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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목소리 잃은 테너 배재철의 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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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목소리 잃은 테너 배재철의 도전
  • 용원중 기자
  • 승인 2015.01.02 10: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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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더 테너 리리코 스핀토'의 실제 주인공

[스포츠Q 글 용원중기자·사진 노민규기자] 2014년의 마지막 날인 12월31일. 가슴 따뜻한 영화 한 편이 개봉했다. 1990~2000년대 유럽진출 1세대 성악가인 배재철의 실화를 모티프 삼아 만든 ‘더 테너 리리코 스핀토’(김상만 감독)다.

2005년 갑상선암으로 목소리를 잃고 무대를 떠난 배재철은 절망 끝에 친구인 음악 프로듀서 와지마 토타로의 권유로 성대 복원 수술을 받고 고된 재활훈련 끝에 재기에 성공한 인간 승리의 표본이다. 한파가 몰아친 세밑, 심장을 뚫고 나오는 뜨거운 목소리를 들었다.

 

◆ 넉넉지 않은 교회 성가대 소년 한양대 음대 입학

어렸을 때부터 교회 성가대에서 노래를 불러왔으나 비용이 많이 드는 음악을 전공할 만큼 집안 형편이 넉넉지 않았다. 부모님께 말씀드리기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하지만 인문계 고교 2학년 무렵 자신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걸 고민하던 끝에 용기를 냈다. 음대 입시를 위해선 최소 몇 해에 걸쳐 주 2회 레슨을 받는 게 기본이나 그는 고작 6개월 동안 주1회 레슨을 받고 한양대 음대에 입학했다.

“입학해보니 나보다 노래 잘하는 친구들이 너무 많아 쇼크였다. 타고난 소리와 호흡을 10까지 모두 쓰려고 혹독하게 연습했다. 좋아서, 재밌어서 한 거였다. 처음엔 길이 잘 안보였다. 대가들처럼 소리를 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하지만 대학에서 성악의 신세계를 접했다. 몸을 사용해서 그런 소리를 낸다는 게 대단하게 여겨졌고, 성악가가 위대한 사람이라는 걸 느꼈다.”

천부적인 소리를 갈고 닦다보면 어느 날 멋진 소리가 완성된다. 단순히 소리만 좋아서도 안 된다. 노래는 그 사람의 정체성을 보여주기에 내면이 절로 투영된다. 어떤 성악가의 노래는 굉장히 따뜻하게 느껴지고 혹은 차갑거나 감정이 없이 들리는 이유다. 배재철이 동양인임에도 오페라 종주국인 이탈리아와 유럽에서 각광받은 동기는 청자의 영혼을 감동시키는 목소리를 토해냈기 때문이다.

 

◆ 이탈리아 유학 후 콩쿠르 석권, 오페라단 주역가수 맹활약

한양대 음대 졸업 후 오페라에 매료된 그는 오페라의 본고장 이탈리아 유학을 결정했다. 그들의 언어, 음식, 습관, 문화를 익혀야 제대로 노래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에서였다. 스파게티를 먹으며 그들만의 뉘앙스를 체화하는 노력 끝에 베르디국립음악원을 수석 졸업하고 1996년부터 유럽의 쟁쟁한 콩쿠르를 석권해나가기 시작했다. 2000년 에스토니아 국립오페라단의 ‘라보엠’ 주역으로 당당히 데뷔했다.

도약을 꿈꾸며 바그너 오페라 종주국이자 오페라극장 시스템이 이탈리아보다 견고하게 구축된 독일로 근거지를 옮겼다. 2004년부터 자르부뤼켄 국립오페라단 주역가수로 활동했다.

장벽 높은 냉정한 세계라 아시아인은 무대에서 실수를 하거나 완성도가 떨어지면 그 다음날로 사라질 수 있기에 부담이 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는 배재철을 오히려 자극했다. 영국 더 타임스는 “아시아 오페라 역사상 100년에 한 번 나올 목소리”라고 극찬했다. 리리코 스핀토(부드럽고 서정적이면서 알맹이가 꽉 찬 강렬한 음색)는 서양인과 골격구조가 다른 동양인에게선 나오기 힘든데 배재철은 가능했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유럽에 가면 대접받을 수 없다는 걸, 내 노래가 인정받기 힘들 것임을 알고 갔다. 외모가 틀리므로 관객의 부담이나 선입견도 강했다. 노래를 시작한 뒤 소리 하나만으로 이를 불식시키려 노력했고 서서히 인정받기 시작했다. 당시엔 한국인이 국제 콩쿠르 입상으로만 끝났는데 미약하게나마 만든 길을 이제 재능 많은 후배들이 속력을 내서 달려 나가는 것 같아 감사하다.”

 

◆ 전성기 시절 갑상선암으로 목소리 잃는 위기 직면

도전과 눈부신 성과로 점철된 유럽에서의 10년은 테너 인생에 있어 황금기였다. 신의 시험이었을까. 성악가에게 생명과도 다름없는 목소리를 앗아갔다. 2005년 베르디 오페라 ‘오텔로’ 공연을 앞두고 갑상선암이 발병, 수술 도중 성대신경 일부가 끊어지면서 말하기조차 힘들어진 위기가 찾아왔다. 사형선고와 다름없었다.

“역경의 순간, 인간의 한계를 여실히 느꼈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 언젠가 다시 무대에 설 수 있을 거란 희망이 있어서 다시 시작할 수 있었다. 또 아내와 가족, 동기 부여를 해준 와지마 상의 도움이 지금과 같은 기적을 만들어 줬다.”

성대 복원수술로 전성기 목소리의 30%를 되찾게 됐다. 작은 기적의 시작이었다. 이후 재활훈련에 들어갔지만 희망만이 지배하진 않았다. 온전히 과거의 목소리나 성량으로 돌아갈 순 없었기 때문이다. 어떤 날은 제 소리가 날 것 같은 기분이 들다가도 의문이 꼬리를 물었고, 하루에도 몇 번씩 희망과 절망이 널뛰기를 했다.

“과거에 몇 옥타브씩 올라갔는데 지금은 한 옥타브 내기도 힘들어서 좌절했다. 그래도 ‘해야 한다’ ‘내가 가장 나다운 건 노래할 때다’고 자기 무장을 했다. 긍정적으로 생각하지 않으면 포기하게 된다. 마음 가는 데로 몸도 굴러간다. 목소리 자체가 없어졌던 상황과 비교하면 이만큼이라도 소리를 낼 수 있다는 건 대단히 감사한 일이라고 받아들이려 했다.”

 

2년 후 그는 독일의 한 시골교회에서 그리 많지 않은 청중 앞에 선 채 찬송가 ‘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를 부르며 재기를 알렸다. 그의 드라마틱한 스토리는 2008년 ‘KBS스페셜-잃어버린 목소리, 테너 배재철의 도전’으로 방영돼 시청자의 심금을 울렸다.

◆ “배우 유지태 '더 테너'에서 성악가처럼 사실적 연기”

영화 ‘더 테너 스핀토 리리코’에는 전성기 시절 그가 열창했던 노래들이 흐른다. 배우 유지태가 그를 연기하며 ‘공주는 잠 못 들고’ ‘대장간의 합창’ 등 주옥과 같은 오페라 아리아들을 부른다. 자연스레 작품과 배우에 대한 애정이 가득하다.

“‘불멸의 연인’ 등 외국 음악영화를 보며 사실성에 늘 감탄하곤 했는데 오페라 소재의 음악영화가 국내에서 제작돼 의미가 크다. 대역 사용이 가능한 악기연주 연기와 달리 감정선과 표정연기를 해내야 하는 성악가 역할이 어려웠을 텐데도 유지태씨가 노력을 많이 했다. 노래할 때 얼굴 표정이라든가 숨 쉬고, 가슴이 열리는 디테일한 부분을 실제 성악가처럼 소화했다.”

▲ 배우 유지태가 '더 테너 리리코 스핀토'에서 배재철 역을 소화하는 장면

◆ “그때의 고통이 내 음악을 단단하고 크게 키워내”

배재철은 모교인 한양대 음대 겸임교수를 거쳐 현재 오페라 콘서바토리인 ‘영산 스쿨 오브 오페라’ 교수로 후학을 양성하고 있다. 국내외 콘서트 역시 꾸준히 해오는 중이다. 지난 12월27일 일본 도쿄 오페라시티 리사이틀에 이어 올해 상반기 일본 공연을 앞두고 있다.

“쉽게 표현했던 멜로디를 지금은 힘겹게 한 프레이즈씩 노래하지만 그때의 고통이 내 음악을 단단하고 크게 키워냈다. 높은 음역대의 기교면에서 뛰어난 노래는 아닐지언정 내면의 감정 표현이 깊이 이뤄지게 됐으므로 음악의 성숙도는 더 커진 듯하다.”

[취재후기] 비운의 주인공에게서 흔히 느껴지는 어두운 그늘은 없었다. 감사하며 사는 이의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사자의 심박이 느껴지는 부드러운 목소리는 인터뷰 내내 귀를 사로잡았다. “우리는 많은 것들을 너무 쉽게 가져서 귀한 줄 잘 모른다”는 마지막 말은 그이기에 더욱 강한 울림으로 가슴을 파고 들었다.

goolis@sportsq.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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