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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Q현장] 무관심 속 희망, 세팍타크로에 최소한 마중물만이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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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Q현장] 무관심 속 희망, 세팍타크로에 최소한 마중물만이라도
  • 박상현 기자
  • 승인 2014.09.22 19: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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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인기 넘어선 무관심 종목 설움에도 아시안게임 남자 더블서 2회 연속 준우승

[부천=스포츠Q 박상현 기자] 한국에서 세팍타크로라는 스포츠를 보는 두 가지 눈이 있다. "족구가 세팍타크로가 아니냐"고 반문하기도 하지만 대부분 사람들은 "그게 뭐냐"고 되묻는다.

세팍타크로가 족구인 것은 맞다. 우리나라의 족구 종목의 유래가 여러가지가 있다. 축구를 하다가 네트를 하나 놓고 배구처럼 즐겼다는 설도 있지만 1960년대 베트남 전쟁 때 파병나갔던 군인들이 세팍타크로를 접한 뒤 이를 국내로 들여온 것이라는 설도 있다. 군대에서 족구를 즐겨하는 것을 보면 두 번째 설이 맞는 것도 같다.

그러나 하나 확실한 것은 한국의 세팍타크로는 비인기 가운데 가장 비인기 종목이라는 점이다. 비인기라는 말로도 모자란다. 무관심, 외면이라고 말하는 것이 더 어울린다.

아무리 비인기 그늘 종목이라도 국내외에서 좋은 기량을 선보이고 훌륭한 성적을 낸다면 기업 후원이 따라붙기 마련이다. 하지만 세팍타크로는 그 어디서도 제대로 지원을 받아본 적이 없다.

기량이 우수하지 못해서 외면받는 것도 아니다. 1990년 베이징 아시안게임에 첫 정식종목으로 채택된 이후 광저우 아시안게임까지 금메달과 은메달 1개씩, 동메달 6개를 땄다.

한국보다 더 우수한 성적을 올린 팀은 태국(금 18, 은 5, 동 1), 미얀마(금 3, 은 7, 동 9), 말레이시아(금 3, 은 7, 동 3), 베트남(금 2, 은 4, 동 5) 등 종주국인 동남아시아 국가들 뿐이다. 역대 아시안게임에서 동남아시아 팀을 제외하고는 유일하게 금메달을 딴 나라가 한국이다.

◆ 종주국 미얀마에 맞서 팽팽한 접전, 값진 은메달

한국 남자 세팍타크로 대표팀이 더블 종목에서 다시 한번 의미있는 은메달을 땄다.

한국은 22일 경기도 부천실내체육관에서 열린 아시안게임 남자 세팍타크로 더블 결승전에서 미얀마에 0-2(19-21 18-21)로 져 금메달을 놓쳤다. 광저우 아시안게임에 이어 2회 연속 이 종목 은메달을 따내는 쾌거를 이루긴 했지만 다시 한번 미얀마의 벽에 막혔다.

아쉬워할 것은 없다. 미얀마는 태국, 말레이시아 등과 함께 세팍타크로 종주국이다. 축구로 따지면 독일이나 브라질쯤 되는 나라다. 이런 나라를 상대로 결승전에서 맞붙을 수 있는 실력을 가진 것만 하더라도 한국 세팍타크로의 위상을 알 수 있다.

더블 종목에 김영만(28·청주시청) 임안수(26) 정원덕(26·이상 고양시청) 등을 출전시킨 한국은 경기 초반부터 미얀마를 상대로 3점 정도 앞서나갔다. 1세트 초반 9-6까지 앞서나가며 광저우 아시안게임 당시 설욕전을 펼치는 듯 보였다.

하지만 미얀마에게 연속 공격를 허용하면서 9-8까지 쫓기는 등 결정적인 순간에서 미얀마에 약간 뒤졌다. 한국은 결정적인 순간에서 서브 실수가 나온 반면 미얀마는 한국의 공격을 막아내는가 하면 넣은 서브도 네트를 살짝 맞고 한국 코트로 떨어지는 등 행운도 뒤따랐다.

15-19까지 뒤진 한국은 수비가 좋은 장신의 임안수를 투입시켜 2개의 블로킹 득점을 성공시켜 따라붙은 뒤 다시 한번 김영만에게 공격을 맡겼지만 끝내 미얀마를 넘어서지 못했다. 19-20까지 팽팽한 접전을 벌이던 한국은 정원덕의 서브 실수로 1세트를 내줬다.

1세트 접전을 놓친 한국은 크게 흔들리며 연속 5실점을 하는 등 2-7로 뒤지며 사실상 경기를 내줄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상대의 서브 실책 등으로 13-16까지 따라붙은 한국은 블로킹 득점으로 반전의 기회를 만든 뒤 15-18에서 상대 서브 3개를 모두 공격 득점으로 연결시키며 18-18 동점까지 만들었다.

그러나 한국의 상승세는 여기까지였다. 서브권을 배구처럼 점수를 딸 때마다 주고 받는 것이 아니라 탁구처럼 세 차례씩 나눠서 하는 경기 운영방식이 한국에 불리했다. 하필이면 18-18 상황에서 서브권이 한국에게 넘어왔고 끝내 미얀마의 공격을 막아내지 못한 채 18-21로 2세트까지 내줘 금메달을 놓쳤다.

◆ 거액 용품지원? 꿈도 못꿔요

아시안게임에서 세팍타크로 종목 메달을 따는 것은 세계 최정상급 실력을 인정받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러나 한국 세팍타크로는 언제나 찬밥 신세다. 축구처럼 거액 용품 지원을 받거나 전지훈련을 가는 것은 꿈도 꾸지 못한다.

세계적 용품업체인 나이키와 2012년부터 2019년까지 8년 동안 연간 75억원, 총액 600억원의 거액 계약을 맺은 축구와 달리 세팍타크로는 그런 것이 없다. 거액 용품계약은 생각도 못할 일이다. 그러다보니 대표선수조차 유니폼 등 용품 지원을 제대로 받지 못한다.

정원덕은 결승전이 끝난 뒤 인터뷰에서 "남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비인기 종목이라 그런지 지원이 없다시피 하다"며 "유니폼 등 의류 지원도 열악하고 훈련도 돌아다니면서 하는 등 상황이 좋지 않다. 전용체육관이나 제대로 용품 지원만 되더라도 다음 아시안게임에서도 더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을 것"이라고 아쉬워했다.

이날 경기를 지켜본 김동춘(26) 충남 서천여고 코치는 "세팍타크로는 이미 아시안게임에서 여러 차례 메달을 땄을 정도로 실력은 정상급이지만 지속적인 지원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기업 후원 등 여러가지가 이뤄져야만 세팍타크로가 더 클 수 있다"고 안타까워 했다.

또 김 코치는 "대표팀 선수들도 용품 지원이 어렵다고 하소연하는데 하물며 학교팀은 어떻겠느냐"며 "학생들이 개인에 맞는 용품을 구입하면서 운동하는 등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운동을 한다. 사춘기 제자들에게 너무나 미안하다"고 말했다.

◆ 비인기·무관심이라도 희망은 있어요

이날 부천체육관에는 서천여고 세팍타크로 선수들이 함께 했다. 대표팀 선수 오빠들의 경기 장면을 지켜보면서 자신들도 언젠가 아시안게임 등 큰 무대에서 설 날만을 기다리고 있는 유망주들이다.

서천여고 세팍타크로팀은 여고부 최강을 자랑한다. 올해 전국학생대회와 회장기대회, 남녀종별대회까지 3관왕의 금자탑을 쌓았다.

주장 주찬양(18)은 자신이 처음 세팍타크로를 선택한 날을 기억한다. 그는 "비인기 종목이라고는 하지만 졸업한 선배들이 대표선수로 뛰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도 저렇게 될 수 있다는 희망을 갖고 시작했다"며 "세팍타크로라는 운동은 하면 할수록 빠져드는 매력이 있다. 기술이나 공격, 서브, 세팅 모두 멋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 역시 무관심을 너무나 아쉬워했다. 그는 "세팍타크로가 TV로 생중계된 것이 아시안게임이 처음인 것 같다"며 "앞으로도 많은 관심을 보여주고 중계방송도 많았으면 좋겠다. 계속 대중들에게 노출이 되어야 많은 사람들이 세팍타크로란 운동을 잘 알 수 있지 않겠느냐"고 의견을 밝혔다.

또 시작한지 3개월에 불과한 신입생 정은비(16)는 "처음에 힘든 운동이라며 언니 반대도 있었지만 부모님 허락으로 시작하게 됐다"며 "학교에서 세팍타크로는 꽤 유명한 운동이다. 앞으로 전국적으로도 잘 알려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 [부천=스포츠Q 박상현 기자 ] 충남 서천여고 세팍타크로 선수들이 22일 경기도 부천체육관에서 열린 인천 아시안게임 세팍타크로 남자 더블 한국과 미얀마의 결승전을 관람한 뒤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주목해주는 사람 없어도 그들은 우리들의 '슈퍼스타'

한국과 미얀마의 남자 더블 결승전이 열린 부천체육관은 5500여명을 수용한다. 그러나 빈 자리가 너무 많았다. 대충 잡아도 1000명이 채 모이지 않았다. 평일 오전에 열렸다는 점이 더욱 관중들의 발길을 뜸하게 만들었다.

게다가 부천체육관에서 아시안게임 경기가 열리고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도 많지 않았다. 부천체육관을 찾은 한 시민이 체육관 벽에 붙은 게시물을 보고 나서야 경기가 열린다는 것을 알았다고 할 정도였다.

하지만 그 뜸한 가운데서도 관중석 한쪽에서는 플래카드를 들고 응원전을 펼치는 관중들이 있었다. 바로 선수들의 가족이었다.

김영만 선수의 모친인 김미자(56) 씨도 연신 플래카드를 흔들며 한국이 점수를 뽑을 때마다 환호성을 질렀다.

김 씨는 "처음에는 인기도 없는 운동을 왜 하느냐며 반대했지만 하도 의지가 강해 열심히 해보라고 밀어줬다"며 "비인기 종목이고 선수들에 대한 관심도 떨어져 솔직히 서운하다. 아시안게임을 계기로 선수들에게 많은 관심을 가져줬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나타냈다.

▲ [부천=스포츠Q 박상현 기자] 김영만 선수의 가족이 22일 경기도 부천체육관에서 열린 인천 아시안게임 세팍타크로 남자 더블 미얀마와 결승전에서 플래카드를 들고 뜨거운 응원을 펼치고 있다.

이어 김미자 씨는 "운동할 때보면 너무 애처롭다. 다른 선수들도 마찬가지겠지만 피땀을 흘려가며 운동을 한다"며 연신 아들이 최고라고 엄지 손가락을 치켜올렸다.

'김천시의 자랑'이라는 플래카드를 들고 나선 정원덕 선수의 사촌여동생인 전수빈(17) 양은 "오빠가 정말 멋있다. 국가대표 되고 나서 친구들에게 자랑하고 다닌다"며 "처음에는 친구들이 그게 뭐냐고 물어봤지만 지금은 나를 엄청나게 부러워한다"고 어깨를 으쓱거렸다.

전 양은 "나는 운동신경이 없지만 여동생이 지금 세팍타크로를 하려고 준비하고 있다"며 "집안에서도 적극적으로 권유하고 있다. 동생도 나중에 저런 자리에 설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 누구에게도 주목을 받지 못하지만 은메달을 따낸 그 순간만큼은 슈퍼스타였고 히어로였다.

◆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스포츠에 관심을

세팍타크로 해설자인 드류 릴리는 최근 미국 뉴욕 타임즈와 인터뷰에서 "세팍타크로는 무술과 가장 흡사하다. 그러나 무술은 다소 폭력적인 반면 세팍타크로는 공을 정확하게 발로 맞히고 안전하게 안착하는 선수의 완벽한 모습에서 배의 돛이 바람에 움직이는 아름다움을 느끼게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세팍타크로는 아름답다.

축구에서 바이시클 킥이나 가위차기 킥에 환호하곤 하지만 세팍타크로는 모든 장면이 묘기에 가깝다. 족구와 달리 남자는 155cm, 여자는 145cm 높이의 네트를 넘기려면 바이시클 킥과 오버헤드 킥을 수차례 해야 한다.

역시 한국 세팍타크로가 활성화되려면 저변이 확대되어야 한다.

미얀마의 경우 124개의 클럽이 있고 챌린저컵 등 대회를 통해 경쟁을 벌여 대표팀 선수들을 뽑는다. 종주국의 위치로서 저변이 넓은 것이 미얀마 등 동남아시아 국가들이 강팀인 이유다.

▲ [부천=스포츠Q 박상현 기자 ] 정원덕 선수의 가족이 22일 경기도 부천체육관에서 열린 인천 아시안게임 세팍타크로 남자 더블 미얀마와 결승전에서 플래카드를 들고 환호를 보내고 있다.

선수들은 한국 세팍타크로가 미얀마, 태국 등 동남아시아 국가처럼 되는 것도 바라지 않는다. 저변이 넓어지면 좋겠지만 그것보다도 가장 급한 것이 처우 개선이다. 대표팀 선수조차도 열악한 환경에서 선뜻 세팍타크로를 하겠다고 나서려는 유망주가 있을지 의문이다.

그래도 세팍타크로만의 매력에 빠진 선수들은 구슬땀을 흘린다. 정원덕은 시상식 뒤 기자회견에서 "이번에는 정말 열심히 했다. 광저우 때는 아쉬움이 남았지만 이번에는 후회없다"며 "점수 앞서갔을 때 제대로 리드를 잡았어야 했는데 중요한 순간마다 실수가 나와 앞서가지 못했다. 그것만 아깝다"고 말했다.

굳이 종목 비교를 하자면 축구는 부잣집인데 비해 세팍타크로는 최빈곤층이나 다름없다. 지금 이 상태에서 세팍타크로에 대한 지원이 조금만 이뤄져도 눈부신 성장을 할 수 있다.

최소한 '마중물'만 있어도 세팍타크로는 펌프에서 물이 콸콸 쏟아져 나오는 것처럼 비약적인 발전을 이룰 수 있지 않을까.

tankpark@sportsq.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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