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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김혜수 "배우가 최선인지 여전히 고민" 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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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김혜수 "배우가 최선인지 여전히 고민" ②
  • 용원중 기자
  • 승인 2015.04.28 07: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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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Q 글 용원중기자·사진 CGV아트하우스] 열여섯 살에 영화 ‘깜보’로 데뷔해 30년간 연기와 더불어 살아왔다. 총기 넘치는 하이틴 시절부터 20대를 연기했던 터라 세상을 일찍 알아버렸을 테다. 시간의 흐름과 함께 김혜수의 결은 시시각각 변했다. 변화는 연기에 고스란히 투영됐다. 사극과 현대물, 로맨스·멜로·코미디·공포·범죄 스릴러·블랙코미디를 자유롭게 유영했다. 재능을 후회없이 발산하면서도 관습과 통념을 거부하며 살았던 용감한 여배우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 남자배우 중심의 영화 제작 현실을 바라보며 심경이 복잡할 것 같다.

▲ 엄밀히 말하면 우리나라만이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그렇다. 영화는 상업 예술인데, 남자배우들이 작품을 주도했을 때 카타르시스가 더 크다는 것, 그것을 대중이 원함을 부정할 수 있다. 여배우로서 절망한다거나 사명감을 곧추세운다고 해결될 문제는 아니다. 시간이 필요하다. 여자 이야기를 제대로 다룰 수 있는 사람이 나와야 하고, 그런 이야기를 수용할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돼야 한다. 그리고 여배우들이 할 수 있는 게 분명히 있을 거다. 내가 늘 중심(주인공)이 되려고 하면 결핍(부족)을 느끼게도 되지만 일원이 되려고 하면 열려 있는 부분이 늘 있다.

- '차이나타운’에서 충무로의 기대주로 불리는 20대 배우들과 공연한 소감은 어땠나. 그 시절을 건너온 배우로서. 

▲ 난 저 나이 때 그러지 못했는데...어린 시절부터 자의적으로 선택하고 도전해서 그런 듯 싶다. 우리 때는 우연한 기회에 뽑혀 자의식이 성장하지 못한 상태에서 연기를 시작했다. 출발부터가 다르다. 그들은 배우다. “취미삼아 연예계에 발 디뎠어요”라고 말하던 우리와 다르다. 특히 김고은은 각별하다. 연기할 땐 신인, 중견은 존재하지 않는다. 같은 배우일 뿐이다. 고은이는 제대로 갖춰졌으나 아직 드러나지 않은 게 많은 배우다. 극 전반에 걸쳐 감정을 끌어가야 하는데 낯선 정서일 텐데 그 어려운 걸 대담한 직관과 섬세함을 가지고 풀어가서 놀라웠다.

- 일영 역 김고은은 “대선배로서 뭔가를 가르치려 들지를 않고 눈높이를 맞춰 그냥 얘기를 나누는 점이, 연기 파트너로 동등하게 대해주는 점이 인상적이었다”고 하더라.

▲ 가르칠 게 없다. 각자 느끼는 게 다르지 않나. 만약 내가 연기에 대해 말한다면 그냥 내가 아는 걸 얘기하는 거고 본인이 정말 느껴서 취사선택하는 거다. ‘뭘 가르치려 드는’ 건 내가 스스로 견제한다. 같이 공유하면서 배우는 게 좋다. 내가 배우를 오래 했으니 엄청난 선배인 줄 아는데 내가 못 느끼는 걸 다른 배우가 더 깊이, 다른 각도에서 느끼면 나도 자극을 얻는다. 각자 수용하는 게 다른 점은 인정하고 존중해줘야 한다. 타인이 나를 보는 시선과 나의 실체가 다른 것과 마찬가지다.

 

- 연기 인생 30년째다. 어떤 소회가 드나.

▲ 처음에 생각 없이 시작했다가 차츰 변화 과정을 겪었다. 이 일을 하면서 한 인간으로서 자연스럽게 성장했다. 모호했던 게 정리되고 뚜렷해지는 것도 있고, 아직까지도 답을 얻지 못한 것도 있다.

- 평생 직장 개념이 사라진 요즘, 한 직종에서 30년을 근속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중간에 그만 두거나 ‘전직’을 하고 싶단 욕망에 사로잡히진 않았나?

▲ 중도 포기했다면 결혼해서 아이를 셋은 낳았을 거다. 가사에 전념하는 후덕하고 따뜻한 아줌마가 돼있지 않았을까 싶다. 아이들에게 맛있는 음식을 해먹이면서 건강하게 키우고, 남편의 넥타이와 양말을 잘 다려주는 주부로서 살아갔을 거다. 30대 초반까지는 이 일이 내 인생의 많은 부분을 원하지 않았다. 앞으로 어떤 일을 할지 끊임없이 관심을 가졌다. 어쩔 땐 ‘연기는 아닌 것 같다“는 생각도 했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까지 연기를 지속하는 건 창작 열정 때문인가?

▲ 창작 열정보다는 내가 이 일에 적합한가, 정말 내 인생에 연기가 최선인가는 늘 고민한다. 지금이라도 내 시간을 다르게 운용하는 게 맞는 게 아닌가란 생각은 꽤 오래 해왔다. 하도 이렇게 오래 생활해서 익숙해져버렸나 보다.

- 해외 한 지역에 아예 숙소를 렌털해서 느긋하게 머무르고, 록 가수의 콘서트에 가서 신나게 즐기는 등 대중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은 채 자유롭게 지내는 배우 아닌가.

▲ 어릴 땐 일과 자연인 김혜수를 구분하려고 애썼다. 타인의 시선을 의식 안하려 해도 의식을 많이 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럴 필요가 없더라. 이 일 하는 것도 나니까. 어렸을 땐 뭘 그리 하지 말라는 게 많았던지...억압받는 게 많으니 자의식이 늦게 그리고 고통스럽게 성장했다. 대신 강렬해져서 내가 원하는 거에 누구든 개입하지 못하게 한다. 지금은 내 거를 좀 더 찾아가는 듯하다.

 

- 나이를 가늠하지 못할 만큼 외모가 예전 그대로다.

▲ 나이 들어가는 걸 맨날 느낀다. 구체적으로 몇 살, 몇 살 늘 리마인드 하진 않으나, 숫자가 중요하진 않으나 체감한다. 최근에 친구들이 추천해줘 ‘토토가’를 다시보기로 시청하는데 관객의 반응과 정서를 보며 깊이 공감했다. 그러면서 내 나이를 다시금 느꼈다. 씁쓸할 때도 있고, 나 자신을 토닥거릴 때도 있다. 분명 나이듦의 장점이 있다. 이만큼 세월을 보냈으니까 어떤 게 우위에 있어야 하는지를 안다는 거? 또 어릴 땐 피가 끓으니까 세게 말하고 공격적이었으나 지금은 같은 의도라도 편하고 자연스럽게 말하며 소통하게 된다. 좋은 점이다.

- '미생’보다 앞서 비정규직 문제를 다뤘던 드라마 ‘직장의 신’에 출연할 때 무척 인상적이었다. 그런 드라마, 또 안 할 건가?

▲ ‘미생’과 ‘직장의 신’은 표현 방식의 차이는 있겠으나 사회적 메시지로 대중의 체감 덩어리를 건드려줬기에 열광적 반응을 끌어냈다. 그런 작품들이 필요하다. 영화, 드라마 쪽으로 찬찬히 검토하고 있다.

- '청룡의 여신’으로 불릴 정도로 오랫동안 청룡영화제 사회를 봐오고 있다. ‘차이나타운’으로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는 일이 생길 수도 있겠다.

▲ 진행자가 수상을 하면 진행 흐름이 깨져버린다. 수상 소감을 시상자 앞으로 나가면서 부랴부랴 생각해야해 부담스러웠던 기억이 난다. 진행이든, 수상이든 하나에만 집중하는 게 필요하다. 만약 우리 영화가 상을 탄다면 감독님이나 김고은, 젊은 배우들이 받았으면 한다.

- 연애는 하고 있지 않나?

▲ 이제까지 연애할 대상을 의식적으로 찾았던 적은 없다. 기본적으로 남친이 없다고 만들고 찾는 스타일이 아니다. 만나다보니 인간적 호감 이상이 느껴질 때, 자연스레 연애하게 되는 게 제일 좋은 듯하다. 연애하지 않는 이유를 생각해보니...일을 안 하면 집에만 있는데, 상황을 스스로 제한한 탓도 있다.

 

- 연애에 있어서 김혜수는 어떤 스타일인가.

▲ 재고 따지질 않는다. 연애 한다고 결혼으로 이어져야 한다고 생각지도 않는다. 결혼하지 않은 채 사는 것도 상관없다.

- 연예인은 대중의 관심과 사랑을 먹고 사는 사람들이다. 대중의 관심이 사그라드는 거에 대한 두려움은 없나?

▲ 대중의 관심을 의식한다든가, 사라지는 거를 두려워한다든가 하진 않는다. 대중이 바라보는 김혜수, 업계에서 바라보는 김혜수 그리고 나는 간극이 있을 수 있다. 그로인해 아직도 부대끼는 면이 있다. 어쩔 수 없는 부분일 거다. 거기서 오는 씁쓸함이 있다.

- 요즘 일상에서 '꽂힌' 게 있다면.

▲ 은둔형에 가까운데 점점 나잇살이 찌더라. 처음으로 운동하려고 걷기부터 시작했다. 괜찮았다. 걸으면서 보이는 것도 많고, 생각도 하게 돼서 좋았다. 조금 더 단계를 높여서 자전거를 사서 사이클링을 해보려는 중이다.

[취재후기] 인터뷰 기사를 문답형으로 푸는 경우, 대개는 인터뷰이의 말말이 하나도 버릴 게 없을 때이다. 선명한 논리, 해박한 지식, 막힘없는 화술, 인터뷰어와 독자의 마음을 움직이는 내용성이 갖춰질 때다. 그런 조건에서 김혜수는 대단한 인터뷰이다. 최대한 첨삭한 것 없이 그의 말 그대로를 옮기려 했다. 그런데 과거 몇 차례 인터뷰로 만났을 때완 분위기가 많이 달라진 느낌이다. 사고의 나잇살일까란 생각도 든다. 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위풍당당하다. 교만하거나 드세단 의미가 아니다. 자존감이 큰 사람들이 그렇다.

goolis@sportsq.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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