 세기의 바둑대결이 펼쳐지면서 평소 바둑에 관심없던 사람들조차도 이세돌과 알파고의 대결인 '구글 딥마인드 챌린지 매치'에 뜨거운 관심을 보이고 있다. 바둑은 19x19의 바둑판위에 검은돌과 흰돌을 번갈아 놓으며 집을 만드는 단순한 게임이지만, 드넓은 바둑판 위에서 바둑알들이 만들어내는 오묘한 변화와 깊이로 인해 오래전부터 인간의 삶과 흔히 비교되곤 했다.

◆ 바둑을 통해 인생을 배운다…tvN 드라마 '미생'과 '응답하라 1988'

▲ tvN 드라마 '미생'과 '응답하라 1988' [사진 = tvN '미생', '응답하라 1988' 방송화면 캡처]

2014년 tvN에서 방송된 드라마 '미생'은 바둑에 관심없던 젊은층들에게 바둑의 매력을 새삼 알려준 작품이기도 하다. 윤태호 작가의 동명웹툰을 원작으로 한 '미생'은 한국기원 연습생 출신이지만 결국 프로입단에 실패한 '장그래'(임시완 분)가 대기업 원인터에 입사해 조금 느려도 차분하고 진지하게 회사생활을 경험하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제목인 '미생(未生)'은 두 집을 짓지 못해 완전히 살아나지 못한 집을 일컫는 바둑용어인 동시에, 대기업에 입사하게 됐지만 계약직 파리목숨 신세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을 쳐야하는 주인공 '장그래'와 각기 다른 이유로 대기업의 부품이 되어 살아가는 회사원들의 어딘지 하나씩 결핍된 불완전한 삶을 지칭하는 말이기도 하다.

주인공인 장그래가 한국기원 연습생 출신의 바둑기사였고, 바둑 자체가 우리의 삶을 포괄적으로 담아내는 무대이다보니 '미생'은 원인터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을 '바둑'의 시선에서 바라보고 포용한다. '미생'을 보고 바둑의 룰을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겠지만, '미생'을 통해 바둑과 우리의 삶이 많이 닮아있고 바둑에서 배울 수 있는 것들이 많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다.

바둑이 주요 소재는 아니지만 '응답하라 1988' 역시 바둑을 상당히 비중있게 다루는 작품이다. '응답하라 1988'에서 주인공 최택(박보검 분)은 10대의 나이에 국제기전에서 우승하고, 천재 소년기사로 불리는 프로 바둑기사로, 실제 10대의 나이에 최연소로 데뷔해 10년 넘게 세계 바둑의 최고수로 군림했던 이창호 9단을 모티브로 만들어진 인물이다.

'응답하라 1988'에서 감정을 격렬하게 표현하지는 않지만 승부에서는 항상 절대 물러서지 않는 강한 승부욕을 보여주는 박보검의 모습은 '돌부처'라는 별명이 붙었던 이창호 9단의 모습을 그대로 가져오는 동시에, '응답하라 1988'의 중심 이야기인 성덕선(혜리 분)의 남편찾기에서 박보검이 류준열(김정환 분)과 치열한 승부를 벌이게 되는 것을 암시하기도 한다.

◆ 실제 바둑고수로 불렸던 조세래 감독의 데뷔작이자 유작이 된 '스톤'

▲ 영화 '스톤'

많은 관객이 들지는 않았지만 2014년 6월에 개봉한 故 조세래 감독의 데뷔작이자 유작이 된 영화 '스톤'은 한국에서 만든 가장 뛰어난 바둑영화 중 한 편이다. '스톤'은 프로기사의 꿈을 접고 내기바둑으로 살아가던 천재 아마추어 바둑기사 민수(조동인 분)이 조직보스인 남해(김뢰하 분)의 바둑선생님이 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려내는 작품.

'스톤'을 연출한 조세래 감독은 1993년에도 바둑을 소재로 한 '명인'이라는 영화의 연출을 준비했을 정도로 바둑에 관심이 많고, 또한 실제로도 상당한 바둑실력을 지닌 고수였다고. 아쉽게도 조세래 감독은 '스톤'을 완성한 후 개봉까지 기다리지 못하고 2013년 11월 세상을 떠나 57세의 나이에 처음 연출한 영화 '스톤'이 그대로 유작이 되어버렸다.

'스톤'은 바둑기사와 조직폭력배 보스의 만남과 이들의 인생을 바둑판 위의 한 수로 설명해나간다. 폭력배의 길을 걸어온 김뢰하는 자신의 인생을 새로운 바둑판 위의 첫 수처럼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고 싶어하고, 자신의 과거를 보는 듯 앞으로 나아가기를 포기하고 주저앉은 조동인에게 프로 바둑기사로의 새로운 도전을 권하며 그 역시 조직에서 은퇴를 선언하고는 조직의 후배들에게 살해당하게 된다. '스톤'은 실패와 좌절을 경험하며 삶을 포기한 청춘 조동인과 잘못된 삶을 살아오며 후회하는 중년 김뢰하의 삶을 바둑판 위에서 대비시키며 '미생' 못지않게 바둑을 통해 보여지는 인생의 성찰을 진지하게 담아낸다.

◆ 도박은 화투만 가지고 하는게 아니다…내기바둑 소재로 한 '신의 한 수'

▲ 영화 '신의 한 수'

정우성과 이범수, 안성기, 김인권, 이시영, 최진혁 등 화려한 캐스팅이 돋보이는 영화 '신의 한 수'는 아마도 한국에서는 '바둑'을 소재로 한 영화 중 처음으로 관객들에게 알려진 작품일 것이다. 개봉 자체는 '스톤'보다 한 달 늦었지만 '신의 한 수'는 바둑이 지니는 인생의 성찰보다 내기바둑이라는 소재를 내세워 한층 쉽고 흥미롭게 관객들을 바둑의 세계로 끌어들인다.

영화 '스톤'이나 드라마 '미생'이 바둑 대국 그 자체보다 바둑을 통해 보여지는 인생의 한 단면을 담담하게 펼쳐낸다면, 내기바둑을 소재로 한 '신의 한 수'에서 묘사된 바둑 대국은 수준이 높지는 않아도 매우 치열한 두뇌싸움으로 전개된다. 

'신의 한 수'는 화투로 하는 도박인 '섰다'와 '고스톱'을 가지고 치열한 도박사들의 세계를 그려낸 영화 '타짜'와 '타짜2'의 뒤를 잇는 도박영화다. 하지만 그 대상이 화투가 아닌 내기바둑이라는 색다른 소재로 결정되면서, '신의 한 수'에는 바둑의 세계가 단지 진지하게 인생의 성찰을 담아내는 것만이 아니라, 바둑 반상 위에서 인간들의 치열한 권모술수 역시 펼쳐진다는 것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마지막 대결이 바둑을 통한 진검승부가 아니라 폭력으로 해결된다는 점은 다소 아쉽지만, 정적인 두뇌스포츠라는 바둑 역시 보는 관점에 따라 격렬한 전쟁터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작품이다.

◆ 프로 바둑기사의 삶을 통해 바둑의 의미를 깨닫게 된다 '기성 오청원'

▲ 영화 '기성 오청원'

1993년 연출한 '푸른연'으로 '황토지'의 첸 카이거, '붉은 수수밭'과 '국두'의 장이모우와 함께 중국 5세대 영화감독을 대표하는 거장 중 한 명으로 꼽히는 티엔 주앙주앙 감독이 연출한 '기성 오청원'은 제목 그대로 현대바둑의 거목 중 하나인 오청원 9단의 삶을 스크린에 담아낸 작품이다.

오청원 9단(呉清源, 우칭위안)은 14살의 나이에 일본으로 바둑유학을 떠나 일본 바둑계의 거목인 세고에 겐사쿠(瀬越憲作) 9단의 문하로 바둑을 배웠고, 1933년 신포석(新布石)을 선보이며 현대바둑을 사실상 창시한 인물로 꼽힌다. 한국 바둑계의 거목인 조훈현 9단도 9살에 프로기사가 됐지만, 13살의 나이에 일본으로 건너가 세고에 겐사쿠 9단의 문하로 들어가 바둑을 배웠으니 오청원 9단과는 사형제 지간이 된다.

'기성 오청원'은 앞서 언급한 바둑 소재의 영화와 드라마 중 가장 지루한 작품이 될 것이다. 이안 감독의 '와호장룡'과 왕가위 감독의 '2046', 그리고 김기덕 감독의 '숨'에 출연하며 한국에도 잘 알려진 배우 장첸이 오청원 9단을 연기하는 이 영화는 오청원 9단이 세고에 겐사쿠 9단의 문하로 들어가 바둑을 배우는 이야기 위에 전쟁으로 인한 일본의 혼란한 시대상을 얹어내며 담담하고 차분하게 오청원 9단의 바둑세계를 풀어낸다. 바둑은 곧 인생이며, 인생이 바로 바둑이라는 바둑의 진리를 느끼게 해주지만, 한없이 차분한 연출로 인해 어지간히 바둑에 대한 관심이 없다면 버텨내기 쉽지 않은 작품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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