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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의 시대 가고 '을'의 시대 오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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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의 시대 가고 '을'의 시대 오기를
  • 용원중 기자
  • 승인 2014.12.21 13: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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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Q 용원중기자] 2014년 갑(갑오년)의 시대가 저물고 2015년 을(을미년)의 시대가 온다.

올해 대중문화계는 시대의 부조리이자 아픔인 갑을관계 소재 작품들로 그득했다. 을의 또 다른 표현인 ‘미생’이 유행어로 등극하기까지 했다.

군림하는 갑과 무릎 꿇는 을의 문화는 한국의 급속한 자본주의화, 무한 경쟁을 추구하는 신자유주의로 인해 그 폭과 깊이를 심화하고 있다. 노동시장의 유연화란 미명하에 양산된 비정규직, 계약직 노동자를 향한 차별의 민낯은 대형마트 ‘더 마트’의 감정노동자 선희(영화 ‘카트’)와 무역회사 ‘원 인터내서널’의 고졸 인턴사원 장그래(드라마 ‘미생’) 등을 통해 표출되며 뜨거운 반향을 지폈다.

▲ '미생'의 인턴사원 장그래(임시완)과 영화 '카트'의 비정규직 계산원 선희(염정아)

독립영화에서는 불안한 10~20대 청춘을 주목했다. ‘개천에서 용 난다’는 비현실적 잠언으로 전락한 지 오래다. 금수저를 물고 태어나지 않는 이상 스펙이 곧 계급이다. 3포(연애, 결혼, 출산 포기)로 살아가야 하는 현실로 내몰린 이들은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편의점 알바로 사회를 경험하거나(영화 ‘이것이 우리의 끝이다’) 족구에 탐닉하며 위로를 얻었다(영화 ‘족구왕’).

20대가 취업경쟁의 노예라면 10대 청소년은 입시경쟁의 노예다. 이들은 자신보다 우위에 있는 남학생 혹은 어른들로부터 짓밟히는 약자(영화 ‘한공주’ ‘거인’)로 묘사되며 가슴을 먹먹하게 했다.

갑을문화는 오너와 직원, 상사와 부하, 대기업과 하청 중소기업, 본사와 가맹점, 건물주와 세입자의 경제 현장뿐만이 아니라 주류와 비주류, 강자와 약자, 부자와 빈자가 존재하는 전 사회 영역에 걸쳐 작동되는 정치학으로 코드 변환됐다. 누구나 상황에 따라 알량한 권력을 틀어쥔 다수자, 상사, 고용인, 집주인, 고객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근원을 살펴보면 승자독식 문화가 전근대적인 계층의식과 만나 빚어진 현상이다.

공연계가 올해 역시 성적 소수자를 다룬 작품을 줄기차게 내놓고, 관객의 발걸음이 쏠리는 이유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연말 공연가에는 라이선스 뮤지컬 ‘킹키부츠’ ‘라카지’ ‘쓰릴미’가 성황리에 공연 중이며 올해 뮤지컬 ‘헤드윅’ ‘프리실라’ ‘두번의 결혼식과 한번의 장례식’, 연극 ‘프라이드’ '엠버터플라이' '수탉들의 싸움' 등이 무대에 올려져 흥행에 성공했다. 성적 취향이 다를 뿐인 LGBT(레즈비언, 게이, 바이섹슈얼, 트랜스젠더)의 평등에 대한 외침이 현실과 공명한 셈이다.

▲ 성 소수자를 소재로 한 뮤지컬 '라카지' '킹키부츠' '프리실라'(사진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연말 한국사회에 공분을 일으킨 대한항공 조현아 전 부사장의 ‘땅콩회항’과 서울시향 박현정 대표의 막말·인사전횡·성희롱 논란은 갑질의 패악이 여실히 드러난 사건이지만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경제민주화, 스마트폰의 증장, SNS의 확산으로 과거와 달리 을의 억울함을 알리는 채널이 늘어났음에도 삐뚫어진 권력관계는 여전하기 때문이다.

갑의 횡포를 방지하고 이 시대 미생을 보호하기 위한 법적·제도적 장치가 필요함에 대부분이 동의한다. 약자에 대한 배려와 더불어 중요한 게 ‘다름’에 대한 이해와 관용이다. 이를 위해 영화, 드라마, 공연 등 대중문화계가 뿌린 연대의 씨앗이 새해엔 싹을 틔우기를 소망한다. 다가오는 을미년이 상식과 합리성을 회복하는 시대, 을의 원년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goolis@sportsq.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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