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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우생순' 또 모래폭풍에 길 잃지 않으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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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우생순' 또 모래폭풍에 길 잃지 않으려면
  • 박상현 기자
  • 승인 2014.09.25 10: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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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아시아선수권서 이미 중동세 밀려 4강 탈락 경험…카타르·바레인 등과 치열한 접전 예고

[인천=스포츠Q 박상현 기자] "대체 왜 그러는거야. 정말 정신 안차릴래?"

한국 남자 핸드볼 대표팀의 김태훈(51) 감독이 한국과 사우디아라비아의 인천 아시안게임 남자 핸드볼 경기를 보다가 얼굴이 금세 붉어졌다. 평소 훈련한대로 경기를 하지 않는 선수들의 모습에 저절로 호통이 나왔다.

한국 남자 핸드볼은 24일 인천 선학핸드볼경기장에서 열린 남자 핸드볼 본선 2그룹 첫 경기에서 사우디아라비아를 맞아 10개의 슛으로 6골을 만들어낸 이은호(25·충남체육회)의 활약을 앞세워 22-18로 이기고 첫 승을 거뒀다.

한국은 예선 D조에서 일본과 인도, 대만을 차례로 연파하고 각조 2위까지 주어지는 본선 티켓을 따냈다. 본선 1그룹에는 바레인과 쿠웨이트, 카타르, 대만이 들어 있고 2그룹에는 한국을 비롯해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 오만이 편성되어 있다.

8강에는 한국, 대만을 제외하는 거센 모래바람을 일으킬 중동팀들만 남아 있다. 일본이나 중국, 홍콩, 몽골 등 한 수 또는 두 수 아래의 동북아시아 팀들과 달리 중동 팀들은 유럽 못지 않은 탁월한 신체조건과 스피드를 겸비하고 몸싸움에도 능해 만만치 않은 팀들이다.

▲ [인천=스포츠Q 최대성 기자] 정의경(왼쪽)이 24일 인천 선학핸드볼경기장에서 열린 인천 아시안게임 남자 핸드볼 본선 2조 사우디아라비아와 경기에서 점프슛을 시도하고 있다.

대만은 이미 1그룹 첫 경기에서 바레인에 25-34로 완패했다. 각조 2위까지 4강에 진출하기 때문에 1패는 상당한 부담을 안게 된다. 앞으로 카타르, 쿠웨이트 등과 맞붙어야 할 대만은 사실상 4강에서 탈락했다.

그렇다면 결국 4강 진출이 유력한 한국은 결국 거센 모래바람과 맞서 싸워 이겨내야 한다. 더이상 대만과 맞붙을 일이 없기 때문에 남은 본선 2경기와 4강, 결승전은 모두 중동팀과 맞대결이 된다.

남자 핸드볼은 1986 서울 대회부터 2002 부산 대회까지 아시안게임 5연패를 이룩했다. 2006년 도하 대회에서 동메달에 그친 뒤 2010년 광저우 대회에서 다시 정상을 탈환했다.

하지만 지난 2월 아시아선수권에서 처음으로 4강에 못오르며 4연패 좌절과 함께 2015 세계선수권 티켓조차 놓치는 충격적인 실패를 겪었다. 그 당시 악몽은 바로 중동세에 대한 응전이 부족했던 결과로 남자 핸드볼의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 2012 올림픽, 2013 세계선수권에서 연속 조별리그 5전 전패를 당한 이후이 하락세였기에 이번 아시안게임에서 재도약이 절실한 한국이다.

◆ 중동팀, 패스를 통한 기회 창출에서 과감한 슛으로 승부

중동팀들의 경기 스타일은 과감한 슛이다 큰 신장 등 뛰어난 신체조건을 바탕으로 조금만 틈이 보이면 과감하게 중거리슛도 던질줄 안다. 예전에는 패스를 통해 기회를 만들어가는데 주력했지만 차츰 과감한 슛으로 스타일이 바뀌면서 한국으로서는 적응에 꽤 애를 먹고 있다.

결국 이런 중동의 경기 스타일에 맞서 싸우기 위해서는 앞선부터 과감한 압박 수비를 펼쳐줘야 한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조란 조키치 감독도 "중동 선수들도 이제는 다양한 개인기로 경기에 임할 줄 안다"며 "사우디아라비아의 경우 패스를 통해 기회를 만들어 슛을 넣는 단계에서 경기의 흐름에 연속성을 부여하는 개인기로 경기를 이끌어갈 줄 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한국에게 탄탄한 수비를 조언했다. 조키치 감독은 "상대의 공격을 미리 예측할 수 있는 수비가 필요하다"며 "내 생각에는 사우디아라비아전을 치를 때의 수비력을 보여준다면 큰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 [인천=스포츠Q 최대성 기자] 박중규(가운데)가 24일 인천 선학핸드볼경기장에서 열린 인천 아시안게임 남자 핸드볼 본선 2조 사우디아라비아와 경기에서 수비를 제치고 슛을 시도하고 있다.

◆ "앞으로 남은 경기 죽었다고 생각하자" 정신력 강조

하지만 김태훈 감독의 생각은 달랐다. 사우디아라비아전을 '졸전'으로 규정했다.

김태훈 감독은 경기가 끝난 뒤 기자회견에서 "선수들이 긴장했는지 쉽게 풀어갈 수 있는 경기를 어렵게 풀어갔다"며 "정의경(29·두산)과 박중규(31·웰컴론코로사) 등 주축 선수들의 의욕이 너무 강하다보니 명성에 맞지 않는 실수가 많았다"고 지적했다.

이어 김 감독은 "어딘가 모르게 한 부분이 평상시보다 모자란 경기였다. 공격 패턴이나 수비 움직임 등 여러가지에서 전체적으로 맞지 않아 스스로 경기를 힘들게 가져갔다"며 "사우디아랍아전은 우리가 갖고 있는 실력의 절반도 발휘하지 못한 것"이라고 못마땅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또 김 감독은 "선수들이 실수하더라도 평소에는 잘하라고 격려해주는 편이지만 오늘은 화가 나더라"며 "이런 상태로 간다면 다음 경기도 우려스럽다. 이란전도, 오만전도 어려운 경기가 될 것"이라고 선수들에게 분발을 촉구했다.

한국이 본선 2그룹에서 조 2위 안에 든다면 무리없이 4강에 오를 수 있다. 김태훈 감독은 4강전과 결승전에서 바레인, 카타르와 맞붙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바레인과 카타르는 모두 1그룹에 있는 팀이다.

▲ [인천=스포츠Q 최대성 기자] 김태훈 한국 남자핸드볼 대표팀 감독이 24일 인천 선학핸드볼경기장에서 열린 인천 아시안게임 남자 핸드볼 본선 2조 사우디아라비아와 경기에서 불만족스럽다는 표정을 짓고 있다.

◆ 이란·카타르·바레인이 최대 난적

카타르와 바레인이 만만치 않은 것은 귀화 선수들을 대거 영입해 전력이 급상승했기 때문이다. 또 이란 역시 무시할 수 없는 전력이다.

한국이 올해초 아시아핸드볼선수권에서 4강에도 오르지 못했던 것은 바로 바레인과 이란 등 모래폭풍을 넘어서지 못했기 때문이다. 한국은 첫 경기에서 이란과 24-24로 비겼고 바레인에는 25-26으로 졌다. 마지막 경기에서 사우디아라비아를 28-24로 이기긴 했지만 결국 조 3위로 4강 진출에 실패했다.

당시 아시아선수권 4강에 오른 팀은 바레인과 아랍에미리트연합(UAE) 카타르, 이란. 결승전에서는 카타르가 바레인에 27-26으로 이기고 우승을 차지했다. 더이상 '오일머니' 운운하며 그들의 핸드볼을 평가절하할 때가 아니다.

광저우 아시안게임 당시 우승을 차지했지만 중동팀들의 거센 도전에 어려운 경기를 치러야만 했던 한국 남자핸드볼은 다시 한번 중동의 거센 폭풍을 뚫고 지나가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다시 중동세에 금메달을 넘겨줄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김태훈 감독은 "오늘의 졸전이 내일의 좋은 결과로 이어질 것"이라고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기도 했다.

▲ [인천=스포츠Q 최대성 기자] 심재복(가운데)이 24일 인천 선학핸드볼경기장에서 열린 인천 아시안게임 남자 핸드볼 본선 2조 사우디아라비아와 경기에서 상대 수비수 사이를 돌파하고 있다.

김태훈 감독은 "숙소로 들어가서 25일 벌어지는 이란전에 대비하는 미팅을 가질 것"이라며 "중동팀을 어떻게 상대하느냐는 전술보다 먼저인 것은 바로 우리들의 문제점을 먼저 해결하는 것이다. 사우디아라비아전처럼 의욕만 앞서서는 안된다. 평소 연습하던 공격과 수비 패턴만 잘 되면 훨씬 멋진 경기로 금메달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는 선수들에게 딱 하나를 주문했다. 김태훈 감독은 "다시 정신을 무장해야 한다"며 "준결승전, 결승전에서는 정말 죽는다는 마음으로 해야 한다"고 각오를 다졌다.

'죽는다는 마음'으로 경기에 임해야 한다는 김태훈 감독의 말을 들으니 이순신 장군의 "죽고자 하면 살 것이고 살고자 하면 죽을 것"이라는 말이 떠오른다.

거센 모래폭풍을 헤쳐나갈 수 있는 방법은 자신이 해야할 것을 제대로 하면서 정신을 똑바로 차리는 것이다. '호랑이 굴에 들어가도'가 아니라 '사막에서 모래폭풍을 만나도' 정신만 똑바로 차리면 산다는 말이다.

tankpark@sportsq.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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