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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리뷰] 여배우, 그 불가해한 존재 '클라우즈 오브 실스마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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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리뷰] 여배우, 그 불가해한 존재 '클라우즈 오브 실스마리아'
  • 용원중 기자
  • 승인 2014.12.04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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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Q 용원중기자] 실스마리아는 알프스 산맥의 장엄함과 실스 호수의 고요함을 동시에 품은 스위스의 소도시다. 이른 아침 실스마리아 협곡 사이로 유유히 밀려드는 구름은 뱀의 형상을 띄어 ‘말로야 스네이크’라고 불린다.

20년 전 연극 ‘말로야 스네이크’에서 치명적인 매력의 여주인공 시그리드를 연기해 스타덤에 오른 중년 여배우 마리아(줄리엣 비노쉬)는 리메이크 연극에서 시그리드의 유혹에 넘어가 자살에 이르는 나이 든 상사 헬레나 역을 맡게 된다.

▲ 극중 여배우 마리아(줄리엣 비노쉬)와 매니저 발렌틴(크리스틴 스튜어트)

연극 리허설을 위해 실스마리아를 찾은 마리아는 세계적 톱배우로써 명성을 누리고 있음에도 젊음의 아름다움에 집착한다. 잔인한 시그리드보다 솔직하고 인간적인 헬레나에 더 가치를 두는 매니저 발렌틴(크리스틴 스튜어트)의 설득에도 날선 반응을 보인다. 더욱이 새롭게 시그리드 역을 맡은 할리우드 톱스타 조앤(클로이 모레츠)을 향한 질투심은 커져만 간다.

연극 캐스팅부터 무대에 올려지기까지의 기간 동안 벌어지는 일을 다룬 ‘클라우즈 오브 실스마리아’는 20년 전 과거와 현재, 연극 ‘말로야 스네이크’와 현실을 교묘하게 직조한다. 연극 속 캐릭터와 관계는 어느 순간 마리아, 발렌틴, 조앤과 포개진다. 여배우들의 실제 모습과 영화 속 캐릭터는 구분이 모호해지며 경계를 오간다.

아름답고 재능 넘치는 여배우들이 남자 문제, 다른 배우들에 대한 적나라한 평가, 슈퍼히어로 연기의 진정성, 표현의 영역을 토론하는 모습이나 SNS와 파파라치를 이용(?)하는 장면을 지켜보는 것은 매우 흥미롭다. 특히 줄리엣 비노쉬와 크리스틴 스튜어트가 서로 대사를 맞춰보는 장면은 너무나 사실적이어서 전율이 일 정도다.

▲ 줄리엣 비노쉬, 클레이 모레츠, 크리스틴 스튜어트(사진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클라우즈 오브 실스마리아’는 캐릭터를 놓고 벌이는 계산과 질투, 젊음과 인기에 대한 집착, 연기를 향한 순수한 열정과 독선 등 여배우의 복잡다단한 심리를 들여다볼 수 있는 만화경과 같은 영화다. 다른 행성에 사는 듯 불가해한 존재로 여겨져 온 여배우에 대한 이해를 그 어떤 영화나 다큐멘터리보다 명징하게 도와둔다. 러닝타임이 흐르며 여배우들의 이야기는, 삶이라는 무대에 오른 보통 인간의 이야기로 확장된다. 아주 자연스럽게.

각본과 연출을 맡은 프랑스 감독 올리비에 아사야스는 ‘클린’을 통해 전 부인인 홍콩 여배우 장만옥에게 칸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안겨줬을 만큼 배우에게서 최고의 연기를 이끌어내는 연출자로 유명하다. 아사야스 감독은 그리 간단치 않은 작품의 주제를 복잡하고도 정교한 플롯으로 풀어낸다. 탁월한 연기파 줄리엣 비노쉬에게선 새로운 모습을 이끌어내고, 프랜차이즈 영화에 출연하며 인기를 먹고 성장한 젊은 여배우 크리스틴 스튜어트와 클로이 모레츠가 격이 다른 연기를 해내도록 만든다.

 

뭐니뭐니해도 ‘클라우즈 오브 실스마리아’는 비노쉬의, 비노쉬를 위한 영화다. 영화에서 그의 호흡은 자유자재다. 낄낄거리며 능청스럽고, 비릿한 욕망에 촉수를 곤두세우고, 예술에 침잠한 심오한 표정으로 휙휙 변화한다. 없으면 당장이라도 죽을 듯 아끼던 발렌틴이 사라진 뒤 부속품 갈아끼우듯 새 매니저를 고용해 아무 일 없었던 듯 지내는 비정한 얼굴은 압권이다.

지적이고 열정적인 매니저 발렌틴을 소화한 크리스틴 스튜어트는 예리한 배우의 풍모를 확연히 풍긴다. 짧은 출연 분량이지만 당돌한 스캔들 메이커로 출연한 ‘렛미인’ ‘킥애스’의 클로이 모레츠의 쿨한 연기는 잔상이 강렬하다.

이렇듯 세 여배우의 연기 연금술이 우아한 연출력의 감독과 만나 일궈낸 위용은 상상 이상이다. 중간중간 등장하는 알프스와 실스마리아의 수려한 풍광은 스크린에서 눈을 떼지 못하게 한다. '아트 블록버스터'란 수식어가 아깝지 않을 정도다. 러닝타임 124분. 12월18일 개봉.

goolis@sportsq.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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