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7 23:04 (토)
일베 논란 '개그콘서트' 풍자와 조롱의 위험한 경계
상태바
일베 논란 '개그콘서트' 풍자와 조롱의 위험한 경계
  • 용원중 기자
  • 승인 2015.01.12 22:5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스포츠Q 용원중기자] KBS2 ‘개그콘서트’가 12일 일베(일간베스트) 논란에 대해 공식 입장을 내놨다.

발단은 11일 밤 방영분에서 비롯됐다. '사둥이는 아빠 딸‘ 코너에선 새해 목표 질문에 둘째 여름이(김승혜)가 "꼭 김치 먹는 데 성공해서 '김치녀'가 될 거야. 오빠 나 명품 백 사줘. 신상으로!"라고 말했다. '김치녀'는 일베에서 한국 여성을 비하하는 단어로 지나치게 남성에게 의존적인 여성, 과도한 성형수술을 한 여성, 분수에 맞지 않게 사치스러운 여성을 통칭하는 인터넷 신조어다. 이에 시청자들은 SNS와 시청자 게시판을 통해 불쾌감을 드러냈다.

'부엉이' 코너도 마찬가지다. 노란 모자를 쓴 길 잃은 등산객(장유환)이 부엉이(이상구)의 길 안내를 받고 낭떠러지로 떨어져 죽는 상황이 그려졌다. 상당수 시청자가 봉화산 부엉이 바위에서 자살한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떠올렸다. 일베에서 일삼았듯 고인을 희화화한 게 아니냐는 비판이 쏟아졌다.

▲ '개그콘서트'의 코너 '사둥이는 아빠 딸'(사진 위)과 '부엉이'(아래)

이에 제작진은 시청자 게시판을 통해 "'사둥이는 아빠 딸' 코너의 경우 인터넷에서 통용되는 말을 어린이들이 무분별하게 사용하는 점에 경각심을 일깨우자는 의도였다. 하지만 공영방송에서 부정적 의미를 내포하는 인터넷 용어를 사용한 것 자체가 적절하지 못하다는 시청자 여러분의 지적이 있었다. 제작진은 이를 겸허히 받아들이며, 차후 인터넷 용어 사용에 신중을 기하겠다"고 해명했다.

이어 "또한 '부엉이' 코너의 내용이 '부엉이 바위를 연상시킨다' '특정 정치성향을 표방하는 커뮤니티와 관련이 있다' 등의 추측은 전혀 사실이 아니며, 제작진의 의도와는 무관함을 밝힌다"고 덧붙였다.

제작진의 공식 입장을 보노라면 노회한 정치인들 뺨친다. 비리나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가벼운 사안엔 “지적을 겸허히 받아들이겠다”며 반성하는 척하고, 민감한 사안엔 “의도와 무관하다”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고 적극 발뺌하는.

군색하기도 하다. 지난해 11월 ‘렛잇비’ 코너에서 일베 캐릭터인 ‘베충이’ 이미지가 들어간 합성사진을 써 논란이 됐다가 “부주의로 인한 실수”라고 사과한 바 있다. 더 거슬러 올라가 2013년 8월 ‘뿜 엔터테인먼트’의 “~하실게요”가 그릇된 어법이라는 지적에 제작진은 “톱스타와 그 주변인들의 그릇된 모습을 꼬집으려는 의도에서 나온 것”이라고 해명했다.

이에 한글문화연대는 "사람들이 그릇된 말투라는 사실을 알고 있을 때 '그릇된 모습'을 꼬집겠다는 제작진의 의도가 살아나는 것이다. 사정이 그렇지 않으므로 '개그콘서트'는 자기 의도와 무관하게 이 잘못된 말투를 청소년과 국민에게 보급하면서 정당화하는 노릇을 하고 있는 것이다“고 반박했다.

연이은 실수는 실수라기보다 의도에 가깝다. 누리꾼들은 “부엉이 캐릭터와 함께 등산객이 절벽에서 떨어져 죽는다는 내용이 아무 의미 없이 개그 소재로 쓰였다는 걸 사람들이 믿을 것 같은가” “제작진이 '부엉이'에서 나온 상징적인 의미를 전혀 의도하지 않았다고 해도 이건 다수가 느끼고 있다”고 지적했다. 제작진의 해명보다 훨씬 설득력이 있다. 그동안 시청자와 소통하며 큰 웃음을 줬던 ‘개그콘서트’라면 이를 모를 리가 없을 텐데.

‘개그콘서트’의 풍자와 조롱, 언어유희와 말장난의 위험한 경계가 우려스럽다. 이런저런 해석과 연관을 떠나 ‘김치녀’에선 여성비하, ‘부엉이’에선 생명경시 시선이 물씬 풍기는 점은 두렵기마저 하다.

goolis@sportsq.co.kr

도전과 열정, 위로와 영감 그리고 스포츠큐(Q)


주요기사
포토Q