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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뷰포인트] 대중문화, 추억과 복고의 이중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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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뷰포인트] 대중문화, 추억과 복고의 이중주
  • 용원중 기자
  • 승인 2015.01.14 10: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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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Q 용원중기자] # 장면 1. 지난 12일 오후 서울 연남동 LP 레코드점 ‘김밥레코즈’. 신중하게 LP를 고르던 대학생 박선일(23)씨는 “인터넷에서 무시로 다운로드해 듣는 것과 달리 이곳에서 오랫동안 고민하며 좋아하는 음반을 고르는 매력이 크다”며 “정성들여 먼지를 닦아내고 관리해야 하는 번거로움은 있으나 이제 LP 소장을 위해 레코드점을 들르는 게 습관이 됐다”고 말했다.

# 장면 2. 13일 오후 영등포 CGV 로비. 노년의 부부가 영화 ‘국제시장’ 티켓을 든 채 입장을 기다리고 있었다. 두 어르신은 “요즘 이 영화가 대세래”라며 귀엣말을 나눈 뒤 “손녀가 할머니, 할아버지 보시라고 입장권을 사줘 오게 됐다”고 말했다. 이날 자정 무렵 ‘국제시장’은 새해 첫 1000만 관객 돌파 영화로 등극했다.

2015년 대중문화계에 ‘추억’과 ‘복고’의 파고가 그 어느 때보다 높게 일렁인다.

◆ ‘국제시장’ ‘허삼관’ ‘강남 1970’ ‘쎄시봉’…중장년층 문화소비 주류 부상

스크린의 복고 열기는 한파를 녹일 만큼 뜨겁다. 1950년대 한국전쟁부터 60년대 파독 간호사·광부, 70년대 베트남전쟁, 80년대 이산가족찾기를 스크린에 담아낸 ‘국제시장’이 전 세대를 맹렬히 파고들어 1000만 관객을 모았다.

▲ '국제시장' '강남 1970' '허삼관' '쎄시봉'(사진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1950~60년대를 배경으로 한 가장의 핏줄을 둘러싼 소동을 다룬 ‘허삼관’(1월14일 개봉), 강남 땅개발이 한창이던 1970년대 초 두 남자의 우정과 위험한 욕망을 그린 ‘강남 1970’(21일), 70년대 명동의 음악다방이자 송창식·윤형주·김세환·이장희·양희은 등이 노래하던 포크음악의 산실을 다룬 ‘쎄시봉’(2월)이 줄줄이 개봉된다.

영화에는 신탄진 담배, 표어 ‘아들 딸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 통기타, 매일 오후 사이렌과 함께 이뤄지는 국기에 대한 경례, 솜사탕과 강냉이 등이 등장한다. 추억과 향수를 자극하며 중장년층에는 공감대. 젊은층에는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화제작들이 과거에 초점을 맞추는 이유 중 하나는 한국영화의 주 관객층인 20~30대에 이어 중장년 세대가 또 다른 주류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국제시장’의 흥행이나 98세 할아버지와 89세 할머니의 사랑을 담은 독립 다큐멘터리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 돌풍(450만 관객)은 모두 중장년층 이상 세대를 소재로 폭넓은 공감대를 이끌어냈기 때문이다.

실제 CGV리서치센터가 지난 1년간 CGV를 찾은 관객들을 연령대별로 분석한 결과, 중장년층의 영화 관람 횟수가 눈에 띄게 늘어 45세 이상에서 전년대비 30% 증가했고, 60대 이상은 40.2%나 늘었다. 자연스레 이들의 코드를 겨냥한 영화들이 속속 기획되며, 중장년층은 흥행을 주도할 정도로 문화 콘텐츠의 주요 소비층으로 부상했다.

중장년층은 영화의 박스오피스 순위까지 바꿔놓고 있다. 지난 한 해 박스오피스 톱5에 오른 ‘명량’ ‘겨울왕국’ ‘인터스텔라’ ‘해적: 바다로 간 산적’ ‘수상한 그녀’는 모두 중장년층이 선호한 작품들이다. 중장년층이 영화관으로 발길을 옮겨야 ‘대박’으로 이어진다는 속설이 정설로 바뀌어가는 추세다.

◆ 가요계 ‘토토가’ 후폭풍 거세…불황의 음반업계 LP 붐 주목

대중음악계의 복고 발걸음도 분주하다. MBC '무한도전'의 특집 프로그램 '토요일 토요일은 가수다(토토가)'가 기폭제 역할을 했다.

김건모, 터보, 지누션, 이정현, 김현정, 소찬휘, 조성모, 엄정화, 쿨 등 1990년대 인기 가수들이 자신의 히트곡을 부른 단 2회의 무대의 파급효과는 막강했다. 90년대 히트곡들이 음원차트 상위권에 오르는가 하면 80년대 레코드점과 가판대에서 볼 수 있던 '가요 모음집' 앨범이 부활했다. 당시 가수들이 재조명되면서 행사 섭외는 물론 전속계약 소식까지 전해지고 있다.

▲ MBC '무한도전'에서 특집으로 방영한 '토요일 토요일은 가수다'

오는 16일부터 '90년 청춘가요' 앨범을 발매하는 이성권 더하기미디어 대표는 "80년대 쉽게 찾아볼 수 있었던 가요모음집 앨범을 ‘토토가’ 방송 후 찾는 사람들이 많아 제작하게 됐다. 각종 마트와 서점, 회사에서 단체로 선주문하고 있다"고 밝혔다.

‘토토가’에 앞서 Mnet ‘슈퍼스타K6’에서 혜성처럼 등장한 언더그라운드 가수 곽진언으로 인해 통기타와 60~70년대 주류 음악장르였던 포크의 부활이 이뤄진 점도 주목할 만하다.

사멸해가던 LP는 부활의 기지개를 켜고 있다. 음원 스트리밍이나 다운로드로 음악을 소비하던 이들이 풍성한 사운드, 시원한 아트워크의 LP에 관심을 가지며 음악을 ‘소장’하려드는 모습도 생겨난다. 이로 인해 자취를 감추던 레코드숍들이 하나둘씩 생겨나고 있다.

홍대 일대에서 ‘LP를 알리자’ ‘소규모 매장과 독립 음악인들의 음악을 홍보하자’란 취지에서 지난 2011년부터 열리고 있는 지난 2011년부터 열리고 있는 ‘서울 레코드 페어’엔 음반 소매점, 수입상, 홍대 인디레이블, 동호회원, 젊은 층이 희귀 LP와 CD를 전시, 구매하기 위해 해를 거듭할수록 대거 몰리는 중이다.

인기가수 김동률, 이적, 지드래곤 등은 온라인 음원출시, 싱글 발매가 대세인 가요계 풍토에서 아날로그 향취가 물씬 나는 LP를 발매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김영혁 김밥레코즈 대표는 “음악을 찾아 듣는 대학생을 비롯한 젊은 세대가 존재하기에 ‘음반시장의 미래는 없다’는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며 “대중화엔 시간이 걸리겠지만 해외 음반시장의 긍정적 시그널에 영향을 받고, 국내 대형 기획사들의 시도가 활발해진다면 전망은 밝다”고 전했다.

◆ 최근 들어 젊은 음악 애호가들이 관심을 보이는 추억의 LP들

◆ “중년층인 386세대의 자아발견” “암울한 현실에 대한 반작용”

공연가의 작품들도 예외는 아니다. 2만 관객을 돌파하며 돌풍을 지피고 있는 연극 ‘리타’를 비롯해 뮤지컬 ‘킹키부츠’ ‘라카지’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올슉업’ ‘그날들’ ‘드림걸즈’ ‘로빈훗’, 연극 ‘해롤르 & 모드’ 등 과거를 반추한 작품들이 박스오피스 상위권을 점령하고 있다.

과거 히트했던 영화를 무대화한 ‘무비컬’이나 인기 가수들의 히트곡을 엮은 ‘주크박스 뮤지컬’, 기존의 히트작을 다시금 무대에 올리는 ‘리바이벌’은 모두 복고의 산물이다. 최신작을 이런 형식으로 관객 앞에 내놓을 경우 문화간섭 현상으로 인해 별다른 반향을 얻질 못한다.

원종원 순천향대 신방과 교수는 복고 열풍을 세대의 특성에서 찾는다. 그에 따르면 국내와 달리 해외에선 오래 전부터 문화소비 주 계층이 젊은 세대가 아니라 구매력을 갖춘 중년층이었다. 국내 중년층인 386세대가 그동안 경제성장에 목매단 채 살아오다 자아에 눈 돌리며 문화소비를 하기 시작하면서 익숙한 콘텐츠인 복고, 향수 상품들이 많이 나오고 있다. 원 교수는 ”중년층뿐만 아니라 젊은 세대까지 아우르며 부가가치를 높이기 위해선 단순히 옛것의 재현이 아니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작업이 동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시대의 특성으로 눈을 돌리기도 한다. ‘좌우파 사전’ ‘내 청춘의 감옥’의 저자 이건범 작가는 “현실이 암울하고 비전을 찾지 못할 때 과거에 회귀하는 경향이 짙다”며 “연이은 참사와 정치의 실종, 경제적 어려움, 갑을관계로 대변되는 양극화 현상 심화로 인해 우리 사회 구성원들이 현재보다 훨씬 인간적이고 따뜻했던 과거를 떠올림으로써 복고 열풍이 만들어진다”고 진단했다.

대중문화계에 불고 있는 복고 바람이 일회성 '추억팔이'로 그치지 않고, 문화 다양성의 한 포맷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한 문화 제작자와 소비자의 노력이 필요할 때다.

goolis@sportsq.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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