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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테랑의 가치' 혼자보다 함께일 때 빛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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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테랑의 가치' 혼자보다 함께일 때 빛난다
  • 박상현 기자
  • 승인 2014.09.22 11: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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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종오·박태환·남현희 등 기대했던 개인전 금 실패…단체전서 명예회복

[인천=스포츠Q 박상현 기자] 어떤 분야에서 오랫동안 종사해 기술이 뛰어나거나 노련한 사람을 일컬어 '베테랑'이라고 한다. 우리 말로 풀어쓰면 숙련가라고 하지만 보통 '노장'이라는 말을 많이 쓴다.

그런데 이 노장이라는 말에는 산전수전 모두 겪은 전문가라는 뜻 외에도 '나이가 많다', '늙었다'라는 표현도 함께 들어가 있다. 듣는 사람에 따라서는 기분 나쁠 수도 있다.

하지만 베테랑, 노장의 힘은 결코 무시할 수 없다. 앞으로가 기대되는 유망주나 젊은 선수들로 팀을 이끌면 넘치는 패기에 무슨 일이든 잘될 것 같지만 위기의 순간을 넘기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지난 여름 국제축구연맹(FIFA) 브라질 월드컵에서 한국 축구대표팀이 그랬다.

이 때문에 사회에서 베테랑의 중요성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스포츠 현장에서도 마찬가지다.

이틀 동안 치러진 인천 아시안게임에서는 금메달이 기대됐던 베테랑 대신 2인자 또는 유망주들이 금메달을 획득했다. 하지만 정작 베테랑의 힘은 개인전이 아니라 단체전에서 나왔다.

▲ 진종오(오른쪽)가 21일 인천 옥련국제사격장에서 열린 인천 아시안게임 사격 10m 공기권총 단체전 금메달 시상식에서 개인전까지 2관왕을 차지한 김청용에게 태극기를 둘러주고 있다. [사진=스포츠Q DB]

◆ 아시안게임 개인전 불운 진종오, 큰 형님 리더십 보여주다

사격의 진종오(35·KT)는 세계사격선수권에서 50m 권총과 10m 공기권총 개인전 금메달을 휩쓸며 '슈퍼 그랜드슬램'을 앞뒀다. 올림픽과 아시아선수권, 세계선수권, 월드컵 파이널까지 개인전 2관왕을 차지했던 진종오에게 남은 것은 아시안게임 개인전 우승이었다. 모든 국제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지만 정작 아시안게임 개인전 금메달은 없었다.

하지만 이번에도 금메달은 진종오를 비껴갔다. 대회 첫날 50m 권총 개인전 결선에서 두번째로 먼저 떨어지며 7위라는 기대 이하의 성적을 냈다. 50m 권총 개인전 당시 감기몸살로 인한 컨디션 난조로 전혀 집중하지 못했다.

또 10m 공기권총 역시 개인전 결선에서 3명까지는 살아남았지만 7.4점을 쏘는 결정적인 실수 때문에 1-2위 결정전까지 나가지 못하고 동메달에 그쳤다.

그러나 진종오는 아우들을 다독거리는 리더십을 지녔다. 이대명(26·KB국민은행)과 김청용(17·청주 흥덕고)과 함께 치른 단체전에서 1744점을 합작하며 중국을 1점 차로 제치고 우승을 차지했다. 이대명이 578점으로 약간 부진했지만 무서운 신예 김청용의 585점과 진종오의 581점으로 근소한 차이로 우승을 차지했다.

진종오는 "고생한 대명이, 청용이와 식사를 하면서 단체전 금메달을 딴 기쁨을 나누겠다"며 "특히 청용이가 연습을 하면서 나를 많이 이겨 잘해낼 것이라고 믿었다. 새로운 영웅이 탄생했으니 더 많이 축하해달라"고 말했다.

김청용 역시 큰 형님에 대한 고마움을 나타냈다. "진종오 선배님과 결선에 올라가지 못했다면 이렇게 좋은 성적을 올리지 못했을 것"이라며 "선배님과 오랫동안 생활하고 싶기 때문에 더 열심히 해야 할 것 같다"고 존경심을 드러냈다.

▲ 남현희(오른쪽)가 21일 고양체육관에서 열린 인천 아시안게임 여자 펜싱 플러레 개인전 4강전이 끝난 뒤 대결을 펼쳤던 후배 전희숙을 안아주고 있다. [사진=스포츠Q DB]

◆ 맏언니 남현희, 펜싱 동메달 그쳤지만 단체전 기대

한국 여자 펜싱의 간판스타인 남현희(33·성남시청)도 이번 대회에서 금메달을 따내지 못해 아시안게임 플러레 개인전 3연패가 무산됐다. '주부 검객'인 그는 금메달을 자신의 딸에게 걸어주고 싶었지만 꿈으로만 남았다. 이와 함께 아시안게임 3회 연속 2관왕(개인전, 단체전)의 기록도 날아갔다.

사실 남현희의 몸상태는 현재 그다지 좋지 않다. 지난해 딸을 출산한 뒤 한동안 실전을 치르지 않았던 그는 지난 7월 수원에서 열렸던 아시아펜싱선수권에서는 후배 전희숙(30·서울시청)을 제치고 우승을 차지하긴 했지만 몸이 예전같지 않았다.

이유는 바로 부상 때문이었다. 지난 5월에 당한 부상 때문에 통증을 참고 아시안게임에 뛰었다. 무릎 외에 다른 부분까지 퍼지고 있어 최악의 상황이다.

그럼에도 남현희는 아픔을 꾹 참고 펜싱 4강까지 올랐다. 결국 전희숙에게 지긴 했지만 후배가 이긴 것으로 아쉬움을 달랬다.

남현희는 "후배들이 더 잘하면 굳이 자리를 차지하지 않아도 되지만 올해초 단체전에 집중해서 대회를 치르다보니 아직 내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피스트에서 선수들과 호흡을 맞춰 성과를 냈을 때 쾌감에 중독됐다"고 말했다.

이어 남현희는 "금메달을 달고 싶었지만 다른 선수가 아닌 한국 선수에게 졌기 때문에 동메달로 만족한다"며 "전희숙이 금메달을 따며 사기를 올렸으니 단체전에서도 분명 도움이 될 것"이라고 기대감을 드러냈다.

남현희의 말대로 아직 단체전에서는 그의 노련한 경험이 필요하다. 비록 개인전 우승은 놓쳤지만 24일 열리는 플러레 단체전이 남아 있다.

◆ 유도 맏형 방귀만, 도전은 끝나지 않았다

1983년생인 방귀만(남양주시청)은 현재 한국 유도대표팀의 맏형이다. 런던 올림픽 당시 맏형으로 금메달을 땄던 송대남(35·남양주시청)이 현역에서 은퇴, 남자부 코치가 된 뒤 자연스럽게 최고참의 지위를 물려받았다.

남자 73kg급에 출전한 방귀만은 이상하게도 아시안게임과는 인연이 없었다.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 출전하기도 했던 그는 31세로 유도 선수로는 적지 않은 나이지만 아시안게임은 이번이 첫 출전이다. 같은 체급에 김재범(29·한국마사회) 등 쟁쟁한 후배들이 너무 많았던데다 도핑 파문에 휘말리기도 하는 등 '비운의 유도가'로 불렸다.

방귀만은 '비운의 사나이'라는 꼬리표를 떼기 위해 고군분투했지만 아키모토 히로유키(일본)에 아쉽게 지도 하나를 받으며 패했다. 경기 종료 불과 14초를 남겨놓고 받은 지도 하나에 금메달이 좌절됐지만 이후 패자부활전 최종전과 동메달 결정전을 모두 승리하며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방귀만은 경기가 끝난 뒤 인터뷰에서 "나이가 많은 편이지만 다음 목표는 리우 올림픽이다. 체력이 뒷받침 된다면 끝까지 할 생각"이라며 :아직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이 많이 남았다. 아시안게임에서 동메달을 딴 계기로 더 열심히 준비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아직 방귀만의 아시안게임 금메달 도전은 끝나지 않았다. 그에게 단체전이라는 또 다른 기회가 남아있기 때문이다. 남녀 하나씩 걸려있는 단체전에 최광현(28·하이원), 김재범, 곽동한(22·용인대학교), 김성민(27·경찰체육단), 윤태호(30·인천시체육회), 이규원(25·한국마사회) 등과 함께 출전한다.

이미 10년 전 올림픽을 경험하는 등 굵직한 국제 대회를 모두 경험해봤던 그의 노련미가 다시 필요한 순간이다. 현재 유도가 금메달 3개로 호조를 보이고 있기 때문에 그의 활약에 따라 한국 유도가 아시안게임에서 일본 등 라이벌들을 제치고 당당하게 우뚝 설 수 있다.

tankpark@sportsq.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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