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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Q] '화려한 유혹' 정진영, "꾸준히 연구하길 원해. '수' 늘려갈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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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Q] '화려한 유혹' 정진영, "꾸준히 연구하길 원해. '수' 늘려갈 것"
  • 연나경 기자
  • 승인 2016.03.25 08: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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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자 Tip!] 지난해 10월 첫 방송을 시작한 MBC ‘화려한 유혹’은 범접할 수 없는 상위 1% 상류사회에 본의 아니게 진입한 여자가 일으키는 파장을 다룬 드라마다. 내용만 보면 통속극이라고 볼 법 하지만 드라마는 사건을 발생시킨 뒤 그 속에 출연하고 있는 인물들이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관찰하고, 서로에 대한 시선을 살피는 행위를 통해 같은 것도 다르게 표현하며 많은 사랑을 받았다. 그 선봉에는 다양한 감정을 드러내고 표현하는 ‘강석현’을 연기한 배우 정진영이 있었다.

[스포츠Q(큐) 글 연나경 · 사진 이상민 기자] 배우 정진영은 ‘브로맨스’ 연기의 대표주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1991년 작품 ‘닫힌 교문을 열며’부터 2001년 ‘킬러들의 수다’, 2000년대 초를 강타한 ‘달마 시리즈’ 외에도 2005년 이준기와의 열연이 돋보였던 ‘왕의남자’ 등 주로 남자배우들과 호흡을 맞췄다. 그런 그가 2012년 방송된 드라마 ‘사랑비’ 이후 오랜만에 멜로 연기에 뛰어들었고, 할아버지를 뜻하는 방언인 ‘할배’와 불어로 ‘매력적인 남자’라는 뜻의 ‘파탈’이 합쳐진 ‘할배파탈’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 “연구 필요한 캐릭터 주로 원해, 강석현에겐 ‘틈’ 있었다”

▲ '화려한 유혹'에서 강석현 전 국무총리를 연기한 배우 정진영 [사진= 스포츠Q 이상민 기자]

배우 정진영은 1988년 연극 ‘대결’로 데뷔한 뒤 거의 30년에 육박하는 시간동안 연기활동을 해왔다. 그는 ‘어려운 일’을 선택하고 ‘쉬운 일’도 어렵게 하면서 자신을 단련했다. 그래서 처음 ‘화려한 유혹’ 속 강석현을 만났을 때, 그를 ‘스테레오타입’의 인물이라고 단정 짓고 출연을 한 차례 고사하며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기 위한 원칙을 지키려고 했다.

“처음 제안을 받았을 때, ‘화려한 유혹’의 대본을 1편부터 4편까지 받았어요. 4편까지는 뻔한 악인이 나오더라고요. 이야기 자체도 새로운 이야기가 아닌 것 같았고. 그래서 합류하지 않겠다고 의사를 전했는데, 과거에 김상혁 감독하고 ‘동이’를 했었어서 친한 상태였어요. ‘술이나 먹자’고 해서 나가서 설명을 듣게 됐는데, ‘통속적인 소재라 뻔하게 보이지 않을 것이다. 강석현에게 다른 작품과 차별성이 있는 캐릭터가 될 수 있는 아픔이 있다’는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설명을 듣고, 강석현에게 파고 들어갈 틈들이 보여서 다시 강석현으로 살아보자고 생각했습니다.”

정진영이 말하는 강석현의 틈은 그가 강석현 화(化) 되기 위해 꼭 필요한 것이었다. 그는 강석현과 자신 사이를 가로 막고 있는 벽을 부수고 강석현이 돼서 청미(윤해영 분)를 사랑하고, 청미에게 느꼈던 감정을 신은수(최강희 분)에게 전이시켜야 했다.

“배우 개인이 있고 캐릭터가 있으면 두 사람 사이에 장벽이 있다고 비유를 합니다. 배우는 감정을 느끼고 표현하는 사람인데, 사이에 있는 벽을 무너트려야 캐릭터로 갈 수 있어요. 그렇기 위해서 필요한 게 틈인데, 틈을 보고 부수면 연기는 쉽게 풀립니다. ‘어떤 틈을 발견할 수 있는가’가 석현을 만들어가는 작업의 첫 번째 관건이었습니다. 물론 저도 틈이 안보일 때가 있어요. 배우마다 틈을 발견하는 것도 다르고요. 다른 배우가 강석현을 연기했다면 아마 저와 다르게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 “파격적 멜로연기? 상황대로 느끼면 되는 것…‘할배파탈’ 별명은 최강희 덕에 절로 생겨”

▲ '화려한 유혹'에서 강석현 전 국무총리를 연기한 배우 정진영 [사진=스포츠Q 이상민 기자]

정진영이 ‘할배파탈’이라는 별명을 얻게 된 이유에 빠질 수 없는 사람이 있다. 바로 복수를 위해 자신에게 접근했던 신은수 역을 맡은 최강희다. 극 중 강석현은 신은수를 향한 외사랑을 표현했고, 죽음이 임박했을 때도 신은수를 찾았다. 하지만 신은수가 그의 모습에 응답하지 않았기에 감정의 교류가 없어 연기에 어려움을 느꼈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정진영은 최강희의 눈을 보며 몰입했고, 최강희를 은수 자체로 생각하며 ‘할배파탈’을 향해 나갔다.

“최강희 씨가 눈이 정말 맑아요. 극 중 은수도 참 맑은 여자인데 세파에 시달리면서 독기를 품게 되잖아요. 최강희 씨한테도 ‘네가 눈이 예뻐서 연기하기가 참 좋다’고 말했어요. 최강희 씨가 나한테 뭐라고 하면 눈물이 나더라고요. ‘눈물을 흘리는 연기’가 아니라 진짜로.”

극 중 강석현은 35살이나 어린 여인과 결혼을 하고, 말년을 보내다 시한부 인생을 마감한다. ‘화려한 유혹’ 자체는 통속극이었지만 강석현을 둘러싼 설정들은 파격적이었고, 보는 시청자를 설득하는 작업이 필요했다.

“무리한 멜로잖아요. 결혼이 설득이 돼야 다음 이야기를 할 수 있어서 석현의 마음을 이해하고 은수를 사랑하려고 했어요. 실제로 석현으로서 은수를 사랑했고요. 그래도 제가 느끼고 표현했던 것들이 전달이 제법 됐는지, 시청자분들이 납득을 하시고 잘 받아들여주신 것 같고요. 제 생각보다 진한 멜로가 그려지기도 했어요. 은수와 만들어가는 달달한 장면들은 예상도 못했고요. 남자배우들이랑 연기를 주로 했는데, 50대에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멜로를 찍는 놀라운 일이 생겼네요.(웃음)”

직접 강석현과 신은수의 사랑이 이뤄지는 과정이 ‘무리’라고 표현한 정진영에게 힘든 점은 없었을까. 정진영의 말은 ‘연기 교과서’에나 있을 법한 말이었지만, 납득이 가는 말들이었다.

“배우들은 멜로연기 하는 것을 좋아해요. 순백의 감성을 전하기 때문이죠. 거추장스러운 치장이나 위장, 옷이 필요가 없어요. 그 상황대로 느끼고, 표현하면 되니까 연기 고민도 없었어요. 주시는 대본에 제시된 상황대로 느껴야 하는데, 곧장 석현의 감정이 은수로 향하는 게 아니라 청미로 시작되고, 청미를 가장한 은수로 옮겨가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석현의 마음을 은수에게 전할 수 있었습니다.”

◆ “얻은 것만 붙잡으면 ‘바보’된다…계속 연기자 정진영의 ‘수’를 늘려갈 것”

▲ '화려한 유혹'에서 강석현 전 국무총리를 연기한 배우 정진영 [사진=스포츠Q 이상민 기자]

‘할배파탈’로 ‘왕의 남자’ 연산군 못지않은 열렬한 사랑을 받은 정진영이 ‘화려한 유혹’을 통해 얻고 가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는 얻은 것에 대해 감사함을 보이면서도 ‘바보’가 되지 않으려고 애썼다.

“예상치 못한 관심과 사랑을 받은 것은 분명합니다. 경험해 보지 못한 멜로를 새롭게 하기도 했고. 하지만 그게 성공했다고 해서 한 번 더 그와 똑같은 것이 오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배우는 운명이 있다고 말하는데, 아무리 좋은 배역이 저한테 제안이 왔었다고 해도 다른 사람이 하는 경우도 많고, 다른 사람이 해서 잘 되는 경우도 많아요. 결국엔 제가 만나야 할 사람을 만나고, 해야 할 작품에 들어가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예전으로 돌아가서 다른 배역들도 맞이할 준비를 해야죠.”

차기작을 차근히 준비하고 있는 정진영은 다른 배역을 이전과 다르게 맡기 위해 50대가 된 뒤 연기 톤을 바꿨다. 연기 톤의 변화와 정진영만의 설득법은 시청자들에게 성공적으로 들어맞았고, 그의 남은 연기 인생 동안 어떤 방식으로 연기를 하게 될지 궁금증을 자아냈다.

“생을 마감할 때까지 연기를 할 수 있다면 영광스럽고 좋은 일이겠으나, 하고 싶다고 해서 기회가 주어지는 건 아닌 것 같습니다. 20대부터 50대를 모두 연기를 하며 거쳐 왔지만, 이제는 생계수단 이상의 뭔가가 있어야 그것이 제 연기의 원동력이 될 것 같아요. 대가를 생각하기 보다는 연구하고, 발견하며 연기를 하는 배우가 되려고 합니다. 요즘 바둑이 유행해서 생각해 본 건데, 바둑기사 프로도 1단부터 9단까지 있지 않습니까. 제 생각에 아직 저는 수가 그리 높지 않아서, 자꾸 해 보면 수가 더 늘 거라고 생각합니다.”

[취재후기] 정진영은 매너리즘에 빠지는 것을 싫어했다. 익숙해지고 쉬워지면 나태해진다는 이유에서였다. 스스로 연기를 하면서 새로운 과제를 불어넣고, 일부러 더 어렵고 복잡하며 입체적인 인물을 택했다. 어려운 길로 돌아가는 것이 어찌 보면 미련할 수 있다. 하지만 정진영의 방식은 그를 20여 년 동안 충무로와 브라운관에 머무르게 만들었고, ‘수’가 더욱 늘어났을 때의 모습을 기대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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