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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Q포커스] 한국 축구 아시안컵 63년사, '종이 호랑이' 오명 이젠 벗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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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Q포커스] 한국 축구 아시안컵 63년사, '종이 호랑이' 오명 이젠 벗을 때
  • 안호근 기자
  • 승인 2018.12.28 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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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Q(큐) 안호근 기자] 아시아의 호랑이로 불리며 월드컵 예선에선 강력한 존재감을 뽐냈지만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에선 좀처럼 힘을 쓰지 못했다.

1956년 홍콩에서 열린 초대 대회부터 빠짐 없이 참가했던 한국 축구지만 아시아최강자에 올라서는 건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2019 아랍에미리트연합(UAE) AFC 아시안컵을 일주일여 앞두고 한국 축구의 대회 참가사에 대해 알아본다.

 

▲ 황의조(가운데)가 UAE 현지에서 아시안컵에 대비해 훈련을 하고 있다. [사진=대한축구협회 제공]

 

◆ 초반 극강세, 2회 연속 아시아 정상 감격

1956년 홍콩에서 열린 대회는 초창기 월드컵과 마찬가지로 규모가 매우 작았다. 8개국이 예선에 참가해 한국, 이스라엘, 남베트남이 본선에 진출해 개최국 홍콩과 4개국이 풀리그를 치러 한국이 초대 우승국의 영예를 차지했다.

귀국 후 이승만 전 대통령을 예방한 선수단은 국제대회를 할 수 있는 잔디운동장 건립을 요청했고 이후 서울 용산구에 위치한 효창운동장이 만들어지는 계기가 됐다.

4년 뒤엔 효창운동장에서 2번째 대회가 개최됐다. 한국을 제외한 10개국이 예선에 참가해 이스라엘, 대만, 남베트남이 본선 티켓을 얻었고 한국은 일방적인 팬들의 응원을 등에 업고 3전 전승으로 대회 2연패를 일궈냈다.

 

▲ 1956년 초대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한 대표팀. [사진=대한축구협회 제공]

 

◆ 한고비 못 넘는 한국, 계속된 롤로코스터 행보

기분 좋은 시작을 알렸지만 이후엔 고전이 이어졌다. 올림픽 참가로 인해 2진급이 참가했던 1964년 이스라엘 대회는 차치하더라도 4년 뒤 이란 대회에선 일본과 대만에 패해 예선에서 탈락했다.

1972년 태국 대회에서는 김호, 이회택 등 1970년대 에이스들이 총출동한 가운데 한국 축구의 전설 차범근 전 축구대표팀 감독이 대학 1년생으로서 자신의 존재를 알린 대회였다. 본선 참가국도  6개팀으로 늘어 2개조로 나눠 조별리그를 치렀고 한국은 파죽지세를 달리며 결승에 올랐지만 이란의 벽에 막혀 준우승에 만족해야 했다.

1976년 이란 대회에선 세대교체가 성공적으로 이뤄지지 못해 예선탈락의 멍에를 썼다. 4년 뒤 쿠웨이트 대회에서 차범근, 허정무 등 기존 자원에 최순호 포항 스틸러스 감독이 합류해 상승세를 타고 결승에 올랐다.

비록 홈팀 쿠웨이트에 져 준우승에 머물렀지만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최순호가 7골로 득점왕에 올랐고 준결승에서 북한을 꺾어 서울 도심에서 카퍼레이드를 하는 초유의 상황도 벌어졌다.

그러나 1984년 싱가포르 대회에선 다시 고개를 숙였다. 국내 리그를 마치자마자 12월에 대회가 열려 체력적인 부담이 컸고 까다로운 중동팀 사우디, 쿠웨이트, 시리아, 카타르 등을 만나 조 최하위탈락의 수모를 당했다.

 

▲ 1988년 대회에 나섰던 대표팀. [사진=대한축구협회 제공]

 

◆ 2-6 이란 악몽, 득점왕과 결과는 별개

1988년 카타르에서는 두고두고 아쉬움이 남았다. 1986년 멕시코 월드컵을 통해 자신감을 얻은 한국은 김주성과 이태호, 정용환, 박경훈, 최강희와 신예 황선홍의 동반 성장 속에 일본, 이란, 중국을 차례로 꺾고 사우디를 만났는데 아시안컵 최초 결승전 승부차기 끝에 3-4로 석패하며 3번째 우승에 실패했다. 그러나 김주성이 MVP, 이태호가 득점왕에 오르며 자존심을 지켰다.

4년 뒤 일본 대회에선 예선에서 손쉬운 상대를 만나자 대학실업선발팀을 내보냈지만 홈팀 태국에 패하며 본선 티켓을 놓쳐 팬들의 원성을 샀다.

1996년 UAE 대회는 한국 축구에 더 큰 충격을 안겨줬다. 일본 대회를 거울 삼아 최정예로 팀을 꾸렸지만 UAE와 비기고 쿠웨이트에 패하면서 조 3위로 간신히 8강에 올라 이란을 만났다. 전반을 2-1로 마쳤지만 후반 알리 다에이에게만 4골을 얻어맞으며 역사에 남을 2-6 완패를 당했다. 들끓는 여론 속에 박종환 감독은 결국 옷을 벗어야 했다.

2000년 레바논 대회에서도 8강에서 이란을 만난 한국은 김상식의 후반 막판 동점골과 이동국의 결승골로 4년 전 대패를 설욕했다. 그러나 준결승에서 사우디에 1-2로 패했다. 이동국이 6골로 득점왕을 차지했지만 다시 한 번 우승 도전을 다음 기회로 미뤄야 했다.

 

▲ 이동국은 2000년 레바논 대회에서 득점왕을 차지했지만 한국은 준결승에서 패하며 고개를 숙였다. [사진=대한축구협회 제공]

◆ 2002 4강 효과도 무색, 이젠 우승할 때가 됐다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4강 신화를 이룩하는 등 세계를 놀라게 한 한국 축구지만 2004년 중국에서 열린 아시안컵에선 다시 좌절했다. UAE와 쿠웨이트를 무너뜨리며 순항했지만 8강에서 다시 ㅇ이란을 만났고 이번엔 알리 카리미에게 해트트릭을 내주며 3-4로 무릎을 꿇었다.

처음으로 4개국(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베트남, 태국) 공동개최로 열린 2007년 대회에선 8강전부터 4강전, 3·4위전까지 3경기 연속 0-0 무승부 끝에 승부차기를 벌이는 웃지 못할 진기록을 만든 끝에 3위에 그쳤다. 극심한 골결정력 부재는 물론이고 대회 중 몇몇 선수들의 음주사실도 드러나 실망을 안겼다. 핌 베어벡 감독도 대회를 마치고 사임했다.

한국은 2011년 대회도 8강에서 이란을 만났다.무려 메이저 대회에서 5차례 연속으로 특정팀을 만나는 인연. 윤빛가람의 골로 다시 한 번 웃었고 준결승에서 황재원의 극장골로 승부차기로 끌고 갔지만 초반 키커 3명이 모두 실축하며 0-3으로 졌다.

울루 슈틸리케 전임 감독 부임 초기 열린 2015년 호주 대회에선 짠물수비를 앞세운 ‘늪축구’로 상승세를 탔다. 준결승에서 이라크를 손쉽게 제압한 한국은 7대회 만에 결승전에 올라 홈팀 호주를 상대했지만 결국 홈팀 강세에 밀려 연장 접전 끝에 우승 세리머니를 다시 한 번 지켜봐야 했다.

한국은 1960년 이후 이번 대회에서 59년 만에 우승 트로피 탈환에 나선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를 호령하고 있는 손흥민(토트넘 홋스퍼)과 그를 제치고 대한축구협회 올해의 선수로 꼽힌 황의조(감바 오사카)를 앞세워 아시아의 호랑이라는 명성을 되찾겠다는 각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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