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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LP는 계속 된다" 1인 레이블 '김밥레코즈' 김영혁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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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LP는 계속 된다" 1인 레이블 '김밥레코즈' 김영혁 대표
  • 용원중 기자
  • 승인 2015.01.13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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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Q 글 용원중·사진 이상민 기자] 홍대 인근 핫 플레이스 연남동 초입에 고양이 얼굴이 박힌 간판의 자그마한 LP숍이 눈길을 끈다. 2012년 1인 레이블을 차려 공연 기획을 하다가 2013년 광복절에 이곳에 음반매장을 오픈, 보석과 같은 바이닐(Vinyl)과 CD를 수입·제작 중인 ‘김밥 레코즈’ 김영혁(42) 대표와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눴다.

 

◆ LP 전도사…2011년부터 ‘서울 레코드 페어’ 개최

요즘 소비자들은 음원 스트리밍이나 다운로드로 음악을 소비한다. 과거처럼 소장하려들지 않고 그냥 듣는데 만족한다. 자연히 오프라인 레코드숍은 사양 일로다. 이렇듯 CD마저도 구매하지 않는 풍토에서 그는 지글거리는 잡음과 관리도 만만치 않은 LP가게를 떡하니 차렸다. 퇴행은 아닐까.

풍성하고 따뜻한 사운드의 LP를 듣고 자란 중년층이 주 고객이지 않을까 싶었는데 젊은 세대가 이곳을 주로 찾는단다. 인터뷰 도중 가게 문을 여는 이들도 20대 외국인, 한국인 힙스터(유행을 따르지 않고 자신들만의 패션과 음악, 문화를 좇는 부류)들이 대부분이다.

그에 따르면 미국에선 지난 2006~7년부터 LP 붐이 일었다. 인디 레이블들이 신보를 CD와 LP로 동시에 내기 시작했고, 독립음반 매장들이 연합해 매년 4월 셋째주 토요일에 ‘레코드 스토어 데이’를 개최했다. 이날만 오프라인에서 살 수 있는 희귀음반이나 한정반을 전시·판매하는 행사다. 록스타 폴 매카트니, 브루스 스프링스틴 등이 공연에 참가하고, 자신의 싱글을 발매하는 등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영미 LP시장 활성화의 기폭제 역할을 했다.

이를 참고해 김 대표는 2011년부터 ‘서울 레코드 페어’를 시작했다. ‘LP를 알리자’ ‘소규모 매장과 독립 음악인들의 음악을 홍보하자’란 취지였다. 음반 소매점, 수입상, 홍대 인디레이블, 동호회원들이 각자 부스를 만들어 총 40개 부스에서 음반을 전시·판매했는데 젊은층이 몰리며 많은 관심을 보였다.

 

◆ 글렌 한사드 솔로음반, ‘미드나잇 인 파리’ OST 발매해 마니아 매료

‘김밥 레코즈’ 레이블로 첫 출시한 작품이 인디 음악영화 ‘원스’의 남자주인공 글렌 한사드의 솔로 앨범이다. 우디 알렌 감독의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 OST 음반 역시 음악마니아들 사이에 큰 화제가 됐다. 이외 ‘다품종 소량’ 원칙으로 묻혀 있던 해외 음반들을 수입, 소개했다.

국내 수입이 이뤄지지 않는 메이저 음반사 LP들이 많기에 도매상을 통해 저렴한 가격으로 가져오는 한편 미국·영국의 인디음반 유통사들과 계약을 체결해 음반을 수입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제작 음반의 경우 생산가가 낮은 해외 공장을 이용하는 방법을 택했다.

“LP의 가장 큰 매력은 패키지다. 시원한 아트워크와 꺼내 듣는 맛이 있다. 국내에선 LP가 워낙 소규모 비즈니스이고, 수입에 의존하고, LP 생산 공장이 거의 없다보니 가격이 비싸다. 미국에서 15~20달러라면 국내는 운송비 포함 2만5000~3만원선이다. 가격은 청자가 많아져 대량 제작하면 싸진다. 2만원대 초반이면 CD와 가격차도 별반 안 나므로 부담 없이 구매할 수 있다. 가능성은 충분하다. 좋은 음악을 생활의 일부분으로 받아들이려는 소비자가 많기 때문이다. LP시장이 나쁘지 않다고 소문이 나면 국내 대형 기획사들도 LP를 제작하지 않겠나.”

 

◆ 틈새시장 활용, 실력파 해외 인디뮤지션 내한공연 줄줄이 개최

내한공연으론 장기하와 얼굴들과 1970년대 뉴욕 펑크그룹 텔레비전의 합동 콘서트를 한남동 블루스퀘어에서 주최했다. 이어 지난해 여름엔 미국 인디밴드 세인트 빈센트, 인디밴드 베이루트, 미국 싱어송라이터 빌 캘러핸, 밴드 디오시스 샌프란시스코 내한공연을 홍대 공연장 무대에 잇따라 올렸다. MOT밴드에서 활동했던 이현 솔로 공연도 그의 기획 작품이다.

이들 공연은 작게는 200~300석, 크게는 400~500석 규모의 조촐한 사이즈로 치러졌다. 티켓 가격은 평균 4만~5만원. 설명을 듣는 순간, 떠오르는 생각은 “과연 돈이 될까?”다. 유명 가수들의 내한공연은 빵빵한 협찬사를 끼고, 수 천석 규모 공연장에서 수 십 만원의 관람료를 책정해 진행하지 않는가.

“개런티, 항공료, 체류비용을 부담하더라도 작은 버짓으로 할 만한 공연은 많다. 소도시 투어를 하는 아티스트들도 많은 데다 최근 들어 중국, 일본시장에 인디뮤지션 투어를 지원하는 에이전트가 생겨서 비용 절감이 가능하다. 아시아 투어 일정이 짜여지면 국내 공연의 리스크가 줄어든다. 수익은 없지만 시도할 수 있는 여건은 만들어졌다. 아티스트를 온전히 접할 기회(CD, 음악잡지, 방송 등)가 없으므로 직접 데려와야 그들의 좋은 음악을 퍼뜨리는 계기가 된다.”

 

◆ 음반직배사 13년 생활 접고 인디 산실 홍대로 뛰어들어

김 대표는 굴지의 음반직배사 BMG와 소니뮤직코리아에서 13년 동안 음반 기획, 마케팅 업무를 해왔다. 2002년 한일월드컵 이후 음반업계가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하면서 할 수 있는 일은 제한적이 돼갔다. 보다 희망적인 일을 하고 싶었던 그는 2012년 '본부장' 직함을 내려놓고 회사를 그만 뒀다.

잠시 쉬던 중 주변 사람들이 “음반을 내달라” “공연을 같이 해보자”는 제안을 해왔다. 홍대에서 공연 기획 및 앨범 발매를 하던 인디음악 브랜드 협동조합 ‘라운드앤라운드’에 합류했다가 1인 레이블을 설립하게 됐다.

“매장에서 음악을 고르며 고민하는 기쁨은 가격 대비 엄청나다. 스트리밍, 다운로드에선 느끼기 힘든 부분이다. 이곳을 찾는 고객들은 과거의 음악이 아닌 요즘 음악을 구매하려는 사람들이다. LP를 ‘추억’ ‘복고’ 상품으로 마케팅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일회성이 되기 때문이다. 여러 음악 포맷 중 하나로 받아들여야 한다.”

여전히 하고 싶은 일들이 많다. 1960~90년대의 훌륭한 가요들을 담은 LP를 발매하고 싶은데 해외와 달리 저작권, 저작인접권이 복잡하게 얽혀 있어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하지만 유관 단체와 하나하나 해결책을 찾아나갈 계획이다.

 

또한 국내 인디 뮤지션들이 데모 테이프를 들고 와 앨범 제작·유통을 문의하는데 혼자 모든 일을 하는 상황이라 홍보마케팅이 힘들어 포기하는 경우가 많아 안타까웠는데 이 역시 선결 과제다. 여건이 나아지면 장르를 나눠서 전문 매장을 오픈하고, 공연을 확대해나갈 욕망이 꿈틀댄다.

“레코드와 공연 중심으로 음악을 소개하는 일을 해오다보니 보람이 크다. 시장이 더 커지고 수익이 생기면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열심히 버티다보면 기회가 더 생길 거라 생각한다.”

[취재후기] 내내 덤덤한 표정으로 이야기하던 김 대표는 젊은 세대에 대한 기성세대의 편견을 비판했다. “요즘 애들은 음악을 진지하게 듣질 않아!”. 시간을 쪼개 발품을 팔아가며 음악을 찾아 듣는 이들로 인해 LP와 인디 공연시장의 미래가 있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유연해 보이나 내면이 단단한 문화 게릴라와 조우한 느낌이다. 인터뷰를 끝낸 오후 2시, 가게 문을 활짝 열어젖히는 그의 손길이 여유로워 보였다.

goolis@sportsq.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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