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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5종 '철녀'들이 말하는 첫 금메달 신화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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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5종 '철녀'들이 말하는 첫 금메달 신화의 비밀
  • 민기홍 기자
  • 승인 2014.10.03 11: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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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맏언니' 양수진의 리더십과 펜싱-승마 집중 훈련 주효,

[인천=스포츠Q 글 민기홍·사진 이상민 기자] “우리는 무에서 유를 창조했다.”

한국 여자 근대5종 대표팀의 맏언니 양수진(26·LH)의 말이다. ‘태극 철녀 4인방’이 큰일을 해냈다.

양수진과 정민아(22), 최민지(21·이상 한국체대), 김선우(18·경기체고)로 구성된 여자 대표팀은 2일 인천 드림파크에서 열린 2014 인천 아시안게임 근대5종 여자부 단체전에서 합계 5120점으로 일본(4760점), 중국(4722점)을 제치고 귀중한 첫 금메달을 획득했다.

▲ [인천=스포츠Q 이상민 기자] 한국 여자 근대5종대표팀은 사상 첫 금메달을 획득한 후 밝게 웃었다. 왼쪽부터 최민지 양수진 김선우 정민아.

여자 단체전이 2002년 부산 대회에서 도입된 이래 한국이 이 종목 금메달을 따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양수진은 “중국 선수들은 정말 잘 한다. 우리가 따라가도 늘 한 발씩 앞서나갔던 팀”이라며 “무에서 유를 창조한 쾌거”라며 벅찬 감동을 전했다.

근대5종은 올림픽 정신이 고스란히 반영된 종목이다. 기원전 708년부터 그리스인들이 고대 올림픽에서 즐겨오던 5가지 종목에 바탕을 뒀다. 선수들은 펜싱, 수영, 승마, 육상, 사격에 이르기까지 5종목 경기를 하루에 소화한다.

체력은 기본이요 집중력, 판단력, 지구력, 인내력 등을 모두 갖춘 이들만이 해낼 수 있는 극한의 스포츠다. 펜싱은 풀리그전으로 참가선수 전원과 1분간 경기를 치른다. 수영은 200m 자유형 경기를, 승마는 350~450m 코스에서 장애물 12개를 넘어야 한다. 복합 종목은 육상과 사격이 혼합된 것이다. 3200m 코스를 달리며 4곳, 800m마다 있는 20개의 표적을 맞춰야 한다.

대회 개막 전 근대5종은 금메달 유력 종목으로 꼽히긴 했다. 그러나 이는 남자부 이야기였다. 정훤호(26·대구체육회)와 이우진(22·한국체대)의 2관왕 성사 여부 정도만이 주목받았을 뿐이다. 여자부는 관심에서 비껴나 있었다. 최상의 성적이 나온다면 은메달일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4명의 선수들은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악조건 속에 사력을 다해 레이스를 1위로 마쳤다. 사상 첫 금메달은 얼마나 값진 성과며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 [인천=스포츠Q 이상민 기자] 레이스를 마친 한국 선수들이 관중석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 왼쪽부터 김선우, 양수진, 최민지, 정민아.

◆ 한국 여자 근대5종 금메달의 의미 

근대5종은 1994년 히로시마 대회를 통해 아시안게임에서 첫 선을 보였다. 여자 근대5종 단체전은 2002년 부산 대회에서 처음 도입됐다. 당시 한국은 카자흐스탄, 중국에 이어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2010년 광저우에서는 은메달을 땄다. 중국이 1위였다. 1998년과 2006년에는 정식 종목이 아니어서 출전하지 못했다.

중국은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을 앞두고 근대5종을 전략종목으로 삼았다. 2010년에는 세계 최초로 청두에 근대5종 훈련센터를 오픈했다. 이번 대회에 나선 4명의 선수들은 3주 전 막을 내린 폴란드 세계선수권대회에서 단체전을 제패한 쟁쟁한 선수들이었다.

양수진과 절친한 후배인 남자 근대5종 선수 최지웅(인천시체육회)은 “남자는 각 시도마다 실업팀이 나오지만 여자는 5개 팀에 불과하다”며 “전국체전 종목으로 채택된 것도 작년이다. 남자는 몰라도 여자가 금메달을 딸 줄은 몰랐다”며 의미를 설명했다.

김성진 여자 대표팀 감독은 “우리는 단체전에서 항상 중국과 100~120점 정도 뒤졌다”며 “비가 많이 내린 날씨도 우리를 도왔다. 변수 속에서도 개개인이 본인의 실력을 최대한 발휘해 성과가 나왔다”고 선수들을 격려했다.

▲ [인천=스포츠Q 이상민 기자] 양수진(오른쪽)이 레이스를 마친 후 김성진 감독과 포옹하며 기쁨을 만끽하고 있다.

대표팀은 지난해 11월 경북 문경 국군체육부대에 소집돼 10개월간 강훈련을 소화했고 소중한 결실을 맺었다.

◆ 우승 비결, 펜싱-승마 집중 공략 주효

우승을 할 수 있었던 비결은 바로 펜싱과 승마였다.

펜싱은 첫 종목인데다 상대를 꺾으면 유리해지는 제로섬 게임이기 때문에 매우 중요했다. 한국은 대회를 준비하며 펜싱 실업팀과 체육대학 펜싱부를 찾아 중국과의 격차를 줄이기 위해 노력해왔다.

김성진 감독은 “일단 펜싱에서 60점 이내로 좁히고 시작하니 중국이 당황했던 것 같다”며 “우리는 마음 편하게 쫓아가는 입장이었다. 처음부터 잘 풀리지 않은 중국 선수들이 수영 기록도 생각보다 높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근대5종 승마는 추첨을 통해 고른 말을 타야만 한다. 말의 성향이 모두 달라 반드시 운도 따라야만 한다. 기수가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성적이 천차만별이다.

개최국인 한국 선수들은 대회 전 출전하는 말들을 미리 타보는 행운을 누렸다. 훈련장에 있는 20여필의 말 모두의 습성을 속속들이 파악했다. 10개월간 오전 내내 승마에 전념했다.

양수진은 “동계 훈련 때부터 많이 탔다. 2~3일에 한 번 타곤 했는데 매일 탔던 것이 빛을 봤다”며 “그렇게 노력한 것이 성과로 나타나 기쁘다. 지인 분께서 ‘공든 탑은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라고 해준 것을 마음에 새겼다”고 밝혔다.

마침 중국 선수 2명이 승마에서 장애물을 모두 넘지 못하고 실격을 당했다. 하늘도 한국을 도왔다.

◆ 한국 근대5종의 상징, '살아있는 전설' 양수진 

“내가 없었으면 이렇게 될 수 없었다고 자부할 수 있다.”

1321점을 기록해 한국의 우승을 견인한 양수진은 개인전에서도 은메달을 따내며 생애 최고의 하루를 보냈다. 2010년 광저우 대회 개인전에서 동메달을 따낸데 이어 2회 연속으로 아시안게임 개인전 메달을 따냈다.

▲ [인천=스포츠Q 이상민 기자] 양수진은 한국 여자 근대5종의 상징적인 존재다. 그는 "자신이 없었다면 이날도 없었을 것"이라고 당당하게 말했다.

양수진은 한국 여자 근대5종의 상징적인 존재다.

근대5종의 1세대인 그는 수영을 하다가 남춘천여중 3학년 때 근대5종으로 전향했다. 육상 선수 출신 어머니와 수영 선수 출신 아버지로부터 운동신경을 물려받아 늘 국내 최고 레벨의 위치를 지켜왔다. 한국 여자 근대5종 선수로는 최초로 런던 올림픽에 자력으로 진출해 24위에 올랐다.

그는 “실업팀 선수 자체가 많지 않다. 나 혼자 근대5종을 끌어왔다고 해도 무방하다”며 “밑의 친구들이 올라와도 나는 늘 그 자리에 있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여기까지 왔다”고 말했다.

이어 “후배 선수들이 나를 봤을 때 ‘잘 하는 선수보다는 열심히 하는 선수구나’라는 생각이 들게끔 만들고 싶었다”며 “2~3년전까지만 해도 어떻게 버틸까 했는데 경기력이 계속 늘어 이런 영광도 누리게 됐다”고 웃었다.

열악한 저변을 그를 더 강하게 했다. 양수진은 “근대5종의 선수층이 얇은 것이 서로를 끔찍하게 아끼는 요인이 됐다”며 “운동 자체가 워낙 힘든 것을 서로들 알기 때문에 우리는 더 뭉치고 이해하고 으쌰으쌰 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 [인천=스포츠Q 이상민 기자] 정민아(오른쪽)는 결승선을 통과하자마자 최민지를 안았다. 그는 "나머지 선수들을 뒷받침한다는 생각으로 레이스를 치렀다"고 말했다.

그는 “근대5종 선수들은 한 종목에서 안 풀리면 운동을 그만두고 싶다고 생각하면서도 매번 대회가 끝나면 또 해낼 수 있다고 믿는다”며 “다음 아시안게임 출전 여부는 장담할 수 없지만 리우 올림픽 출전권을 따기 위해 노력하겠다”는 구상을 전했다.

◆ 정민아-김선우의 희생정신, 앞으로가 더 기대되는 최민지

최민지는 1298점을 따내 양수진에 이어 개인전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그는 승마와 수영에서 종목별 선두에 오르며 한국이 단체전 1위에 오르는데 크게 기여했다. 양수진의 대를 이을 선두주자다.

21세에 불과하지만 대표팀 경력은 벌써 8년째다. 2007년 9월 공항중 3학년 때 대표선수가 된 이후 계속해서 태극마크를 달고 있다. 최민지 역시 양수진처럼 수영선수로 활약하다가 근대5종으로 종목을 바꿨다.

그는 “승마는 늘 부담스럽다. 이번에는 연습 마당에서부터 교관님이 시키는 대로만 하자고 집중했는데 정말 잘 됐다”며 “몸상태가 많이 올라왔다. 이젠 더 열심히 해서 올림픽 티켓을 따내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 [인천=스포츠Q 이상민 기자] 최민지는 양수진의 대를 이어 한국 근대5종을 이끌어나갈 재목이다.

최민지는 “그동안 근대5종에 관심도 없는 것 같아 서러웠다. 아무런 신경도 안 써주시는 것 같았다”며 “이번을 계기로 조금이나마 근대5종이 알려질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덧붙였다.

정민아는 1260점으로 적잖이 힘을 보탰다. 그는 “수진 언니가 저만큼 하는데 나도 뒷받침한다는 생각만으로 임했다”고 눈물을 보이며 “우리가 중국에게 많이 뒤처져 그만큼 정말 열심히 했다. 고생을 많이 해서 더욱 남다른 금메달”이라고 말했다.

‘막내’ 김선우도 1250점을 획득하며 제몫을 톡톡히 해냈다. 그는 “나는 잘한 것이 없는데 언니들 덕분에 소중한 메달을 땄다”며 “아직 어리니까 앞으로 더욱 열심히 해서 더 큰 목표를 향해 달리겠다”고 약속했다.

sportsfactory@sportsq.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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