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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한류]① 현대음악 작곡가 진은숙의 실험 '아르스노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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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한류]① 현대음악 작곡가 진은숙의 실험 '아르스노바'
  • 용원중 기자
  • 승인 2015.03.30 15: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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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Q 용원중기자] 2년 전 독일 베를린에서 택시를 탔을 때 라디오 클래식 음악프로 DJ가 진은숙(54)의 음악을 틀기 전, 그에 대해 설명을 하고 있었다. 클래식 음악에 관심이 많다는 택시 기사는 “뛰어난 작곡가”라고 추켜세웠다. 동승한 한국인 유학생은 “문화에 관심 많은 독일 및 유럽인들 사이에서 진은숙은 유명 인사”라고 부연 설명했다.

▲ '진은숙 3개 협주곡' 음반, ICMA 현대음악 부문 수상 쾌거 

꽤 많은 한국인 연주자와 성악가들이 세계 주요 콩쿠르를 휩쓸며 해외 무대에서 각광받고 있으나, 불모지나 다름 없는 작곡 분야에서 이룬 진은숙의 성과는 실로 대단하다. 작곡가에게 주어지는 노벨상으로 불리는 그라베마이어상 수상자인 그는 상을 또 하나 추가했다. 3월28일 터키 빌겐트홀에서 열린 시상식에서 ‘진은숙 3개 협주곡’ 음반(서울시향 연주·도이치 그라마폰 발매)으로 세계적 명성의 음반상인 국제클래식음악상(ICMA) 현대음악 부문을 수상했다. 한국으로 돌아오자마자 서울시향의 현대음악 시리즈 ‘아르스노바’로 한국 청중과 만난다. 30일 오전 광화문에서 그를 만났다.

▲ 10년째 '아르스노바'를 이끌어오고 있는 세계적인 현대음악 작곡가 진은숙[사진=서울시향 제공]

“해외 유명 오케스트라들도 현대음악 CD를 많이 내지만 ICMA상은 정말 연주 역량이 뛰어난 연주자와 지휘자에 대한 의미 깊은 평가다. 내 음악이 좋아서라기보다 서울시향과 정명훈 예술감독에게 가는 상이나 마찬가지다.”

자신이 상임 작곡가로 몸담고 있는 서울시향과 정 예술감독에 대한 신뢰와 애정이 잔뜩 묻어났다.

▲ 아시아 유일 현대음악 소개 시리즈 '아르스노바' 10년째 주도 

동시대 음악 경향을 소개하고 미래의 클래식을 발굴하는 ‘아르스노바’는 진은숙이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심도 있는 리허설을 거쳐 수준 높은 공연을 올리는 정기연주 시리즈다. 2006년 시작해 올해로 10년째다.

“한국과 아시아 지역에서 유일한 프로그램이다. 처음엔 시간을 두고 좋은 현대음악을 소개하고, 청중을 설득하며 만들어가자고 시작했다. 그동안 한국·아시아 초연작을 100개 넘게 연주했다. 단순한 소개와 연주 수준이 아니라 해외 유명 현대음악 앙상블 이상의 완벽한 연주와 짤 짜인 프로그램으로 선보였다는 게 큰 성과다. 이젠 관객의 호응과 관심도, 티켓 세일즈 면에서 중요한 음악 프로젝트로 자리매김했다.”

▲ 진은숙 서울시향 상임 작곡가가 30일 광화문의 한 식당에서 서울시향의 현재와 미래에 대해 말하고 있다

관객 뿐만이 아니라 서울시향 단원들의 성취도 대단하다. 익숙한 클래식 작품의 틀을 뛰어넘어 잘 몰랐던 작곡가와 작품들을 접하며 연주 테크닉을 함양하고, 경험의 폭을 확대했다. 미주와 유럽투어에서 현대음악을 소개하며 매번 현지에서 뜨거운 반응을 얻었다. 지난해 BBC프롬스 초청 연주에선 진은숙의 ‘생황 콘체르토’를 연주해 평단과 관객의 폭발적인 찬사를 받기도 했다. 또한 마스터 클래스를 통해 전도유망한 작곡가 신동훈 박정균 서지훈 등을 발굴, 이들의 곡을 연주하며 국제무대에 진출시키는 성과를 올렸다.

▲ '아메리칸 매버릭스' '명상&신비'서 미국·프랑스 현대음악 걸작 소개 

올해 ‘아르스노바’는 서울시향 재단출범 10주년을 기념해 4월1일 ‘체임버 콘서트- 아메리칸 매버릭스’(오후 7시30분 세종체임버홀)에선 ‘현대음악 스페셜리스트’인 최수열 서울시향 부지휘자가 지휘봉을 잡고 미국의 현대음악 작곡가 존 케이지, 엘리엇 카터, 찰스 아이브스, 테리 라일리의 대표작들을 연주한다. 또한 위촉 작곡가 박명훈의 ‘몽타’(협연 서울시향 더블베이스 수석 안동혁)를 세계 초연한다.

“그동안 ‘아르스노바’에서 미국 작곡가들의 작품을 많이 소개했다. 청중들이 쉽게 이해하고 재밌어 해서 즐겨 선곡했다. 유럽 음악과는 달리 미국적 색채가 강하고 아이디어가 강렬한 작곡가들이라 또 다른 매력을 발산할 것으로 보인다. 테리 라일리의 ‘인 C’는 연주자와 지휘자가 함께 만들어가는, 지휘자가 필요 없는 곡이라 최 부지휘자가 지휘 대신 타악기를 연주할 거다.”

 

7일 ‘관현악 콘서트- 명상&신비’(오후 8시 LG아트센터)에서는 프랑스 작곡가 메시앙, 뒤티외, 뒤사팽의 곡들을 프랑스 음악의 탁월한 해석가인 정명훈 예술감독 지휘로 연주한다. 정 예술감독이 ‘아르스노바’ 지휘를 맡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특히 현존하는 프랑스 대표 작곡가 파스칼 뒤사팽의 바이올린 협주곡 ‘상승’이 아시아 초연된다. 파리를 거점으로 활동 중인 중견 바이올리니스트 강혜선이 협연자로 나선다.

“‘명상&신비’는 프랑스 현대음악 대작들로 구성했다. 독일 음악과는 또 다른 프랑스 음악, 그 안에서 또 각각 이질적인 작품들이라 ‘아르스노바’ 역사상 가장 특이한 프로그램 구성이다. 정명훈 감독은 그간 일정과 연주홀 사정 탓에 지휘가 번번이 불발됐는데 이번에 강력히 추진해 성사됐다. 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상임지휘자로 계시면서 프랑스 음악에 익숙한 데다 메시앙 연주는 세계 최고 권위자다. 뒤티외의 ‘메타볼’은 2년 전 ‘아르스노바’에서 초연했을 때 반응이 대단해 다시 하게 됐다.”

▲ "예술가치 이해하는 전문 경영인, 시향 단원들의 책임의식으로 문제 해결해가야" 

지난해 말부터 불거진 서울시향 논란을 바라보는 그의 시선은 무척이나 복잡하고 착잡해 보였다. 지난 10년 동안 서울시향과 한 몸처럼 작업해 왔기에 더욱 그렇다.

“독일 월드컵 당시 베를린 시내 유명 백화점에 박지성 선수의 대형 사진이 걸렸을 때 너무 자랑스러웠다. 독일인들이 우리를 보는 눈이 달라지더라. 음악가의 국위 선양은 스포츠 스타들에 비교해 기간이 훨씬 길다. 평생 동안 성과를 축적해야 한다. 돈으로 환산하기 어려운 외교사절, 국가홍보를 하는 셈이다. 서울시향과 정명훈 예술감독은 세계에서 대한민국을 대변하는 얼굴 역할을 해오고 있다. 한국의 자존심이다. 그간의 성취를 폄하하는 대신 애정을 갖고 성원해주셨으면 한다.”

 

아직도 문제가 다 풀리지 않은 서울시향이 더욱 발전하기 위한 조언 역시 잊지 않았다. 속사정을 누구보다 잘 아는데다 해외 음악단체 시스템에 누구보다 밝은 그의 말이라 귀를 쫑긋하게 된다.

“해외 어느 악단도 나름의 문제들을 가지고 있다. 일단 전문가를 대표이사로 영입해야 한다. 정권에 따라 이뤄지는 인사라든가 정신적, 예술적인 분야는 비전문가를 투입해도 된다는 발상을 고쳐야 한다. 예술의 가치를 감지하는 전문 경영인이 와서 서울시향을 운영해야 하고, 내부 구성원들 역시 책임을 다하는 자세로 임한다면 많은 부분에서 다져질 거다.”

이와 함께 “팩트를 가지고 문제를 논리적, 객관적으로 해결하는 차분하고 이성적인 사회가 됐으면 한다”는 소망을 덧붙였다.

■ Who’s 진은숙? 서울대 음대 작곡과를 졸업한 뒤 독일 함부르크 음악대학에서 죄르지 리게티를 사사했다. 베를린 도이체 심포니 오케스트라 상임 작곡가를 역임했으며, 영국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 예술감독(현대음악 프로그램 ‘오늘의 음악’)과 노르웨이 스타방게르 심포니 상주 작곡가로 활동 중이다.

2004년 바이올린 협주곡으로 그라베마이어 작곡상을 수상하며 다케미스, 탄둔, 불레즈 등과 함께 세계적인 작곡가 반열에 올랐다. 이듬해 아르놀트 쇤베르크 음악상, 2007년 하이델베르크 예술상, 2010년 모나코 피에르 대공 작곡상 등을 수상했다.

 

베를린 필 지휘자 사이먼 래틀이 “세계 작곡계를 이끌 차세대 5인”으로 지목한 그의 작품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로카나‘ ’피아노, 타악기 앙상블 위한 이중협주곡‘ ’첼로 협주곡‘ ’클라리넷 협주곡‘ ‘말의 유희’ ‘기계적 환상곡’ ‘씨’ ‘상티카 에카탈라’ ‘파라메타 스트링’ ‘시간의 거울’ 등은 세계 각지의 유서 깊은 음악 페스티벌과 콘서트에서 연주돼 왔다. 해외 평단은 "무궁무진한 관현악 기교와 변화무쌍한 음색"이라며 열광했다.

오는 4월9일엔 영국 국립청소년오케스트라가 ‘마네킹’을, 6월24~25일에는 베를린 필하모닉이 ‘사이렌의 침묵’을 독일 초연한다. 이어 10월 영국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가 ‘클라리넷 협주곡’을 연주하며 영국 로열 오페라단이 위촉한 ‘거울 뒤의 앨리스’가 세계 초연된다.

[취재후기] 인터뷰는 요즘 우스갯 표현처럼 '예능'으로 시작해 '다큐'로 마무리됐다. 우리 사회와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서울시향에 대해 할 말이 가득 차 있는 듯 보였다. '세월호 사건'이나 '서울시향 논란' 모두 누구도 책임지려 하지 않는 우리 사회의 부정적인 면이 잉태한 비극으로 규정했다. 쉼표 없이 이어가는 그의 언어 향연 가운데 '이성'과 '책임'이라는 단어가 유독 많이 등장했다. 뜨거운 내면의 예술가가 토해내는 차가운 음정이 인상적이었다. 고민의 깊이가 확연히 느껴졌다.

goolis@sportsq.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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