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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뷰포인트] '이순신 신드롬'과 '교황 앓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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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뷰포인트] '이순신 신드롬'과 '교황 앓이'
  • 용원중 기자
  • 승인 2014.08.18 08: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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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Q 용원중기자] 2014년 8월 대한민국 국민은 지독한 사랑에 빠졌다. 충무공 이순신과 교황 프란치스코가 그 사랑의 대상이다.

임진왜란 당시 진도 울돌목에서 단 12척의 배로 330척의 왜선에 죽기를 각오하고 맞서 승리한 충무공의 명량대첩을 다룬 영화 ‘명량’은 개봉 20일 만에 1500만 관객이라는 기적의 흥행 스코어에 바짝 접근했다.

▲ '명량'에서 이순신 장군 역을 맡은 최민식

빼어난 전략가로서의 면모 이전에 두려움과 고독에 직면한 인간 이순신에 초점을 맞춘 영화는 ‘난중일기’에서 옮겨온 “사즉생, 생즉사(죽고자 하면 살고, 살려고 하면 죽는다)” “장수된 자의 의리는 충을 쫓아야 하고 충은 백성을 향해야 한다”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남아 있사옵니다”라는 대사로 남녀노소 관객의 마음을 단박에 훔쳐 버렸다. 신념과 용기로 위기를 해결하고, 자신의 목숨보다 백성의 안위를 먼저 염려한 리더십은 우리 사회에 ‘이순신 신드롬’을 들불의 기세로 일으켰다.

4박5일 일정으로 지난 14일 방한한 프란치스코 교황은 공항에서부터 고급 리무진 대신 소형차 ‘쏘울’을 타는 소탈한 모습을 보이더니 어디를 가든 잃지 않는 푸근한 할아버지 미소로 ‘비바 파파(Viva Papa)’ 환호를 들었다. ‘교황 앓이’란 신조어까지 생겨났다. 세월호 유족과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를 진심으로 위로하고, 충북 음성 꽃동네를 방문해 사회적 약자들을 껴안고 연방 이마에 키스하는 등 교황의 낮은 곳을 향한 행보는 종교를 초월해 감동을 자아낸다.

“우리의 대화가 독백이 되지 않으려면 생각과 마음을 열어 다른 사람, 다른 문화를 받아들여야만 합니다” “물질주의의 유혹에, 이기주의와 분열을 일으키는 무한 경쟁의 사조에 맞서 싸우기를 빕니다” “모든 남성과 여성과 어린이의 존엄성을 모독하는 죽음의 문화를 배척하기를 빕니다” “외교는 가능성의 예술이며, 평화란 상호 비방과 무익한 비판이나 무력시위가 아니라 상대방의 말을 참을성 있게 들어주는 대화를 통해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잠들어 있는 사람은 기뻐하거나, 춤추거나, 환호할 수 없습니다”란 메시지는 SNS를 통해 일파만파로 퍼져가고 있다.

보수와 진보의 대립, 양극화된 계층간 격차, 세월호 침몰, 군 병사 구타사망사건 등으로 대한민국에 좌절했던 국민이 역사의 위인 이순신 장군과 현실의 성인 프란치스코 교황으로 인해 위로받는 중이다.

두 인물의 말은 유행어처럼 인기를 얻고 있으며, 관련 서적은 서점가에서 불티나게 팔린다. 이순신 장군 유적지인 충렬사, 통영, 하동과 진주 등에는 관광객의 발길이 이어진다. 포털사이트 다음에는 교황 관련 카페가 20개 넘게 생겨났으며 천주교 신자가 대거 늘어날 전망이라고 전해진다. 가히 팬덤(특정 인물을 열성적으로 좋아하는 문화현상)이다.

어느 스타 연예인보다 뜨거운 사랑이다. 전 국민을 사로잡았다. 왜일까. 이들의 정신이 한국사회를 일깨웠기 때문이다. 순도 높은 희생정신, 언행일치의 실천하는 양심, 자신에 대한 엄격함, 강자에 강한 반면 약하고 낮은 사람들을 향하는 충무공 이순신과 교황 프란치스코의 모습을 보며 스스로를 성찰하고, 우리 사회가 놓치고 있던 가치를 되돌아보게 됐다는 사람이 속출한다. 한편으로 그들에게 열광하는 가장 큰 이유는 우리에게 저런 지도자가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자칭 사회 지도층은 많으나 함량미달의 ‘한숨 유발자’들이 넘쳐나는 게 현실이다. 이러한 이유들로 인해 ‘이순신 신드롬’과 ‘프란치스코 앓이’는 한동안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goolis@sportsq.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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