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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남자수구 아름다운 1승, '대부' 이인창 감독의 꿈은 이제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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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남자수구 아름다운 1승, '대부' 이인창 감독의 꿈은 이제 시작이다
  • 김의겸 기자
  • 승인 2019.07.24 17: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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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Q(큐) 김의겸 기자] 한국 남자수구 대표팀이 첫 출전한 세계수영선수권대회 마지막 경기에서 감격적인 승리를 따냈다. 2019 국제수영연맹(FINA) 광주세계수영선수권대회에서 남녀수구 대표팀의 분투는 예상 밖의 큰 화제를 몰고 다녔는데 이보다 좋은 유종의 미가 있을까 싶다.

남자수구 대표팀은 23일 광주 광산구 남부대 수구경기장에서 열린 대회 남자수구 15·16위 결정전에서 뉴질랜드를 17-16(3-3 2-2 4-5 3-2 <5-4>)으로 이겼다.

전·후반을 12-12 동점으로 마친 뒤 승부 던지기에서 5-4로 승리하며 마침내 첫 승전보를 울렸다. 개최국 자격으로 처음 세계선수권 무대를 밟은 대표팀은 목표였던 1승을 달성하며 기분 좋게 대회를 마무리했다.

▲ 한국 남자수구 사상 세계선수권대회 첫 승리에 권영균이 기뻐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한국은 조별리그에서 강호 그리스, 세르비아, 몬테네그로에 내리 졌고 카자흐스탄과 순위 결정전에서도 4-17로 패했다.

승리가 없었던 양 팀이 만나 첫 승리를 노렸던 만큼 마지막까지 긴장을 놓을 수 없는 혈전이 벌어졌다. 

경기 종료 3분 19초 전 한국의 주장 이선욱이 역습 상황에서 골문 구석을 찌르는 슛으로 11-11 동점을 만들었다.

뉴질랜드가 경기 종료 1분 30초 전 션 뉴콤의 골로 다시 한 골 도망가자 한국은 경기 종료 32초 전 권영균의 중거리 슛으로 따라붙으며 경기를 승부 던지기로 끌고갔다.

경기는 승부 던지기 전까지 11번의 동점과 3번의 역전이 나올 만큼 치열했다. 경기 내내 뉴질랜드가 리드했지만 한국은 막판 끈질긴 투혼을 발휘, 동점을 만들고 승리까지 따냈다.

▲ 남자수구 대표팀 골키퍼 이진우(가운데)가 승리를 확정한 뒤 동료들과 기뻐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열악한 조건에서 발견한 희망

정규시간 종료 직전 뉴질랜드 매슈 루이스의 슛을 선방하며 극적인 역전승의 디딤돌을 놓은 골키퍼 이진우는 경기를 마친 뒤 “사실 말만 목표였지 1승은 꿈이라고 생각했다. 관중들의 응원 덕분에 힘을 받아서 1승을 할 수 있었다”며 감격에 젖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남자수구 대표팀은 지난 4월에서여 소집됐다. 평소보다 짧은 기간 훈련하고 대회에 나섰다. 전지훈련도 없었고 초청 연습경기도 치르지 못했던 열악한 상황에서도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으니 기쁨이 남다르다.

뒤늦게 소집된 대표팀은 체격조건에서 서구권에 밀리는 만큼 혹독한 체력·근력 훈련을 진행했다. 그런 노력이 1승이라는 결실로 이어졌다.

이승재 대표팀 코치는 “상상하지도 못할 만큼 힘든 훈련을 매일 소화했다. 아마 일반인이었다면 훈련 도중 익사했을 정도로 강도가 셌다”며 “이를 모두 이겨낸 선수들이 자랑스럽다”고 고마워 했다.

이번에 국내에서 열린 대회라 큰 관심을 받았지만 한국 수구가 예전의 영광을 되찾기 위해서는 앞으로가 중요하다.

대표팀 부주장 권영균은 “이번 대회를 통해 한국 수구가 한 발짝 전진할 수 있었다. 우리도 할 수 있다는 믿음이 생겼다”며 “후배들은 무한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친구들이기 때문에 앞으로 좀 더 발전된 한국 수구를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번에 1승을 이뤘으니 다음에는 좀 더 높은 목표에 도전해보겠다”고 다짐했다.

대표팀의 다음 목표는 2020 도쿄 올림픽이다. 내년 2월 카자흐스탄 아스타나에서 열리는 아시아워터폴로챔피언십에서 아시아에 주어진 티켓 1장 획득에 도전한다. 강호 일본은 개최국 자격으로 출전이 확정돼 경쟁에서 빠졌지만 여전히 카자흐스탄, 중국, 이란 등 넘어야 할 산이 많다.

▲ 이승재 코치는 기자회견에서 열악했던 지난 3개월간 준비과정을 돌아봤다. [사진=연합뉴스]

◆ 한국 수구의 '아버지' 이인창 감독

지난 4월 대표팀 감독에 선임된 이인창 감독은 일본에서 꾸리던 사업을 동생에게 맡기고 한국으로 넘어왔다.

4월 14일 진천선수촌에서 선수들을 처음 본 이 감독은 깜짝 놀랐다. “지난해 10월 전국체전 이후 훈련을 제대로 하지 못해 몸 관리가 안 돼 있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3개월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선수들은 이 감독의 지휘 아래 몸을 만들었다. 그리고 사상 처음으로 나선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역사적인 1승을 수확했다.

이 감독은 한국 수구의 발전 가능성을 믿는다. 일본 수구가 커가는 과정을 누구보다 가까이서 목격했기 때문이다.

일본에서 태어난 재일교포 3세 이인창 감독은 중학교 1학년 때 선수 생활을 시작해 일본 체육대학교의 스카우트 제의를 받은 후 일본에 귀화했다. 1982년 뉴델리 아시안게임에서 일본 대표로 출전해 남자수구 은메달을 목에 걸며 성공가도를 달렸다.

1986년 서울 아시안게임에 대비해 수구 대표팀을 꾸릴 계획이었던 대한수영연맹은 이 감독을 코치로 스카우트했고, 이 감독은 수구 불모지 한국에 수구의 싹을 틔웠다. 

그가 코치직 제의를 수락한 1983년 한국에 수구 팀은 전무했다. 전국을 돌며 경영 선수들을 눈으로 직접 보고, 감독에게 부탁해 선수를 뽑아 상비군을 꾸렸다. 그렇게 모인 수구 초심자들은 1년간 맹훈련을 거쳐 1984년 아시아수영선수권대회에서 금메달을 차지했다. 이들은 현재 지도자의 길을 걸으며 한국 수구를 이끄는 중심 세대로 발돋움 했다.

▲ 이승재 코치(왼쪽)와 이인창 감독. [사진=연합뉴스]

◆ 돌아온 '대부'와 함께 다시 '꽃 길' 걸을 수 있을까

한국 수구 '대부'와 같은 이인창 감독은 1986년 서울 아시안게임 은메달까지 함께한 뒤 일본으로 돌아갔다. 가업인 아버지의 플라스틱 가공 회사를 맡아야 했기 때문.

이후에도 일본에서 수구와 인연을 이어갔다. 1989~1993년 일본 대표팀 코치를 역임했고, 이후 대학 팀 지휘봉도 잡았다.

그는 “일본에서 코치를 하면서도 늘 한국 수구를 지켜봤다. 힘들게 키워낸 한국 수구가 하락세를 걷고 있는 게 안타까웠다”고 했다.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 한국 남자수구는 5위에 머물렀다. 대회가 끝나고 이 감독은 한국에서 다시 수구를 일으켜 보자는 제자의 제안을 받고 고민 끝에 한국행을 택했다. 이번 세계선수권은 한국수구가 다시 재도약할 수 있는 가능성을 발견했다는 점에서 고무적이다. 

이 감독은 “일본도 2001년 후쿠오카 세계선수권에서 개최국 자격으로 처음 세계무대를 밟았다. 남자는 최하위, 여자는 뒤에서 2등이었다”며 “앞으로 내 힘이 닿는 한 한국 수구 발전을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겠다. 지도자를 키우고 여자수구도 활성화해서 내가 없어도 우리 수구가 없어지지 않도록 만들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이인창 감독과 함께 한국수구가 다시 힘차게 비상할 수 있을까. 이번 1승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의 가치를 갖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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